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클래식 악마의 키스 - 관능적이고 탐미적인 흡혈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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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60회 작성일 16-02-06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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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19일, 헐리우드의 명장 토니 스콧 감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충격적인 뉴스가 있었다. 그는 로스엔젤레스 롱 비치에 위치한 빈센트 토마스 다리에서 밑으로 투신했는데, 목격자들의 말에 의하면 뛰어내리는 데에 조금치의 망설임도 없었다고 한다. 그는 왜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길을 선택했을까. 승용차와 사무실에 그가 남긴 유서가 발견되었지만 가족들이 사생활 보호를 이유로 내용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수술 불가능한 뇌종양에 걸렸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지만 이 역시 확실한 것은 아니다. 불과 이틀 전에 배우 톰 크루즈와 만나 오랫동안 차기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던 그가 왜 이틀만에 자살을 결심했는지 모를 일이다.



음악리스트
No.아티스트 & 연주 
1슈베르트 – 피아노 3중주 2번 - 2악장음악 재생
2들리브 – 오페라 [라크메] 중 꽃의 이중창음악 재생




1분 미리듣기 /음원제공 :
소니뮤직


토니 스콧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그의 영화가 다시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는 탁월한 영상미를 구사한 감독으로 꼽힌다. 비평가의 혹평을 받은 영화도 영상미에 있어서만큼은 좋은 평가를 받았다. 1983년에 만든 그의 데뷔작 [악마의 키스(원제: The Hunger)]도 그런 영화에 속한다. 휘틀리 스트라이버의 동명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이 영화의 주인공은 인간의 피를 먹고 사는 뱀파이어이다. 뱀파이어라고 하니까 무시무시한 공포영화를 연상하는 사람이 많겠지만 사실 이 영화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공포물과는 거리가 멀다. 영상과 음악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 탐미적인 흡혈귀 영화이다. 토니 스콧은 이 영화를 통해 뱀파이어라는 소재를 가지고도 얼마든지 아름다운 영상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이런 느낌을 갖게 된 데에는 주인공 미리엄 역을 맡은 배우 카트린 드뇌브의 이미지도 한 몫을 했다. 카트린 드뇌브는 매우 기품 있고 우아한 미모의 소유자이다. 피를 먹고 사는 뱀파이어의 이미지와 선뜻 연결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그녀가 예의 그 우아하고 아름다운 이미지를 그대로 간직한 채 뱀파이어 역으로 나온다. 어디 그 뿐인가. 그녀의 연인 사라 역으로 역시 한 미모하는 수잔 서랜든이 캐스팅되었다. 우아하고 아름다운 미녀 뱀파이어들. 이런 상식의 배반에 이 영화의 특별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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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과 음악이 조화를 이룬 탐미적인 흡혈귀 영화 [악마의 키스]


영화 정보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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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층 건물이 즐비하게 늘어선 미국 뉴욕의 한 고급 아파트. 여기에 천상의 아름다움을 지닌 여인 미리엄과 그녀의 남편 존이 살고 있다. 그들은 집 안에 값비싼 예술품을 들여 놓고, 틈 날 때마다 클래식 음악을 연주하는 뉴욕의 전형적인 상류층과 같은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정상적인 인간이 아니다. 미리엄은 고대 이집트 시대부터 지금까지 무려 4,000년을 살아온 뱀파이어이다. 그리고 그녀의 남편 존은 본래 18세기 영국 귀족이었는데, 미리엄에 의해 뱀파이어가 된 후 300년 동안 그녀와 살고 있다.

