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클래식 사랑과 슬픔의 볼레로 - 두 세대에 걸친 영욕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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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07회 작성일 16-02-06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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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인생은 매우 다양한 듯 보이지만,
결국은 두세 가지 형태에 불과하다.
그런데 사람들은 오직 자기 인생만이 유일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전에는 그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끌로드 를르슈 감독의 [사랑과 슬픔의 볼레로]는 미국 버지니아 출신의 여류작가 윌라 캐더가 한 말로 시작한다. 이 세상에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있고, 그들이 걸어온 삶의 궤적 또한 그 수만큼이나 다양하지만 사실 형태를 나누어보면 그 종류가 두세 가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물론 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수많은 개인의 개별적인 삶에서 일어날 수 있는 온갖 경우의 수들을 몇 가지 유형으로 간단하게 정리할 수 있을까. 영화는 인생이 두세 가지 형태에 불과하다는 윌라 캐더의 말로 시작하지만, 정작 영화를 보면 사건과 인물들이 너무나 복잡하게 얽혀있어 오히려 역설적으로 인간의 삶이 그렇게 간단하게 유형별로 정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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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리스트
No.아티스트 & 연주 
1라벨 [볼레로] / 베를린 필하모닉, 피에르 불레즈 / Berliner Philharmoniker, Pierre Boulez음악 재생

1분 미리듣기 / 음원제공 : 유니버설 뮤직 / 앨범 정보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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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슬픔의 볼레로 포스트 〈제공 : 네이버 영화〉 영화 정보 보러가기



영화는 193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각각 프랑스, 러시아, 독일, 미국에 살고 있던 네 명의 예술가들이 전쟁의 와중에서 겪었던 일과, 그 후 이들의 2세들이 걸었던 삶의 궤적을 보여준다. 예술가의 모델이 된 것은 미국 스윙 재즈의 대가 글렌 밀러, 오스트리아의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프랑스의 샹송 가수 에디트 피아프, 러시아의 발레리노 루돌프 누레예프라고 한다. 하지만 이들은 일종의 동기만 부여했을 뿐 영화 속에 펼쳐지는 예술가들의 삶은 실존 인물의 삶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

1936년, 러시아의 모스크바에 있는 볼쇼이 발레단, 발레리나 타티아나는 라벨의 [볼레로] 공연에 참가할 무용수를 뽑는 오디션에 도전하지만 실패한다. 이때 심사를 맡은 보리스 오토비치는 오디션에 떨어져 실망하고 있는 타티아나를 격려하는데, 이것이 인연이 되어 두 사람은 결혼을 하고, 이후 아들까지 낳는다. 하지만 이들의 행복은 오래가지 않는다. 독일과 이탈리아가 러시아에 선전포고를 하자 스탈린은 16살에서부터 55살 사이의 남자들에게 징집 명령을 내린다. 이에 따라 타티아나의 남편 보리스는 어린 아들과 아내를 두고 전쟁터로 나간다. 남편이 전쟁터에 있는 동안, 타티아나는 자신의 전공을 살려 러시아 병사들을 위한 위문 공연에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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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느와 시몽은 리도 쇼의 오케스트라 동료로 만나 서로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하게 된다. 〈제공 : 네이버 영화〉



장면은 바뀌어 1937년 프랑스 파리. 리도 쇼 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리니스트로 일하고 있는 안느는 악단에 새로 들어온 유태인 피아니스트 시몽과 사랑에 빠진다. 그 후 두 사람은 결혼하고 아들까지 낳지만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강제 수용소로 끌려가게 된다. 태어난 지 몇 개월 밖에 되지 않는 어린 아들을 품에 안고 강제 수용소로 가는 열차에 몸을 실은 시몽과 안느. 어린 아들이 수용소라는 척박한 상황에서 살아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시몽은 돈과 반지 그리고 전쟁이 끝날 때까지만 키워달라는 편지와 함께 아들을 낯선 기차역에 버린다. 그 다음날 아기는 지나가던 청년에게 발견되지만 청년은 돈과 반지만 가져가고 아기를 동네에서 멀리 떨어진 어떤 신부의 집 앞에 버리고 달아난다. 강제수용소로 끌려가는 동안 시몽과 안느는 헤어져 서로 생사를 모르는 상태가 된다.

