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클래식 빌리 엘리어트 - 현실에서 꿈으로, 화려한 백조의 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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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398회 작성일 16-02-06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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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게는 자기 씨앗이 떨어진 곳이 곧 삶의 터전이 된다. 씨앗은 비옥한 땅에 떨어질 수도 있고, 척박한 땅에 떨어질 수도 있다. 어떤 땅에 떨어지든 일단 땅에 떨어지면 최선을 다해 뿌리를 내리고, 잎과 열매를 맺으려고 노력한다. 강인한 생명력으로 때로는 단단한 바위를 뚫기도 한다. 하지만 나무의 생장에 척박한 땅보다 비옥한 땅이 훨씬 유리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옥토에 심어진 나무는 성장하는 데에 그렇게 큰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그래서 줄기와 가지가 곧고 모양이 반듯하다. 반면 척박한 땅에 심어진 나무는 훨씬 힘들게 성장한다. 온갖 악조건을 극복하며 크다 보니 모양이 뒤틀려 있는 경우가 많다. 애초에 출발이 다르니 결과가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음악리스트
No.아티스트 & 연주 
1차이콥스키 - <백조의 호수> 중 정경음악 재생




1분 미리듣기 /음원제공 :
소니뮤직


사람에게 가정환경은 나무의 토양과 같은 것이다. 척박한 환경에서 태어난 사람이 자기가 원하는 것을 이루려면 좋은 환경에서 태어난 사람보다 훨씬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능력이 탁월해야 하고, 강한 인내심과 정신력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애초부터 불공정한 게임에서 이길 수 있다. 이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에 우리는 이런 ‘시련과 극복’의 드라마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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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빌리 엘리어트]는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주인공이 불우한 환경을 극복하는 스토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지만, 보는 사람의 마음을 강렬하게 잡아 끈다.<출처 :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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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달드리 감독의 [빌리 엘리어트]도 그런 이야기 중 하나이다. 사실 이런 종류의 ‘개천에서 용 나는’ 이야기는 그동안 영화에서 자주 다루었던 흔한 소재 중 하나이다.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주인공, 불우한 환경, 가족들의 몰이해와 반대, 그로 인한 주인공의 좌절, 마침내 얻은 가족들의 이해와 응원 그리고 최후의 성공. 대개 이런 순서로 진행된다. [빌리 엘리어트] 역시 이런 공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보는 사람의 마음을 강렬하게 잡아끈다. 억지웃음이나 억지눈물이 아닌, 정말로 사람의 가슴을 파고드는 감동을 준다. 같은 소재라도 이야기를 어떻게 구성하고 등장인물들의 캐릭터를 어떻게 그리느냐에 따라, 그리고 그것을 얼마나 현실감 있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감동의 깊이가 달라지는 법인데, [빌리 엘리어트]는 그런 면에서 강점이 있는 영화이다.

영화의 배경은 1984년 영국 북부의 한 탄광촌이다. 이 마을에서는 지금 탄광 노동자들이 정부의 시책에 반대해 파업을 벌이고 있다. 빌리는 광부로 일하는 아버지와 형 그리고 치매에 걸린 할머니와 함께 허름한 집에서 살고 있다. 아버지와 형은 매일 시위에 참가하느라 정신이 없고, 몇 년 전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대신해 어린 빌리가 치매에 걸린 할머니를 돌보고 있다.

이렇게 삭막한 환경에서 생활하는 빌리에게 유일한 취미가 있다면 그것은 하루 50센트 씩 내고 하는 권투 연습이다. 남자는 강해야 한다는 아버지의 권유에 따라 체육관에 다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권투가 자기 적성에 맞는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빌리. 실제 그의 적성은 다른 데에 있었다. 그것은 바로 발레였다. 어느 날 우연히 체육관 한 귀퉁이에서 윌킨슨 부인이 지도하는 발레 수업을 보고 빌리는 묘하게 마음이 끌리는 것을 경험한다. 그 후 빌리는 윌킨슨 부인에게 발레를 배우기 시작하고, 그 과정에서 윌킨슨 부인은 빌리가 춤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녀는 빌리가 로열 발레 학교에 들어가 전문적으로 발레를 배울 것을 권하지만 아버지와 형은 남자가 무슨 발레냐며 반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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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는 아버지의 권유에 따라 권투를 배우지만, 발레에 마음이 끌린다. <출처 : 네이버 영화>



크리스마스이브가 되었다. 아버지가 탄광 노동자들과 함께 술을 마시고 있을 무렵, 빌리는 친구 마이클과 함께 텅 빈 체육관으로 들어간다. 빌리는 음악에 맞추어 마음껏 춤을 춘다. 그런데 바로 그 때 아버지가 들어온다. 빌리는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출현에 잠시 당황하지만 곧 무언가 결심한 듯 단호한 표정으로 춤을 추기 시작한다. 이런 아들을 착잡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아버지는 빌리의 열정적인 춤을 보고 마음을 바꾼다.

