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클래식 비투스 - 무모하고 용감한 비상의 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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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513회 작성일 16-02-06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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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사람을 능가하는 특별한 능력을 지닌 사람을 천재라고 부른다. 수학 천재, 음악 천재, 운동 천재, 과학 천재....세상에는 다양한 분야의 천재들이 있다. 프랑스의 작가 플로베르는 ‘천재는 일종의 정신병이다’라고 말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재들을 보면 솔직히 부럽다. 남들이 가지지 못한 능력을 지녔으니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정작 당사자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주변의 과도한 기대와 시선 그리고 스스로 ‘실패한 천재’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불행한 삶을 사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천재라는 타이틀이 정작 본인에게는 자유를 억압하는 족쇄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음악리스트
No.아티스트 & 연주 
1슈만 - [피아노 협주곡] A단조 3악장음악 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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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원제공 :
소니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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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큐 180의 천재소년 이야기 영화 [비투스]<제공: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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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한 소년이 있다. 그의 이름은 비투스, 그는 아이큐 180의 천재 소년이다. 그의 부모는 아들이 어린 나이에 생전 처음 본 장난감 피아노로 생일 축하 노래를 거뜬히 연주하는 것을 보고 놀란다. 이 일로 아들이 천재라는 것을 확신한 부모는 이후 비투스를 유명한 피아니스트로 키우기 위해 노력한다. 비투스는 음악에만 재능이 있는 것이 아니다. 지적 능력도 뛰어나다. 어린 시절부터 어른이 하는 말 중에 모르는 단어가 있으면 꼭 부모에게 물어보고, 부모에게서 정확한 답이 안 나오면 사전을 찾아 단어의 뜻을 알아낼 정도로 강한 지적 호기심을 가지고 있다. 또래 아이들보다 지적으로 월등해 결국 상급학교로 진학하지만 여기서도 비투스를 따라갈 사람이 없다.

비투스의 엄마는 아들을 유명한 피아니스트로 키우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다. 여기서 ‘최선의 노력’을 다른 말로 하면 ‘치맛바람’이 된다. 그녀는 어린 베이비 씨터가 사고를 치자 직접 아들을 키우기 위해 잘 나가던 직장을 그만둔다. 그리고 그때부터 오로지 비투스의 교육에만 전념한다. 유명한 피아노 선생이 있으면 어디든 마다하지 않고 찾아가 레슨을 부탁하고, 아들이 피아노 연습을 조금이라도 게을리 하면 매섭게 다그치며 연습을 강요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비투스는 부모의 과도한 기대와 강요에 점점 지쳐간다. 그에게 유일한 낙이 있다면 기차를 타고 교외에 혼자 살고 있는 할아버지를 찾아가는 것이다. 할아버지는 비투스에게 유일한 해방구이다. 친구처럼 비투스의 말을 잘 들어주고, 그의 마음을 이해해 준다. 부모의 과도한 기대와 자신의 정체성 사이에서 고민하던 비투스는 어느 날 할아버지에게 자기가 무엇이 되고 싶은지 모르겠다는 고민을 털어 놓는다.


“박쥐학자, 화학자, 건축가. 다 싫어?”
“....”
“목수는 어때? 내 작업장을 써.”
“싫어요.”
“은행원이나 택시 기사는?”
“싫어요.”
“알았다. 비행기 조종사.”
“싫어요.”
“그거 어렵군. 푸줏간 주인? 수의사? 외과의사?”
“다른 사람이 되고 싶어요.”
“예를 들자면?”
“그냥 평범한 사람”
“나처럼?”
“아니. 더 평범하게요.”
“평범한 건 쉬워.”

할아버지는 쓰고 있던 모자를 벗어 호수 건너편으로 던진 다음 이렇게 말한다.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으면 좋아하는 것을 버려야 해.”

