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클래식 클라라 - 브람스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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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93회 작성일 16-02-06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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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다. 가을이 되면 음악이 듣고 싶어진다. 이 가을에 누구의 음악을 들을까. 문득 브람스가 떠오른다. 지금 보다 젊었을 때는 가을에 차이콥스키 음악을 들었는데 지금은 브람스다. 그의 음악은 스산한 가을바람 같다.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브람스. 그의 삶의 모토는 “자유롭게, 그러나 고독하게 Frei aber einsam”였다. 외로움은 자유의 또 다른 이름이다. 자유로운 삶을 살고 싶은 사람은 기꺼이 외로움을 감내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자유로우면서도 외롭지 않은 삶이란 없다. 브람스도 그랬다. 그는 평생 슈만의 아내인 클라라를 짝사랑하면서 살았다. 독신이기 때문에 자유로웠지만 사랑하는 여인을 한 발짝 건너서 바라보아야만 했다는 점에서 외로웠다.



음악리스트
No.아티스트 & 연주 
1브람스 - [피아노 협주곡 제 1번] - 1악장음악 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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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원제공 :
소니뮤직



브람스의 후손으로 알려진 헬마 잔더스 브람스 감독의 영화 [클라라]는 이런 브람스의 고독을 보여준다. 19세기 독일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작곡가 로베르트 슈만과 그의 아내 클라라 슈만 그리고 요하네스 브람스. 이 세 거장의 로맨스는 클래식 음악 역사상 가장 유명한 러브 스토리 중 하나로 손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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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클라라]는 슈만과 그의 아내 클라라, 그리고 브람스의 세기의 사랑을 보여준다. <제공: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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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만은 본래 클라라의 아버지인 비크 교수의 제자였다. 비크는 재능있는 제자를 좋아했지만 그가 자신의 딸과 결혼하기를 원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불같이 화를 냈다. 왜냐하면 당시 그의 딸 클라라는 슈만보다 나이가 한참 어렸고, 뛰어난 재능을 가진 피아노의 신동으로 널리 이름을 날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클라라의 아버지는 딸을 앞세워 유럽 전역으로 연주 여행을 다녔으며 덕분에 돈도 제법 벌었다. 그런데 장래가 불투명한 슈만이라는 애송이가 딸의 장래와 자신의 돈벌이를 망치려고 하니 화가 났던 것이다.

하지만 슈만과 클라라는 여기서 물러서지 않았다. 비크 교수가 결혼을 반대하자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은 길고 지루하게 진행되었다. 결론이 나기까지 무려 6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는데, 다행히도 소송은 클라라와 슈만의 승리로 끝났다. 6년이라는 긴 법적 공방을 거친 끝에 결혼에 성공한 슈만과 클라라 부부는 짧은 결혼 생활 동안 자녀를 무려 9명이나 낳는 놀라운 생산력을 과시했다.

클라라는 슈만의 아내이자 후원자, 예술적 동반자였다. 그녀는 남편의 작품을 직접 연주해 세상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는 일에 열과 성을 쏟았다. 수입이 변변치 않은 남편을 도와 연주와 살림을 병행하며 9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키웠던 현명한 아내이자 훌륭한 어머니였다. 이렇게 힘들게 살았지만 남편 슈만에 대한 클라라의 신뢰와 사랑은 절대적인 것이었다. 그는 슈만을 남편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위대한 예술가로 사랑하고 존경했다.

영화는 클라라와 슈만이 기차를 타고 연주 여행을 다니며 떠돌이 생활을 하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두 사람의 다음 행선지는 함부르크. 함부르크에서 클라라는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한다. 입추의 여지없이 관객들로 깍 들어차 있는 연주 홀 한구석에서 한 젊은이가 클라라가 연주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바로 브람스다. 그는 슈만과 클라라가 함부르크에 온다는 말을 듣고, 자기 악보를 들고 슈만을 찾아왔다. 유명 작곡가인 슈만의 인정을 받으면 작곡가로 성공하는 길이 열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연주회가 끝나고 브람스는 슈만 부부에게 자기 악보를 보여준다. 슈만은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만 클라라는 그가 선술집에서 왈츠를 연주하는 것을 보고 범상치 않은 젊은이라고 생각한다.