처음 만났을 때 두 사람은 영원한 사랑을 약속했었다. 영원한 사랑은 영원한 삶을 전제로 한다. 언젠가는 죽어야 하는 인간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뱀파이어는 죽지 않으니 충분히 영원한 사랑을 꿈 꿀 수 있다. 미리엄도 그것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아픈 기억이 있다. 원래부터 뱀파이어였던 그녀는 물론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지만 그녀에 의해 나중에 뱀파이어가 된 사람에게는 300년이라는 한시적 시간만 허용된다. 4000년을 살아오면서 미리엄은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떠나보내는 아픔을 수도 없이 겪었다. 그녀는 현재 함께 살고 있는 존에게만은 제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하지만 이것은 헛된 소망. 어느 날, 300살이 된 존이 갑자기 늙기 시작한다. 그동안 그를 비껴갔던 세월이 순식간에 그를 덮친 것이다. 자신의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은 존은 생명을 연장시키기 위해 죽음과 노화에 대해 연구하고 있는 여의사 사라를 찾아간다. 하지만 사라는 존을 이상한 사람 취급하며 만나주지 않고, 존은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2시간 동안 수십년 더 나이를 먹어 완전히 할아버지가 되고 만다.

집에 돌아온 존은 삶에 대한 애착을 버리지 못한다. 그래서 일 주일에 세 번 씩 만나 함께 실내악을 연주해온 이웃집 처녀 앨리스를 죽이고, 그녀의 피를 빨아먹는다. 하지만 이런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존의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일이 된다. 미리엄은 죽어가는 존을 안고 이제까지 자기와 사랑을 나누었던 연인들의 시체가 있는 방으로 간다. 그리고는 존을 잘 부탁한다고 말한 후 방을 나온다.

여기까지가 영화의 전반부라고 할 수 있다. 그 다음 이야기는 미리엄과 사라의 만남으로 시작된다. 병원에서 존을 따돌렸던 사라는 뒤늦게 그의 아파트를 찾아간다. 이때 그녀를 맞이한 것은 존의 아내 미리엄. 미리엄은 사라를 보자마자 자기가 존 다음으로 사랑을 나눌 상대가 바로 사라라는 사실을 직감한다. 미리엄은 사라를 노골적으로 유혹하고, 사라 역시 미리엄에게 묘한 매력을 느껴 그녀와 동침한다. 두 사람이 서로의 몸을 탐닉하는 동안 미리엄은 자기 피를 사라의 몸 속에 넣어 그녀를 뱀파이어로 만든다. 그 후 사라는 몸에 이상을 느끼고 그녀의 피를 검사한 의사들은 그녀의 혈액 속에 정상적인 인간의 피가 아닌 다른 것이 섞여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뱀파이어가 된 사라는 피에 굶주려 자신을 찾아온 애인 존을 죽이고 그의 피를 빨아먹는다.

그 후 두 사람이 격렬한 사랑을 나누는데, 이때 미리엄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사라를 죽인다. 그런 후 사라의 시체를 안고 다시 시체실로 간다. 그런데 그녀가 또 다른 애인을 만든 것에 분노한 것일까. 시체실에 누워있던 미리엄의 옛 애인들이 일제히 일어나 그녀를 공격하기 시작한다. 이들은 미리엄을 계단 위로 끌고 간다. 미리엄은 시체들에게 너희 모두를 사랑한다고 외치지만 시체들은 이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를 계단 밑으로 밀어버린다. 미리엄은 고통 속에서 울부짖다가 급속히 늙어가면서 처참한 모습으로 죽는다.

이로써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뱀파이어의 공식이 깨졌다. 하지만 영화는 다른 방식으로 영원한 삶을 실현한다. 바로 사라이다. 영화는 사라가 새 집으로 이사가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으로 끝난다. 미리엄은 갔지만 사라라는 새로운 뱀파이어가 그녀의 뒤를 이어 영원한 삶을 누린다는 것을 암시하는 결말이다.

줄거리만 보면 이 영화는 그다지 색다를 것이 없는 흡혈귀 영화다. 원작인 휘틀리 스트라이버의 소설은 영원히 죽지 않는 자의 실존적 고뇌 같은 것을 다루었다고 하는데, 영화에서는 이런 면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미리엄이 존과의 이별을 괴로워하는 상황에서 살짝 그런 느낌이 들지만, 이런 애잔함도 그녀가 사라라는 새로운 애인을 만들면서 사라지고 만다.

