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클래식 순수의 시대 - 위선과 거짓을 넘어 순수의 시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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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45회 작성일 16-02-06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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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0년, 미국 뉴욕의 한 오페라 극장. 그날도 모든 것이 여느 때와 다름없이 진행되었다. 늘 그랬던 것처럼 보포트 부인은 구노의 [파우스트] 중 [보석의 노래]가 시작될 때쯤 남편 없이 혼자 들어왔다가 또 늘 그랬던 것처럼 3막이 끝날 때쯤 나가 버렸다. 극장 밖에는 공연시간 내내 마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뉴욕의 상류층 사람들은 객석에 앉아 열심히 오페라를 감상하는 척하지만 사실 그들의 관심은 30분 후에 보포트 가에서 펼쳐질 호화스러운 만찬에 쏠려 있었다. 미국인들이 예술을 모른다는 것이 공공연한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음악리스트
No.아티스트 & 연주 
1요한 슈트라우스 [라데츠키 행진곡] / Franz Welser-Möst & Vienna Philharmonic (2013 빈 필 신년음악회)음악 재생
2요한 슈트라우스 [빈 숲 속의 이야기] / Lorin Maazel & Vienna Philharmonic (1994 빈 필 신년음악회)음악 재생

1분 미리듣기 / 음원제공: 소니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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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의 시대 영화 포스터 <제공: 네이버 영화> 영화 정보 보러가기


2층 발코니 석에는 젊은 변호사 아처 뉴랜드와 그의 약혼녀 메이 그리고 메이의 사촌 엘렌이 앉아 있다. 엘렌은 결혼 후 남편을 따라 유럽에 갔다가 결혼 생활에 실패하고 이제 막 뉴욕으로 돌아왔는데, 남의 사생활 캐기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오페라보다 재미있는 가십거리였다. 그들은 오페라 글래스로 발코니에 앉아 있는 엘렌을 훔쳐보면서 결혼에 실패한 주제에 도착 바로 다음 날 오페라 극장에 나타나는 그 뻔뻔스러움(?)에 대해 얘기한다.

이 자리에서 아처와 엘렌은 서로 인사를 나눈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아처는 메이와의 사랑에 추호의 의심도 없었다. 두 사람이 결혼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으며, 이에 대해 어떤 망설임도 없었다. 하지만 엘렌을 만나면서 아처의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엘렌을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아처는 자신이 자란 환경과 자신이 속한 세계에 대해 아무런 회의도 없었다. 하지만 결혼에 실패하고 돌아온 엘렌을 대하는 상류층 사람들의 태도를 보면서 그들의 위선과 거짓에 염증을 느낀다.

아처는 진실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다른 사람의 평가보다 자기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엘렌에게 특별한 매력을 느낀다. 엘렌과 같은 여자를 이제까지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의 주변에는 체면 때문에 인간적인 감정을 억누른 채 밀랍인형처럼 살아가는 여자들만 있었다. 한때 그의 마음을 그토록 설레이게 했던 약혼녀 메이도 사실은 스스로 사고할 능력이 없는, ‘잘 훈련된 인형’에 불과했던 것이다.

아처와 엘렌은 곧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엘렌은 자기를 믿고 따르는 메이를 배신할 수 없으며, 그런 사람에게 상처를 주면서 얻은 사랑이 과연 행복할 수 있을지에 대해 회의를 품는다. 그러는 사이 메이는 어머니를 설득해 결혼 날짜를 앞당기고, 아처는 상황에 밀려 결국 메이와 결혼식을 올린다. 결혼식을 올리면서 아처는 앞으로 메이에게 충실한 남편이 되겠다고 다짐한다. 엘렌을 잊고, 그녀에 대해 좋은 추억만 간직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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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처는 약혼자 메이에게 가식과 답답함을 느끼지만 주위의 상황에 밀려 결혼하게 된다. <제공: 네이버 영화>


아처에게 엘렌은 사무치도록 그리운 존재이다. 메이와 살면서 그는 가끔 다른 사람을 통해 그녀의 소식을 듣는다. 그러다가 어느 날 숨막힐 것 같은 결혼 생활에 답답함을 느끼고 엘렌을 찾아간다. 그 자리에서 두 사람이 여전히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다. 하지만 엘렌은 아처에게 가족과 사회에 대한 의무를 저버리지 말 것을 호소한다. 그리고 사랑의 고통을 견딜 수 있을 때까지 견디겠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자기 자신과 아내를 속일 수 없다고 판단한 아처는 아내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으려고 한다. 하지만 그 말을 하기 전에 아내로부터 아이를 가졌다는 말을 듣는다. 자신이 임신했다는 사실을 엘렌에게도 얘기했다는 메이의 말을 듣고, 아처는 진실을 말하려던 계획을 접는다.

