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로보는역사 유엔난민기구 - 인권, 인류애, 평화의 비전에 대한 세계적 각성을 촉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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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606회 작성일 16-02-06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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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난민기구의 로고 <출처: (cc) UNHCRflag.svg at Wikipedia>











유엔난민기구의 역사와 임무



유엔난민기구(United Nations High Commissioner for Refugees, UNHCR)는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받은 유엔기구이며, 유일하게 두 차례에 걸쳐 노벨평화상을 받은 단체이기도 하다. 유엔난민기구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대규모로 발생한 유럽의 난민위기를 해결하는 데 있어 기존과는 다른 국제적 협력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유엔총회의 결의로 1950년 12월 14일 설립되었다. 인도주의 활동에 대한 국제사회의 공감이 확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난민기구의 설치가 각국의 내정에 미칠 영향에 대한 우려 또한 존재하였기에 1951년부터 3년 동안 한시적으로 운영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유엔난민기구의 주요 임무는 난민들에 대한 보호와 지원을 하고 그들의 인권이 보장될 수 있는 국제적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1951년 7월 28일 채택된 ‘난민의 지위에 관한 유엔협약(United Nations Convention relating to the Status of Refugees)’에 의하면 난민은 “인종, 종교, 민족, 특정사회집단의 구성원 신분, 또는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박해를 받을 합리적 근거가 있는 공포로 인하여, 자신의 국적국 밖에 있는 자로서, 국적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또는 그러한 공포로 인하여 국적국의 보호를 받는 것을 원하지 않는 자”를 의미한다. 제네바난민협약으로 알려진 이 조약의 체약국들은 대부분 “1951년 1월 1일 이전에 유럽에서 발생한 사건”에 의한 난민들을 보호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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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유엔난민기구 본부 <출처: (cc) Jungpionier at Wikipedia>






점차 확장된 난민보호 활동의 영역



그런데 국제난민 발생의 흐름은 1956년에 이르러 큰 변화를 맞이한다. 그해 10월 23일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복수정당제에 의한 자유총선거, 소련군의 철수, 표현과 사상의 자유 등을 내세운 시민혁명이 발생하였다. 이에 소련은 헝가리 시민혁명을 소련의 영향권으로부터의 이탈로 판단하고 11월 헝가리에 탱크와 병사를 투입해 혁명 정권을 무력 진압하였다. 이 과정에서 난민이 서유럽뿐만 아니라 아시아의 중국까지 대규모로 이동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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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난민기구의 패키지. 텐트와 방수포, 모기장 등이 들어 있다.



1960년대에는 아프리카 대륙의 많은 국가들이 식민지배로부터 벗어나는 과정에서 인종 및 종교 갈등 등으로 인하여 대규모 난민이 발생하였으며, 베트남 전쟁도 국제사회 난민 발생의 주요 요인이 되었다. 따라서 유엔난민기구는 유럽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아시아, 남아메리카 등의 난민 보호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게 되었으며, 1967년 발효된 ‘난민의 지위에 관한 의정서’에 의하여 법적, 규범적 뒷받침을 받게 되었다.

유엔난민기구의 역할은 21세기에 들어서면서 협약상의 난민보호에만 국한되지 않고 고향을 떠났으나 국내의 다른 곳에서 대안적 피난을 구하는 국내실향민(internally displaced persons)에 대한 보호 및 지원 활동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그 이유는 국경을 넘지 않거나 못했지만 이들의 삶은 난민과 마찬가지로 비극적 상황에 있기 때문에 국제적 지원과 보호가 절실하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 비호신청을 하고 있는 사람들(asylum seeker)과 어떤 국가로부터도 국적을 인정받지 못하는 무국적자(stateless people) 등도 주요 보호 대상이다.

설립 당시 34명이던 직원은 현재 9,300명 이상이며, 125개 국가에서 활동하고 있다. 예산은 1951년 미화 30만 달러였으나 2015년에는 70억 달러에 이르고 있다. 2003년에는 난민문제가 완전히 해결될 때까지 계속 업무를 수행하도록 승인을 받았으며, 현재 아프리카와 유럽 등에서 복합적인 난민위기에 대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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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차드에 있는 다르푸르 난민 캠프 <출처: (cc) Mark Knobil at Wikipedia>



보호 대상은 2014년 말을 기준으로 5,950만 명에 이르는데, 유엔난민기구 위임 난민이 1,440만 명, 국내실향민 3,820만 명, 비호신청자 180만 명 등이 있다. 2015년 상반기에만도 최소 5백만 명 이상이 강제로 고향을 떠나야 했다고 유엔난민기구가 밝히고 있듯이1), 국제사회의 난민위기는 전례 없는 규모로 발생하고 있다.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받은 유엔기구