이 영화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줄거리가 아니라 영상과 음악이다. 여기서 영상과 음악은 각각 영화의 미적인 요소와 정서적인 요소를 담당한다. 영화의 첫 장면, 도시의 스카이라인이 드러난 붉은 황혼을 배경으로 미리엄과 존이 탄 차가 고가도로 위를 달리고 있다. 이때 흘러나오는 아름다운 음악이 있다. 바로 슈베르트의 피아노 삼중주 2번의 2악장이다. 원래 이 곡은 안단테 콘 모토 즉, ‘느리지만 활기차게’ 연주하게 되어 있다. 하지만 여기서는 이 곡을 의외로 아주 느리게 연주한다. 느리게 연주하니 느낌이 완전히 다르다. 뭐라고 할까. 아름답지만 그냥 순수하게 아름다운 것이 아닌, 그 뒤에 무언가 비밀스러운 음모가 숨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아니나 다를까. 집에 도착한 미리엄과 존이 차 트렁크에서 검은 비닐에 싸인 것을 꺼낸다. 두 사람에 의해 희생된 사람의 시신이다. 미리엄은 시신을 집안으로 옮겨와 소각로에 넣고 태운다. 영생을 위한 일용할 양식으로 살아있는 사람의 피를 마셔야 하는 뱀파이어. 그들의 잔인한 일상이 슈베르트의 아름다운 음악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의 황혼은 아름답고, 시신을 태운 후 함께 샤워를 하며 포옹하는 두 사람의 사랑도 아름답다. 템포를 한껏 늦춘 슈베르트의 삼중주가 이 부조리한 미적 탐닉에 가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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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악마의 키스]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영상과 음악이다. <출처: topic/corbis>



비록 뱀파이어 영화지만 이 영화에도 가슴을 촉촉하게 적셔주는 장면이 있다. 하루 사이에 완전히 늙어버린 존과 미리엄이 이별을 슬퍼하며 서로 안타깝게 껴안는 장면이다. 푸른 빛을 주조로 한 화면 뒤 흰 커튼이 쳐진 창문으로 빗물이 흘러내린다. 존은 미리엄에게 자기 생명을 조금만 연장해주든지 그렇지 않으면 자기를 죽여달라고 애원한다. 그러나 미리엄은 그럴 수 없다며 흐느낀다. 이때 흐르는 음악은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21번 2악장이다. 이 곡은 비록 피아노곡이지만 듣고 있으면 사람이 말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어떤 사람이 눈물을 흘리며 하소연한다. 처음에는 한탄조로 조용히 흐느끼다가 뒤로 갈수록 감정이 고조되어 나중에는 그냥 목 놓아 울어버린다. 하지만 곧 체념한다. 조용히 한숨 쉬며 슬픔을 받아들인다. 한 곡에 감정의 발단, 전개, 클라이막스, 대단원이 다 들어있다. 흐느끼다가 마침내 목놓아 우는 것이 이별을 눈 앞에 둔 두 연인의 눈물과 닮아 있다.

하지만 이런 정서적인 접근은 존의 죽음과 함께 막을 내린다. 그 이후에 나오는 장면에서 토니 스콧은 최면술과 같은 영상미에 탐닉한다. 그 중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 미리엄이 피아노를 치며 사라를 유혹하는 장면이다. 여기에 나오는 음악은 프랑스 작곡가 들리브의 오페라 [라크메]에 나오는 [꽃의 이중창]이다.

[라크메]의 대략적인 줄거리는 이렇다.
인도 바라문교의 늙은 중 니라칸타는 종교적인 이유로 사원에 외부인의 출입을 금하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날 근방을 구경 중이던 영국 사관 제럴드 일행이 사원 정원의 아름다움에 끌려 무단침입을 한다. 이때 니라칸타의 딸 라크메는 한 눈에 제럴드에게 반한다. 니라칸타는 사원에 무단으로 들어와 딸의 마음을 빼앗은 제랄드를 죽이려고 하지만 제랄드는 라크메의 도움으로 생명을 구한다. 그러나 나중에 제랄드가 자기를 떠나려고 하자 독초의 즙을 마신다. 이때 제랄드를 응징하기 위해 니라칸타가 등장한다. 라크메는 아버지에게 제랄드를 용서해 줄 것을 간청하며 숨을 거두고, 니라칸타는 딸의 소원대로 제랄드를 용서해 준다.

