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장기기억과 지식표상 - 머릿속에 정보를 넣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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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32회 작성일 16-02-06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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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사이 우리는 모든 지식을 굳이 머릿속에 담아서 다닐 필요가 없어졌다. 유비쿼터스 환경이 언제, 어디서든지 필요한 정보에 접속할 수 있게 만들기 때문이다.
<출처:gettyimages>


확인은 해보지 못했지만, 옛날 중국에서는 과거시험을 치를 때, 넉넉하게 종이와 필기구를 주고 아는 것을 다 쓰라고 했다고 한다. 이런 방식으로 기말고사를 치면 어떨까 하고 필자가 학생들에게 농담을 했더니 안 된다고 아우성이었다. 소위 말하는 현재의 지식 사회와 비교한다면, 그 당시 관리가 기억하고 있어야 할 지식이나 정보라는 것이 많아 봤자 얼마나 많았겠는가. 그러니 이 방법이 통했을 것이다. 하지만 독자들도 알듯이 요사이 우리 인류는 엄청난 지식을 갖고 있다. 한 과목에서 조차 엄청난 양의 정보를 다루게 되기에 이러한 시험을 본다는 것이 불가능해 보인다.

더구나 이 지식을 굳이 머릿속에 담아 다닐 필요가 없다. 유비쿼터스 환경이 언제, 어디서든지 필요한 정보에 접속할 수 있게 만들기 때문이다. 사실 최근 사이언스(SCIENCE)지에 실린 실험을 보면, 사람들이 어려운 질문을 접하게 되면, 컴퓨터를 떠올린다고 하며, 어떤 정보를 나중에 접속할 수 있다고 기대하게 되면, 기억하려고 하지도 않고 실제 기억 회상하는 비율이 낮아진다고 한다. 그리고 오히려 어떻게 접속할 수 있는지를 잘 기억한다고 하며, 이를 구글 효과(Google effects)라고 부르고 있다. 우리 모두가 경험하듯이 요사이 전화번호를 외우는 사람은 거의 없다. 외적 환경인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기억의 주된 공간이 되고 있는 것이다. 현재의 IT 환경이 절정에 이르는 때가 되면, 우리 인간의 마음 작용에 어떤 변화가 올까, 독자들도 상상의 나래를 펴보길 바란다.

그러나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머릿속에 정보를 갖고 있는 것은 중요하며, 그 종류와 작용을 탐구하는 것은 심리학 연구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우선은 어떠한 외부 정보도 내적인 기억과 연결되며 이해되어야 지적 활동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모든 인지 활동은 기억에 기반을 둔다. 그리고 두 번째로, 이러한 지식의 문제는, 인간의 인지 능력을 이해하고, 인공적인 인지시스템을 개발하고자 하는 인지과학(cognitive science)에서도 가장 중요한 주제가 된다. 예를 들어 컴퓨터를 똑똑하게 만들려면 어떤 정보나 지식을 어떤 형태로 인공 시스템인 컴퓨터에 심어 주어야 하겠는가, 즉 표현해 주어야 하겠는가의 문제이다. 이를 보통 지식표상(knowledge representation)이라는 용어를 써 다룬다. 독자들은 기억이 정보를 받아들이고(부호화하고), 저장했다가, 인출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읽었을 것이다. 이번에는 기억하고 있는 것 즉 결과물이라는 의미에서 인간의 장기기억(long-term memory)의 유형부터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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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장기기억 유형


우리는 외부 사건과 접촉하며 보거나 들은 것을 잠시 동안 유지하게 되는데 이를 보통 단기기억이라고 한다. 이 정보를 가지고 여러 인지적인 일을 하는 것이기에 작업기억(working memory)이라고도 부른다. 보통 이 작업은 30여 초의 시간 범위에서 이루어지며 오래 지속할 수 있도록 바꾸지 않으면 우리의 의식에서 사라져 버리고 망각하게 된다. 전화번호를 듣고 외우거나 적어 놓지 않으면 곧 잊게 되는 게 예가 된다. 이 30초 후에서부터 몇 십 년 전까지에 걸쳐, 우리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정보를 장기기억이라고 부른다. 그러면 이 장기기억에 들어가 있는 정보는 무엇일까? 어떤 종류일까?

첫째 분류의 기준은 ‘자신이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느냐’ 혹은 ‘의식하고 있느냐’다. 의식하지 못하면 내현(혹은 암묵, implicit)기억이라고 한다. 대표적인 예가 알코올 중독의 결과로 기억상실이 일어나는 환자(Korsakoff 환자)는 자신이 본 책이나 잡지를 봤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하면서도, 이 경험이 나중 수행에 영향을 끼친다고 한다. 즉 기억해내지는 못해도 머릿속에 남아 있는 것이다.

