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클래식 푸치니의 여인 - 영감의 원천, 푸치니의 작은 정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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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05회 작성일 16-02-06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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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오페라 작곡가 푸치니는 새로운 오페라를 작곡할 때마다 사랑하는 여인의 이미지를 작품 속에 투영했다고 한다. 1909년, 푸치니는 호숫가의 작은 마을 토레 델 라고에서 [서부의 아가씨]라는 오페라를 쓰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이 무렵, 푸치니의 집에서 일하던 도리아라는 하녀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했다. 질투심 많은 푸치니의 아내 엘비라가 도리아에게 자기 남편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는 누명을 씌웠기 때문이다. 이 일로 도리아는 말할 수 없는 고초를 겪었다. 엘비라에게 매춘부라는 욕설을 듣고, 마을 사람들부터 손가락질 당하는 것도 모자라 교회 미사에서 성찬식까지 거부당하는 상황에 몰린 것이다. 견디다 못한 도리아는 자기의 결백을 주장하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일은 이른바 ‘도리아 만프레디 사건’이라고 해서 당시 신문에 대서특필할 정도로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음악리스트
No.아티스트 & 연주 
1푸치니, [서부의 아가씨] 중 제 1막 [존슨 씨, 왈츠 어때요? Mister Johnson, un valzer?]음악 재생
2슈베르트, 현악 4중주 [죽음과 소녀] 1악장음악 재생

1분 미리듣기 / 음원제공: 소니뮤직




사실 이 비극적인 사건은 푸치니가 자초한 측면이 크다. 그는 평생 수없이 많은 여성과 염문을 뿌렸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새로운 오페라 속 여인이 탄생했다. 이 여인들을 푸치니는 “나의 작은 정원”이라고 불렀다고 하는데, 어떤 의미에서 이것은 상당히 적절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에게 사랑하는 여인은 곧 새로운 작품이 탄생하는 창작의 샘, 영감의 정원과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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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치니의 뮤즈에 대한 영화 [푸치니의 여인] <제공: 네이버 영화> 영화 정보 보러가기


도리아가 자살할 당시 그의 합법적인 아내였던 엘비라와의 관계도 처음에는 불륜으로 시작했다. 엘비라는 친구의 아내로, 1864년에 피아노 선생과 제자로 만나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 후 푸치니의 아이를 갖게 된 엘비라는 1886년 당시 6살 난 남편 소생의 딸 포스카를 데리고 푸치니가 살고 있는 토레 델 라고로 갔다. 하지만 당시 가톨릭 국가였던 이탈리아에서는 이혼이 원천적으로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두 사람은 합법적인 부부가 될 수 없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몇 년 후, 푸치니가 또 다른 여성과 사랑에 빠졌다. 그때 푸치니는 [나비부인]을 쓰고 있었는데, 이때 나타난 그의 ‘작은 정원’은 코리나라는 여자였다. 푸치니는 그녀를 엄청나게 사랑했다. 사랑을 넘어 중독이나 집착으로 보일 정도였다. 이것을 지켜본 엘비라는 몹시 괴로워하며 한때 푸치니를 떠날 생각까지 했었다. 그런데 1903년 2월. 푸치니가 교통사고를 당해 심하게 다치는 사건이 발생했다. 부상이 너무 심해 누군가 옆에서 간호를 해주어만 했다. 그런데 바로 그다음 날, 하늘이 도왔는지 엘비라의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 두 사람의 결혼을 가로막던 장애물이 갑자기 없어진 것이다. 이렇게 해서 두 사람은 남들 앞에 떳떳한 합법적인 부부가 될 수 있었다.

