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클래식 M. 버터플라이 - 나의 버터플라이, 그 맹목적 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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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50회 작성일 16-02-06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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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중국의 북경. 북경 주재 프랑스 대사관의 회계사로 일하고 있는 르네 갈리마드는 어느 날 우연히 참석한 파티에서 푸치니의 [나비부인] 중 초초 상으로 분한 중국의 경극 배우 송 릴링을 보고 묘한 매력을 느낀다. 그는 이미 결혼을 해 아내가 있는 몸이지만 송 릴링이 지닌 동양 여자 특유의 신비로운 매력에 빠져들고, 그러는 사이 두 사람은 어느새 연인 사이로 발전한다.



음악리스트
No.아티스트 & 연주 
1푸치니 [나비부인] 중 [어떤 개인 날]음악 재생

1분 미리듣기 / 음원제공: 소니뮤직




르네는 오페라 [나비부인]에서처럼 자신의 연인을 “나의 나비”라고 부른다. 그리고 송 릴링이 얘기하는 ‘동양의 관습’을 최대한 존중해주려고 한다. 송은 르네에게 자신의 벗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려 하고, 그래서 두 사람의 육체관계는 늘 어둠 속에서 이루어지는데, 이것을 르네는 동양 여자 특유의 보수성과 수줍음으로 이해한다. 그러던 어느 날, 송은 르네에게 자기가 그의 아이를 가졌음을 고백한다. 그리고 부모님 집으로 가 아이를 낳은 다음 다시 오겠다고 하고 그의 곁을 떠난다.

하지만 사실 송은 중국 공산당이 프랑스 대사관에서 일하는 르네에게 접근해 기밀 서류를 빼내기 위해 투입한 스파이였다. 르네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말도 거짓이었다. 얼마 후, 아기를 안고 르네 앞에 다시 나타난 송은 아기와 자기의 안전을 빌미로 르네에게 비밀 서류를 요구하고, 르네는 그 말을 듣고 기밀 서류를 빼돌려 송에게 건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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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 여자를 사랑한 서양 남자의 이야기를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을 매개로 신비롭게 펼쳐 놓은 영화 [M. 버터플라이] <제공: 네이버 영화>영화 정보 보러가기


장면은 바뀌어 1968년 프랑스 파리. 중국을 떠난 르네는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송을 그리워하며 살고 있다. 프랑스인 아내와는 오래전에 헤어지고 이제 혼자 살고 있는 그는 몇 년 째 소식이 끊긴 송과 다시 만나기를 간절하게 원한다. 오페라 [나비부인] 공연을 보다가 초초 상이 부르는 [어떤 갠 날]을 듣고 눈물을 흘리는 그의 모습에서 그가 아직도 송을 잊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어느 날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다. 그토록 간절히 원하던 송이 그를 찾아온 것이다. 르네는 그녀를 끌어안고 기쁨에 넘쳐 “나의 나비”라고 외친다. 그녀의 등장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를 전혀 모르는 채. 그것은 함정이었다. 송은 자기들이 아들과 함께 살기 위해서 중국 공산당이 요구하는 정보를 주어야 한다고 하고, 세 식구가 함께 행복하게 살기를 원했던 르네는 송의 말대로 기밀 서류를 유출하고 배달하는 일을 하게 된다.하지만 이들의 행각은 결국 프랑스 경찰에 발각되고 만다. 르네와 송은 정보 유출 죄로 체포된다.

르네와 송이 재판을 받는 날, 먼저 재판정에 나와있던 르네는 곧이어 들어온 송의 모습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한다. 재판정에 들어선 것은 말끔한 신사 정장 차림의 남자였기 때문이다. 그가 그동안 모든 위험을 무릅쓰고, 자기 인생을 희생하면서까지 사랑했던 ‘나의 나비’가 사실은 여자가 아닌 남자였던 것이다.

