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클래식 오페라 - 눈 감을 자유를 박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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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54회 작성일 16-02-06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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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끔찍한 장면을 보면 눈을 감는다. 이것이 공포를 피하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눈 감을 자유가 허용되지 않는다면? 그래서 그 처참한 장면을 그대로 직시해야 한다면 어떨까? 이것만큼 가혹하고 잔인한 고문도 없을 것이다. 다리오 아르젠토 감독의 공포영화 [오페라]의 주인공 베티는 ‘눈 감을 자유’ ‘처참한 현실로부터 도피’할 자유를 박탈당한 존재다. 그녀는 두 눈을 똑바로 뜬 채 자신의 애인과 동료가 잔인하게 살해당하는 광경을 지켜본다. 범인이 그녀의 눈 밑에 바늘을 붙여 눈을 감으면 바늘이 눈꺼풀을 찌르도록 만들어놓았기 때문이다. 여기서 감독은 관객에게 말한다. 주인공 베티처럼 관객들도 회피하지 말고 자신이 연출하는 참혹한 살해의 현장을 똑바로 지켜보라고.



음악리스트
No.아티스트 & 연주 
1베르디, 오페라 [맥베스] 중 – [빨리 돌아오세요!( Vieni! t'affretta!... Or tutti sorgete)]음악 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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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원제공 :
소니뮤직



영화는 오페라 리허설 장면으로 시작한다. 리허설 중인 오페라는 베르디의 [맥베스]. 기분 나쁜 까마귀 울음소리와 화면 가득 클로즈 업 된 까마귀의 눈이 앞으로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것을 예감케 한다. 리허설 도중 까마귀가 계속해서 울어대자 맥베스 부인 역의 프리마돈나가 불평을 쏟아낸다. 이 오페라의 연출을 맡은 마르코는 공포영화를 전문으로 만드는 감독이다. 그는 [맥베스]의 연출을 맡으면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무대 위에 까마귀를 풀어놓기로 했는데, 이것이 프리마돈나의 심기를 거스른 것이다. 그녀는 기분 나쁜 까마귀 소리 때문에 도저히 공연을 할 수 없다고 하면서 오페라 극장을 나가버린다. 프리마돈나의 돌발 행동에 모두들 당황해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더 나쁜 일이 벌어진다. 그녀가 갑작스럽게 교통사고를 당해 오페라에 출연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서둘러 대역을 찾아야 나선 제작진은 풋내기 성악가인 베티에게 맥베스 부인 역을 맡도록 한다. 베티는 큰 역할을 맡게 된 것을 기뻐하면서도 데뷔작이 하필이면 저주를 불러오는 [맥베스]라는 사실에 불안해한다.

첫 날 공연에서 베티는 맥베스 부인 역을 훌륭하게 해낸다. 관객들의 박수갈채 속에 성공적으로 데뷔 공연을 마친 베티. 하지만 이런 그녀는 멀리서 지켜보는 사람이 있다. 그는 베티의 행적을 쫓는다. 그리고 드디어 베티가 보는 앞에서 첫 번째 살인을 감행한다. 살인마는 베티를 결박하고 눈 밑에 바늘을 붙여 눈을 감지 못하도록 한다. 그리고는 그녀가 보는 앞에서 그녀의 남자친구를 잔인하게 살해한다. 범인의 두 번째 목표는 베티의 의상 담당자 줄리아. 베티가 두 번째 공연준비를 위해 줄리아를 찾아간 날, 범인은 베티를 묶고 눈에 바늘을 단 다음 그녀가 보는 앞에서 줄리아를 잔인하게 살해한다. 이렇게 베티의 주변 인물들이 하나 둘 씩 그녀의 눈 앞에서 죽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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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참한 공포의 순간, 눈을 감지 못한다면 어떨까? 영화 [오페라] 속 주인공은 눈을 감지 못한채 주변 사람들이 눈 앞에서 죽어가는 장면을 지켜본다. <출처 : topic/corbis>