비록 정식으로 부부가 되기는 했지만 엘비라는 늘 불안했을 것이다. 자신도 한때는 푸치니의 ‘작은 정원’이었지만, 언제 어디서 또 다른 ‘작은 정원’이 나타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것이 아마 심한 의부증으로 발전한 듯하다. 하지만 엘비라만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푸치니가 원인 제공을 한 측면이 크기 때문이다. 도리아는 푸치니와 엘비라 부부 사이의 깨어진 신뢰, 불행한 결혼 생활의 희생양이었다. 그렇게 그녀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비참하게 죽어갔다. 영화 [푸치니의 여인]은 도리아의 죽음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낸 것이다.

푸치니의 애정 행각과 도리아의 자살에 얽힌 사연은 구구절절한데, 정작 영화는 구구절절하지 않다. 이 영화에는 대사가 없다. 편지를 제외한 모든 것을 음악과 영상으로 처리했다. 하지만 이 침묵의 메시지가 영화의 구체적인 내용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든다. 그래서 혹 영화의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독자를 위해 여기서 구구절절하게 영화의 줄거리를 소개하려고 한다.

도리아는 어느 날 푸치니의 집에서 엘비라의 딸 포스카가 외간 남자와 정을 통하는 것을 본다. 이 일로 포스카는 도리아를 경계하고, 그녀를 내쫓기 위해 음모를 꾸민다.

푸치니의 집 2층 발코니에서는 호수 위에 지어진 목조건물이 내려다 보인다. 여기서 도리아의 사촌 줄리아가 아버지와 함께 선술집을 하고 있다. 수줍은 성격의 도리아와는 달리 줄리아는 아주 적극적이고 강한 성격의 소유자이다. 푸치니는 이런 그녀에게 매력을 느끼고 그녀를 유혹한다. 그리고 그녀의 이미지를 당시 쓰고 있던 미국 서부 개척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오페라 [서부의 아가씨]의 주인공 미니에게 투영시킨다. 푸치니는 도리아를 시켜 줄리아에게 편지를 전해 달라고 한다.

그런데 포스카가 도리아의 손에 편지를 쥐어주는 푸치니의 모습을 보고 엘비라에게 도리아와 푸치니의 관계가 심상치 않다고 말한다. 이때부터 엘비라는 푸치니를 은밀하게 감시한다. 그러다가 어느 날 밤, 도리아가 밖으로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푸치니가 나가는 것을 보고 뒤를 밟는다. 갈대숲으로 들어간 푸치니가 휘파람을 불자 누군가 이에 화답하는 휘파람을 분다. 그런 다음 두 사람이 함께 배를 타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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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치니의 애정 행각은 그에게 끊임없는 영감을 주었지만, 이에 대한 아내 엘비라의 불안과 의심은 도리아를 죽음으로 내몬다. <제공: 네이버 영화>


멀리서 이 광경을 본 엘비라는 그 여자가 도리아라고 확신한다. 그녀는 도리아의 뺨을 때리고, 교회의 신부에게 가서 도리아가 자기 남편을 유혹했다고 고자질한다. 그 후 신부가 도리아의 집을 찾아와 그녀의 가족에게 엘비라에게 들은 얘기를 전하고, 딸이 부정한 일을 저질렀다고 생각한 도리아의 아버지는 그녀를 방에 가둔다. 그 후 푸치니가 도리아 어머니에게 편지를 보낸다. 자기 아내의 말은 사실이 아니라는 내용이다.

한편 집안에 갇힌 도리아는 줄리아를 시켜 당시 파리에 머물고 있던 푸치니에게 편지를 보낸다. 자기가 쫓겨난 진짜 이유는 포스카의 불륜 현장을 보았기 때문이라는 내용이다. 그 후 토레 델 라고로 돌아온 푸치니는 엘비라에게 장미꽃을 주며 화해를 청하고, 두 사람은 뜨겁게 포옹한다.