내현기억은 우리 정상인에서도 관찰할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어떻게 하느냐”의 기억 즉 절차(procedural)기억이다. 보통 오랜 기간에 걸쳐 연습하며 습득되는 기술이 예가 된다. 자전거 타기나 운전하기, 기타 같은 악기 연주나 타자치기 등에서 볼 수 있는 것으로, 수행되는 과정에 대한 자각이나 의식적인 개입이 없이 신속하고도 능숙하게 이루어진다. 더구나 이 수행되는 과정은 말로 표현하기도 힘들며, 일단 습득된 기억은 잘 없어지지도 않는다고 한다. 필자는 스케이팅을 거의 40여 년 전 초등학교 육학년 때 배웠고, 그동안 별로, 아니 거의 타지도 않았는데 아직도 꽤 능숙하게 탈 수 있는 것을 보면 이 말이 설득력 있어 보인다. 그리고 이 기술은 일종의 “조건-행위(If-Then)”라는 단위로 만들어져 있을 것이라고, 즉 표상되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실제 인지과학 모델 구축에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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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고향에서 살던 기억이 물밀 듯이 마음에 떠올랐다”라는 표현이 있다. 이 현상은 고향에 도착해서 보게 된 나무나 집 모습 등과 같은 단서들이 우리의 마음속에 남아 있던 기억들에 말하자면 불을 붙인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출처:gettyimages>


필자가 읽었던 어떤 소설에 나오는 내용이다. 주인공이 고향을 떠난 지 몇 십 년이 지난 후 다시 돌아가게 되었고 고향 마을 어귀에 이르자 버스에서 내리며 “예전 고향에서 살던 기억이 물밀 듯이 마음에 떠올랐다”라는 표현이 있다. 사실 이 현상은 실험실에서 확인하기는 더 쉽지만, 독자들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했을 것이다. 그러면 이 현상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고향에 도착해서 보게 된 나무나 집 모습 등과 같은 단서들이 우리의 마음속에 남아 있던 기억들에 말하자면 불을 붙인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분명 우리의 자각이나 의식적인 노력과는 관계없이 일어난 것이다. 이 현상에 심리학자들은 점화(priming)라는 단어를 붙인다. 이 영어 단어는 어원상, ‘밑에 가라앉아 있는 물을 끌어오기 위해 펌프에 붓는 한 바가지의 마중물’이라는 뜻도 있다고 한다. 물, 불 어떤 것으로 비유하건, 한 번 경험한 것과 그렇지 않은 대상이나 자극을 구별해 내는 기억을 말하는 것이다. 거의 비슷한 기억 현상이 조건형성이다. 독자들은 이 네이버캐스트에서 고전적 조건형성과 조작적 조건형성이 학습과 기억의 기본이라는 것을 읽었을 것이다. 반복된 연합(association) 경험이 관련된 기억 흔적을 만드는 것이다.

이제 위 그림(인간의 장기기억 유형)의 왼쪽으로 이동하면 우리가 통상 기억이라고 부르는 두 종류가 있다. 스스로 안다고 즉 기억한다고 자각하고 의식할 수 있기에 이를 외현(explicit 혹은 서술 declarative)기억이라고 부른다. 의미(semantic)기억은 여러 물건이나 대상 그리고 여러 사건에 관한 사실(facts)을 기억하는 것으로, 범주화라는 과정을 거쳐 형성되는 개념적 지식을 말한다. 필자는 심리학 교과서에 실린 학습, 지각, 동기 등 여러 용어와 진술을 기억하고 있으며, 전공이 아니지만 주변 세상에 존재하는 여러 동식물의 이름과 관련 정보를 기억한다. 하긴 기억한다는 표현보다 안다는 표현이 적절해 보인다. 대부분의 공식 교육을 통해 획득하게 되는 것이 바로 이 개념적 지식이며, 이 지식이 우리의 지적 활동의 바탕이 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컴퓨터라는 인공시스템에 어떻게 개념적 지식을 넣어 줄 것인가, 즉 표상 할 것인가는 인공지능과 인지과학의 핵심 주제가 된다.

외현기억의 다른 종류는, 일화(episodic)기억이라 부르는, 특정 시간, 장소와 밀접히 연관된 사건에 관한 주관적인 기억이다. 특히 Tulving과 같은 심리학자는 일종의 정신적 시간 여행(mental time travel)을 포함하는 기억이라는 측면에서 의미기억과 구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기억하는 정보의 내용이 다르며, 다른 종류의 경험에 기초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일화기억은 종종 그림과 같은 심상이 동반되기도 한다. 필자는 이십 년 전으로 돌아가, 간호사에게서 이불에 싸인 딸아이를 넘겨받던 때의 장면과, 심지어 팔에 전해지던 아이를 안은 무게감까지도 기억한다. 물론 신경생리학적 증거도 있다. 의미기억에는 손상이 없지만 일화기억에만 문제를 보이는 환자가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고. 두 기억이 서로 다른 대뇌 부분에서 일어난다는 증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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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현기억과 내현기억


마지막으로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 장기기억의 다섯 가지 종류(작업기억까지 합치면 여섯 가지)는 서로 밀접하게 상호작용한다는 점이다. 위의 그림에서처럼 여러분이 심리학에 관해 리포트를 쓴다고 하자. 여러 심리학 용어를 기억해 내고, 어제 친구와 리포트 쓰는 주제에 관해 이야기했던기억을 떠 올리고, 앞에서 봤던 용어를 다시 생각해내고, 특별한 자각도 없이 능숙하게 타이핑을 하다가, 어떤 단어를 빨간색으로 표시하려다 망설인다고 하자. 이 일련의 과정에 관여한 장기기억의 종류를 확인해 보기 바라며, 모든 기억들이 상호작용한다는 것을 실감하길 바란다.




김영진 |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심리학 석사학위를 받고 미국 켄트주립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로 있으며 [인지공학심리학:인간-시스템 상호작용의 이해], [언어심리학], [인지심리학], [현대심리학개론] 등의 저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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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2012.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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