베티는 [맥베스]의 무대감독 마르코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한다. 이때 마르코는 공포영화 전문감독다운 방법을 생각해 낸다. 공연장에 까마귀를 풀어놓아 범인을 색출하는 방법이다. 범인이 오페라 극장에 몰래 들어와 소품으로 쓰려고 가두어놓은 까마귀 중 한 마리를 죽인 적이 있는데, 까마귀는 복수심이 크기 때문에 만약 관객 중에 범인이 있다면 까마귀가 그를 반드시 찾아내 응징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오페라 공연이 클라이막스에 이를 무렵, 무대 뒤편의 유리창을 깨고 까마귀를 가둔 거대한 새장이 들어온다. 갑작스러운 까마귀 떼의 출연에 객석은 아수라장이 된다. 마르코의 예상대로 까마귀가 범인을 찾아낸다. 범인은 놀랍게도 살인 사건의 수사를 맡았던 경찰관 알랜이었다.

알랜은 예전에 베티의 엄마와 모종의 관계를 가졌던 사람으로 살인을 통해 영혼의 정화를 꾀하는 일종의 정신병자라고 할 수 있다. 베티의 엄마가 죽자 이제는 베티를 살해 의식의 동반자로 삼고자 했던 것이다. 그는 또 다른 살인을 도모하기 위해 오페라 극장에 들어왔다가 까마귀에게 발각되어 눈을 쪼이는 고문을 당한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베티에 대한 집념은 더욱 불타오른다. 그는 베티를 끌고 한 방으로 들어간다. 그런 다음 불을 지른다. 베티와 함께 죽음을 맞이하겠다는 것이다. 베티는 자기 앞에서 알랜이 불에 타 죽는 광경을 보며 공포에 떤다. 문이 잠겨있으니 그녀 역시 알랜처럼 불에 타 죽을 운명이다. 그런데 바로 그때 마르코가 들어와 그녀를 구출한다. 극적으로 위기를 모면한 것이다.

범인이 죽었으니 영화가 끝난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마지막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다음 장면은 알프스처럼 아름답고 평화로운 산 속에 지어진 산장. 마르코와 베티가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불에 타 죽은 것으로 알았던 알랜이 다시 나타난다. 알랜은 마르코를 죽이고, 이번에는 베티마저 죽이려고 한다. 베티는 필사적으로 도망친다. 아름다운 풍광을 배경을 펼쳐지는 숨막히는 이 추격전은 경찰의 등장으로 일단락된다. 알랜은 경찰에게 체포되고, 베티는 비로소 공포로부터 해방된다.

이 영화에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오페라로 다리오 아르젠토 감독은 베르디의 [맥베스]를 선택했다. [맥베스]는 베르디가 셰익스피어의 동명희곡을 바탕으로 작곡한 오페라이다. 베르디는 셰익스피어의 열렬한 팬이었다. 베개 맡에 늘 그의 희곡을 두고 틈나는 대로 읽으면서 “어떻게 이토록 훌륭한 극본을 쓸 수 있을까? 인생은 어차피 한 편의 연극이라고 하지만 어떻게 우리 인간들의 심정을 이렇게 정확하게 표현했는지 정말 대단하다.”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니 당연히 이 피 끓는 드라마를 오페라로 만들고 싶은 욕심이 생겼을 것이다. 베르디는 셰익스피어의 비극 중에서 [맥베스]와 [오델로]를 오페라로 만들었다. [리어 왕]도 작곡하려고 했는데, 대본작가와의 의견 차이로 결국 실현되지 못했다. 당시 셰익스피어의 비극 중에서는 [햄릿]과 [줄리어스 시저]가 더 인기가 있었다. 하지만 이 직품들은 복잡한 정치적 문제를 다루고, 등장인물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심리적 변화를 중시하기 때문에 오페라로 만들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그래서 구조가 간결하면서도 비극성이 강렬하게 부각되는 [맥베스]와 [오델로]를 오페라로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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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 루이 뮐러, [맥베스 레이디], 19세기 경, 캔버스에 유채, 피카르디 미술관 소장