하지만 푸치니와 엘비라의 관계는 다시 악화된다. 엘비라가 어둠 속에서 자기를 감시하고 있다는 것을 안 푸치니는 이튿날 로마로 떠난다. 남편이 떠나자 엘비라의 분노는 극에 달한다. 그녀는 집 앞에서 도리아를 때리고, 사람들 앞에서 더러운 창녀라고 부르며 모욕을 준다. 남편의 정부라고 소리치면서 “음탕한 계집, 재수 없는 년, 버릇을 고쳐놓겠어, 더러운 창녀 같으니라고. 내 남편을 홀리려고 여기 온 거야.”라고 소리치고 도리아의 어머니에게 도리아와 푸치니가 침대에 함께 있는 걸 봤다고 말한다.

도리아는 푸치니에게 도와달라는 편지를 보낸다. 그리고 미사를 드리기 위해 교회로 갔는데, 신부가 그녀에게 성찬을 베풀어주는 것을 거부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도리아는 울면서 성당을 뛰쳐나간다. 다음 날, 로마에 있는 푸치니는 전보를 받는다.


“도리아가 음독자살을 시도했습니다.”


영화 [푸치니의 여인]은 하나의 의문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푸치니는 늘 자신이 작곡하는 오페라 속 여주인공과 닮은 여성과 사랑을 나누곤 했다. 그런데 [서부의 이가씨]를 쓸 당시 푸치니 주변의 여성이라고는 도리아 밖에 없다. 하지만 [서부의 아가씨]의 주인공 미니는 도리아와는 전혀 다른 성격의 소유자이다. 그렇다면 미니는 완전히 가상의 인물일까. 아니면 푸치니가 미니를 닮은 어떤 여성과 은밀한 사랑을 나눈 것일까.

이런 궁금증을 안고 영화 제작진은 토레 델 라고로 향했다. 그리고 거기서 100년 가까이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 푸치니가 도리아의 사촌인 줄리아와 비밀 연애를 했고, 둘 사이에 아들까지 있었다는 것이다. 줄리아는 [서부의 아가씨]의 주인공 미니와 외모와 성격이 비슷했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오페라 [서부의 아가씨]를 둘러싼 오랜 궁금증이 풀리게 되었다. [서부의 아가씨]는 1850년대 미국 서부의 황금시대를 배경으로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는 여걸 미니와 순수함을 지닌 도적 두목 딕 존슨의 사랑을 그린 오페라이다. 영화는 [서부의 아가씨]의 주인공 미니의 모델이 호수 위에서 선술집을 운영하는 줄리아라는 것을 암암리에 보여준다. 푸치니가 [서부의 아가씨]를 작곡하는 장면은 언제나 줄리아가 나오는 장면과 연결되어 있다. [서부의 아가씨]에 나오는 미니의 술집처럼 줄리아의 선술집에도 마을 남자들이 몰려든다. 줄리아는 당차고 건강하고 씩씩하다. 관능적이고 매혹적인 목소리로 아코디온 반주에 맞추어 노래를 부른다.


“사람들이 그들을 갈라놓으려 하지만 때가 되지 않았다. 미니가 굳은 결심으로 단숨에 뛰어 들어가 그들을 맹렬하게 갈라놓았다.”


푸치니는 줄리아의 노랫소리를 듣거나 그녀를 만나고 온 날이면 어김없이 책상에 앉아 대본을 읽고 머릿속에 떠오른 음악적 착상을 악보에 옮긴다.

어느 날 줄리아가 또 노래를 부른다.


“아름다운 루카로 떠나 멋진 신사가 된 내 사랑”


푸치니 창문으로 줄리아가 노래하는 모습을 내려다본다. 둘 사이에 모종의 교감이 오간다.


“미니의 술집에서 헨리와 다른 광부들은 리듬에 맞춰 손뼉을 치고 미니와 존슨은 함께 춤을 추다 사라졌다.”


