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클래식 서동시집 오케스트라 - 화해와 공존, 아는 것이 시작이다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댓글 0건 조회 398회 작성일 16-02-06 16:56

본문















14547453744783.png


예술은 정치와 무관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예술지상주의자들은 “예술가가 왜 정치에 신경을 써요? 예술은 순수한 겁니다.”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예술이 정치와 무관하다고 말하는 순간, 그는 이미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드러낸 것이나 다름없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세상 모든 일은 정치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이것은 인간이 정치라는 사회 시스템 속에서 살아가는 이상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예술가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예술가 중에는 사회적, 정치적 문제에 무관심한 채 오로지 예술 그 자체만 추구하는 예술지상주의자가 있는가 하면, 사회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 자기에게 부과된 사회적 책무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이것을 실천에 옮기려고 노력하는 사람도 있다. 세계적인 지휘자이자 피아니스트인 다니엘 바렌보임은 후자에 속한다.



음악리스트
No.아티스트 & 연주 
1베토벤 – 교향곡 5번 1악장음악 재생
2엘가 – [수수께끼 변주곡] 중 – 님로드음악 재생






1분 미리듣기/






음원제공 :
소니뮤직



다니엘 바렌보임은 1999년, 팔레스타인 출신의 문명 비평가 에드워드 사이드와 함께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아랍국가와 이스라엘 젊은이들로 구성된 서동시집 오케스트라를 창단했다. ‘서동시집’이라는 이름은 독일 시인 괴테가 페르시아 시인 하피즈의 시를 읽고 감명을 받아 집필한 '서동시집(West-Eastern Divan)'에서 따 온 것이다. 그 전까지 서양 사람들은 동방 문화가 서양 문화보다 열등하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괴테는 페르시아 시인의 시를 통해 동방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했다. 그는 그것을 자기 문학 속에 창조적으로 수용했으며, 그 결과 동서양의 문학양식을 이상적으로 결합한 [서동시집]을 세상에 내놓게 되었다. 오케스트라의 이름을 서동시집이라고 한 것은 괴테가 구현하고자 했던 동서양 화합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서이다.





14547453754779




종교와 정치적 신념을 넘어 연주회를 갖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서동시집 오케스트라]<제공:네이버영화 >



서동시집 오케스트라는 이스라엘, 시리아, 이집트, 레바논, 쿠웨이트, 팔레스타인 등 각기 다른 종교와 문화, 언어, 정치적 신념을 가진 젊은이들로 구성되어 있다. 1999년 창단 이후 해마다 세계 여러 지역을 돌며 음악을 통한 평화와 화합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파울 슈마츠니 감독의 [다니엘 바렌보임과 서동 시집 오케스트라]는 다니엘 바렌보임과 에드워드 사이드의 활동상과, 서동시집 오케스트라의 창단 배경 그리고 이들이 2005년 팔레스타인의 임시 수도 라말라에서 연주회를 갖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다큐멘타리 영화이다.



“연주할 때 이스라엘 친구 옆에 앉을 때도 있어요. 그 애 이름은 스텔이고, 제 이름은 스텔라지요. 우리 둘 사이엔 벽이 없어요.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 친자매처럼 지내고 있지요.”

팔레스타인 출신의 스텔라는 이렇게 말한다. 바로 옆에 앉아서 함께 음악을 연주하는 이스라엘 친구하고는 벽이 없을 정도로 친하지만, 정작 팔레스타인의 현실은 점점 나빠지고 있다. 스텔라는 그 점을 안타까워한다.



“이거 하나는 분명해요. 서동시집 오케스트라가 제 시각을 바로 잡아 주었다는 거예요. 언론이 조작하고 왜곡한 현실이 아니라 개개인의 살아있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요. 정말 화해로 가는 밑거름은 정부가 아닌 사람들 간의 대화예요.”

이스라엘 출신의 샤이는 팔레스타인 친구를 만나기 전까지 자기가 얼마나 팔레스타인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얘기한다.

이렇게 오케스트라에 참가한 젊은이들은 가장 중요한 것이 서로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 한다. 이 다큐의 원제목이 [아는 것이 시작이다 Knowledge is the beginning]인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다니엘 바렌보임은 지금 당장 안 된다고 해서 영원히 안 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이 오케스트라를 통해 이스라엘과 중동 지역 사람들이 함께 살아갈 수 있고, 서로 음악에 대한 열정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이렇게 음악을 통해 평화와 화합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지만 바렌보임은 정작 자기 나라 사람들로부터는 조국을 배반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특히 지난 2001년, 독일의 베를린 슈타츠카펠레를 이끌고 이스라엘을 방문한 그가 연주회의 앵콜곡으로 바그너의 음악을 연주해 크게 물의를 빚기도 했다. 이스라엘에서는 오랫동안 바그너 음악이 금지되어 있었다. 히틀러가 바그너의 음악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렌보임은 특정한 음악을 금지하는 것이야말로 반민주적인 폭거라고 이스라엘 사람들의 주장을 반박했다.