한편 미국 뉴욕에 살고 있는 재즈 뮤지션 잭 글렌은 자신의 재즈 밴드로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는 수잔이라는 프랑스 여자와 결혼해 제이슨과 사라 두 남매를 두었다. 미국이 전쟁에 참여하자 군대의 밴드 마스터로 입대해 미국 병사들을 위해 위문공연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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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장교들 앞에서 [월광] 소나타를 연주하는 피아니스트 칼과 그의 멋진 연주 모습에 사랑을 느낀 에블린. 〈제공 : 네이버 영화〉



또다시 장면이 바뀌어 1938년 독일의 베를린. 피아니스트 칼 크레머는 히틀러를 비롯한 나치 당원과 그 가족들 앞에서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를 연주해 박수갈채를 받는다. 전쟁이 일어나자 칼은 독일군의 군악대장이 된다.

이 무렵 프랑스 파리의 한 클럽에서 에블린이라는 무명가수가 독일군을 위한 송년 파티에서 노래를 부른다. 이에 앞서 파리 거리에서 군악대를 지휘하는 칼의 멋진 모습에 반한 에블린은 칼이 파티에 참석하자 그에게 호감을 느낀다. 그 후 에블린은 독일군과 정을 통했다는 이유로 사람들의 멸시와 조롱을 받는다.

1945년, 드디어 전쟁이 끝났다. 살아서 독일 베를린으로 돌아온 칼은 전쟁 중에 자기 집이 폭격 당하고, 아들 퓌레가 죽었다는 것을 알고 오열한다. 수용소에서 남편을 잃은 안느는 아들을 찾기 위해 아기를 버렸던 기차역으로 가지만 아들 소식을 듣지 못한다. 그 후 안느는 옛 동료들과 함께 작은 악단을 꾸려 근근이 생계를 이어간다. 잭 글렌은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 재즈 뮤지션으로 활동하고, 전쟁 미망인이 된 타티아나는 볼쇼이 발레학교의 초급반 교사로 일하며 아들 세르게이에게 발레 교육을 시킨다. 한편 독일군의 아이를 낳은 에블린은 아기를 데리고 부모가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지만 마을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통에 견디지 못하고 도착 1주일 후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이렇게 해서 1936년부터 1945년까지의 이야기가 끝난다. 그다음은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1960년대에 펼쳐지는 2세들의 이야기인데, 자식 역을 부모 역할을 했던 배우가 맡아 눈길을 끈다.

엄마 없이 외갓집에서 성장한 에블린의 딸 에디트는 약혼자를 만나기 위해 파리행 열차에 몸을 싣는다. 에블린은 에디트 피아프를 너무나 좋아한 나머지 자신의 딸을 에디트라고 불렀다. 에디트가 탄 파리행 기차 안에는 알제리 전쟁에서 귀환하는 젊은 군인들이 타고 있는데, 그중 안느의 아들 로베르도 끼어 있다.

파리에 도착한 에디트는 약혼자가 역에 나와 있지 않은 것을 보고 당황한다. 옛날에 자기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그녀 역시 파리라는 낯선 도시에 그대로 버려진 것이다. 당장 먹고 살 길이 막막한 에디트는 무용학교의 청소부로 일한다. 그러다가 무용수를 거쳐 나중에 방송국 아나운서가 된다.

한편 안느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아들 로베르는 이런 사실을 까맣게 모른 채 파리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사회적으로는 성공했지만 가정생활은 원만하지 못했다. 아내는 그에게 이혼을 통보하고, 제대 후 가수가 된 아들은 아버지를 살갑게 대하지 않는다.

