심리학 모호함에 대한 기피 - 인간이 싫어하는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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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47회 작성일 16-02-06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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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공포영화를 볼 때 무언가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지는 순간보다는 그 순간이 예상되지만 ‘언제’ 혹은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모르는 동안 공포영화의 묘미를 느끼게 된다. <출처:gettyimages>



인간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무엇일까? 다양한 심리학적 대답이 가능하겠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불안이며 수많은 심리학 이론들이 바로 이 불안의 원인, 영향력, 발현과정, 그리고 인간의 대처방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각도로 살펴본 것들이다. 공포 영화를 예로 들어보자. 어두운 극장 안에서 공포 영화를 보기란 종종 쉽지 않은 일이다. 흔히들 이야기하는 ‘피가 바짝바짝 마르는 경험’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경험은 당연히 불안의 일종인데 그것은 “쾅”하고 괴물이나 귀신이 나타나거나 잔인한 장면이 눈앞에서 펼쳐지는 그 순간보다는 그런 장면을 암시하면서(즉, 아직 벌어지지 않으면서) 무언가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진행되고 있을 때 가장 강하게 나타난다. 한 마디로 무언가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지는 순간보다는 그 순간이 예상되지만 ‘언제’ 혹은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모르는 동안 공포영화의 묘미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를 굳이 심리학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불안은 공포나 고통이 예견되지만 정확히는 알 수 없는 무언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가장 극대화된다. 즉, 모호한 상태인 것이다. 불안은 인간이 가장 싫어하는 심리 상태이고 이 불안이 일단 발생하면 모호한 상황에서 극대화된다. 그래서 이와 같은 관련성을 오랜 동안 경험해 온 인간은 모호함 자체를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고 심리학자들은 말하고 있다. 인간이 얼마나 모호한 것을 싫어하는가를 잘 보여주는 예를 아래에서 하나 살펴보자.



상황: 단지에 90개의 공이 담겨 있다. 여기에는 30개의 빨간 공이 있으며 나머지 60개는 까만 공이거나 노란 공이다. 그런데 까만 공과 노란 공의 비율은 모른다. 게임의 규칙은 간단하다. 먼저 공의 색깔을 말하고 눈을 감고 자신이 단지에서 뽑은 공이 그 색깔과 일치하면 돈을 받는다.



게임 1: 어디에 돈을 걸겠습니까? 빨간공(A) - 까만공 (B)?

게임 1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빨간공(A)을 선택하겠다고 한다. 그렇다면 두 번째 게임에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게임 2: 어디에 돈을 걸겠습니까? 빨간공 혹은 노란공 (C) - 까만공 혹은 노란공 (D)?

게임 2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까만공 혹은 노란공(D)이 나오면 당첨이 되는 쪽에 돈을 걸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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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얼 엘즈버그. 인간이 모호한 것이나 상황을 얼마나 싫어하는가가 판단과 의사결정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역설했다. <출처: http://www.toptenz.net/top-10-whistle-blowers.php/daniel-ellsberg>



재미있는 것은 동일한 사람에게 물어봐도 이러한 경향이 우세하다는 것이다.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이는 매우 우스운 일이다. 왜냐하면 첫 번째 게임에서 까만 공이 아닌 빨간 공에 걸겠다는 것은 자동적으로 까만 공이 30개보다 적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다시 노란 공이 30개보다 많다는 가정과 연결된다. 따라서 빨간 공 +노란 공은 60개가 넘으며 이는 까만 공 + 노란 공(60)보다 더 선호되어야 한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A와 D를 선택하더라는 것이다.

위의 결과는 무엇을 말해주는가? 대니얼 엘즈버그(Daniel Ellsberg)는 이러한 현상이 사람들이 얼마나 모호함을 싫어하는가를 잘 말해주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어떤 일의 발생확률을 잘 모를 수록(더 정확히는 모른다고 생각할 수록) 사람들은 이를 위기(risk)로 인식하고, 불안감과 불쾌감이 증폭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언가 잘 알려진 것을 선택하거나 추구하면서 이러한 불안감을 감소시키기를 원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고 주장한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왜냐하면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불안한 상태를 인간은 가장 싫어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무언가 방향성 있는 동기가 발생하여 의미 있는 행동으로 옮겨간다면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무작정 모호하지 않은 것을 취하거나 선호한다면 이는 결코 올바른 판단으로 이어지기 어려울 것이다. 세상에서 무언가 뛰어난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가장 뚜렷하게 가지는 차이점 중 하나다.