14547453766439




바렌보임은 음악을 통해 문화적, 인종적 편견을 극복하고, 평화와 화합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서동시집 오케스트라’를 만든다.<제공: 네이버 영화>



이런 그가 1999년에 서동시집 오케스트라를 만들었을 때, 이스라엘의 극렬 민족주의자들이 또 다시 반발했다. 유태인에게 끔찍한 수용소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바그너 음악을 연주하더니 이제는 이스라엘을 상대로 끊임없이 테러를 일으키는 팔레스타인 젊은이들과 이스라엘 젊은이들을 함께 묶어 오케스트라를 만들겠다니 이 사람이 정말 이스라엘 사람이 맞는가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동족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음악을 통해 문화적, 인종적 편견을 극복하고, 평화와 화합의 메시지를 전하려는 바렌보임의 행보는 거침이 없었다. 다큐 영화 [다니엘 바렌보임과 서동시집 오케스트라]는 이런 바렌보임의 행적을 자세하게 보여준다. 그는 정의롭지 못한 것,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가르는 부당한 편견에 과감하게 도전한다. 이스라엘 사람 임에도 불구하고 자기 민족 사람들이 팔레스타인 영토를 점령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하면서 라말라에서는 연주하겠지만, 유대인 정착촌에서는 절대로 연주하지 않겠다고 얘기한다.

이 다큐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바렌보임이 이스라엘 의회가 수여하는 울프상을 받고 대통령과 교육부 장관, 의원들 앞에서 자신의 수상소감을 밝히는 대목이다. 이 자리에서 그는 1952년 열 살의 나이로 부모와 함께 이스라엘로 이주해 왔을 때 자신이 읽었던 독립선언문의 내용을 상기시킨다. 선언문에는 ‘모든 접경국 그리고 그 국민들과 평화와 우호를 유지할 것을 약속한다’라는 항목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



“현재의 상황에 비추어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남의 땅을 점령하고 그 국민을 지배하는 것이 독립선언문의 정신에 부합하는 것입니까? 독립이라는 미명 하에 다른 나라의 기본권을 희생시키는 것이 과연 합당한 일일까요? 우리 유대 민족이 고난과 박해의 역사를 보냈다고 이웃 국가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그들의 고통을 모르는 척하는 것에 면죄부가 주어질까요? 이스라엘이 계속해서 관념적이고 비현실적인 투쟁해결방식을 고수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보십니까? 사회정의에 입각해 실용주의적이고 인도주의적인 해결책을 찾는 것이 옳지 않겠습니까? 분쟁을 해결하는데 군사적인 방법은 옳지 않다는 것이 제 지론입니다. 도덕적으로도 그렇고 전략적으로도 그렇습니다. 이젠 대안을 찾을 시기입니다.”

이 자리에서 바렌보임은 이 상의 상금을 팔레스타인 젊은이들을 위한 음악교육을 위해 기부할 뜻을 밝혔다. 바렌보임의 도발적인 수상소감에 화가 난 교육부 장관은 연단에 나와 바렌보임이 자기에게 주는 상에 대한 소감을 발표하는 시간을 국가를 공격하는 기회로 삼았다고 비난했다. 문

나라에서 주는 상을 받는 자리에서 자기 나라의 잘못된 정책을 비판하는 것은 웬만큼 용기가 없으면 힘든 일이다. 여기서 바렌보임은 온갖 비난을 감수하면서도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말할 수 있는 용기를 보여준다. 예술가로서 자기에게 주어진 사회적, 정치적 책무를 인식하고 이것을 실천하려고 노력해 온 그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장면이다.





14547453775543




바렌보임은 음악을 통해 정치적 이견과 반목을 넘어 화합의 가치를 실현하고자 한다. <제공: 네이버 영화>



오케스트라 창단 6년만인 2005년, 바렌보임은 무모한 도전을 계획한다. 바로 서동시집 오케스트라를 끌고 팔레스타인의 임시수도 라말라에 들어가 연주회를 갖는 것이다. 연주회가 성사되기까지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다. 라말라가 위험 지역이기 때문이다. 단원들 간에 의견이 엇갈렸다. 라말라에 가야 한다는 단원이 있는가 하면 안전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에 안된다는 단원도 있었다. 특히 이스라엘 단원들의 안전이 제일 문제였다. 라말라에 간다는 것은 곧 적군의 심장부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의논 끝에 이스라엘 출신들은 먼저 자기 나라로 돌아가 가족의 허락을 받은 후 희망자만 라말라로 들어가기로 했다. 하지만 안전 상의 이유로 이들이 언제 라말라에 도착하는지는 단원들에게도 비밀이었다. 이스라엘 단원들은 외교관 차량을 나누어 타고 연주회 당일 라말라로 들어왔다. 이런 복잡한 과정을 거쳐 라말라에 도착한 이스라엘 단원의 말이 인상적이다.