[꽃의 이중창]은 이 오페라의 1막에서 라크메가 하녀 말리카와 함께 배를 타고 연을 따러 가면서 부르는 노래이다.



두툼하고 둥근 지붕 아래
아침이면 재스민과 장미들의
웃음꽃이 만발한 꽃 기슭으로
가자. 우리 함께 가보자.
부드럽게 반짝이는 물길을 따라
매혹적인 개울녘을 미끄러지듯
가보자꾸나.
가자. 아직도 봄잠을 자고있는 곳,
새들이 노래하는 강기슭을
부드러운 손길로 헤쳐나가 보자.
그런데 갑자기 엄습해오는
이 공포를 나는 알 수가 없네.
내 아버지 혼자 저주의 마을로 가실 때면
왠지 나는 떨리네
불안감으로 몹시 떨리네
하지만 가네샤 신이 보호하실 거야!
하얀 날개를 가진 백조가
즐거이 유영하고 있는 연못으로
우리 함께 푸른 연을 따러 가자.
흰 백조들이 노닐고 있는 곳으로
우리 함께 연을 따러 가보자.


이 노래는 여성을 위한 대표적인 이중창곡이다. 미리엄은 이 곡을 피아노로 치며 사라를 유혹하고, 사라는 그 유혹에 넘어가 그녀와 사랑을 나눈다. 이 장면에 [꽃의 이중창]을 쓴 것은 그야말로 탁월한 선택이었다. 여성을 위한 2중창곡 중에서 [꽃의 이중창]만큼 이 장면에 딱 어울리는 곡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노래는 지극히 매혹적이고 관능적이다. 듣고 있으면 전라(全裸)의 무희가 흰 베일을 몸에 걸치고 관능적인 춤을 추고 있는 장면이 떠오른다. 실제로 토니 스콧은 여기서 이와 비슷한 장면을 연출했다.

이 영화에는 그밖에도 많은 음악이 나온다. 존이 300년 전 처음 미리엄과 만나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회상하는 대목에서 나오는 곡은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1번의 [프렐류드], 미리엄과 존, 앨리스가 함께 연주하는 곡은 랄로의 피아노 삼중주, 미리엄이 죽어가는 존을 안고 시체실로 가는 장면에서 나오는 곡은 알레그리의 [미제레레], 존을 떠나보낸 미리엄이 눈물을 흘리며 피아노로 치는 곡은 라벨의 [밤의 가스파르] 중 [교수대]이다. 이 음악들은 모두 영상의 의미와 직간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악마의 키스]는 제일 처음에 나왔던 슈베르트의 삼중주로 끝을 맺는다. 슈베르트로 시작해 슈베르트로 끝나는 셈이다. 미리엄 덕분에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 사라는 예전에 미리엄이 그랬던 것처럼 값진 예술품을 들여놓고, 클래식 음악을 연주하는 고상한 삶을 즐긴다. 그녀는 앞으로 얼마나 오랫동안 이런 삶을 즐길 수 있을까. 템포를 한껏 늦춘 슈베르트의 삼중주가 흐르는 동안 어디선가 처절한 비명소리가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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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베르트 피아노 3중주음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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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회숙 | 음악 칼럼니스트
이화여대 음대 및 서울대 음대 대학원 졸업
현재 서울시립교향악단 월간지 SPO 편집위원이며, 서울시향 ‘콘서트 미리 공부하기’를 비롯한 여러 클래식 강좌의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평화방송 FM 음악공감 ‘진회숙의 일요 스페셜’의 진행자이다. 저서로 <모나리자. 모차르트를 만나다> 외 여러 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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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2012.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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