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클래식 서푼짜리 오페라 - 서민을 위한 오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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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58회 작성일 16-02-06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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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는 이른바 ‘수준 있는’ 사람들이 즐기는 ‘고상한’ 예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오페라 앞에 ‘거지’라든가 ‘서푼짜리’ 같은 단어를 붙인 [거지 오페라], [서푼 짜리 오페라]라는 것이 있다면 어떨까? 서로 어울리지 않는 단어를 억지로 조합해 놓은 형용모순처럼 느껴질 것이다. 그런데 이런 형용모순의 제목을 가진 오페라가 실제로 있었다. [거지 오페라]는 1782년 존 게이라는 영국 작가가 당시 런던 오페라 무대를 점령했던 이탈리아 오페라에 반기를 들고 만든 것이다. 존 게이는 이탈리아 오페라가 일반인의 삶과 거리가 먼 신화나 왕 혹은 귀족들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데다가 영국 관객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이탈리아어로 불려진다는 점에 불만을 품었다. 그래서 이탈리아 오페라와는 완전히 대조적인 성격의 [거지 오페라]를 만들었다.



음악리스트
No.아티스트 & 연주 
1쿠르트 바일 - [칼잡이 맥 (Mack the Knife)]음악 재생
2쿠르트 바일 - [해적 제니 (Pirate Jenny)]음악 재생
3쿠르트 바일 - [질투의 이중창 (Jealousy Duet)]음악 재생

1분 미리듣기 / 음원제공: 소니뮤직




이 오페라의 등장인물은 도둑질이나 사기, 매춘, 폭력, 부정을 일삼으며 살아가는 이른바 부패한 인간들이다. 왕이나 귀족, 그리스, 로마의 신들이 줄줄이 등장하는 이탈리아 오페라에 비해 등장인물들의 신분이 엄청나게 낮아진 것이다. 신분이 달라졌으니 음악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작곡가 페푸쉬는 음악에 부과된 이 문제를 발라드 오페라라는 형식으로 해결했다. 발라드는 대중 사이에서 널리 불리던 일종의 유행가인데, 이렇게 누구나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로 아리아를 대신함으로써 대중적인 친근감을 얻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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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W.파프스트 감독은 서민 오페라로 인기를 끈 [거지 오페라]의 번안판인 [서푼짜리 오페라]를 영화화했다. <제공: 네이버 영화> 영화 정보 보러가기


[거지 오페라]는 런던에서 이탈리아 오페라에 대항하는 서민 오페라로 크게 인기를 끌었다. 이 오페라가 초연된 지 50여 년이 지난 1928년, 독일의 극작가 브레히트는 작곡가 쿠르트 바일과 손잡고 [거지 오페라]를 번안한 [서푼짜리 오페라]를 만들었다. 브레히트는 계급적 갈등과 사회적 모순을 통찰력 있는 언어로 구현한 독일의 대표적인 극작가로 [서푼짜리 오페라]는 그의 대표작이다. [서푼짜리 오페라]가 초연된 지 3년이 지난 1931년, 이 작품은 G. W. 파프스트 감독에 의해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서푼짜리 오페라]의 줄거리는 이렇다. 주인공 매키 메서는 갱단의 두목 이자 악명 높은 칼잡이다. 그는 강도 짓과 사창가의 창녀들을 이용해 돈을 벌지만 준수한 외모와 신사 같은 매너로 여자들에게 인기가 높다. 매키가 어떤 사람인지 알려주기 위해 극은 거리의 발라드 가수가 부르는 [칼잡이 맥 Mack the knife]으로 시작한다.

상어란 놈에게는 이빨이 있지.
누구나 볼 수 있는 이빨
매키에게는 칼이 있지만
아무도 볼 수 없어.
화창하고 청명한 일요일
골목에서 한 남자가 죽었어
그 직후 누군가 모퉁이를 돌아 사라졌지
그 이름은 칼잡이 맥
유태인 마이어는 아직까지 실종 상태이고
그 외에 많은 부자들이 사라졌어
그들의 돈이 매키의 수중에 있지만
그가 그들을 해쳤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어.
제니 타울러의 시신이 발견되었지
가슴에 칼이 꽂힌 채
매키는 부둣가에서 일을 처리했고
아무도 그를 본 사람이 없다네.
소호에서 난 대화재에서
아이 일곱 명과 노인 한 명이 죽었어.
매키가 사람들 사이에 있었지만
누군지 묻지 않았고
누군지도 몰랐다네.
스무 살도 채 안 된 과부
모든 사람이 그녀 이름을 알고 있었지.
어느 날 밤 그가 그녀를 겁탈했다고 하네
매키. 이 죄를 어떻게 다 갚으려고 하지?