그 후 엘렌은 뉴욕을 떠나 유럽으로 가고, 아처와 메이는 평생 모범적인 가정생활을 영위한다. 아처는 성실하고 믿음직한 남편으로 살았으며, 메이는 이 세상이 자기가 속한 세상처럼 행복으로 가득 차 있다는 믿음을 간직한 채 세상을 떠난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아처는 이제 57살이 되었다. 건축가로 일하는 아들의 손에 이끌려 유럽으로 건너간 그는 아들로부터 엘렌의 집을 방문하기로 되어 있다는 말을 듣는다. 드디어 엘렌이 사는 집 앞에 도착한 아처. 그는 아들을 먼저 엘렌의 집으로 들여보내고, 자기는 집 앞 벤치에 앉아 잠시 회상에 잠긴다. 그리고 엘렌의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그냥 그 자리를 떠난다.

엘렌을 떠올릴 때마다 아처는 그녀가 그림 속에 있는 상상의 여인처럼 느껴졌었다. 그 상상의 여인이 이제 현실의 여인이 되어 지척에 있으나 그는 끝내 놓쳐버린 그 환영을 다시 잡지 않는다.

영화 [순수의 시대]는 오페라 공연 장면으로 시작한다. 아처와 엘렌, 메이가 발코니에 앉아서 보고 있는 오페라는 구노의 [파우스트]. 3막에서 메피스토펠레스의 도움으로 젊음을 찾은 파우스트가 마르게리트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장면이다.

“당신의 손을 나에게 주오! 창백한 달빛 아래 당신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게 해 주오, 구름 사이로 비치는 달빛이 당신을 어루만지니 당신의 아름다움이 더욱 빛나는군요.”

“오 고요함이여! 행복이여! 완전한 신비여! 미칠 듯한 번민이여! 내 가슴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고독한 목소리. 나는 그 소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어요.”

이렇게 말한 다음 마르게리트는 파우스트의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 데이지 꽃잎을 하나씩 뽑으며 사랑의 점을 친다.

“그는 나를 사랑해. 사랑하지 않아. 사랑해. 아니야. 사랑해. 아니야. 사랑해”

이 장면을 보면서 아처의 마음이 흔들린다. 데이지 꽃잎을 하나씩 뜯으며 사랑을 점치는 마르게리트처럼 아처는 진실과 거짓의 데이지 꽃잎을 하나씩 뜯으며 방황한다. 현실에 순응할 것인가. 진정한 사랑을 찾아나설 것인가. “진실, 거짓, 진실, 거짓, 진실, 거짓, 진실”

마지막 꽃잎이 진실을 말하라고 한다. 아처는 서둘러 집으로 돌아와 아내에게 말을 꺼낸다. 하지만 그에 앞서 메이로부터 임신했다는 말을 듣고, 진실을 말하려던 계획을 접는다. 이렇게 해서 엘렌은 아처에게 가슴 저리는 추억으로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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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처는 엘렌의 자유로움과 솔직함에 매력을 느낀다. <제공: 네이버 영화>


아처가 엘렌에게 끌린 것은 다른 사람의 이목이나 체면에 구애받지 않는 그녀의 자유로움과 솔직함 때문이었다. 이것이 그동안 강요된 위선에 중독되어 있던 아처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밴더라이든 가에서 열린 엘렌의 환영 만찬에서 엘렌은 아처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그가 있는 쪽으로 자리를 옮긴다. 뉴욕에서는 관습상 여자가 남자를 만나기 위해 자리를 옮기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하지만 엘렌은 이런 관습을 무시하고 아처에게로 가는데, 대화를 나누는 동안 두 사람은 뉴욕에서 제일 웃기는 것이 무조건 관습을 따르는 것과 다른 나라를 모방하는 것이라는 사실에 공감한다.

보포트의 집에는 뉴욕에서 가장 멋진 연회장이 있다. 보포트의 아내는 캐롤라이나의 이름 있는 가문 출신이지만 스스로 영국인이라고 말하는 보포트의 출신성분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다. 그는 지나친 사치와 천박한 말투로 사람들의 비웃음을 샀는데, 그가 대형 연회장을 자신의 집에 마련한 것은 이런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서였다.

가짜일수록 더욱 그럴 듯하게 진짜 흉내를 내고 싶은 법이다. 보포트 가의 연회가 그랬다. 화려한 샹들리에와 값비싼 가구, 멋진 장신구와 도자기, 벽면을 가득 메운 수많은 초상화, 화려한 꽃장식, 잘 정돈된 포크와 나이프, 눈부시게 하얀 냅킨과 장갑, 아르 누보풍의 문양이 새겨진 접시들.