빌 리가 런던에 있는 로열발레학교에 오디션을 보러 가려면 차비가 필요하다. 파업으로 임금을 받지 못해 집에는 일전 한 푼 없는 상황. 결국 아버지는 파업을 접고 현장에 복귀하기로 결심한다. 큰 아들과 다른 동료들로부터 배신자라고 욕을 먹을지언정 어린 빌리의 장래를 위해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가 작업장으로 가는 버스에 앉아있는 것을 보고 빌리의 형이 아버지를 만류한다.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는 결국 마지막 순간까지 버티며 간직하고 있던 아내의 반지와 목걸이를 전당포에 맡기고 차비를 마련한다.

런던에 올라와 오디션을 치르는 빌리. 심사위원이 춤을 출 때 어떤 느낌이냐고 하자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시작할 때는 몸이 약간 뻣뻣해지지만 막상 춤추기 시작하면 내가 뭘 하고 있는지 하나도 안 느껴지고... 그래요. 마치 내가 공중 속으로 사라지는 느낌이에요. 내 몸 안에 불길이 치솟고 난 거기서 날아가요. 마치 새처럼. 마치 감전된 것처럼. 그래요. 감전된 것 같아요.”

이 말이 심사위원의 마음을 움직였을까. 여하튼 빌리는 로열 발레 학교에 합격한다. 그리고 커서 유명한 발레리노가 된다. 영화는 아버지와 형이 지켜보는 가운데 빌리가 [백조의 호수]의 주인공이 되어 무대에 등장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발레가 나오는 영화이니 발레 음악이 많이 나을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발레 음악은 차이콥스키의 [백조의 호수] 중에서 가장 유명한 [정경] 한 곡만 나온다. 항구에서 윌킨슨 부인이 빌리에게 [백조의 호수]의 줄거리를 얘기해 주는 장면과, 마지막에 어른이 된 빌리가 매튜 본 안무의 [백조의 호수]에 출연해 공중으로 도약하는 딱 두 장면이다. 그 밖의 장면에서 빌리가 춤출 때는 [Cosmic Dancer] [We love to boogie] [Get it on] [Children of the revolution] 같은 대중음악을 썼는데, 개인적으로 이것이 오히려 설득력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면에 춤추고자 하는 욕망이 있고, 또 음악의 리듬을 타는 능력이 뛰어나지만, 빌리는 아직 정식으로 발레 수업을 받지 않은 상태이다. 그런 빌리가 정통 발레 음악에 맞추어 고상하게 클래식 발레를 추는 것은 아무래도 어색하다. 빌리는 다듬어지지 않은 다이아몬드 원석이다. 그가 춤추는 장면에서 나오는 리드미컬한 음악들은 아직은 투박하지만 최고의 발레리노로 도약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빌리의 몸을 눈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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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가 춤추는 장면에서 나오는 리드미컬한 음악들은 아직 정식으로 발레를 배우지는 않았지만 열정으로 가득찬 빌리의 가능성을 눈으로 보여준다.
<출처 : 네이버 영화>



이 영화의 강점은 빌리를 비롯한 등장인물들의 캐릭터가 모두 생생한 리얼리티를 갖고 있다는 데에 있다. 아내 없이 홀로 자식 둘과 치매에 걸린 노모를 부양해야 할 의무를 지고 있는 아버지, 열심히 파업에 참가하는 것으로 세상에 대한 반항심을 달래고 있는 형 토니, 한때 발레리나를 꿈꾸었으나 지금은 아이들의 코 묻은 돈으로 하루를 연명하는 윌킨슨 부인, 파업에 동조하는 광부들을 매도하는 것으로 실직의 좌절감을 달래는 그녀의 남편, 빌리에게 남몰래 연정을 품고 있는 마이클. 모두가 현실 속에 살아 숨 쉬는 진솔한 캐릭터로 이야기 속에 녹아 들어가 있다. 그런 진실성이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다. 특히 빌리를 위해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한 아버지가 동료들을 배신하고 작업에 복귀하자 형 토니가 아버지를 말리는 장면, 그러다가 마침내 아버지를 부둥켜안고 흐느끼는 장면이 가슴 찡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자식에게 자기와 같은 삶을 물려주고 싶지 않은 아버지의 절박함은 언제나 감동을 준다. 이것은 아무리 많이 반복되어도 결코 가벼워지지 않는 우리 삶의 가장 치열한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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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빌리는 탄광촌의 소년에서 무대 위의 스타로 도약한다.
<출처 : 네이버 영화>



결국 빌리는 아무런 희망도 없는 척박한 탄광촌의 소년에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무대 위의 스타도 도약한다. 탄광촌과 발레. 광부와 발레리노. 쉽게 조합이 되지 않는 이미지들이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빌리의 성공 스토리가 훨씬 강렬하게 어필하는 지도 모른다. 이런 종류의 이야기에서는 주인공이 자라난 토양이 척박하면 척박할수록 그 반대급부로서의 성공이 훨씬 짜릿하게 느껴지는 법이니까. 빌리의 아버지와 형으로 하여금 발레에 대해 심한 편견을 갖도록 한 것도 그렇다. 이것은 사실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들은 태어나서 이제까지 남자가 발레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더구나 지금은 생존의 문제가 달린 투쟁을 치열하게 벌이고 있는 중이 아닌가. 이런 절박한 상황에서 계집애들이나 하는 발레를 하겠다고 하니 울화통이 터질 만도 하다. 하지만 발레가 계집애들이나 하는 것이라는 선입견은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매튜 본의 [백조의 호수]에 의해 여지없이 깨지고 만다.