어느 날 매키는 남의 집 마구간에서 폴리와 결혼식을 올린다. 폴리는 '거지들의 친구'라는 회사를 차려 런던 전체의 구걸 사업을 독점하고 있는 피첨의 딸이다. 피첨은 거지들을 이용해 엄청난 돈을 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런던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이라고 엄살을 떤다. 이렇게 욕심이 많은 그는 딸이 매키와 몰래 결혼식을 올렸다는 사실을 알고 경악한다. 폴리는 그에게 재산과 같은 존재이다. 평소에 “내 딸은 나에겐 배고픈 자의 빵과도 같아.”라고 말할 정도니까. 그런데 그 딸이 사업상의 경쟁자인 매키와 결혼한다고 하자 큰 충격을 받는다.

매키에게 구걸 사업권을 빼앗길까 고심초사하던 피첨은 런던의 경찰청장 브라운에게 매키를 체포해 처형할 것을 부탁한다. 하지만 브라운은 적극적으로 매키를 체포하려고 하지 않는다. 사실 두 사람의 관계는 일종의 공생관계라고 할 수 있다. 매키가 강도로 벌어들인 수입의 상당 부분을 브라운에게 상납하면, 브라운은 그 대가로 경찰의 사전 정보를 매키스에게 알려주는 것이다.

매키는 경찰의 추적을 피해 사창가로 숨어들지만 제니의 배신으로 체포된다. 그리하여 곧 교수형에 처해질 운명에 놓이게 된다. 그런데 바로 그때 브라운의 딸 루시와 피첨의 딸 폴리가 연달아 들어온다. 그리고 두 여자가 한 남자를 가운데 두고 옥신각신 실랑이를 벌이는데, 이 때 부르는 노래가 바로 [질투의 이중창]이다.

소호의 미녀 이리 나와 봐.
네 예쁜 다리 한번 좀 보자
나도 예쁜 걸 보고 싶어
너 같은 미인은 이 도시에 없거든
나의 맥에게 얼마나 예쁜지 보여 줘야지
그래야 하나? 그래야 하니?
하, 정말 웃기네.
웃긴다구? 웃긴다구?
하, 말도 안 돼.
뭐? 말이 안 돼?
맥이 널 좋아한단 말이지?
맥은 나를 좋아해.
하하하. 어차피 저런 건 아무도 상대 안 해.
그래 두고 보자구
매키와 나. 우리는 비둘기처럼 평화로웠지요.
나는 나만을 사랑해요.
뺏기지 않을 거예요.
솔직히 말해서 저런 더러운 년 때문에
우리 사랑이 끝날 순 없잖아요.
정말 기가 막혀

이렇게 폴리와 루시가 싸우고 있는 동안 폴리의 어머니인 피첨 부인이 들어와 딸을 데리고 가 버린다. 매키는 이 순간을 이용해 루시에게 달콤함 말을 하고, 이에 감동한 루시는 매키의 탈옥을 돕는다. 하지만 그 후 매키는 창녀의 배신으로 다시 체포된다. 이제는 더 이상 교수형을 피할 길이 없게 된 매키. 결국 그는 교수대에 서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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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푼짜리 오페라]의 공연 중 한 장면 <출처 : topic/corbis>


그런데 바로 이 순간 기적 같은, 아니 더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만화 같은 일이 벌어진다. 피첨이 등장해 관객들이 비극적인 결말을 보지 않도록 매키를 교수형에 처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황당한 상황은 다분히 의도적인 것이다. 브레히트는 등장인물이 극에서 빠져나와 갑자기 작가나 해설자의 역할을 하도록 함으로써 극으로의 몰입을 차단했다. 그는 관객들이 극에 빠지지 않고 자기들이 지금 연극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자각하도록 했다.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객관적,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기를 원했던 것이다. 그 후 피첨의 예고대로 정말로 여왕의 사자가 말을 타고 나타나 매키가 사면되었다는 사실을 알린다.

이 작품은 제목에서부터 오페라를 표방하고 있지만 노래를 들어보면 이것을 과연 오페라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 여기 나오는 노래들은 정통적인 오페라 아리아와 확연히 구별된다. 대부분의 오페라 아리아는 전문적으로 성악 훈련을 받은 사람이 아니면 부르기 힘든 것이 특징이다. 기교적으로 매우 어려우며, 대중가요나 민요를 부를 때와는 완전히 다른 전문적인 발성법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서푼짜리 오페라]는 이런 전문적 능력 없이 누구나 부를 수 있다. 가벼운 뮤지컬 정도라고나 할까.

이 작품의 작곡자는 쿠르트 바일이다. 젊은 시절 베를린 음대에서 공부한 그는 간결한 수법의 표현주의적인 작품을 많이 쓴 사람으로 알려져 있으며, 극작가 브레히트와 함께 [서푼 짜리 오페라] [베를린 레퀴엠] [일곱 가지 죽을 죄] 등을 발표했다. 이 작품들은 밑바닥 사람들의 삶을 그린 줄거리와 대중적인 음악언어, 독특한 극적 장치를 바탕으로 위정자들의 부패와 위선을 풍자하고, 자본주의의 폐해를 고발하고 있다.