여자를 가장한 남자에 의해 자신의 순정을 송두리째 유린 당한 르네. 그는 이 처참한 진실 앞에 처절하게 절규한다. 그로서는 도저히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다. 감옥으로 향하는 호송차 안에서 송이 옷을 벗고 자기를 똑바로 바라보라고, 자기가 남자인 것을 확인하라고 하지만 르네는 고개를 돌리고 끝내 그것을 보는 것을 거절한다. 송이 남자인 것을 인정하는 것은 곧 지나간 모든 시간들, 신비로운 동양 여자와의 매혹적인 사랑의 시간들을 모두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르네는 교도소에서 오페라 [나비부인] 중에 나오는 초초 상의 아리아 [어떤 갠 날]을 틀어놓고, 나비부인처럼 자기 몸을 찔러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M. 버터플라이]는 실제 일어났던 사건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이다. 1986년, 프랑스에서는 전 프랑스 대사관 직원 버나드 브루시코와 중국 경극 배우 쉬페이푸가 국가 기밀을 유출한 혐의로 기소된 사건이 있었다. 국가 기밀을 빼돌린 스파이 사건은 그 자체로도 대중의 관심을 끌만하지만, 여기에는 국가 기밀 유출보다 더욱 흥미로운 사연이 숨어 있었다. 버나드 브루시코가 20년간 연인이었던 쉬페이푸가 남자라는 사실을 그때까지 전혀 몰랐다는 것이다. 두 사람이 체포되고 난 후 재판을 하는 과정에서 이런 사실이 밝혀졌다고 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지 정상적인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1988년, 미국의 극작가 데이비드 헨리 황은 이 실화를 바탕으로 [M. 버터플라이]를 썼다. 동양 여자를 사랑한 서양 남자의 이야기를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을 매개로 신비롭게 펼쳐 놓은 수작이다.

푸치니의 [나비부인]은 음악적으로 대단히 훌륭한 작품이다. 오페라 작곡가로서 푸치니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걸작이다. 하지만 그 내용은 편안하게 즐길 만한 것이 못 된다. [나비부인]은 일본의 나가사키 항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핑커톤이라는 미군 장교와 일본인 게이샤 초초 상의 비극적인 사랑을 그린 오페라이다. 동양 여자가 자신을 희생하며 맹목적으로 서양 남자를 사랑하는 이야기는 서양 사람들에게는 아름다울 수 있지만 동양 사람에게는 묘한 반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이 작품을 쓴 데이비드 헨리 황은 중국계 미국인이다. 그도 역시 이런 종류의 이야기가 정서적으로 불편했을 것이다. 그래서 [M. 버터플라이]를 통해 동양 여자를 맹목적으로 사랑하는 서양 남자를 그리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오페라 [나비부인]에서 미국 장교 핑커톤은 백인 우월주의에 사로잡혀 있는 전형적인 서양 남자이다. 오페라에서 미국 국가의 선율이 당당하게 울려 퍼진 후 그가 부르는 아리아에는 이런 미국 남자 특유의 오만방자함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우리 양키들은 온 세계를 돌아다니며 어떤 위험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윤과 쾌락을 추구한다.
우리는 어디든지 맘 내키는 대로 닻을 내리고, 어느 항구에서든 맘에 드는 여자를 다 우리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배가 새로운 도시에 닿을 때마다 늘 그랬던 것처럼 나가사키 항에서도 핑커톤은 ‘데리고 놀’ 여자를 구한다. 포주는 어떤 여자든지 마음에 드는 여자를 단 돈 100엔에 살 수 있다고 장담한다. 이 음흉한 남자들의 행각에 걸려든 것이 바로 초초 상이라는 게이샤이다. 핑커톤은 그녀와 ‘장난삼아’ 결혼을 하지만 가세가 기울어 할 수 없이 게이샤가 된 초초 상의 사랑은 장난이 아니었다. 별다른 대안이 없었던 그녀로서는 이 남자와의 사랑에 목숨을 거는 것이 당연했는지도 모른다.

