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클래식 환타지아 2000 - 도시의 애환 그리고 랩소디 인 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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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386회 작성일 16-02-06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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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도시로의 여행을 꿈꾸어 본 적이 있는가. 그곳에서 낯선 거리를 걷다가 문득 낯선 카페에 들어가 낯선 사람과 마주 앉아 술잔을 기울이며 낯선 음악을 듣는 자기 모습을 상상을 해 본 적이 있는지. 나는 그때 흘러나오는 음악이 재즈이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재즈가 낯선 음악이기 때문이다. 나는 재즈를 들을 때마다 그것이 마치 낯선 사람에게 털어놓는 푸념과 넋두리 같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짐짓 초연한 표정으로 자기 얘기를 남의 얘기하듯 늘어놓는 것을 듣고 있노라면 나 스스로 거기에 편입될 수 없는 이방인이자 아웃사이더라는 느낌을 강하게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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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리스트
No.아티스트 & 연주 
1조지 거슈인, [랩소디 인 블루] / 제임스 레바인,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음악 재생
2레스피기, [로마의 소나무] 1악장, Pines of the Villa Borghese / 로린 마젤,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음악 재생
3레스피기, [로마의 소나무] 2악장, Pines Near a Catacomb음악 재생
4레스피기, [로마의 소나무] 3악장, Pines of the Janiculum음악 재생
5레스피기, [로마의 소나무] 4악장, Pines of the Appian Way음악 재생

: 1분 미리듣기 / 음원제공 : 유니버설 뮤직 / 앨범 정보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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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타지아 2000] 영화 포스터영화 정보 보러가기


나는 낯선 도시가 주는 이런 낯섦과 소외감이 좋다. 그 낯섦은 막연한 동경과 기대의 또 다른 이름이다. 많은 사람들이 정든 고향을 버리고 낯선 도시로 몰려오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 아닐까. 도시는 역동적이고, 화려하고, 변화무쌍하다. 도시는 가능성과 기회와 모험의 땅이다. 그래서 한번 도시로 들어온 사람은 쉽게 그 매력적인 곳을 떠나지 못한다.

낯선 곳을 찾은 그들에게 어찌 한숨과 눈물이 없겠는가. 그래서 그들은 노래한다. 이 이방(異邦)의 거리에서 겪은 애환을, 하지만 그다지 심각하지 않은 방식으로. 그것이 바로 재즈다. 재즈는 정서적으로나 공간적으로 주류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의 애환을 지극히 도시적인 감각으로 풀어낸 음악이다.

조지 거슈인의 재즈 협주곡 [랩소디 인 블루]를 듣고 있으면 앞에서 얘기한 도시의 여러 얼굴들이 떠오른다. 미래에 대한 막연한 동경,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 사는 것의 고단함, 반복되는 일상의 리듬과 삶의 역동성 그리고 그에 대한 가볍고 유머러스한 터치. 이 모든 것이 [랩소디 인 블루]라는 로맨틱한 제목의 재즈곡에 담겨있다.

1940년, 지휘자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와 함께 클래식 애니메이션 [환타지아]를 세상에 내놓아 좋은 반응을 얻었던 디즈니 사가 지난 2000년 그 후속편이라고 할 수 있는 [환타지아 2000]을 또 다시 내놓았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 조지 거슈인의 [랩소디 인 블루]가 들어있다. 월트 디즈니와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가 처음 [환타지아]를 계획했을 때에는 이것을 일종의 시리즈물로 계속해서 만들 작정이었다. 하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아 후속 작업을 하지 못한 채 두 사람 모두 세상을 떠났다. 그렇게 60년이 흘렀다. 그러다가 지난 2000년, 월트 디즈니 사는 두 사람이 생전에 이루지 못한 꿈을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바로 새로운 환타지아 즉, [환타지아 2000]이다. [환타지아 2000]에서는 세계적인 지휘자 제임스 레바인이 이끄는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음악을 맡았다. 스티브 마틴, 이작 펄만, 제임스 레바인을 비롯한 유명인들이 해설자로 등장하는 것도 오리지널 판과 다른 점이다. 그림은 20세기 브로드웨이 유명인사들을 모두 그린 것으로 알려진 삽화가 알 헤츠벨드가 맡았다고 하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환타지아 2000]에 들어있는 영상 중에서 [랩소디 인 블루]가 가장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을 보면서 청각언어인 음악을 가장 적절한 시각언어로 풀어낸 제작진의 창의력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음악적인 측면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내용적인 측면에서도 이 이상 더 어울리는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이디어가 탁월한 애니메이션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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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타지아 2000]에서 [랩소디 인 블루]는 대도시에 사는 4명의 인물을 등장시켜 힘든 하루하루 일상 속에서도 꿈을 가지고 살아가는 모습을 음악과 절묘하게 그려내고 있다.