유엔난민기구는 1955년에 1954년의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1954년 노벨평화상 선정 과정에서 선정위원회는 알프레드 노벨의 기준에 맞는 후보자가 없다고 결정을 내렸으나, 1년이 지난 1955년에야 1954년의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유엔난민기구를 선정하였다. 두 차례의 전쟁을 경험한지 오래지 않은 상황에서 직접적인 분쟁의 해결이 아닌 난민지원 활동이 노벨평화상의 취지에 적합한 것인가라는 비판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1955년 노벨상 위원회는 개인들의 인권을 보호하고 안전을 책임지는 것이야말로 평화와 직결된 일임을 강조하였다.



난민을 위한 활동이 평화를 위한 활동이라는 사실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 만약 전쟁에서 상처 입은 사람들을 치유한다면, 인류가 형제애를 증진시키는 것이 평화를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평화를 위한 것이다.
- 1955년 노벨상 수상 연설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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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이라크를 탈출한 쿠르드족 난민



노벨평화상 발표 연설은 난민들이 국제사회로부터 잊혀지지 않았음을 느끼고 아는 것이 그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고, 그들에게 법적 보호를 제공하는 것은 그들이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하는 것이라 하였다. 해나 아렌트(Hannah Arendt)가 지적하였듯이 공동체에 속하지 못하였다는 이유로 난민들의 존엄성과 인권이 보호되지 않는다면 정당하지 못한 것이다. 또한 그로 인하여 그들이 국제사회에서 잊혀지거나 분리되어서는 진정한 평화를 이룰 수 없게 된다.




인류가 지향해야 할 가치와 방향을 제시하다



유엔난민기구는 ‘소외되고 불행한 외국인’이 될 수 있는 난민을 또 다른 인류구성원으로서 이해하는 것이 항구적 평화를 구축하는 길임을 각인시켰기에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게 된 것이다.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 그 이상의 상태이다. 평화는 어느 나라, 어떤 종류의 사람도 두려움과 결핍 속에 살지 않는 것이다.
- 1954년 노벨평화상 선정 발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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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리콥터가 마케도니아의 유엔난민기구 시설에 구호물자를 나르고 있다.



유엔난민기구는 1951년부터 1954년까지 유럽의 난민을 자발적으로 귀환시키는 데 성공적인 역할을 하였다. 전후 유럽의 난민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고 더 이상의 대규모 난민이 발생하지 않으면서, 세계 각국은 유엔난민기구의 활동이 지속적으로 자국내의 정치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우려하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일부 국가들은 유엔난민기구의 활동이 비정치적, 인도주의적이어야 함을 이유로 들어 자국내의 활동을 정치적인 것으로 규정하기도 하였다.

이로 인하여 유엔난민기구는 3년 동안의 활동을 끝으로 해체될 수도 있었으나 향후의 인도적 위기에 대처하려면 계속 유지하여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하여 활동 연장이 이뤄졌다. 이처럼 1954년의 노벨평화상은 유엔난민기구의 3년에 걸친 활동의 공로뿐만 아니라 인류가 지향해야 할 가치와 방향을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수여된 것이다.




노벨평화상을 두 번 받은 유일한 유엔기구



약 25년을 사이에 두고 유엔난민기구는 노벨평화상을 두 차례 받게 된다. 이 시기 동안 국제사회는 베트남인들이 육로와 해상을 통해 대규모 탈출을 감행하는 것을 목격하였다. 또한 각각 2백만 명 이상의 아프가니스탄인들과 에티오피아 난민들이 세계 각지에서 피난처를 찾아 헤맸다.

1954년 220만 명이던 난민의 숫자가 1981년 1,000만 명으로 급증하면서, 난민위기는 더 이상 유럽만의 의제가 아니라 국제사회의 의제가 되었으며, 새로운 관심이 촉구되었다. 유엔난민기구가 다시 한번 노벨평화상을 받은 것은 지난 25년 동안의 숭고한 난민보호활동의 중요성뿐만 아니라 난민위기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식 확산이 필요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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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트를 타고 유럽으로 들어오는 시리아와 이라크 난민들 <출처: (cc) Ggia at Wikipedia>





평화는 적극적인 것, 형제애, 타인과의 연대의식과도 같은 것이며, 도울 준비가 되어 있고 곤란에 처한 사람에 대한 자비와도 같은 것이고, 인권이 모든 개인들에게 주어지는 것이라는 이해와도 같은 것이다.
- 1981년 노벨평화상 수상 연설문

이 냉전의 시기에 유엔난민기구는 난민들의 안전한 본국 송귀환을 위해 노력을 기울였고 많은 성과를 올렸다. 1962년에는 모로코와 튀니지에 체류하던 알제리 난민 25만 명을 본국으로 안전하게 송환하였다. 1972년에는 약 천만 명의 난민들이 새롭게 독립한 방글라데시로 귀환하였고, 15만 명의 수단 난민들이 주변국가에서 본국으로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었다.