모호함, 후회, 그리고 만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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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변화를 준 것은 보다 더 모호한 상황으로 들어가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더 많은데 그 모호함을 감수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과가 좋지 못할 경우에는 그 상처가 2배가 되기도 한다. <출처: gettyimages>



그렇다면 이러한 모호함을 싫어하는 경향성은 실제 생활에서 어떻게 나타날까? 여러 가지 논의가 가능하겠지만 후회하지 않으려는 강한 성향과 연결이 된다. 후회는 언제 더 크게 할까? X만큼의 손해가 일어난 두 가지 경우를 가정해 보자. 첫 번째 상황은 ‘별다른 변화를 주지 않고 있다가 X만큼의 손해를 본 경우’이며 두 번째는 ‘변화나 이동을 시도했다가 그 X만큼의 손해를 본 경우’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 번째 경우에 그 손해 X에 더 속상해 한다. 실생활의 예를 들어보면 이해가 더 쉬워진다. 아파트를 팔지 않고 그대로 살다가 그 아파트 가격이 Y만큼 떨어진 경우와 아파트를 팔고 난 뒤 예전 아파트 가격은 그대로인데 새로 산 아파트 가격이 Y만큼 떨어진 경우. 후자가 더 속상해 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무언가 변화를 준 것은 보다 더 모호한 상황으로 들어가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더 많은데 그 모호함을 감수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과가 좋지 못할 경우에는 그 상처가 2배가 되기 때문이다.

실제 세상에서 모호함은 언제나 피해야 하는 것인가? 당연히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미지의 세계, 새로운 대상과 경험은 언제나 눈에 보이지 않고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는 그야말로 ‘모호함’이라는 언덕 너머에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의 내게 잘 알려져 있는 것과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것 사이에서 전자가 더 좋아 보이거나 그것에 마음이 끌릴 때 마다 고민을 해 보아야 한다. 이를 위해 인간의 판단과 의사결정을 연구하는 분야의 사람들은 ‘후회’라는 감정을 잘 다스릴 필요가 있다고 한다. 다양한 경우 인간은 가장 좋은 것을 찾아 나서기 보다는 후회를 제일 덜 할 것 같은 대상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좋은 판단과 의사결정에 걸림돌이 되곤 하기 때문이다. 평가불안(fear of negative evaluation; 자신의 말이나 행동이 부정적으로 평가 받을까 봐 걱정하는 경향성)이 높을수록 혁신적이거나 창조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힘들다는 것 역시 ‘후회’하기 싫어하는 마음이 너무 강하면 무언가 좋은 것을 찾으려는 에너지가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말이다. 무언가 새롭게 경험해 본 것이 있으면 이전에 경험해 본 것과의 ‘비교’를 통해 후회를 경험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하다. 즉, 후회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추구하고 발전하려는 노력의 과정에서 당연하게 만들어지는 부산물이라는 것이다. 내가 지금 하는 후회를 “다음부터는 이러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다음부터는 다르게 해 봐야지”라는 생각으로 바꾸어야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을 가능성이 더 커질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본 심리학 캐스트에서 향후 보다 자세히 다룰 주제 중 하나이지만 여기서 간단히 언급할 필요가 있는 내용이 있다. 우리는 종종 후회하지 않으면 만족할 수 있을 것이라는 단순한 생각의 함정에 빠질 때가 있다. 하지만 후회와 만족은 꽤 자주 동시에 경험되는 감정이다. 왜냐하면 이 두 생각은 각자의 반대편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른 곳에서부터 출발하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상의 모호한 측면에 대해 한 걸음씩 다가가 보는 것은 그 둘을 모두 경험하게 만든다. 모호함을 기피하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제자리에 있다면 후회를 피할 수도 있겠지만 만족(그리고 그에 따르는 기쁨) 역시 경험하기 힘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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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일 |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고려대학교에서 심리학 석사를 받았으며 미국 University of Texas - Austin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국제학술논문지에 Preference and the specificity of goals (2007), Self-construal and the processing of covariation information in causalreasoning(2007) 등을 발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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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2012.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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