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클래식 마리 앙투아네트 - 시대의 격랑에 휩쓸려간 철부지 여인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댓글 0건 조회 448회 작성일 16-02-06 17:00

본문















14547456116281.png


“인간은 불행에 처해서야 비로소 자기가 누구인지를 알게 됩니다.”

프랑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말년에 보낸 편지에 쓴 말이다. 지금 우리는 마리 앙투아네트라는 이름을 프랑스 혁명이라는 역사적 사건과 연결지어 얘기하지만,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그녀는 자신의 존재가 역사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잘 몰랐고, 사실 관심도 없었다. 오스트리아의 여황제 마리아 테레지아의 막내딸로 태어나 호화스러운 쇤브룬 궁에서 세상 물정 모르고 어린 시절을 보내다가 프랑스, 오스트리아 간의 동맹을 위한 정략결혼의 희생양으로 프랑스로 시집을 갔다.



음악리스트
No.아티스트 & 연주 
1비발디 [협주곡 G장조] RV.151, 1~3악장 / 연주자 장 라몽, 타펠 무지크음악 재생
2도메니코 스카를라티 [소나타 K.213] / 연주자 안드레아스 슈타이어음악 재생

1분 미리듣기 / 음원제공: 소니뮤직






14547456127218



마리 앙투아네트 포스터 <제공: 네이버 영화> 영화 정보 보러가기


그때 마리 앙투아네트의 나이는 15살. 이제 막 2차 성징이 나타나기 시작한 어린 소녀에 불과했다. 그 후 19살이라는 어린 나이로 프랑스 왕비가 된 그녀는 베르사유 궁이라는 폐쇄된 공간 속에서 여느 왕실 여자들과 마찬가지로 패션과 여흥, 사교를 즐기며 바깥 세상과는 상관없는 삶을 살았다. 그녀에게 주어진 유일한 사회적, 역사적 의무가 있다면 그것은 왕위를 계승할 왕자를 낳는 것 뿐이었다.

하지만 결혼 후 몇 년 동안, 마리 앙투아네트는 이 막중한 의무를 수행할 수 없었다. 남편인 루이 16세의 성기능에 문제가 있어 번번이 합궁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마리아 테레지아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이 그녀에게 끊임없이 ‘왕비로서의 의무’를 강조했지만 어쩌랴. 하늘을 보아야 별을 따지. 하늘을 보지 못한 그 세월이 무려 7년 반이었다고 한다.

동생 부부의 고충을 보다 못한 마리 앙투아네트의 오빠 요제프 2세가 프랑스로 와서 루이 16세에게 넌지시 남자가 되는 비결을 알려주었다. 이 말을 듣고 투혼(?)을 발휘한 루이 16세는 드디어 마리 앙투아네트를 임신시키는데 성공했다. 그 후 두 사람은 네 명의 아이를 낳으며 별다른 굴곡 없이 잘 살았다. 왕자가 어린 나이에 죽는 불행한 일을 겪기도 했지만 영아 사망은 당시에는 흔한 일이었기 때문에 이 일로 마리 앙투아네트의 인생이 다른 왕가 사람들에 비해 특별히 불행했다고 말할 수 없다. 만약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마리 앙투아네트 역시 왕가의 다른 여자들처럼 천진난만하게 궁전 안의 생활을 세상의 전부로 여기며 살다가 죽었을 것이다.



14547456139165



마리 앙투아네트의 유일한 의무는 왕자생산이었으나 루이 16세와의 합궁은 번번이 실패로 끝났다. <제공: 네이버 영화>


그런데 이렇게 평범한 여자가 자기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역사의 격랑 속에 내던져졌다. 다른 왕비에 비해 특별히 더 사치스러운 생활을 한 것도 아닌데, 어느 날 졸지에 민중의 적이 되어 버린 것이다.‘나라를 말아 먹은 여자’, ‘오스트리아의 창녀’, ‘빚투성이 왕비’ 민중들 사이에서 이런 말이 공공연하게 나돌았다. 빵을 달라고 외치는 사람들에게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라고 해요”라고 했다는 소문 역시 근거 없는 것이었지만 증오의 대상이 필요했던 민중들에게 그녀는 좋은 먹잇감이었다.