1974년에는 아프리카에서 새롭게 독립한 기니비사우, 모잠비크, 앙골라로 수백만 명의 난민이 귀환할 수 있었다. 1978년에는 버마와 자이레 난민들이, 1979년에는 앙골라, 니카라과 난민들이, 1980년에는 우간다 난민들이 유엔난민기구의 도움으로 본국에 재정착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활동은 유엔난민기구를 비정치적 단체로 인정하는 정부의 협조 속에서 가능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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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파키스탄 강진으로 생겨난 난민 캠프 <출처: (cc) United Nations Photo at Flickr.com>





정치적 난민을 돕는 것은 평화를 위한 일이다. 인간존엄성의 재창조에 기여하는 것 또한 평화에 기여하는 것이다. … 해결되지 않은 문제는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공동체를 위험하게 만든다.
- 1981년 노벨평화상 선정 발표문



“비극에서 희망으로”



유엔난민기구의 이와 같은 활동에는 부정적인 요소도 존재했다. 해당 국가의 협조 속에 이뤄진 것이기는 했지만 수용국 정부와 송출국 정부 모두 난민 보호와 지원에 인색하였다. 일차적 난민수용국이 대부분 개발도상국가 혹은 저개발국가였기 때문에 난민에 대한 충분한 지원이 이뤄질 수 없었다.

귀환하는 본국의 정치적 상황이 충분히 안정적인가에 대해서도 의문이 존재했다. 또한 난민들이 본국에 재정착하더라도 그들이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자원과 능력의 결핍으로 인해 어려움이 악화될 가능성도 제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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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간다의 난민 캠프에서 땔감을 나르고 있는 여인 <출처: (cc) Oxfam International at Flickr.com>



1981년 노벨평화상 강연의 제목은 “비극에서 희망으로”였다. 전쟁의 역사와 함께 발전해 온 것이 국제 인도주의의 역사이지만 난민문제는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고, 국제사회의 관심과 실질적 지원은 제한적임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난민들에게 미래의 희망을 주고자 한다면 각국 정부의 정치적 협조, 국제기구들 간의 조정 및 협력, 그리고 같은 인간으로서 난민에 대한 관심 등이 중단되어서는 안 된다. 인간의 존엄을 회복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신념과 노력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며 적극적인 평화로 이어질 수 있음을 역설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유엔난민기구의 도전과 과제



난민문제의 해결은 난민의 자발적 본국 귀환, 수용국 현지 통합, 제3국으로의 재정착 등에 의해서 이뤄진다. 그런데 최근엔 난민문제의 본질적 해결이 어려워지면서 결국 25,000명 이상의 난민들이 한 곳에서 최소 5년 이상 거주하는 ‘장기화된 난민 상황(protracted refugee situations)’이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경우 국제사회의 지원은 제한되고 수용국 정부도 안보의 위협으로 인식하여 지원을 꺼리게 되므로 상황이 더욱 악화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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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무 보트를 타고 그리스 해안에 도착한 뒤 자녀들과 울먹이고 있는 시리아 난민



유엔난민기구는 국내실향민 보호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해당 국가의 정부에 의해 활동이 제한된다. 이처럼 정부가 개입하는 이유는 난민의 개인적인 고충과 난민 발생으로 인한 사회적 문제가 성격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난민의 지위를 부여하는 것은 수용국가의 주권 사항에 해당하는 정치적인 것이고, 난민의 지위는 그룹 혹은 집단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개인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대규모 난민의 유입은 국가안보와 지역안보에 위협이 될 수 있다. 따라서 난민문제는 자국내의 정치사회적 요인으로 인해 정치적 무관심의 영역으로 밀려나곤 한다.