그리고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바로 왈츠. 여기서 왈츠는 상류사회의 허위의식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인데, 그 위선의 역사는 멀리 1814년, 오스트리아 빈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폴레옹이 엘바 섬으로 유배된 지 4개월이 지난 1814년 9월, 전쟁에서 승리한 프로이센과 러시아, 오스트리아, 영국은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전쟁으로 흐트러진 유럽의 질서를 재건하기 위한 회의를 열었다. 오스트리아의 외무장관 메테르니히의 주도 아래 장장 10개월 동안이나 계속된 이 회의에는 90개 왕국과 53개 공국 대표들이 참석했다. 회의가 열리는 동안 회의장으로 쓰인 합스부르크 왕가의 여름궁전인 쇤부른 궁은 늘 사람들로 북적거렸다.메테르니히는 이 호화로운 바로크 양식의 궁전에서 매일 최고급 와인과 흥겨운 왈츠를 곁들인 초호화판 무도회를 열었다. 10개월 동안 연인원 10만명이 이곳을 들락거리며 흥겨운 왈츠와 달콤한 와인에 취해 야릇한 향락의 밤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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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거스트 배리, [마빌의 왈츠], 19세기경, 판화, 카르나발레 미술관 <© Photo RMN, Paris - GNC media, Seoul
14547456060650.png프랑스국립박물관연합(RMN) 14547456066140.png지엔씨미디어> 작품 정보 보러가기


빈 회의는 유럽 사회가 극단적인 보수주의로 회귀하는 일종의 서곡 같은 것이었다. 빈 회의의 결과로 1815년 독일동맹이 결성되었으며,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바이에른과 같은 과거의 군주국들이 대부분 복구되었다. 프랑스의 부르봉 왕조도 부활했는데, 이때 이들이 권좌로 복귀하면서 한 유명한 말이 있다. “혁명에서 우리는 아무 것도 배우지 않았고, 혁명 전에 우리는 아무 것도 망각하지 않았다.”

시대의 반동 메테르니히는 소위 세력 균형이라는 미명 하에 유럽을 이런 식으로 분할해서 33년 동안 지배했다. 역사상 오스트리아가 강대국으로 가장 신이 났을 때가 아마 이때였을 것이다. 그리고 이 기간 동안 자유와 통일을 위한 어떠한 시도도 무참히 묵살되었다.

사실 빈 회의의 시대만큼 무서운 환멸의 시대는 없었다. 무도회장을 가득 메웠던 달콤한 왈츠의 추억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영원한 평화를 보장하겠다던 꽃다운 맹세와 귀중한 약속들이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헌법은 만들어지지 않았으며, 약속된 시민권의 보장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국민들은 또 다시 1791년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이 전통을 이어받아 요한 슈트라우스 부자는 왈츠를 큰 편성의 연주회용 무곡으로 발전시켰다. 요한 슈트라우스는 아버지와 아들이 같은 이름을 썼는데, 아버지는 ‘왈츠의 아버지’, 아들은 ‘왈츠의 왕’으로 불린다. 아버지인 요한 슈트라우스 1세는 왈츠의 기초를 닦았고, 아들인 요한 슈트라우스 2세는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왈츠를 더욱 발전시켜 빈 왈츠를 최고의 경지까지 끌어올렸다.

영화에는 요한 슈트라우스 1세의 [라데츠키 행진곡]과 요한 슈트라우스의 2세의 [황제 왈츠], [예술가의 생애], [빈 숲 속의 이야기]가 나온다.

연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멋진 턱시도와 드레스를 차려입고 요한 슈트라우스의 음악에 맞추어 우아하게 왈츠를 추지만, 사실 머리 속으로는 온갖 추잡한 생각을 다 하고 있다. 행진곡에 맞추어 질서졍연하게 입장하고, 왈츠 선율에 맞추어 모두 같은 동작을 하지만 그 외형적인 절도와 동작의 일치는 동상이몽을 감추기 위한 위장술에 불과하다. 1814년, 빈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이 바로 이랬으리라. 이것을 보고 오스트리아 장군 폰 리뉴는 이렇게 말했다.

"회의는 춤춘다.(Der Kongress tanz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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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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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회숙 | 음악 칼럼니스트
이화여대 음대 및 서울대 음대 대학원 졸업
현재 서울시립교향악단 월간지 SPO 편집위원이며, 서울시향 ‘콘서트 미리 공부하기’를 비롯한 여러 클래식 강좌의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평화방송 FM 음악공감 ‘진회숙의 일요 스페셜’의 진행자이다. 저서로 <모나리자. 모차르트를 만나다> 외 여러 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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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2013.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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