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클래식 메리 크리스마스 - 크리스마스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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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42회 작성일 16-02-06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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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위의 검정 표시(독일 점령의 알자스)는 없어져야 합니다. 손가락으로 가리고 빨간 선을 따라가세요. 훗날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알자스의 어린이들을 찾아간다고 약속하세요. 우리의 소중한 프랑스에 희망의 싹을 틔워요. 희망을 꽃피울 어린이 여러분. 어서 자라요. 프랑스는 여러분을 기다립니다.”

“독일이라는 흔적을 지도에서 없애기 위해선 그 종족을 몰살해야 합니다. 한 사람도 남겨선 안 됩니다. 아이들이 울어도 무시하고 여자들도 목을 베야 합니다. 안 그러면 다시 일어납니다. 지금 죽는다면 그럴 수 없지요.”

“우리에게는 단 하나의 적이 있어요. 증오와 원한, 시기에 가득 차 그들은 독일의 무덤을 파고 있습니다. 우리에겐 단 하나의 적이 있어요. 그들은 우리를 죽이려 합니다. 그 적의 이름은 영국입니다.”


음악리스트
No.아티스트 & 연주 
1바흐 [안나 막달레나 바흐를 위한 음악 노트] 중 [당신이 함께 하신다면]음악 재생

1분 미리듣기 / 음원제공: 소니뮤직




크리스티앙 카리옹 감독의 [메리 크리스마스]는 이런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것이 누구의 말인지 아는가?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데려가려는 선동가의 말이 아니다. 이제 겨우 열 살 남짓 되었음직한 프랑스, 영국, 독일 어린이들의 말이다. 독일을 없애야 한다, 종족을 몰살해야 한다, 여자들도 목을 베어야 한다, 우리에게는 단 하나의 적이 있다, 그것은 영국이다 등 내용을 보면 도저히 어린아이의 말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과격하다. 어린아이들이 어른보다 순수하고 착하다고? 반드시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어른도 그렇지만 어린아이도 일단 옳은 일을 한다는 신념만 심어주면 얼마든지 폭력적이고 잔인해질 수 있는 것이다. 우리들의 어린 시절을 생각해 보라. 웅변대회에서나 포스터 그리기 대회에서 이른바 ‘나쁜 나라’를 묘사할 때 우리가 얼마나 살벌한 단어들을 종횡무진으로 구사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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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앙 카리옹 감독의 영화 [메리 크리스마스] <제공: 네이버 영화>영화 정보 보러가기


스코틀랜드 시골에 살고 있던 윌리엄과 조나단 형제도 이런 교육을 받고 자랐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훨씬 전부터 프랑스, 영국, 독일에서는 상대편 진영에 대한 증오를 부추기는 사상 교육이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었다고 한다. 이런 방식으로 오랜 시간 동안 교육받은 아이들이 청년이 되어 전쟁터로 나가게 되었다. 젊은 그들에게 전쟁은 동화 속에 나오는 멋진 놀이 같은 것이다. 윌리엄과 조나단 형제도 마찬가지였다. 전쟁이 선포되었을 때, 그들은 마치 놀이하는 기분으로 전쟁터로 향했다. 마침내 우리 인생에도 굉장한 일이 벌어졌다고 하면서. 그 후 두 형제는 어떻게 되었을까. 형은 죽고, 동생은 살아남는다. 눈 위에 차갑게 얼어붙은 형의 시신을 부둥켜안고 동생은 오열한다. 고향의 어머니에게 편지가 오지만 동생은 어머니에게 형이 전사했다는 말을 차마 하지 못한다. 눈물을 삼키며 마치 형이 살아있는 것처럼 편지를 보낸다. 장난기 가득하던 그의 두 눈에는 핏발이 서 있다. 전쟁은 참혹했다.

전쟁은 인간을 황폐화시킨다. 전쟁에 이기는 쪽도 있고 지는 쪽도 있지만 설사 이긴다 하더라도 그 승리의 열매는 전쟁을 주도한 몇몇 영웅들에게만 돌아갈 뿐, 직접 전쟁터에 나가 죽기 살기로 싸운 ‘졸(卒)’들에게는 치유할 수 없는 상처만 남는다. 실제로 이라크 전에 참전했던 미군들 중 상당 수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만성적 분노, 우울증으로 고생하고 있다고 한다. 2003년 3월 이라크 전쟁이 시작된 이래 42만 5천 명의 미군이 이라크에서 싸웠는데, 그중 약 7만 명이 이런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어딘가에서는 서로를 죽이고 죽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그중에는 의미 없는 전쟁도 많다. 겉으로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우지만, 실제로 속을 들여다보면 남의 것을 빼앗아 자국의 이익을 취하려는 이기주의와 패권주의에서 비롯된 것이 많다. 그런가 하면 때로는 정치적 신념이나 종교적 신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싸우기도 한다.