비가 억세게 내리던 어느 날 밤, 비투스는 어린 시절 할아버지가 만들어준 가짜 날개를 달고 아파트 창문에서 아래로 뛰어내린다. 그는 날개를 달았지만 하늘로 날지 못한다. 바닥으로 떨어진 비투스는 부상을 입는다. 결과는 치명적이었다. 이 사고로 비투스의 IQ가 낮아진 것이다. 엄청난 천재가 사고를 당해 졸지에 평범한 아이가 되어 버린 것이다. IQ 검사 결과 같은 또래 아이들과 비슷한 수치가 나온 것을 보고 비투스의 엄마는 절망한다. 사고는 비투스의 피아노 실력에도 영향을 미친다. 과거의 그 현란한 기교는 다 어디로 가고, 이제는 더듬더듬 악보를 따라가는 정도의 실력만 남은 것이다. 비투스의 엄마는 뇌를 다쳤어도 손가락만은 과거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는 부질없는 희망에 불과했다. 그녀는 아들이 평범한 아이로 변해버린 현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엄마는 이 일로 우울증에 빠지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아빠마저 다니던 보청기 회사에서 해고될 위기에 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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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과도한 기대에 지친 비투스에게 할아버지는 유일한 해방구이다. 할아버지와 비투스는 둘만의 비밀을 나누는 친밀한 사이가 된다. <제공: 네이버 영화>


그러던 어느 날 비투스는 다시 할아버지의 집을 찾는다. 라디오에서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흘러나오고 있다. 할아버지가 밖으로 나가자 비투스는 피아노 뚜껑을 연다. 그리고는 잠시 망설이다가 예의 그 능숙한 솜씨로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연주하기 시작한다. 모든 것이 연극이었다. 비투스는 부모의 과도한 기대로부터 도망치고 싶어 평범한 아이로 변한 척 연극을 한 것이다. 이 일로 할아버지는 비투스의 비밀을 알게 되었지만 손자에게 죽을 때까지 비밀을 지키겠다고 맹세한다.

그즈음 비투스의 할아버지는 경제적 형편이 점점 나빠지고 있었다. 어떻게든 할아버지를 돕고 싶었던 비투스는 주식 시장에 뛰어들어 엄청난 돈을 번다. 할아버지는 비투스가 벌어준 돈으로 비행기 조정연습을 할 수 있는 시뮬레이션 기계를 사고, 경비행기까지 산다. 이후 비투스는 울프 박사라는 아이디로 투자회사를 세워 엄청난 돈을 번다. 그리고 아빠가 다니는 회사를 통째로 사서 아빠에게 선물한다. 그 사이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난다. 할아버지는 아들 내외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비투스의 비밀을 털어놓는다.

영화는 비투스가 피아니스트로 성공해 오케스트라와 함께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객석에는 비투스의 부모와 그가 한때 짝사랑했던 이사벨이 꽃다발을 들고 앉아 있다. 드디어 연주가 끝나고 객석에서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가 터져나온다. 비투스는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청중에게 인사를 하고, 부모는 벅찬 표정으로 이런 아들을 바라본다. 너무나 완벽한 해피엔딩. 이제 비투스는 방황을 끝내고, 위대한 피아니스트로서의 꿈을 이루기 위해 정진할 것이다.

비투스의 이야기는 조금 황당해 보일 수도 있다. 아무리 천재라고 해도 12살짜리가 주식에 투자해 엄청난 돈을 번다는 상황은 조금 지나친 면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곁다리에 불과하고,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다른 데에 있다. 그것은 강력한 ‘비상(飛上)에의 의지(意志)이다. 영화는 첫 장면부터 그것을 보여준다. 비투스가 경비행기를 타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것이다. 흰 구름이 점점이 떠있는 파란 하늘로 비투스의 비행기가 날아오른다. 중력을 거스르는 ‘무게 제로’의 상태. 아찔한 흥분을 불러일으키는 이 무모한 비행 장면에 음악이 흐른다. 바로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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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투스의 비상은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제공: 네이버 영화>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은 대표적인 낭만주의 음악이다. 조화와 공존을 지향하는 고전주의와 달리 낭만주의는 그 안에 극한의 모순과 내면의 갈등을 지니고 있다. 이런 모순과 갈등이 낭만주의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이다. 만약 그 속에 갈등과 모순이 없다면, 무분별한 혈기와 무모한 집착이 없다면 낭만주의 예술은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낭만주의의 특권이며, 그런 의미에서 낭만주의 예술은 모든 예술 중에서 가장 젊은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은 온갖 무모하고 과도한 열기를 폭발시키는 젊은 음악이다. 그 속에서 화려하지만 정돈되지 않은 열정, 시간이 지나면 깨져버리는 찰라적인 희열, 무모한 혈기와 긴장감을 느낄 수 있다.