매튜 본 안무의 [백조의 호수]는 기존의 [백조의 호수]와 전혀 다른 작품이다.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기존에 가냘픈 발레리나들이 맡았던 백조의 역할을 남성들이 맡았다는 점이다. 여기서는 가냘프고 아름다운 백조가 아닌, 근육질의 투박하고 와일드한 백조가 나온다. 음악은 차이콥스키의 [백조의 호수]를 그대로 쓰고 있지만, 안무나 내용은 완전히 다르다. 기존의 [백조의 호수]는 마법에 걸려 백조로 변한 오데트 공주와 지그프리트 왕자의 비극적인 사랑을 그린 것이다. 오데트 공주는 자신을 진실로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야 마법에서 벗어날 수 있다. 공주는 지그프리트 왕자와 사랑에 빠지고 그로 인해 마법에서 풀려날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이것을 알게 된 마법사가 무도회에 오데트 공주와 똑같이 생긴 흑조를 보내 왕자의 사랑을 받게 함으로써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고 만다. 결국 마법에서 풀려나지 못한 공주는 비극적인 죽음을 맞는다. 영화에 나오는 차이콥스키의 음악은 바로 이 장면에 나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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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튜 본의 [백조의 호수]에서는 남자 스스로 백조가 되어 공중으로 도약한다. <출처 : topic/corbis>



하지만 매튜 본의 [백조의 호수]는 이와는 전혀 다른 내용을 가지고 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애정 결핍증에 걸린 왕자이다. 왕자는 어머니인 여왕의 사랑을 갈구하지만 여왕은 공무에 바빠 왕자에게 애정을 쏟을 틈이 없다. 왕자는 고독과 소외, 성적 정체감의 혼란, 불분명한 자아 사이에서 고뇌하고 방황하다 결국 자살을 선택한다. 하지만 자살하려는 순간, 꿈속에서 보았던 백조가 호수에서 나타나 그를 사로잡는다. 이 순간부터 백조는 왕자의 영혼의 동료이자 삶을 살아가는 유일한 이유가 된다.

어느 날, 여왕이 베푼 무도회에 백조와 똑같이 생긴 젊은이가 나타나 여왕을 유혹한다. 이것을 보고 왕자가 흥분하자 경호원들이 그를 방으로 데려간다. 의사로부터 강력한 진정제를 투여 받은 후 잠시 안정을 찾은 왕자 앞에 그가 사랑하는 백조가 나타난다. 백조는 왕자를 평화스러운 세계로 데려가고, 방에 들어온 여왕은 왕자의 죽음에 오열한다.

기존의 [백조의 호수]에서 남자 무용수는 대개 공주를 위로 들어 올리는 데에 힘을 쓰지만 매튜 본의 [백조의 호수]에서는 남자 스스로가 백조가 되어 힘차게 공중으로 도약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성인이 된 빌리 역으로는 실제로 매튜 본의 [백조의 호수]에서 제1대 백조를 맡았던 세계적인 발레리노 아담 쿠퍼가 출연했다. 그가 무대로 나가기 직전, 목운동을 하며 몸을 푸는 뒷모습에서 탄탄하게 발달된 남자의 근육이 드러난다. 너무나 가늘어서 중량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여성 발레리나의 몸에서는 느낄 수 없는 야성미. 누가 발레를 계집애들이나 하는 것이라고 했던가. 아담 쿠퍼의 발달된 근육은 발레리노로서의 연마 과정이 탄광촌에서 일하는 광부의 노동 못지않게 격렬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제 빌리는 무대로 나가려고 한다. 그 비약적인 신분 상승의 순간, 극적인 차이콥스키의 음악이 비장한 울림으로 클라이맥스에 오른다. 그 음악에 맞추어 빌리가 힘차게 공중으로 뛰어오르고, 바로 그 순간 영상이 멈춘다. 그렇게 공중에 머물러 있다. 다시는 탄광촌이라는 현실로 내려오지 않으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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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회숙 | 음악 칼럼니스트
이화여대 음대 및 서울대 음대 대학원 졸업
현재 서울시립교향악단 월간지 SPO 편집위원이며, 서울시향 ‘콘서트 미리 공부하기’를 비롯한 여러 클래식 강좌의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평화방송 FM 음악공감 ‘진회숙의 일요 스페셜’의 진행자이다. 저서로 <모나리자. 모차르트를 만나다> 외 여러 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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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2012.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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