실제 내막이 어떻든, 전쟁의 명분은 언제나 거창하다. 전쟁을 주도한 자들은 신(神)을 위해, 나라와 민족을 위해, 자유를 위해, 인류 평화를 위해,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다고 말한다. 하지만 총알이 난무하는 전쟁터에서 과연 몇 명의 병사들이 이런 생각을 마음에 품고 전투에 임할까. 물론 우리는 영화 속에서 대의를 위해 기꺼이 자기를 희생하는 용감한 군인들을 많이 보았다. 하지만 현실은 영화가 아니다. 전쟁터에서 싸우는 군인 중에는 그 전쟁의 의미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도 있고, 또 알고 있다고 해도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것은 편안한 후방에서 칠면조 고기나 뜯으며 전쟁 계획을 짜는 사람들의 이야기일 뿐, 전쟁터의 병사들은 그저 하루빨리 전쟁이 끝났으면, 이번 크리스마스 때 고향으로 돌아가 가족을 만날 수 있었으면... 이런 소박하고 인간적인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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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메리 크리스마스]는 소박하고 평범한 보통 군인들에게 일어난 믿기 힘든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제공: 네이버 영화>


[메리 크리스마스]는 이런 군인들에 관한 이야기다. 여기에 나오는 군인은 조국을 걱정하며 장렬히 죽어가는 전쟁 영웅이 아니다. 가족들의 사진을 들여다보며 다시 만날 날을 고대하고, 만삭의 아내가 무사히 출산하기를 기도하고, 고향 집의 따뜻한 난로가를 그리워하고, 크리스마스 날 좋은 일이 생기기를 바라는 소박하고 평범한 보통 군인들이다.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4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인 이날 독일군과 프랑스, 영국 연합군이 서로 대치하고 있던 전선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서로 총부리를 겨누던 군인들이 잠시 전쟁을 멈추고, 세계 전쟁 역사상 전무후무한 평화와 화해의 시간을 가진 것이다.

사건의 발단은 노래였다. 영국군들이 스코틀랜드 전통악기인 백파이프 반주에 맞추어 [영원한 고향을 꿈꾸네]를 노래한다.

산의 속삭임 강물의 노래 소리.
언제나 듣던 노래.
그 노래가 그립네.
그 노래가 떠오르네.
분명하고 또렷하게.
나는 여기 서서 영원한 고향을 꿈꾸네.
외로이 홀로 서서. 영원한 고향을 꿈꾸네.
이른 아침의 미풍,
그 바람결을 따라 고향땅을 바라보네.
내 마음속 깊이 슬픔이 느껴지네.
나는 여기 서서 영원한 고향을 꿈꾸네.
외로이 홀로 서서 고향을 꿈꾸네.

전쟁터에서 가장 그리운 것이 바로 고향일 것이다. 비록 적군이 부르는 노래지만 이 노래를 듣고 반대편 참호에 있는 독일군의 마음이 움직인다. 때마침 독일군 참호에는 오페라 가수 출신인 슈프링거와, 그의 애인이자 소프라노 가수인 안나 소렌슨이 와 있다. 성탄절을 맞아 병사들에게 노래를 들려주기 위해서 온 것이다. 영국군 참호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듣고 슈프링거는 이에 대한 화답으로 모두가 잘 아는 성탄절 노래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부른다. 그러자 영국군이 백파이프로 슈프링거의 노래를 따라 연주한다. 백파이프 반주에 고무된 슈프링거는 대담하게 참호 위로 올라간다. 전투 중이었으면 곧바로 적군의 총에 받아 죽을 수도 있는 위치, 말하자면 적의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간 것이다. 이어서 그는 [참 반가운 신도여]를 부른다.

이렇게 노래를 주고받는 동안, 병사들은 오늘만큼은 서로에게 총을 겨눌 생각이 없다는 것을 확신하게 된다. 결국 독일군, 프랑스군, 영국군 지휘관이 모여 크리스마스이브 동안 전투를 중단할 것을 결정한다. 그 후 세 나라 군인들은 음식과 샴페인을 나누어 먹고, 노래를 부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서로 주소를 교환하고, 전쟁이 끝나면 한번 만나자고 약속도 한다. 그 후 위생병으로 전쟁에 참여한 스코틀랜드 신부의 주관으로 세 나라 군인들이 모두 함께 미사를 드린다. 이 자리에서 슈프링거의 애인 안나는 청아한 목소리로 [아베 마리아]를 부른다. 반주도 없이 차가운 겨울바람이 부는 전쟁터에 울려 퍼진 [아베 마리아]. 그녀의 메마른 목소리가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처럼 미세하게 떨린다. 그 노래를 들으며 모두 숙연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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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고받는 노래를 통해 병사들은 오늘만큼은 서로에게 총을 겨눌 생각이 없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고, 전장에는 꿈과 같은 평화가 찾아온다. <제공: 네이버 영화>


그렇게 하룻밤이 지났다. 본래 휴전은 크리스마스이브에만 하기로 했지만 전날 밤에 서로 친하게 지냈으니 그 후에 싸움이 될 리가 없다. 다음날 아침에도 병사들은 함께 축구 경기를 하고, 전투에서 희생당한 전우들의 시신을 묻어주는 작업도 함께 한다. 이때 독일군은 프랑스군에게 곧 폭격이 있을 예정이니 독일군 참호로 와서 잠시 피해 있으라고 말한다.