그 후로부터 10년이 훌쩍 지난 1850년, 슈만은 뒤셀도르프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으로 부임하게 되었다. 슈만의 가족은 라인 강변에 있는 마을로 이사를 했다. 아름답고 넓은 집과 멋진 피아노, 훌륭한 작업실 그리고 집안일을 도와줄 하인과 요리사까지 무엇 하나 부러울 것이 없는 생활이었다. 모처럼 만에 안정을 얻은 슈만은 이곳에서 교향곡 3번 [라인]의 작곡을 시작했다. 작곡은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하지만 오케스트라 일은 삐꺽거렸다. 슈만은 작곡은 잘했지만 오케스트라를 훈련시키는 지휘자로서는 어려움을 겪었다. 영화에서는 슈만이 [라인 교향곡]의 1악장을 연습시키는 장면이 나온다. 슈만이 지휘대에 올랐으나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그의 목소리가 너무 작고,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불평한다. 결국 클라라가 대신 지휘봉을 잡고 단원들을 연습시키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슈만에 대한 단원들의 반감은 수그러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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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람스가 슈만의 집을 찾아오면서, 세 사람 사이에는 인간적인 애정과 신뢰, 예술에 대한 공감이 생겨난다. <제공: 네이버영화>


바로 그 무렵, 브람스가 슈만의 집을 찾아온다. 그는 직접 작곡한 피아노 소나타 2번의 악보를 가지고 왔는데, 이 곡을 피아노로 연주하면서 클라라는 작곡가로서 브람스의 천재성에 감동을 받는다. 슈만 역시 브람스의 음악에 매료된다. 이때 브람스와 슈만이 클라라가 보는 앞에서 그녀가 어린 시절에 작곡한 [로망스]를 연주하는데, 슈만, 클라라, 브람스 세 사람 사이에 구축된 인간적인 애정과 신뢰감, 서로의 예술에 대해 공감이 얼마나 돈독했는가를 알게 해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그날 클라라는 브람스에게 자기 집에서 지낼 것을 권유한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브람스는 이렇게 말한다.


“제 좌우명을 아세요? 자유롭게, 그러나 고독하게. 저는 자유로워야 해요. 새처럼.”

그 후로 브람스는 슈만 부부와 한 가족처럼 지낸다. 아이들에게는 잠자리에서 자장가를 불러주는 다정한 삼촌, 클라라에게는 언제라도 달려와 고통과 슬픔을 함께 나누는 다정한 친구이자 연인, 슈만에게는 음악에 대한 생각을 함께 나누는 예술의 동지가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브람스는 슈만 가족에게 없어서는 안될 존재가 되어 있었다.

1853년 2월, 슈만의 귀에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 소리는 때로는 천사의 소리로, 때로는 악마의 소리로 변해 그를 괴롭혔다. 환청이었다. 끊임없이 환청에 시달리던 슈만은 이것을 잊기 위해 아편을 먹기 시작했다. 클라라가 말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아편이 없으면 도저히 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영화에서는 정신이 반쯤 나간 슈만이 클라라를 때리고, 나중에 오케스트라 단원들 앞에서도 이상한 행동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더 이상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운 상태가 된 것이다.

1854년 2월 17일, 슈만은 천사가 속삭이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그 소리를 주제로 변주곡을 작곡한 후 집을 나갔다.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는 비 내리는 거리를 걸어 라인 강으로 갔다. 그리고 강물에 미련 없이 몸을 던졌다. 어부가 그를 구조했지만 그때 이미 정신의 톱니바퀴는 완전히 어긋나 있었다. 그로부터 9일 후인 2월 26일, 슈만은 스스로 정신병원에 들어가겠다고 했다. 집을 떠나는 날, 슈만은 눈물로 자신을 배웅하는 클라라에게 말한다. 브람스에게 오게 하라고.

슈만이 정신병원으로 가고 난 후, 클라라는 혼자 아기를 낳는다. 그때 브람스가 클라라를 찾아온다. 그리고 남편 없이 혼자 아이를 낳은 클라라와 아빠를 보내고 쓸쓸해하는 아이들과 함께 있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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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람스는 슈만이 떠나고 쓸쓸해진 클라라의 옆을 묵묵히 채워준다. <제공: 네이버 영화>


슈만은 정신병원에서 의사의 수술을 받는다. 하지만 그것은 엉터리 수술이었고, 이로 인해 병세가 더 악화된다. 그렇게 2년을 폐인처럼 살았다. 슈만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안 브람스는 클라라와 함께 정신병원을 찾는다. 그곳에서 형편없이 초췌해진 남편을 보고 클라라를 오열한다. 클라라는 슈만을 품에 안고, 슈만은 그녀의 품에서 숨을 거둔다. 46살, 세상을 마감하기에는 너무나 이른 나이였다.