[환타지아 2000]에 나오는 [랩소디 인 블루]의 공간적 배경은 미국의 뉴욕이다. 하지만 꼭 뉴욕이 아니라도 좋다. 그냥 도시이기만 하면 된다. 도시는 많은 사람들의 꿈과 희망이 집결되는 곳이다. 비록 그곳에서 참담한 실패를 맛볼지라도 사람들은 누구나 청운의 꿈을 품고 도시로 몰려든다. 그리고 이 척박한 곳에서 언젠가는 내 인생에도 쨍하고 해 뜰 날이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이 애니메이션에는 우리가 도시에서 한번쯤은 보았음직한 몇 가지 유형의 사람들이 나온다. 그리고 어쩌면 그중에 [랩소디 인 블루]를 작곡한 조지 거슈인이 끼어 있을지도 모른다.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도시 노동자처럼 거슈인 역시 낯선 거리에서 음악가로서 화려한 성공을 꿈꾸었을까. 오늘날 거슈인은 미국을 대표하는, 가장 미국적인 작곡가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는 학교에서 정식으로 음악공부를 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15살 때까지 학교를 다닌 것이 학력의 전부였으며, 그때도 공식적인 음악교육을 받지는 못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그의 성공은 순전히 타고난 음악성과 예술적 재능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행운의 기회는 의외로 빨리 찾아왔다. 스물한 살 때 자신이 작곡한 뮤지컬 [신밧드]에 나오는 [스와니]라는 노래가 일대 히트를 치면서 엄청난 돈을 벌게 되었다. 그 후 그의 노래는 신선한 선율과 개성 있는 리듬으로 미국 팝 음악의 새로운 규범이 되었다. 그의 음악은 클래식 음악가들에게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유명한 클래식 성악가들이 자신의 음악회에서 퍼셀, 바르톡, 벨리니, 미요의 노래와 함께 그의 노래를 불렀다. 당대의 유명한 피아니스트인 버릴 루빈스타인은 “스타일과 음악의 진지함으로 볼 때 거슈인을 단순한 대중음악가로 보는 것은 옳지 않다. 그보다는 미국음악을 대표하는 위대한 인물 중 한 사람으로 보아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그의 평가는 1924년에 발표한 재즈 협주곡 [랩소디 인 블루]를 통해 확인되었다. 2월 12일, 뉴욕의 에올리안 홀에서 있었던 [랩소디 인 블루]의 초연에는 라흐마니노프, 하이펫츠, 크라이슬러, 엘만, 담로쉬, 스토코프스키, 스트라빈스키와 같이 내로라하는 당대 최고의 클래식 음악가들이 참석했다. 초연은 대성공이었다. 당시 연주를 본 지휘자 담로쉬는 “거슈인은 재즈를 귀부인으로 만들었다.”는 말로 이 작품을 극찬했다. 그 후 이 작품은 클래식 작곡가들로 하여금 새로운 음악의 재료로서 재즈에 눈을 돌리도록 만들었으며, 그 결과 월튼, 코플랜드, 라벨 같은 작곡가들이 재즈 스타일의 작품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거슈인의 성공은 갑작스러운 행운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어려서부터 그는 대중음악 어법을 바탕으로 클래식 음악과 같은 예술성 높은 음악을 쓰려고 부단히 노력해 왔으며, [랩소디 인 블루]의 성공은 이런 부단한 노력의 결과였던 것이다. 이렇게 거슈인은 타고난 재능과 노력을 바탕으로 비주류에서 당당하게 주류의 반열에 올랐다. 도시는 청운의 꿈을 품고 올라온 사람들을 냉대하지만 때로는 이런 입지전적인 인물을 키워내기도 한다. 바로 이 때문에 우리는 도시에 대한 환상을 쉽게 버릴 수 없는지도 모른다.