어떻게 군대라는 조직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조금 전까지 서로 총부리를 겨누던 사람들이 어떻게 하루아침에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영화를 보면서 과연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실제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한다. 이 영화는 1914년 12월 24일, 전쟁터에서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것이다. 이 일은 영국군이 가족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는데, 그때 찍은 사진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 아까 현실은 영화가 아니라고 했는데, 때로는 영화 같은 현실도 있는 것 같다. 크리스마스의 기적이라고 해야 할까.

이 영화에는 여러 편의 노래가 나온다. 전장에서 부른 군인들의 노래도 인상적이지만 그보다 더 깊은 감명을 주는 것은 슈프링거가 안나와 함께 부르는 [당신이 함께 하신다면 Bist du bei mir]이다.

이 노래는 요한 세바스찬 바흐가 아내 안나 막달레나를 위해 쓴 자필 악보집에 실려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진짜 바흐가 썼는지는 의문이다. 왜냐하면 곡의 일부가 1718년 11월 16일 바이로이트에서 공연된 고트프리트 하인리히 슈퇼첼의 [디오메데스]라는 오페라에도 들어 있기 때문이다. 오페라의 악보는 분실되었다. 그 후 이 노래의 악보는 베를린 성악 아카데미 도서관에 보관되어 오다가 제2차 대전 때 없어졌다. 그러다가 그로부터 수십년 후인 2000년, 엉뚱하게 러시아에 있는 키예프 음악원에서 다시 발견되었다. 이때 발견된 악보의 기악 반주 부분은 슈퇼첼의 오페라의 그것보다 열정적이라고 한다. 이런 차이가 있지만 이 노래가 어디서 나온 것인지는 아직도 의문이다. 안나 막달레나의 음악 수첩에 들어 있기 때문에 바흐의 작품으로 추정하기도 하지만 어쩌면 안나 막달레나가 1720년에 문을 닫은 라이프찌히 오페라 극장에서 노래를 가져왔을 수도 있다. 어쩌면 당시 라이프찌히 사람들이 집에서 즐겨 불렀던 노래를 그대로 악보집에 실었는지도 모른다. 여하튼 유래가 어찌 되었든 이 노래는 지금 결혼식이나 이와 비슷한 성격의 모임의 단골 레퍼토리로 널리 불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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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중 슈프링거와 안나가 함께 부르는 노래는 죽음 앞의 사랑을 노래하며 깊은 감명을 준다. <제공: 네이버 영화>


당신이 함께 하신다면
나는 죽음과 안식을 향해
기쁘게 갈 수 있어요.
당신의 사랑스러운 손길이 내 눈을 감겨준다면
아! 내 마지막은 얼마나 행복할까요.

사랑을 고백하는데 왜 죽음을 이야기할까. 우리는 이런 종류의 사랑 고백에 익숙하지 않다. 하지만 가사를 찬찬히 읽어보면 그 의미가 가슴에 깊이 와 닿는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죽음도 안식으로 받아들이고 편안하게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보다 더 절실한 사랑이 또 있을까. 가사에서 세속의 차원을 넘어선 종교적 경건함까지 느껴진다. 바흐가 붙였다고 추정되는 노래의 멜로디도 성가(聖歌)의 그것처럼 평화롭고 간절하다. 노래의 구조는 간단하다. 같은 선율을 약간 변형시켜 반복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평온하게 시작했다가 “죽음과 안식을 향해 기쁘게 갈 수 있어요”라는 대목에서는 두 음씩 연결된 8분 음표를 연속적으로 구사하며 간청하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런 다음 음역을 높여 처음의 선율을 반복한다. 이런 방식으로 감정을 한 단계 고양시킨다.

전쟁터에 나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슈프링거와 안나는 이 노래를 부른다. 그런 다음 안나는 주변의 만류를 무릅쓰고 슈프링거를 따라 전쟁터로 들어간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실제로 전쟁 중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전쟁터까지 오는 용감한 여자들이 있었다고 한다. [당신이 함께 하신다면]은 이렇게 용감하게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왔던 모든 여자들의 노래이다.바흐의 노래에서는 죽음이 일종의 상징이지만, 슈프링거와 안나에게는 눈앞의 현실이다. 참혹한 전쟁이 노래의 은유와 상징을 직설과 현실로 바꾸어놓은 것이다.


관련링크: 통합검색 결과 보기14547454564060.jpg    당신이 함께 하신다면 음반14547454564060.jpg


영화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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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회숙 | 음악 칼럼니스트
이화여대 음대 및 서울대 음대 대학원 졸업
현재 서울시립교향악단 월간지 SPO 편집위원이며, 서울시향 ‘콘서트 미리 공부하기’를 비롯한 여러 클래식 강좌의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평화방송 FM 음악공감 ‘진회숙의 일요 스페셜’의 진행자이다. 저서로 <모나리자. 모차르트를 만나다> 외 여러 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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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원제공

소니뮤직

http://www.sonymusi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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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뮤직 트위터 (http://www.twitter.com/SonyClassicalKr)


발행2012.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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