“이렇게 별거 아닌데, 왜 그렇게 긴장하고 두려워했는지 스스로 생각해도 한심하네요.”

이스라엘 출신들은 물론 다른 중동 국가 젊은이들도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이때 처음 알았다. 그들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그토록 어려운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다는 것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 전까지 팔레스타인 사람하면 테러나 일삼는 괴물 집단으로 생각했는데, 막상 와 보니 그들도 자기들과 똑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들을 묶어 준 것은 물론 음악이었다. 무대에서 바렌보임은 이스라엘 사람들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서로 싸우지 말고 평화롭게 살아가자는 것이 이 연주회가 전하는 메시지라고 말한다. 그리고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5번과 베토벤의 교향곡 5번 [운명]을 연주한다. 바렌보임이 베토벤의 [운명]을 연주곡목으로 선택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는 음악을 통해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것이다. 지금은 비록 서로 싸우고 있지만, 음악을 통해 자주 만나고 서로를 알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이곳에도 평화가 싹틀 것이라는 희망을 전하고 싶었을 것이다. 베토벤의 [운명]은 그 강렬한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기에 적합한 곡이다.





14547453787307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은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기에 적합한 곡이다. <제공: 네이버 영화>



베토벤은 서른 여덟 살이던 1808년, [운명]을 완성했다. 이 시기는 그가 계속되는 귓병의 악화로 고통 받던 시기였다. 한때 그 누구보다 완벽했던 감각이, 그리고 음악가로서 그 누구보다 완벽해야 할 감각이 서서히 사라져가고 있다는 사실에 베토벤은 절망했다. 그는 빈의 근교 하일리겐슈타트에서 동생들에게 유서를 쓰고 스스로 목숨을 끊을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는 끝내 이 계획을 실행에 옮기지 않았다. 스스로 삶을 포기하기엔 내면에서 끓어오르는 창작에의 열정이 너무 강했기 때문이다. [운명]은 이런 고난 속에서 탄생한 것이다. 베토벤은 일생 동안 ‘암흑에서 광명으로’라는 말을 좌우명으로 삼고 살았는데, 이 곡을 들으면 베토벤이 자신의 다섯 번째 교향곡인 [운명]에 이르러 비로소 ‘광명’을 찾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다다다다--’

곡의 시작을 알리는 단 네 개의 음. 운명은 이렇게 문을 두드린다. 베토벤은 운명의 노크 소리를 상징하는 이 네 개의 음을 가지고 고군분투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인류 최대의 교향곡을 완성하기에 이르렀다. 그가 이 단순한 모티브를 거대한 교향곡으로 확대, 발전시켜나가는 과정은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극복, 발전시켜나가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1악장에서 제시된 운명은 2악장의 부드러운 휴식기와 3악장의 과도기를 거쳐 4악장에서 비로소 빛나는 승리를 거두게 된다. 비록 세상의 소리로부터 차단되어 있어도, 그리고 그로 인해 오랜 시간 고통을 받았어도 베토벤의 운명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고통으로 인해 그의 정신은 더욱 치열해졌고, 그 치열함이 마침내 세상 모든 사람에게 광명을 던져주는 불후의 명작을 탄생시킨 것이다.

연주회가 끝나자마자 이스라엘 단원들은 옷도 갈아입지 못한 채 곧바로 라말라를 떠나야 한다. 역시 안전문제 때문이다. 이스라엘 젊은이들이 그 동안 고락을 같이 해온 단원들과 뜨거운 이별의 포옹을 나눈다. 서로에 대해 아는 것이 진정한 화합의 시작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 준 소중한 시간들. 이제 그 소중한 시간들을 뒤로 하고 떠나야 한다. 단원들이 눈시울을 붉히며 작별의 정을 나누는 이 장면에서 엘가의 [님로드]가 흐른다. 빼앗기고 억압받는 영혼들을 위로하는 음악. 아름답지만 절절한 음악의 울림처럼 팔레스타인 단원의 마지막 말이 가슴 저리게 어필해 온다.

“정치적 상황은 점점 더 나빠지고 있어요. 제가 바라는 것은 기적이라는 것이 일어나서 이 모든 상황이 완전히 끝나는 거예요.”




통합검색

통합검색 결과 더 보기






관련링크

베토벤 교향곡 5번 음반





영화정보








14547453810707

진회숙 | 음악 칼럼니스트
이화여대 음대 및 서울대 음대 대학원 졸업
현재 서울시립교향악단 월간지 SPO 편집위원이며, 서울시향 ‘콘서트 미리 공부하기’를 비롯한 여러 클래식 강좌의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평화방송 FM 음악공감 ‘진회숙의 일요 스페셜’의 진행자이다. 저서로 <모나리자. 모차르트를 만나다> 외 여러 권이 있다.

저자의 책 보러가기
|
인물정보 더보기


음원 제공

소니 뮤직

http://www.sonymusic.co.kr/
14547453811649.jpg

소니뮤직 트위터 (http://www.twitter.com/SonyClassicalKr)


발행2012.10.04.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