애니메이션 속의 [랩소디 인 블루]는 아름다운 클라리넷 소리와 함께 시작한다. 거대한 빌딩의 숲 속에서 도시 노동자의 고달픈 하루가 펼쳐진다. 이 애니메이션에는 재즈 연주가를 꿈꾸는 도시 노동자 외에 몇 사람의 인물이 더 나온다. 하릴없이 카페에 앉아 커피만 마시고 있는 실업자, 보모의 손에 이끌려 이 학원 저 학원을 전전하며 혹사당하고 있는 어린 소녀, 사치스럽고 욕심 많은 아내에게 주눅 들어 있는 소심한 남편이 바로 그들인데, 굳이 뉴욕이 아니더라도 도시라면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인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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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타지아 2000]에 묘사된 인물들은 대도시 생활에 지쳐있는 현대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커피만 마시는 실업자(좌측), 부모의 욕심에 학원에 끌려가는 아이 모습(우측)


거리에 조간신문이 떨어져 있다. “구직, 하늘에 별 따기”라는 타이틀이 눈에 들어온다. 그 신문을 집어든 사람은 바로 실업자. 그는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시킨다. 카페의 유리창 너머로 여러 무리의 사람들이 바쁘게 지하철로 들어가고 나오는 것이 보인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바쁘게 움직이는데 일자리가 없는 그는 러시아워에 한가하게 커피나 마시고 있다.

그러다가 바로 분위기가 반전된다. 음악이 빠른 템포로 바뀌면서 장면이 노동자의 일터로 옮겨간다. 노동자는 거대한 빌딩을 건설하는 현장에서 일하고 있다. 거슈인의 음악은 힘찬 리듬을 규칙적으로 쏟아내고, 각종 건설장비들이 여기에 맞추어 역동적으로 움직인다. 그렇다. 도시는 이런 곳이다. 이렇게 생동감이 넘치는 곳이기에 우리는 그 매력을 쉽게 잊지 못한다.

호화 아파트로 보이는 듯한 건물에서 잘 차려입은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쏟아져 나온다. 그중에 어린 딸을 남다르게 키워보겠다는 야심으로 가득 찬 부모와, 소심한 남편을 종처럼 거느리고 다니는 귀부인도 있다. 어린아이는 보모의 손에 이끌려 무용, 성악, 수영, 미술, 체조, 테니스, 피아노 학원을 순례하고, 귀부인은 소심한 남편을 데리고 애완견 용품점에 들어가 마구 물건을 사들인다.

하지만 이렇게 일상에 짓눌려 사는 이들에게도 꿈은 있다. 노동자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재즈를 연주하는 꿈을 꾸고, 실업자는 일자리를 찾아 돈을 버는 꿈을 꾼다. 어린 소녀는 학원에서 해방되어 부모와 함께 즐겁게 노는 꿈을 꾸고, 소심한 남편은 아내에게서 해방되는 꿈을 꾼다. 음악이 재즈 특유의 애상적인 선율로 바뀔 때 이 사람들의 꿈이 차례로 화면에 펼쳐진다. 나는 [랩소디 인 블루] 중에서 개인적으로 이 부분을 가장 좋아한다. 애잔하고, 로맨틱한 재즈 특유의 애환이 느껴지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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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적인 일상에 짓눌려 살아도 꿈을 잃지 못하고 사는 우리 도시인들. 신나게 재즈 연주를 꿈꾸는 노동자의 모습


하지만 꿈은 꿈일 뿐 현실이 아니다. 꿈은 로맨틱하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갑자기 빠른 템포로 돌아온 음악이 찬물을 끼얹는 것처럼 그것이 현실이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노동자는 현실로 돌아와 다시 일터에서 일을 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작업도구와 드럼 채를 양 손에 들고 갈등한다. 꿈을 위해 생업을 포기할 것인가 아니면 생업을 위해 꿈을 포기할 것인가. 그러다가 마침내 결론을 내린다. 과감하게 작업도구를 던져버리고 신인 재즈 연주가를 뽑는 할렘 재즈로 달려간다. 한편 노동자가 버린 작업도구는 밑으로 미끄러져 내려가 마침 일자리를 찾아 길거리를 헤매던 실업자에게로 떨어진다. 실업자는 원하던 직장을 얻고, 노동자는 재즈 연주자의 꿈을 이룬다.