초초 상은 미국인 남편 핑커톤을 위해 조상 대대로 믿어온 종교를 버리고 기독교로 개종한다. 방 안에 성조기를 꽂아 놓고, 아이에게 성조기로 만든 옷을 입히고, 미국식으로 남편의 성을 따르는 것을 자랑스러워한다. 여필종부를 미덕으로 알고 있는 한국인이 보아도 너무 심하다 할 정도로 철저하게 미국인의 아내로 거듭난다.

그녀의 아버지는 천황이 하사한 단도를 가지고 할복자살을 했다. 그런데 초초 상은 결혼할 때 소지품으로 이 단도를 챙겨가지고 온다. 일본인이 그토록 자랑스러워하는 이른바 ‘명예로운 자살’을 예감하게 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그녀의 사랑은 이미 배반을 예고하고 있었다. 장난삼아 초초 상을 데리고 놀다가 핑커톤은 그녀를 떠났다. 그 후 핑커톤의 아들을 낳은 초초 상은 그를 하염없이 기다린다. 영화에 나온 [어떤 갠 날]은 핑커톤이 돌아오는 날을 회상하면서 초초 상이 부르는 노래이다.

이별하던 그날, 사랑하는 그이는
내게 말했어요. 오, 버터플라이
그대가 기다리면 내 꼭 돌아오리라.
어느 맑게 개인 날,
연기가 피어오르고
바다 저 멀리에서 배가 나타나지요.
희고 큰 배가 항구로 와서 예포를 쏘아 올려요.
봐요. 그가 왔어요!
나는 그를 만나러 갈 겁니다.
언덕 위에서 그를 기다릴거예요.
얼마든지 오래 기다릴 수 있어요.
그런 기다림은 괴로움이 아니니까요.
군중을 헤치고 올라오며 한 남자가 올라옵니다.
내가 있는 언덕으로 올라오면서 말을 겁니다.
그가 누굴까요?
그가 누굴까요?
언덕에 다다랐을 때 그가 뭐라고 말할까요?
아마 먼 곳에서 “나비야”라고 부르겠지요.
하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고 숨을 거예요.
장난이기도하지만, 그 순간 너무 좋아서
죽을지도 모르기 때문이지요.
그이는 나에게 다가와 이렇게 말하겠지요.
“귀여운, 내 오렌지 꽃처럼 귀여운 아가씨”
예전에 나를 그렇게 불렀던 것처럼.
그래요. 그는 꼭 이렇게 돌아올거예요.
난 약속할 수 있어요.
걱정하지 말아요,
난 믿고 기다릴거예요.

노래의 마지막에 그가 꼭 돌아올 것이라고 하는 대목에서 초초 상은 온 힘을 다한 절규로 자신의 신념을 표현한다. 영화에서 프랑스 파리로 돌아온 르네가 오페라 [나비부인]을 보면서 눈물짓는 바로 그 장면에 나오는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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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국으로 돌아가버린 남자를 애타게 기다리는 초초 상의 사랑은 너무나도 비극적이다. <출처: topic/corbis>


하지만 그 강렬한 신념은 처절한 배반으로 돌아온다. 핑커톤은 본국으로 돌아가 서양 여자와 ‘정식으로’ 결혼하고, 본부인과 함께 초초 상의 집을 찾는다. 핑커톤이 낯모르는 서양 여자를 대동하고 자기 앞에 나타났을 때, 초초 상은 진실을 알게 된다. 삶의 희망을 잃은 그녀는 어린 아들을 남겨둔 채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단도로 가차 없이 자기 가슴을 찔러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영화 속 르네 역시 초초 상처럼 자신의 환상이 깨졌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자살을 선택한다.