푸치니가 대본을 읽고 바로 작곡에 들어간다. 그런 다음 몰래 밖으로 나와 갈대숲에서 줄리아를 만난다. 이때 그가 피아노로 치는 곡은 [서부의 아가씨]에 나오는 [존슨씨, 왈츠 어때요?]이다. 제1막에서 존슨과 미니가 같이 춤을 추는 장면에서 나오는 곡으로 3박자의 순수하고 아름다운 왈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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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100년 간 베일에 싸여있던 오페라 [서부의 아가씨]의 비밀을 밝혀낸다. <제공: 네이버 영화>


앞에서 이야기한 대로 이 영화는 대사 없이 음악과 이미지만으로 흘러간다. 오페라 작곡가의 삶을 그린 영화이니 오페라 아리아가 나올 법도 한데, 이 영화는 그런 상식을 거부한다. 여기서 중요한 음향적 배경을 이루는 것은 오페라가 아니라 푸치니가 치는 피아노 소리이다. 그런데 그것이 마치 인상주의 음악의 거장인 드뷔시의 피아노곡 같다. 푸치니는 반음계적 선율 진행을 즐겨 사용하고, 당시 이탈리아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새롭고 혁신적인 화음을 만들어낸 작곡가로 꼽힌다. 프랑스적 감성에도 깊이 매료되어 샤브리에를 연상시키는 화성 표현을 썼으며, 훗날 드뷔시와 라벨의 음악을 예고하는 기법들을 구사했다. 이런 푸치니 음악의 특징이 이 영화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오케스트라가 아닌 피아노로 연주하니 포착할 수 없는 음향의 미묘한 효과가 더 잘 살아나는 것 같다.

[푸치니의 여인]은 일종의 인상주의 영화이다. 인상주의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 직접적으로 얘기하지 않고 암시하는 것인데, 이 영화 역시 ‘암시의 수법’을 썼다. 푸치니의 감각적인 피아노 선율과 토레 델 라고의 아름다운 자연 풍광, 푸치니의 은밀한 사랑과 도리아의 비극을 더 말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시적 이미지로 표현했다.

영화의 모든 장면이 암시적인 영상미를 추구한다. 특히 우체부가 도리아가 자살을 시도했다는 전보를 가지고 푸치니의 방으로 올라가는 장면에서 우체부의 모습을 그림자로만 처리한 점이 인상적이다. 여기서 배경으로 깔리는 푸치니의 피아노 소리는 지극히 감각적이다. 방문을 노크하는 장면에서까지 영상미를 추구하는 치열한 탐미 정신이 엿보인다.

하지만 푸치니가 전보 내용을 읽는 순간, 모든 탐미주의가 끝난다. 그 순간에 나오는 음악은 슈베르트의 현악 4중주 [죽음과 소녀]의 1악장. 이제까지 영롱하게 탐미의 높을 헤매던 음향이 바로 이 순간 격렬한 드라마로 변한다. 네 대의 현악기가 처절하게 울부짖기 시작한다.

도리아는 독약을 먹은 후 바로 죽지 않았다. 5일 동안 사경을 헤매다 죽었는데, 죽어가면서 지르는 고통에 찬 비명이 푸치니의 집까지 들렸다고 한다. 도리아가 죽은 후 의사들이 부검을 했고, 그녀가 처녀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에 엘비라는 무고죄로 체포되어 5개월 5일의 징역형을 받았다. 하지만 푸치니가 12000 리라를 주고 도리아의 가족과 합의하면서 엘비라는 감옥행을 면할 수 있었다.

시종일관 감각적으로 흘러가던 음악이 마지막에 갑자기 현실주의로 돌아온다. 이 갑작스러운 분위기의 반전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한 가난하고 비천한 처녀의 억울한 죽음을 마지막까지 탐미의 대상으로 삼을 수는 없다는 일종의 고백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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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회숙 | 음악 칼럼니스트
이화여대 음대 및 서울대 음대 대학원 졸업
현재 서울시립교향악단 월간지 SPO 편집위원이며, 서울시향 ‘콘서트 미리 공부하기’를 비롯한 여러 클래식 강좌의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평화방송 FM 음악공감 ‘진회숙의 일요 스페셜’의 진행자이다. 저서로 <모나리자. 모차르트를 만나다> 외 여러 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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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sonymusi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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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2013.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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