부모의 욕심에 시달리고 있는 어린 소녀에게도 반전의 기회가 찾아온다. 창가에서 자유로운 세상을 꿈꾸던 아이는 갖고 있던 공을 창밖으로 떨어뜨리고 그 공을 찾으러 큰 길로 뛰어들었다가 자동차에 치일 뻔한다. 부모가 혼비백산해서 아이를 구한다.

한편 소심한 남편은 낭비벽이 심한 아내가 사들인 물건을 한 아름 안고 거리를 걷고 있다. 그런데 공사장의 갈고리가 거들먹거리며 걷고 있는 남자의 아내를 낚아채서 하늘로 들어 올린다. 아내가 없어진 지상에서 남편은 비로소 자유를 느낀다. 그는 전봇대에 붙은 광고를 본다. “할렘 재즈 매주 금요일은 신인 등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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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심한 남편들은 금요일 저녁 재주 연주를 들으며 아름다운 여인들과 같이 춤추며 노래부르는 것을 꿈꾼다.


남자는 그곳으로 달려간다. 이곳에서 노동자는 드럼을 연주하고, 소심한 남편은 무용수들과 함께 춤을 춘다. 일거리를 얻은 실업자는 즐겁게 일을 하고, 아이는 부모와 함께 모처럼 즐거운 시간을 갖는다. 역시 해피엔딩이다. 이런 모든 애환에도 불구하고 도시는 여전히 아름다운 곳이며, 여전히 사람들을 꿈꾸게 하는 곳이라는 것을 암시하듯 피날레를 장식하는 도시의 네온사인이 화려하기만 하다. 음악 역시 네온사인처럼 찬란하게 끝이 난다. 그렇다면 거슈인의 [랩소디 인 블루]는 음악적으로 해피엔딩일까. 낯선 도시에서 꿈을 꾸어본 사람만이 알 일이다.

[환타지아 2000]에는 [랩소디 인 블루] 외에도 여러 음악이 나온다. 제일 먼저 소개하는 음악은 서양음악의 대표곡이라고 할 수 있는 베토벤의 교향곡 제5번 [운명]의 1악장이다. 일정한 줄거리가 없는 추상적인 영상이지만 현실에 존재하는 생명체와 사물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형상들이 화면에 등장한다. 색종이의 형태로 형상화된 나비, 태양을 배경으로 날아가는 새떼들, 우뚝 솟아나는 산들, 동굴에서 밖으로 날아오르는 박쥐 떼 등이 음악에 맞추어 적절한 형태로 화면에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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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운명 교향곡]에 맞춰 박쥐떼들이 춤추는 모습


이어서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이작 펄만이 나와 곡목 소개를 한다. 그가 소개하는 곡은 이탈리아의 작곡가 오토리노 레스피기의 [로마의 소나무]라는 곡이다. 곡의 제목만 듣고 아주 로맨틱한 상상을 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옛 로마제국에 대한 아련한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폐허와 그곳에 줄지어 서 있는 오래된 소나무를 상상할 것이다. 하지만 만약 이렇게 로마의 옛 거리에 소나무가 줄지어 서 있는 영상을 만들었다면 이것은 이미 환타지아가 아니다. 환타지아는 상식을 뛰어넘는 기발한 상상력이 존재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월트 디즈니의 예술가들은 이 곡을 가지고 전혀 엉뚱한 상상을 했다. 바로 하늘을 나는 고래이다.