사실 마리 앙투아네트에게는 잘못이 없다. 황제의 딸로 태어나 평생 궁 밖의 생활을 몰랐던 그녀에게 무엇을 기대하는가? 치열한 역사의식으로 무장하고 자기가 속한 계급에 대항해 가열차게 투쟁하기를 바라는가?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는 말이 있듯이 그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그녀에게 잘못이 있다면, 그것은 그녀가 재수 없게도 인류 역사의 기나긴 흐름 속에서 자기와 같은 계급의 사람들이 인간으로 취급하지도 않았던 ‘아랫것’들 사이에 인간의 평등에 대한 인식이 싹트기 시작한 바로 그 시기에 태어났다는 것뿐이다. 그렇게 자기가 얼마나 위험한 시대에 태어난 지도 모르는 채 철부지로 살다가 갑자기 역사의 격랑 속으로 내던져졌다. 그 속에서 밑바닥까지 떨어진 다음에야 비로소 자기 존재의 의미를 알게 된 것이다.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마리 앙투아네트]는 프랑스 혁명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다룬 영화가 아니다. 영화의 초점은 철저하게 마리 앙투아네트라는 한 개인에 맞추어져 있다. 민중의 공분을 살만한 사치스러운 장면이 엄청나게 많이 나오지만, 이것이 민중의 고통스런 삶과 마리 앙투아네트의 사치스러운 삶을 대비시키기 위한 의도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영화는 자기 앞에 닥칠 비극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채 그저 예쁘고 맛있고 재미있는 것을 좋아하는 철부지 소녀의 일상을 때론 바비 인형처럼, 때론 디스코텍의 플레이 걸처럼 그려낸다.



14547456148519



마리 앙투아네트는 하루 하루 무료하면서 화려한 생활을 보낸다. <제공: 네이버 영화>


18세기 인물의 21세기식 버전이 다소 생경하기도 하지만, 매일매일 ‘재미있게 보내기’가 삶의 유일한 목표였다는 점에서 영화 속 인물과 실제 마리 앙투아네트 사이에 본질적인 차이는 없다. 화려한 드레스와 부채, 각종 장신구와 최신 유행의 구두, 방 안을 가득 채운 온갖 종류의 케이크와 사탕, 과자 등등. 영화는 관객의 눈에 엄청난 물량공세를 퍼붓는다. 그래서 오히려 현실성이 떨어진다. 현란한 색의 향연마저도 무색무취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매사에 여흥을 즐겼던 마리 앙투아네트는 오페라도 좋아했다. 영화에도 그녀가 왕실 사람들과 함께 오페라를 보는 장면이 나온다. 처음에 그녀가 본 오페라는 프랑스 작곡가 라모의 [플라테(Platée)]이다. 라모(Jean-Philippe Rameau, 1683~1764)는 루이 15세 시절에 활동했던 궁정 작곡가이다. [플라테]는 그가 1745년 루이 15세의 아들과 스페인 공주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작곡한 것으로 베르사유 궁에서 처음 공연되었다.

영화에서 가수가 그네를 타면서 부르는 노래는 오페라의 2막에 나오는 [다프네는 아폴로의 구혼을 거절했네]라는 아리아이다. 고대의 신 유피테르가 아내 유노의 질투심을 잠재우기 위해 못생긴 플라테와 가짜 결혼을 한다는 내용인데, 유피테르가 당나귀, 올빼미, 구름, 불꽃 등 여러 모습으로 변신하며 플라테에게 구혼하는 모습이 우스꽝스럽게 그려져 있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이 희극 오페라를 재미있어 죽겠다는 표정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아리아가 끝나자 박수를 치지 않는 왕실의 전통을 무시하고 혼자 열광적으로 박수를 친다. 그러자 극장 안에 있던 사람들이 따라서 박수를 친다. 이때만 해도 사람들은 왕비의 돌발행동을 귀엽게 봐주었다. 그녀는 여전히 꿈 속에 살고 있었고, 이런 천진난만한 소녀의 마음을 반영하듯 라모의 아리아도 경쾌하고 유려하게 흘러간다.