잭 글렌은 교통사고로 아내 수잔을 잃고, 엄마를 잃은 사라는 그 후 오빠 제이슨의 도움으로 가수로 크게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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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카라얀의 지휘 모습. 이 영화의 인물 중 ‘잭’ 의 모델이었던 카라얀은 실제 나치와의 협력 관계가 있어, 당시 큰 비난을 받았었다. 〈제공 : Wikipedia〉



전쟁 후 지휘자로 활동하며 뉴욕에서 연주회를 갖게 된 칼은 유태인들이 티켓을 모두 사버리고 연주회에 오지 않는 바람에 비평가 두 명만 앞에 놓고 브람스의 [교향곡 1번]을 연주한다. 젊었을 때 찍힌 히틀러와 악수하는 사진 때문에 친나치 인사로 낙인이 찍힌 것이다. 그 후 아내의 설득으로 기자회견을 열고, 자기가 히틀러 앞에서 연주한 것은 20살 때의 일이며, 자기도 전쟁으로 피해를 입었으니 모든 독일인을 게슈타포로 취급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 사이 타티아나의 아들 세르게이는 러시아 최고의 발레리노로 성장한다. 1964년, 볼쇼이 발레단이 유럽 순회공연을 하는데, 여기서 세르게이는 베토벤 [교향곡 7번]의 4악장에 맞추어 격렬하게 춤을 추어 관객들의 환호와 박수갈채를 받는다. 그 후 그는 러시아로 돌아가지 않고 서방세계로 망명한다.

그러던 어느 날, 로베르는 안느의 옛 동료들의 방문을 받는다. 그리고 이들로부터 자신의 어머니가 그토록 자기를 찾으려고 애썼다는 말을 듣는다. 하지만 지금은 이들도 안느의 행방을 모르는 상태. 그 후 백방으로 안느를 찾아 나선 로베르는 그녀가 기억상실증에 걸린 채 정신병원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로베르는 안느를 찾아가지만 이미 정신줄을 놓아버린 안느는 그를 알아보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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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뮤지션인 잭 글렌의 딸 사라와 로베르의 아들은 유니세프 자선공연에서 같이 노래를 부르게 된다. 〈제공 : 네이버 영화〉



이 무렵 미국에서 비틀즈 못지않게 인기를 누렸던 사라가 리도쇼 무대에 서기 위해 프랑스 파리로 온다. 이렇게 해서 주인공의 2세들이 프랑스 파리로 모이게 된다. 부모세대에는 각각 프랑스, 독일, 러시아, 미국으로 분산되었던 공간적 배경이 여기서 하나로 합쳐지는 것이다. 파리에서 사라는 유니세프와 적십자 관계자로부터 기아로 고통받는 어린이들을 위한 자선공연을 하자는 제의를 받는다. 아나운서인 에디트가 방송을 통해 동참을 호소하고, 칼이 지휘하는 오케스트라단이 연주하는 라벨의 [볼레로]에 맞추어 세르게이는 춤을 추고, 사라와 로베르의 아들은 노래를 부른다. 그리고 그 공연 장면을 전쟁의 고통을 경험한 부모 세대와 그 이후의 삶을 영위하는 자식 세대가 함께 본다. 비록 기억을 잃었지만 한때 그토록 아들을 찾아 헤매던 안느도 로베르와 함께 객석에 나란히 앉아 있다.

드디어 라벨의 [볼레로]에 맞추어 거대한 화합과 공존의 퍼포먼스가 펼쳐진다. [볼레로]는 1928년 파리에서 활동하던 러시아 무용가 이다 루빈시타인을 위해 작곡한 무용곡으로 음악에 대한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완전히 깨뜨린 곡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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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스 베자르에 안무된 이 무용 동작은 빨간 원탁 위에서 한명의 무용수가 볼레로의 크레셴도에 맞추어 점차 격렬한 몸짓을 보여준다. 〈제공 : 네이버 영화〉



그동안 서양 클래식 음악의 역사는 ‘발전’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고전주의 시대에 정착된 소나타 형식은 앞에서 제시된 주제나 악상들을 전개부에서 다양한 형태로 발전시켜나가다가 재현부에서 다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는 형태를 띠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작곡가의 능력은 하나의 단순한 동기나 선율을 얼마나 다양하고 변화무쌍하게, 또 얼마나 독창적으로 발전시키는가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클래식 음악 중에서 가장 인기 있는 베토벤의 [운명]을 보자. 전체적으로 무척 씩씩하고 화려하게 전개되는 [운명]의 1악장도 사실은 소위 ‘운명의 동기’라고 하는 네 개의 단순한 음형을 발전시킨 것에 불과하다. 특히 이 악장의 전개부를 보면, 베토벤이 이 단순한 동기를 가지고 얼마나 화려하게 악상을 발전시켜 나갔는지를 알 수 있다. 이런 발전의 법칙은 고전주의 이후 모든 음악을 구축하는 가장 기본적인 원리가 되었다. 그런데 라벨이 [볼레로]에서 이런 발전의 법칙을 파괴한 것이다.