이야기의 공간적 배경은 거대한 빙산이 솟아있는 북극. 하늘에 떠있는 태양마저 푸른빛으로 물들인 차가운 대기 그리고 그 밑에 펼쳐져있는 푸른 바다.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바다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환상적인 장면이 화면 가득 펼쳐진다. 바다 위로 고래 떼들이 뛰어오른다. 뛰어오르는 고래의 싱싱한 도약이 금빛 광채를 내는 관악기 소리와 기가 막히게 잘 어울린다. 이렇게 하나 둘씩 도약을 시도하던 고래들이 어느 틈엔가 하늘을 날기 시작한다. 하늘을 나는 고래 떼들의 모습이 마치 SF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마저 주는 영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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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피기의 [로마의 소나무] 테마는 하늘을 날게 된 아기 고래가 바닷속에 있는 고래떼들을 이끌고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어린이를 위한 애니메이션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캐릭터는 바로 동물이다. 그런데 동물 하면 생상스의 [동물의 사육제]를 빼놓을 수가 없다. 여기서 해설자는 인상적인 음악에 만화가의 섬세한 터치가 가해져서 인류의 오랜 궁금증이었던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풀어준다고 얘기한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라니? 조금 애매모호하다. 그러자 삽화가가 해설자에게 이런 말이 적힌 쪽지를 건네준다. “플라밍고에게 요요를 주면 어떻게 될까?” 이렇게 기발한 발상과 함께 생상스의 [동물의 사육제]의 첫 번째 곡이 연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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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상스의 [동물의 사육제] 음악에 맞춰 요요를 든 홍학이 날렵하게 춤을 추고 있다.


이어서 [환타지아]에 나왔던 뒤카의 [마법사의 제자]가 나온 다음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이 소개된다. 본래는 엄숙한 의식을 위해 작곡한 것이지만 디즈니 작가들은 여기에서 전혀 다른 상상을 했다. 도널드 덕이 주인공이 된 노아의 방주 이야기이다. 비가 쏟아지기 직전, 세상 모든 동물들이 암수로 짝을 지어 노아의 방주로 들어간다. 이때 [위풍당당 행진곡]의 느린 부분인 [영광과 희망의 나라에서]가 장엄하게 펼쳐진다. 그런데 도널드 덕은 어쩌다가 여자 친구와 길이 엇갈리게 되었다. 둘이 모두 방주에 올랐으나 각자는 서로의 짝이 방주에 타지 못했다고 슬퍼한다. 그러다가 마침내 둘이 극적인 상봉을 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끝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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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 음악에 맞춰 방주에 오르던 도널드덕은 잃어버린 여자친구를 드디어 만나게 된다.


이어지는 곡은 스트라빈스키의 [‘불새’ 모음곡]이다.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은 오리지널 환타지아에서도 나왔었다. [봄의 제전]을 가지고 우주와 생명의 탄생에 대해 얘기했는데, 여기서도 비슷한 콘셉트로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을 사용했다. 이것은 삶과 죽음, 부활이 있는 신비한 이야기이다. 제일 먼저 애잔한 멜로디를 배경으로 눈 덮인 산속을 혼자 헤매는 사슴이 나온다. 동굴 속에 떨어진 물방울 속에서 봄의 요정이 탄생한다. 봄이 요정은 커다란 날개를 펴고 숲 속을 날아다는데, 요정이 지나는 곳마다 겨울에서 봄으로 바뀐다. 그러다가 거대한 불길이 숲을 삼켜 다시 숲이 죽어버리지만 황폐하게 변해버린 숲을 바라보며 눈물짓는 요정의 눈물이 다시 마른 땅에서 생명을 피어나게 한다는 줄거리이다. 자연의 드라마틱한 변신이 놀라운 아주 신비로운 애니메이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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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라빈스키의 [불새] 테마는 자연이 요정의 모습으로 의인화되어 등장하여 잿더미로 변해버린 숲속에 다시 생명의 기운을 불어 넣는다.


[환타지아 2000]에는 보너스 트랙도 들어있다. 서양악기의 역사를 금관악기, 목관악기, 현악기, 타악기로 나누어서 설명한 애니메이션인데,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이 보아도 너무나 유익한 영상물이다. 지루하게 생각하기 쉬운 악기의 역사를 이렇게 재미있는 영상과 음악으로 풀어낼 수 있다니. 역시 디즈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클래식 애니메이션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작이라 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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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회숙 | 음악 칼럼니스트
이화여대 음대 및 서울대 음대 대학원 졸업
현재 서울시립교향악단 월간지 SPO 편집위원이며, 서울시향 ‘콘서트 미리 공부하기’를 비롯한 여러 클래식 강좌의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평화방송 FM 음악공감 ‘진회숙의 일요 스페셜’의 진행자이다. 저서로 <모나리자. 모차르트를 만나다> 외 여러 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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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발행2013.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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