14547456159472



가면 무도회를 즐기는 마리 앙투아네트. 영화는 주인공의 머리 및 의상을 통해 당시 유행했던 로코코 양식을 상세하게 보여주고 있다. <제공: 네이버 영화>


그렇게 마리 앙투아네트는 프랑스 궁정의 생활에 조금씩 적응해갔다. 하지만 아무리 해도 적응되지 않는 것이 있었다. 바로 사람들의 눈이었다. 프랑스 궁에서는 모든 일상이 오픈되어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옷을 입는 것도, 식사를 하는 것도, 죽는 것도, 심지어는 아이를 낳는 것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해야 했다. 그것이 프랑스 궁정의 법도였다. 그러니 모든 것이 연기하는 것 같았을 것이다. 영화에는 식사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식탁 위에 음식들은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지만 진짜 음식이 아니라 마치 인공으로 만든 소품 같은 느낌을 준다. 전혀 식욕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 앞에 왕과 왕비가 역시 소품처럼 우두커니 앉아 있다.

이렇게 격식을 차리는 장면이 나올 때마다 비발디의 현을 위한 협주곡 [알라 루스티카]의 1악장이 나온다. [알라 루스티카]란 ‘전원풍’ 혹은 ‘시골풍’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프랑스 궁전에서 가장 격식을 차리는 장면에 ‘시골풍’이라는 제목의 음악을 집어넣은 반어법이 흥미롭다. 사실 이 곡은 궁정의 우아함과는 거리가 멀다. 거침없이 빠르고 가볍다. 그래서인지 격식의 장면이 더욱 우스꽝스럽게 느껴진다.



14547456169767



프랑스 궁정 법도에 지친 마리 앙투아네트는 시골집으로 거처를 옮겨 지냈다. <제공: 네이버 영화>


이런 시선들에 지친 마리 앙투아네트는 트리아농의 오두막집으로 도망쳤다. 루이 16세는 왕으로서의 의무를 해야 했지만 왕비는 이런 의무로부터 도망칠 수 있을 때마다 도망쳤다. 사람들의 시선이 미치지 못하는 시골집에서 그녀는 닭과 염소, 양을 기르며, 루소의 자연주의를 몸으로 실천했다. 그리고 어린 딸에게도 소박한 삶의 행복을 가르쳤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음악을 좋아했다. 하프를 즐겨 연주했으며, 노래도 곧잘 불렀다. 요즘 젊은이들이 유행가를 따라 부르듯이 오페라 아리아를 흥얼거렸다. 오페라를 좋아해서 틈만 나면 베르사유에서 파리까지 오페라를 보러가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자기만의 극장을 지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결과 트리아농의 은밀한 곳에 마리 앙투아네트의 작은 극장이 지어졌다. 그녀가 이 극장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것은 1780년 6월 1일. 그때부터 그녀는 자기가 좋아하는 가족들과 친구들을 이곳으로 불러 들여 함께 놀았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객석에 앉아 구경하는 것보다 직접 무대에 서는 것을 좋아했다. 그녀뿐만 아니라 왕의 동생인 프로방스 백작도, 절친한 친구인 폴리냑 백작부인도 모두 배우나 가수가 되어 무대에 섰다. 이들이 이 극장에서 즐겨 공연하던 작품은 장 자크 루소가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작곡한 오페라 [마을의 점쟁이]를 비롯해 고섹이나 그레트리의 음악, 그리고 오스트리아 작곡가 글루크의 오페라였다. 최종 편집 과정에서 빠졌지만, 마리 앙투아네트가 글루크의 오페라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체]를 보는 장면도 촬영했다고 한다. 실제로 그녀는 오스트리아에 있을 때부터 글루크의 오페라를 좋아했다고 한다.