슈만이 세상을 떠난 후, 브람스는 클라라와 슈만의 아이들을 돌보며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다. 브람스에게 클라라는 사랑하는 여인이자 음악의 동반자였다. 브람스는 자주 새로운 작품의 악보를 클라라에게 보여주었다. 클라라는 브람스의 작품에 찬사를 보냈으며, 브람스는 그녀의 격려에 큰 힘을 얻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음악과 함께 늙어갔다. 브람스의 삶에서 클라라의 존재는 그가 평생을 통해 추구했던 위대한 예술혼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1896년 5월, 클라라가 세상을 떠났다. 클라라가 죽은 후 브람스의 건강도 갑자기 나빠졌다. 그리고 그로부터 일 년이 채 안 된 1897년 4월, 브람스 역시 그녀의 뒤를 따랐다. 클라라보다 14살이나 어린 그였지만, 그의 음악적 나이는 클라라와 동갑이었던 것이다. 클라라의 죽음으로 음악가로서 브람스의 삶도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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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람스의 음악에서는 그의 열정과 로망스, 비애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듯 하다. <출처: Wikimedia Commons>


사랑하는 여인의 행복을 결혼과 같은 세속적인 대가를 바라지 않고 ‘남자답게’ 지켜주었던 진짜 사나이 브람스.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을 듣고 있으면 이런 브람스의 면모가 그대로 느껴진다. 브람스의 음악을 들을 때마다 나는 브람스가 내면에 베토벤 못지않은 열정, 쇼팽 못지않은 로망스, 차이콥스키 못지않은 비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것을 표출하는 방식이 너무 진지하고 내면적이어서 쉽게 대중에게 어필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감정을 매우 지적으로 처리했다. 그냥 감정에 휘말리는 일 없이 모든 음에 음악적인 필요성, 논리적 정당성을 부여하고자 했다. 그저 효과만을 위해 무의미한 음을 남발하는 일은 결코 하지 않았으며, 감정의 표피를 건드리기 위해 달콤한 멜로디를 쓰지도 않았다. 듣는 이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낭만적인 제목같은 것도 붙이지 않고 오로지 음악 그 자체에 승부를 걸었다.

낭만주의 시대의 피아노 협주곡이 대개 화려한 도입을 자랑하지만 이 곡은 그렇지 않다. 오케스트라는 힘차게 시작하지만 피아노는 그렇지 않다. 피아노 협주곡은 대개 오케스트라가 먼저 제1주제를 제시하고, 이어서 피아노가 그 주제를 그대로 반복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브람스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오케스트라는 힘차게 들어오지만 피아노는 요란하지 않게, 들어오는 둥 마는 둥 조금은 수줍게 그렇게 살짝 들어온다. 그렇게 조심스럽게 마음의 문을 두드린다. 마치 클라라를 대하는 브람스의 모습과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브람스가 내면의 열정이 없을까? 그렇지는 않다. 조심스럽게 뜸을 들인 다음 마침내 피아노 역시 오케스트라가 제시했던 그 주제를 힘차게 연주하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언제 그렇게 수줍게 얘기했느냐는 식으로 열정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분출한다.

세상에 여러 종류의 음악이 있지만 각각의 음악을 좋아하게 되는 시기는 따로 있는 것 같다. 브람스를 좋아하는 시기는 인생을 사계절로 치자면 가을에 해당하는 시기가 아닐까 싶다. 인생의 가을을 맞은 사람은 나이 듦이 가져다준 안온함 저 편에서 불어오는 스산한 바람을 느낀다. 그 바람을 맞으며 이 가을에 나는 누군가에게 묻는다. 브람스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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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람스 피아노협주곡 제1번 음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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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회숙 | 음악 칼럼니스트
이화여대 음대 및 서울대 음대 대학원 졸업
현재 서울시립교향악단 월간지 SPO 편집위원이며, 서울시향 ‘콘서트 미리 공부하기’를 비롯한 여러 클래식 강좌의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평화방송 FM 음악공감 ‘진회숙의 일요 스페셜’의 진행자이다. 저서로 <모나리자. 모차르트를 만나다> 외 여러 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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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2012.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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