영화나 오페라나 모두 결말이 너무 가혹하다. 처음 핑커톤을 만났을 때 초초 상은 겨우 열다섯 살이었다. 요즘 식으로 얘기하자면 미성년자 성폭행이나 윤락행위 강요로 감옥살이를 하고도 남을 만한 범죄이다. 그런데 이런 어린 애를 성적으로 유린하고 애까지 갖게 하다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초 상은 기꺼이 그의 아이를 낳고, 몇 년 동안 자기를 버리고 떠난 그를 애타게 기다린다. 그러다가 그에게 본부인이 있다는 것을 알고 단도로 자기 가슴을 찔러 자살한다. 너무 끔찍하지 않은가. 평소에 복수극으로 점철된 가부키를 보며 정서적 단련을 해 온 일본인들에게는 이런 것이 자연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다른 문화권에서 자란 사람들은 이런 상황을 도저히 아름답게 받아들일 수 없다.

이 작품이 초연되었을 당시 관객들의 반응이 궁금했다. 자료를 찾아보니 이탈리아 밀라노에서의 초연은 별로 신통치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 후 약간의 수정을 거쳐 올린 재공연이 크게 성공을 거두었다고 하니 당시 관객들도 이런 줄거리에 별 거부감을 가지지 않았던 모양이다. 음악이 너무 훌륭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서양 남자를 사랑하고 순종하다 끝내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동양 여자의 모습에서 일종의 판타지를 보았기 때문일까.

[M. 버터플라이]의 작가 데이비드 헨리 황도 영화 속에서 이에 대한 문제를 지적한다. 먼저 오페라 [나비부인]을 본 르네가 송 릴링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녀의 죽음은 진정한 희생이죠. 가치 없는 남자였지만 여자는 선택권이 없었지요.
죽도록 사랑했으니까요. 너무나 아름다웠어요.

하지만 송 릴링은 이런 르네의 생각이 서양인의 우월감에서 나온 것이라는 사실을 환기시킨다.

서양인들에게는 그렇겠지요. 당신들이 꿈꾸는 그런 이야기지요. 매달리는 동양 여자와 나쁜 서양 남자.
거꾸로 생각해 보세요. 만약 금발의 치어리더가 키 작은 일본 사업가와 사랑에 빠져서 결혼을 하지만
남자가 일본에 돌아가서 3년 동안 오지 않는다구요.
그동안 여자는 남자의 사진을 보며 기도하고, 젊은 미국 남자들이 고백을 하지만 모두 무시해 버리지요.
그러다가 결국 남편이 재혼한 걸 알고 자살해요. 그러면 당신은 이 여자가 바보라고 생각하겠지요?
동양 여자가 백인 남자를 위해 자살하면 아름답게 보이고요.

[나비부인]의 희생을 아름답게 생각한 르네는 어리석게도 스스로의 덫에 걸려들었다. 자신의 판타지 속에서 동양 여자의 신비로움을 간직한 ‘버터플라이’를 창조해 내고, 완전히 그 속에 빠져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가 오페라 공연에서 [나비부인]의 [어떤 갠 날]을 들으며 눈물짓는 장면은 그 환상이 얼마나 절실하고 로맨틱했는지를 보여준다.

그런 환상이 깨졌을 때, 그는 자살을 선택한다. 실제 이야기의 주인공인 버나드 브루시코는 처음에 쉬페이푸가 남자라는 사실을 믿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모든 것이 밝혀졌을 때, 자살을 시도했다고 한다. 비록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사실 그로서는 자살 말고 다른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20여 년 이라는 긴 세월 동안의 사랑이 그저 환상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그 누가 멀쩡한 정신으로 견딜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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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회숙 | 음악 칼럼니스트
이화여대 음대 및 서울대 음대 대학원 졸업
현재 서울시립교향악단 월간지 SPO 편집위원이며, 서울시향 ‘콘서트 미리 공부하기’를 비롯한 여러 클래식 강좌의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평화방송 FM 음악공감 ‘진회숙의 일요 스페셜’의 진행자이다. 저서로 <모나리자. 모차르트를 만나다> 외 여러 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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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2012.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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