[피아노 협주곡]을 작곡했을 때, 슈만은 창작열에 있어서나 인생에 있어서 그야말로 최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결혼을 반대하는 클라라의 아버지를 상대로 지루하게 벌여온 법정 싸움에서 승리를 거둔 슈만은 드디어 사랑하는 클라라와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릴 수 있었다. 서른 한 살의 청년 슈만은 클라라와의 결혼을 진심으로 기뻐하며 친구에게 ‘나는 훌륭한 아내를 얻었다. 더 말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라는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사랑을 쟁취한 두 사람은 길지 않은 결혼생활 동안 무려 여덟 명의 아이를 낳는 왕성한 생산력을 보여 주변을 놀라게 했다. 두 사람은 부부이자 음악의 동반자였다. 피아니스트였던 클라라는 남편이 새로운 곡을 작곡할 때마다 직접 그것을 연주해 사람들에게 널리 알렸는데, [피아노 협주곡]도 그런 곡 중 하나이다.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기어코 사랑을 쟁취하는 데에 성공한 슈만과 클라라. [피아노 협주곡]은 관습과 편견의 벽을 뛰어넘어 저 높은 자유의 하늘로 비상하려는 두 사람의 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비행기는 땅에 있을 때가 제일 안전해요. 하지만 비행기는 날으려고 만든 거잖아요.”

음악도 마찬가지다. 고전주의 음악은 형식에 충실하고, 그래서 안전하다. 듣는 사람 모두에게 현실에 안주한 것 같은 편안함을 준다. 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강렬한 개성이나 극적 긴장감, 갈등을 드러내는 힘이 부족하다. 새로운 세계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때로 무모한 열정도 필요한 법이다. 하늘로 날아오르기 위해서는 사고에 대한 두려움을 과감하게 떨쳐 버려야 한다. 그래야만 파란 하늘에 닿을 수 있고, 구름 위를 날 수 있는 것이다.

비투스는 어리지만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는 데에는 용감했다. 할아버지의 말을 듣고 그는 스스로 좋아하는 것을 버리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피아노를 포기했다. 피아노의 천재라는 타이틀은 그 동안 비투스에게 일종의 족쇄, 수갑과 같은 것이었다. 그는 날개를 달고 싶었다. 날개는 곧 자유를 의미한다. 다섯 살 때, 비투스는 할아버지가 만든 나무로 된 날개를 달고 뜰을 달린 적이 있다. 이것은 하늘로 날아오를 수 없는 가짜 날개였다. 그런데 바로 이 가짜 날개 덕분에 비투스는 평범한 아이로 추락할 수 있었다. 비오는 밤, 그 날개를 달고 아파트 창문으로 뛰어 내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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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만과 비투스는 관습과 규칙의 옷을 과감하게 벗어던지고, 찬란한 자유를 만끽한다. <제공: 네이버 영화>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은 가짜 날개의 비상처럼 불안하게 시작한다. 비투스가 현실과 꿈, 관습과 자유 사이에서 갈등하는 것처럼 음악은 안개에 싸인 듯 불투명하고 스산하게 전개된다. 그것은 아마 안전지대를 처음 벗어난 사람의 불안감일 것이다. 하지만 자유를 얻으려면 안전망을 벗어나야 한다. 그래야만 치열하게 자기를 표현할 수 있다. 그래야만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다. 처음에 모호하게 공중을 부유하던 갈망은 결국 무모한 용기로 이어진다. 그리고 3악장에 이르러 드디어 폭발하고 만다. 참으로 통쾌하고 짜릿한 폭발. 슈만과 비투스는 관습과 규칙의 옷을 과감하게 벗어던지고, 찬란한 자유를 만끽한다. 화려하게 흐르는 음악 속에 환희가 불꽃처럼 타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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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회숙 | 음악 칼럼니스트
이화여대 음대 및 서울대 음대 대학원 졸업
현재 서울시립교향악단 월간지 SPO 편집위원이며, 서울시향 ‘콘서트 미리 공부하기’를 비롯한 여러 클래식 강좌의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평화방송 FM 음악공감 ‘진회숙의 일요 스페셜’의 진행자이다. 저서로 <모나리자. 모차르트를 만나다> 외 여러 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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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2012.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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