[서푼 짜리 오페라]에 나오는 노래들은 그 내용이 줄거리의 전개와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는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브레히트의 대본과 마찬가지로 여기 나오는 쿠르트 바일의 노래 중에는 극적인 사건 진행을 잠시 중단하고,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어떤 사건에 대해 해설하고 성찰하는 해설자의 역할을 하는 것도 있다. 대본뿐만 아니라 음악도 관객의 극중 몰입을 차단하는 데에 일정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노래 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이 [해적 제니]이다. [해적 제니]는 결혼식을 올리던 폴리가 매키의 부하들 앞에서 부르는 노래인데, 사건 전개와는 별다른 연관이 없다. 따라서 반드시 결혼식 장면에서, 반드시 폴리가 불러야 할 필요도 없다. 브레히트의 대본에서는 폴리가 결혼식장에서 이 노래를 부르지만 파프스트 감독의 영화에서는 제니가 자기를 찾아온 매키 앞에서 이 노래를 부른다.

여러분 저는 오늘도 이렇게 술잔을 닦고
손님들의 잠자리를 정리하지요.
1페니를 받으면 얼른 고맙다고 말합니다.
당신은 이 초라한 호텔에서 내 누더기를 보고 있지만
누구와 얘기하는지는 영 모르시네요.
하지만 어느 날 밤 항구에서 비명소리가 들리면
사람들이 묻겠지요. 이게 대체 무슨 소리지?
그 순간 술잔을 닦으며 미소 짓는 저를 보게 될 거예요.
그러고 말하겠지요. 쟤는 왜 웃지?
여덟 개의 돛과 대포 쉰 대를 실은
배 한 척이 도시를 폭격할 거예요.
그러면 여러분은 더 이상 웃지 못하겠지요.
건물벽이 모두 무너질테니까요.
세 번째 날, 도시가 모두 무너지지만
낡고 더러운 호텔만은 살아 남아요.
그러면 사람들이 묻겠지요.
“저기 누가 살고 있는 거지?”
밤이 되어 호텔 주변이 온통 울음바다가 되면 묻지요.
“왜 저 호텔만 안전하지?”
아침에 내가 문을 나서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말해요.
“쟤가 저기 살았어?”
햇살이 환하게 빛날 때, 백 명이 배에서 내려
육지로 올라와 음지로 스며들 거예요.
그리고 집집마다 들어가 남자들을 잡아
사슬로 엮어 내 앞에 끌고 올 거예요.
그리고 묻지요.
“어떤 놈을 죽일까?”
한낮에 항구에 정적에 흐를 때
“어떤 놈을 죽일까?”
그러면 나는 이렇게 대답해요.
“전부 다 죽여요.”
그리고 남자들 머리통이 바닥에 떨어질 때마다 외쳐요.
“야, 신난다!”

호텔에서 허드렛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어린 소녀. 노래의 가사를 보면 이 소녀가 얼마나 많은 남자들에게,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았는지를 알 수 있다. 힘없는 어린 소녀는 자기가 사실은 여덟 개의 돛을 달고, 쉰 대의 대포를 장착한 배를 가진 해적이라고 노래한다. 남들 눈에는 비천한 신분으로 보이지만 사실 자기는 엄청난 힘을 가진 해적이라는 것이다. 소녀는 때가 되면 남자들을 사슬로 묶어 자기 앞에 무릎 꿇린 다음 모두 죽이라고 명령할 것이며, 그들의 목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통쾌하게 웃을 것이라고 말한다.

어떻게 들으면 섬뜩하지만, 그 잔인한 상상만큼이나 저리게 가슴이 아파오는 노래이다.

해적을 꿈꾸는 힘없는 어린 소녀 제니.

그녀의 노래는 말하듯 빠르게 흘러간다. 누구에게 들으라고 하는 얘기라기보다는 그저 혼자 중얼거리는 소리 같다. 하지만 그러는 와중에도 강조하는 대목이 있다. “여덟 개의 돛과 대포 쉰 대를 실은 배 한 척이 부두에 있어요.”이다. 빠르게 노래하다가도 이 대목에 이르면 템포가 느려진다. 이것이 후렴처럼 여러 차례 반복된다. 어쩌면 그렇게 주문을 외우듯 반복적으로 자기 최면을 거는 것인 지도 모른다. 나는 그렇게 큰 배를 가진 해적이라고. 나는 그렇게 힘 있는 사람이라고. 그러다가 마침내 소녀의 상상은 엑스타지에 도달한다. “어떤 놈을 죽일까?”라고 묻자 짧지만 단호하고 냉정하게 대답한다.

“모두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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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회숙 | 음악 칼럼니스트
이화여대 음대 및 서울대 음대 대학원 졸업
현재 서울시립교향악단 월간지 SPO 편집위원이며, 서울시향 ‘콘서트 미리 공부하기’를 비롯한 여러 클래식 강좌의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평화방송 FM 음악공감 ‘진회숙의 일요 스페셜’의 진행자이다. 저서로 <모나리자. 모차르트를 만나다> 외 여러 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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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원제공

소니뮤직

http://www.sonymusi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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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뮤직 트위터 (http://www.twitter.com/SonyClassicalKr)


발행2012.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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