[맥베스]가 초연된 것은 1847년, 베르디가 오페라 작곡가로 활동하기 시작한 초기에 해당된다. 셰익스피어의 원작에는 여러 인물들이 나오지만 베르디는 이 중에서 맥베스, 맥베스 부인, 마녀들. 이렇게 세 가지 캐릭터에만 집중했다. 극의 구조를 단순화시키고, 극적인 대비를 더욱 선명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이 중에서 물론 가장 중요한 인물은 주인공인 맥베스다. 하지만 맥베스 부인 역시 극적으로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오페라의 전반부에서는 오히려 남편을 능가하는 캐릭터를 보여준다. 이 두 사람은 탐욕의 덫에 걸려 결국 파멸로 치닫고 마는 비극적 인간상의 전형이다. 이들의 맞은편에 마녀들이 있다. 마녀들은 비록 주인공은 아니지만 비극의 단초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배역이다. 맥베스와 그의 부인은 마녀들의 농간에 놀아나는 나약한 인간일 뿐이다.

헛된 욕망에 결국 파멸하고 마는 인간의 나약함을 베르디는 슬픈 느낌의 [서주]로 처리했다. [맥베스]의 서주는 앞으로 전개될 장렬한 비극에 비해 지나치게 나약하다는 느낌이 든다. 거창하게 비장한 것이 아니라 그저 ‘슬프다.’ 그 속에서 몰락하는 인간이 그저 ‘불쌍할’ 뿐이다. 영화에서 무대의 막이 오르기 전에 연주되는 바로 음악이 바로 [서주]이다.

막이 오르면 까마귀가 날아다니는 황량한 들판이 펼쳐진다. 마녀들이 나오는 장면이다. 마녀들이 깃털처럼 가볍고 사악한 목소리로 장난치듯 노래를 부른다.


뭐하다 왔니? 말해 봐. 숫퇘지를 잡고 왔지.
너는? 뱃사공 마누라가 갑자기 생각났어.
날 보고 욕을 하지 뭐야.
그 대가로 바다에 나가있는 그 남편을 배와 함께 빠뜨리고 말거야.
내가 북풍이 불게 해줄게.
난 거센 풍랑을 일으켜주지.
나는 배를 사주로 몰고 가겠어.

셰익스피어의 원작에는 마녀가 세 명 나오지만 오페라에서 베르디는 여러 명의 마녀들이 나와 합창을 하도록 했다. 여기서 마녀들의 합창은 음악적으로 나머지 부분들과 날카로운 대조를 이룬다. 비극적인 분위기를 조장하는 어둡고 무거운 색조와는 대조적으로 경박하고 무심하다. 마치 아이들이 장난을 치는 것 같다는 느낌도 든다.

마녀들은 “아름다운 것은 더러운 것, 더러운 것은 아름다운 것”이라는 대사처럼 인간 세계의 기본적인 덕목이나 규율이 없는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존재들이다. 그들은 선과 악에 대한 인식이 없다. 아무 이유 없이 그냥 재미로 인간을 조롱한다. 맥베스나 맥베스 부인도 결과적으로 보면 이들이 부린 농간의 희생양인 셈이다.

베르디가 작곡한 마녀들의 합창을 듣고 있으면 그 내용을 몰라도 마녀들이 어떤 존재인지를 감각적으로 느끼게 된다. 그들의 노래는 경박한 멜로디에 실려 허공을 날아다닌다. 짐짓 순진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들의 악행을 아무렇지도 않게 애기한다.

마녀들은 맥베스에게 앞으로 코더의 영주에 이어 스코틀랜드 왕이 될 것이라고 예언한다. 마녀들은 음산하고 기이한 목소리로 예언하는데, 반복할 때마다 음역이 점차 높아진다. 이렇게 상승하는 음으로 마녀들은 맥베스 마음 속에 숨어 있는 욕망을 부추긴다. 맥베스가 글라미스의 영주인 것은 사실이지만 코더의 영주, 더 나아가 스코틀랜드의 왕이라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만약 이것을 사실로 만들려면 엄청난 모반을 감행해야 한다. 그것은 가슴 떨리는 위험과 엄청난 비극을 예고하는 일. 여기서 몇 개의 음으로 느릿하게 전개되는 마녀들의 기이한 노래는 맥베스 앞에 닥칠 운명의 비밀스러운 음모를 암시하고 있다.