무대에서 마리 앙투아네트는 하녀나 시골처녀 같은 미천한 역할을 주로 맡았다. 이런 배역에 편안함을 느꼈다고 한다. 영화에도 하녀로 분장한 왕비가 빗자루로 마당을 쓸면서 노래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렇게 왕비를 비롯한 귀족들이 모두 무대에 오르면 객석에는 누가 앉아 있었을까? 바로 하인들이었다. 하인들이 객석에 앉아 무대에서 자기들의 역할을 ‘연기하는’ 높은 분들에게 박수갈채를 보내는 웃지 못할 상황이 펼쳐졌던 것이다.

그렇게 마리 앙투아네트는 자기에게 어떤 일이 닥칠지 모른 채 시골집에서의 소박한 생활과 무대 위에서의 하인 놀이를 즐겼다. 그러다 어느 날 서서히 불행의 그림자가 다가왔다. 그 변화를 영화는 오페라의 분위기로 전달한다. 마지막으로 무대에 오른 오페라는 라모의 [카스토르와 폴뤼]. 2막에서 텔레르가 비통한 목소리로 부르는 [준비된 슬픔이여. 창백한 불꽃이여]를 왕비가 비통한 표정으로 듣고 있다. 노래가 진행되는 동안 화면이 어두운 색조로 바뀐다. 현기증날 정도로 달콤하고 현란했던 그 색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어린 아들을 잃은 마리 앙투아네트가 검은 옷을 입고 오열한다. 그리고 베르사유의 텅빈 홀을 홀로 걸어간다. 곧 폭도들이 베르사유 궁으로 쳐들어오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고, 친구들이 하나 둘씩 작별인사를 하고 그녀 곁을 떠난다. 그렇게 친구들을 떠나보내고 자기는 왕과 아이 곁에 남는다. 이제 그녀는 달콤한 케이크를 먹으며 깔깔거리던 철부지 소녀가 아니다. 역사의 격랑 속에 내던져진 순간에 갑자기 철이 들어 버렸다. 자신의 말처럼 불행에 처해지고 나서 비로소 자기가 누군지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그녀는 의연히 최후를 맞는 것이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폭도들 앞에 비굴한 모습을 보이지 않고 왕비로 품위 있게 죽는 것, 그리하여 왕족의 자존심을 끝까지 지키는 것, 그것이 아마 그녀가 자신이 속한 계급을 위해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일이었을 것이다.



14547456182874



프랑스 혁명이라는 역사의 격동에 휩싸이게 되자 비로소 마리 앙투아네트는 자기가 누군지 깨닫게 된다. <제공: 네이버 영화>


영화는 그녀의 비참한 말로를 보여주지 않는다. 마차를 타고 베르사유 궁을 떠나는 것으로 끝낸다. 마지막으로 마리 앙투아네트가 베르사유 궁을 바라본다. 어린 신부가 되어 쇤부른 궁을 떠날 때는 스카를라티(Domenico Scarlatti, 1685~1757)의 소나타가 나왔었다. 물 위에 조용히 퍼져나가는 파문처럼 영롱한 합시코드 선율이 어떤 굴곡도 없이 편안하게 흘러갔다. 그러나 이제 음악이 비통한 아리아로 바뀌었다. 불행에 처한 후에야 비로소 자기가 누군지, 앞으로 자기에게 어떤 비극이 일어날지 알게 된 마리 앙투아네트. 그 고통스런 깨달음의 절규를 그녀는 이제 성숙한 여인의 귀로 듣는다.


관련링크: 통합검색 결과 보기14547456183506.jpg


영화정보









14547456189730

진회숙 | 음악 칼럼니스트
이화여대 음대 및 서울대 음대 대학원 졸업
현재 서울시립교향악단 월간지 SPO 편집위원이며, 서울시향 ‘콘서트 미리 공부하기’를 비롯한 여러 클래식 강좌의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평화방송 FM 음악공감 ‘진회숙의 일요 스페셜’의 진행자이다. 저서로 <모나리자. 모차르트를 만나다> 외 여러 권이 있다.

저자의 책 보러가기
|
인물정보 더보기


음원제공

소니뮤직

http://www.sonymusic.com/
14547456190666.jpg

소니뮤직 트위터 (http://www.twitter.com/SonyClassicalKr)


발행2013.05.27.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