라벨의 [볼레로]는 ‘발전’하지 않는다. 단지 ‘반복’될 뿐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멜로디를, 똑같은 리듬에 맞추어 18번이나 반복하는 음악. 과연 이것을 음악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실제로 [볼레로]가 초연되었을 때, 객석에 앉아 있던 한 여인이 “라벨이 드디어 미쳤군”이라고 외쳤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멜로디가 발전해 나가는 것에서 음악감상의 즐거움을 찾던 청중들에게 이 얼마나 황당한 반복의 테러리즘이란 말인가.

하지만 이 곡에 변화가 없는 것은 아니다. 라벨은 그 변화를 멜로디의 발전이 아니라 음색의 다양성에서 찾았다. [볼레로]는 같은 멜로디를 악기 편성을 바꾸어가며,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악기수를 점차적으로 늘려 음량을 확장해 나가는 방식으로 변화를 추구했다. 연주에 참여하는 악기에는 오케스트라에 있는 통상적인 악기 외에 스페인 춤곡인 볼레로의 관능적인 특징을 살릴 수 있는 색소폰이 필요하다. 먼저 플루트 독주로 시작해 클라리넷, 파곳, Eb 클라리넷, 오보에 다모레, 플루트와 트럼펫, 테너 색소폰, 소프라니노 색소폰과 소프라노 색소폰, 혼과 피콜로와 첼레스타, 오보에와 오보에 다모레와 잉글리쉬 혼 그리고 클라리넷, 그다음 트롬본, 목관 앙상블, 현악기, 현악기와 트럼펫, 오케스트라 전체로 끝을 맺는다. 처음에는 피아니시모로 조용하게 시작했다가 뒤로 갈수록 악기들이 합쳐지면서 소리가 점점 커져 마지막에는 오케스트라 전체가 엄청나게 큰소리로 끝을 맺는 것이다. 이렇게 멜로디가 반복되면서 음량이 확장되는 동안에도 스내어 드럼은 처음부터 끝까지 고집스럽게 같은 리듬을 반복한다.

[볼레로]는 ‘크레셴도의 음악’이다. 반복적인 리듬의 토대 위에 구현되는 악상의 점진적인 고양. 하지만 그 점진적인 고양에는 해결이 없다. 일반적인 음악에도 클라이맥스가 있다. 하지만 일단 클라이맥스에 도달하고 나면, 그다음에는 반드시 거기에서 내려와야 한다. 그 고양된 감정을 추슬러주어야 한다. 하지만 [볼레로]는 사람의 감정을 저 높은 곳까지 올려놓은 다음, 이를 수습하지 않는다. 마지막에 그냥 무책임하게 무너진다. 그러나 그것이 파국으로 여겨지지는 않는다. 그 속수무책의 무너짐에서 본능에 몸을 맡긴 후에 오는 통쾌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라벨이 추구했던 크레셴도의 법칙을 충실하게 재현한다. 처음에는 세르게이 혼자 춤을 추다가 음악이 진행될수록 무용수의 숫자가 하나씩 늘어간다. 그러다가 드디어 무용수 전체가 춤을 추고, 피날레의 파국적인 일성(一聲)과 함께 전원이 무대 위에 몸을 던진다. 그렇게 영화의 원제인 ‘한 사람과 또 다른 사람들’이 하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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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회숙 | 음악 칼럼니스트
이화여대 음대 및 서울대 음대 대학원 졸업
현재 서울시립교향악단 월간지 SPO 편집위원이며, 서울시향 ‘콘서트 미리 공부하기’를 비롯한 여러 클래식 강좌의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평화방송 FM 음악공감 ‘진회숙의 일요 스페셜’의 진행자이다. 저서로 <모나리자. 모차르트를 만나다> 외 여러 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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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2013.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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