전쟁터의 맥베스는 집에 있는 아내에게 편지를 보내 마녀들로부터 들은 얘기를 전한다. 남편의 편지를 읽고, 맥베스 부인은 욕망에 사로잡힌다. 베르디의 [맥베스]에서 맥베스 부인은 아주 중요한 캐릭터다. 오페라의 전반부에서 남편보다 더 강렬한 욕망과 강인한 성격을 가진 철의 여인으로 나온다. 베르디가 가장 신경 쓴 배역도 바로 이것이었다. 그는 욕망의 화신인 멕베드 부인 역에 아름답고 고운 목소리의 소프라노를 기용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거칠고 무겁고 강렬한 목소리라야 이 무시무시한 배역을 제대로 소화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맥베스 부인은 후반부에서 실성한 연기도 해야 하는데, 초연 때 연출을 맡은 베르디가 맥베스 부인 역을 맡은 마리아나 바르비에리에게 몽유병 환자를 보고 연기연습을 하라고 숙제를 내주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영화에서 베티가 등장하는 장면은 남편의 편지를 읽은 맥베스 부인이 [빨리 돌아오세요! Vieni! t'affretta!]라고 노래하는 대목이다.


빨리 돌아오세요. 차가운 당신의 가슴을 제가 뜨겁게 해 드리지요. 두려워하지 않고 일을 성사시키도록 당신께 용기를 주겠어요.
예언자들이 스코틀랜드의 왕 위를 약속했거늘 주저할 게 뭐 있죠? 그 선물을 받으시고 왕좌에 앉아 통치하세요.

그녀는 남편의 마음이 약해지지 않을까 걱정한다. 그래서 자기의 강한 정신을 남편의 귓 속에 퍼부어 주겠다고, 황금의 왕관을 방해하는 그 모든 것들을 혀의 힘으로 쫓아 버리겠다고 다짐한다. 여기서 소프라노가 부르는 강력한 아리아는 맥베스 부인의 강인한 성격, 권력에 대한 강렬한 욕망을 생생하게 드러낸다. 권력을 향해 올라가도록 다그치는 단순하고 강력한 리듬이 압권이다. 그녀는 왕이 되기 위해 맥베스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암시한다.

어떻게 보면 이 장면은 살인의 예고편이라고 할 수 있다. 베티가 연기한 맥베스 부인은 영화 속 살인자 못지않게 잔혹한 인물이다. 까마귀가 날아다니는 음산한 무대는 맥베스 부인의 욕망 실현을 위해 감행된 살인의 의지를 암시적으로 보여준다. 결국 그녀는 남편과 공모해 여러 사람을 죽인다. 그 일로 남편인 맥베스는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해 공포에 떨지만 맥베스 부인은 매우 복잡한 리듬을 구사하며 위험에 처한 상황에서도 지략에 능숙함을 보여준다. 그녀는 정교한 목소리로 공포에 떠는 맥베스를 질책하면서 상황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간다.

[맥베스]는 피에 피를 부르는 잔혹한 오페라이다. 다리오 아르젠토 감독의 영화는 이 오페라의 정서적, 음악적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활용했다. 하지만 반드시 음산하고 강렬한 음악만 사용한 것은 아니다. 중간에 베티가 눈에 보이지 않는 살인자의 존재를 감지하고 두려움에 떨 때, 푸치니의 [나비 부인] 중 [아떤 갠 날],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 중 [아! 그이인가], 벨리니의 [노르마] 중 [정결한 여신] 등이 흐른다. 공포와는 거리가 먼 아름답고 서정적인 아리아들인데, 그 무심한 서정성이 오히려 공포 분위기를 더욱 가중시키는 역설을 보여준다. 너무나 아름답고 평화로운 것. 그것이 더 무서운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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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회숙 | 음악 칼럼니스트
이화여대 음대 및 서울대 음대 대학원 졸업
현재 서울시립교향악단 월간지 SPO 편집위원이며, 서울시향 ‘콘서트 미리 공부하기’를 비롯한 여러 클래식 강좌의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평화방송 FM 음악공감 ‘진회숙의 일요 스페셜’의 진행자이다. 저서로 <모나리자. 모차르트를 만나다> 외 여러 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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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2012.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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