정치적 의지 없이는 본질적 해결도 없다



냉전 종식 후 내전과 분쟁의 현장에서 난민구호에 앞장섰던 전 유엔난민기구 대표 사다코 오가타는 “난민은 죄인이 아니다. 난민을 만든 정치와 국가, 정부의 책임”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녀는 회고록에서 난민에 대한 지원과 보호활동은 인도적 규범과 동인에 의해서 이뤄지지만 난민위기의 본질적 해결은 지도자들의 정치적 의지(political will) 없이는 이뤄질 수 없음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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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예술가가 아일란 크루디의 모래 조각을 만들고 있다. 세 살배기 시리아 난민 아일란은 터키 해안에서 고무 보트가 전복되는 바람에 숨진 채 발견됐다.



2015년 아일란 쿠르디의 죽음 앞에 인도적 관심과 도덕적 책무의식이 깨어날 수는 있지만, 파리 테러사건에 직면한 상황에서 정치적 의지 없이 난민문제 해결을 위한 인도주의 캠페인은 성공하기 어렵다.

유엔난민기구는 비정치적인 기구이다. 그렇지만 유엔난민기구의 임무 중 하나는 난민들의 발생을 억제하고 그들이 평화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유엔난민기구가 각국 정부에 난민문제의 해결을 위한 협조를 요구하는 노력을 중단할 수 없는 이유이다.

또한 유엔난민기구는 긴급구호뿐만 아니라 난민들이 본국으로 귀환하건, 제3국에 정착하건, 현지에서 통합되건, 빠른 시일 내에 경제적 자립을 할 수 있도록 개발지원단체들과 공동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유엔난민기구가 두 차례에 걸쳐 노벨평화상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난민위기의 해결 없이 지속적인 평화가 구축되기는 어렵다는 국제사회의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인도적 위기가 지속될 것이라는 예측이 팽배하지만 유엔난민기구의 활동은 인류가 지향해야 할 인권, 인류애, 평화의 가치를 각성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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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다페스트 기차역의 시리아 난민들 <출처: (cc) Rebecca Harms at Wikipedia>



난민위기가 정치적 무관심에 의해 더욱 심화된다는 사실은, 2015년 국제사회의 난민위기를 통해 다시 한번 확인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민들의 존엄성을 지키고 인간안보를 해결하기 위해 국제사회의 인도적 노력이 확대되어야 한다는 1954년과 1981년 노벨상의 취지는 오롯이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 UNHCR, 1954년 노벨평화상 수상 연설문 (1955년 12월 10일)
  • 노르웨이 노벨상위원회, 1954년 노벨평화상 선정 발표문 (1955년 12월 10일)
  • UNHCR, 1981년 노벨평화상 수상 연설문 (1981년 12월 10일)
  • 노르에이 노벨상위원회, 1981년 노벨평화상 선정 발표문 (1981년 12월 10일)
  • UNHCR, Mid-Year Trends 2015 (2015년 12월 18일).
  • Sadako Ogata, <The Turbulence Decade: Confronting the Refugee Crises of the 1990s> (New York: W.W. Norton & Company, 2005)


UNHCR, UNHCR Mid-Year Trends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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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훈 | 강원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대학교에서 “Between and Beyond Borders: Conflict, International Response, and Forced Migration”으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HK연구교수,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을 역임하였고, 국제분쟁과 난민, 인권과 인도주의, 남북관계 등의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주요 저서는 <재난과 평화>(공저), <인간안보와 남북협력>(공저), <유엔인권메커니즘과 북한인권> 등이 있고, 현재 <동아시아 난민: 수용과 배제>를 공동집필 중에 있다. “테러리즘과 난민문제의 안보화”, “동아시아 인권의 상대성과 보편성” 등 다수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후원

인문한국지원사업(HK : Humanities Korea), 교육부, 한국연구재단



이 원고는 HK(인문한국)지원사업의 연구성과를 토대로, 인문한국연구소협의회와 네이버가 공동기획했습니다.


출처
세계평화인물열전
평화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현재 우리가 누리는 ‘작은’ 평화마저도 그를 위해 자신의 온 삶과 때로는 목숨까지 바친 사람들이 있기에 가능했다. 그 삶을 들춰보고 의미를 반추하는 일은 미래의 평화를 도모하는 가장 믿을만한 출발점이다. <세계평화인물열전: 평화를 만든 사람들>은 이에 관한 이야기다. 인류 평화사를 앞장서 써내려간 ‘노벨평화상’ 수상자들의 삶을 통해 그들의 치열하고 아름다우며, 때로는 논쟁적인 평화이야기를 나누어보고자 한다


발행2016.01.21.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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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HCR, UNHCR Mid-Year Trends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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