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클래식 마지막 4중주 - 음악, 삶을 연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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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42회 작성일 16-02-06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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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7년, 알반 베르크 4중주단의 고별 연주회에 간 적이 있었다. 알반 베르크 4중주단은 지난 1971년, 빈 콘체르트 하우스에서 데뷔 연주를 가진 이래 36년 동안 전 세계를 누비며 세계 최정상급 현악 4중주단으로서 눈부신 활동을 벌여왔다. 2005년 세상을 떠난 비올라 주자인 토마스 카쿠스카를 대신해 그의 제자 이자벨 카리지우스를 영입해 활동을 계속해 오다 2007년 세계 여러 도시를 순회하며 고별 연주회를 가진 후 영원히 무대를 떠났다. 그리하여 알반 베르크 4중주단은 이제 전설로만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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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리스트
No.베토벤 현악 사중주 14번 / 브렌타노 현악 사중주단(Brentano String Quartet) 
11악장 – Adagio Ma Non Troppo E Molto Espressivo음악 재생
22악장 – Allegro Molto Vivace음악 재생
33악장 – Allegro Moderato음악 재생
44악장 – Andante Ma Non Troppo E Molto Cantabile음악 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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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4중주]는 25년간 함께 해온 단원들간의 인간적인 고뇌를 다룬 영화이다.영화 정보 보러가기


알반 베르크 4중주단의 실제 연주를 들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고별 연주회가 열린 예술의 전당 콘서트 홀은 알반 베르크 4중주단의 마지막 연주를 보러 온 관객들로 붐볐다. 이날 레퍼토리는 하이든의 [현악 4중주 27번]과, 작곡가 볼프강 림이 세상을 떠난 토마스 카쿠스카를 추모하기 위해 작곡한 [무덤] 그리고 베토벤의 [현악 4중주 13번]이었다. 6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그날의 연주가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특히 베토벤 현악4중주 13번 [카바티나]의 흐느끼는 듯한 울림은 연주회가 끝난 후에도 오래도록 가슴에 남아 있었다.

영화 [마지막 4중주]를 보면서 알반 베르크 4중주단의 고별연주회가 떠올랐다. 알반 베르크 4중주단은 [베토벤의 현악4중주 13번]을, 영화 속의 푸가 4중주단은 베토벤의 [현악 4중주 14번]을 연주했는데, 이 곡들은 모두 베토벤의 ‘후기 4중주곡’으로 분류되는 것이다. 베토벤은 모두 16곡의 현악 4중주를 남겼는데, 1824년부터 1826년까지 작곡한 12번부터 16번까지의 다섯 곡과 [대푸가]를 합쳐서 흔히 ‘후기 현악 4중주’라고 부른다. 영화의 원제인 [A late quartet]도 실은 ‘마지막 4중주’가 아니라 ‘후기 4중주곡’이라는 의미이다.

베토벤의 작품 중에서 ‘후기 현악 4중주’는 매우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1824년, [합창] 교향곡을 발표한 후 베토벤은 더 이상 교향곡과 같은 대편성의 곡을 쓰지 않았다. 대신 보다 내밀하고 개인적인 양식인 현악 4중주에 귀의했다. 건강이 극도로 악화되어 자주 병마에 시달리면서도 현악 4중주만은 포기하지 않았다. 꺼져가는 생명을 부여잡고 마지막까지 현악 4중주에 매달렸다. 만약 베토벤이 오래 살았다면 이후의 작품은 모두 현악 4중주였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까지 있을 정도이다.

예술가의 말년의 작품은 내밀한 자기 고백인 경우가 많다. 베토벤의 후기 현악 4중주도 그렇다. 여기에는 베토벤 자신의 자기성찰은 물론 세상을 향한 격렬한 분노, 인간적인 흐느낌, 신성에 대한 갈망, 초월적인 체념, 억눌린 욕망의 분출, 자유분방한 인습 파괴의 욕구 같은 것들이 총망라되어 있다. 그렇게 베토벤은 후기 현악 4중주를 통해 자기 자신의 삶을 정리하고, 음악을 인간의 삶과 무관한 것으로 취급했던 고전주의 시대와도 결별을 고했다.

베토벤의 후기 현악 4중주는 선배 작곡가인 하이든이나 모차르트의 현악 4중주와 다르다.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현악 4중주에서 네 개의 악기가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베토벤의 후기 현악 4중주는 그렇지 않다. 때로는 조화를 이루기도 하지만, 때로는 서로 갈등하고 반목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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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가 현악 4중주단은 좌로부터 다니엘(제 1 바이올린), 로버트(제 2 바이올린), 피터(첼로), 줄리엣(비올라)로 구성되어 있다.


[마지막 4중주]의 푸가 현악 4중주단도 그랬다. 결성 이후 25년 동안 함께 활동해 왔지만, 그동안 갈등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푸가 현악 4중주단은 각각 제1 바이올린과 제2 바이올린을 맡는 바이올리니스트 다니엘과 로버트, 로버트의 아내인 비올리스트 줄리엣, 그리고 세 사람의 스승이자 팀의 리더인 첼리스트 피터로 구성되어 있다. 스승과 제자, 부부, 옛 연인, 친구 등 개인적으로도 가장 가까운 관계인 네 사람은 지난 25년간 세계 최정상의 실내악단으로 활발한 활동을 벌여왔다. 하지만 어느 날 위기가 찾아왔다. 나머지 단원들보다 30살이나 많은 팀의 리더 피터가 파킨슨병에 걸린 것이다.

피터는 팀원들에게 은퇴를 선언하고, 창단 25주년 기념 연주회를 자신의 고별 연주회로 하기로 한다. 그는 연주곡으로 난해하기로 이름난 베토벤의 [현악 4중주 14번]을 선택한다. 오랫동안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던 리더가 무너지자 그동안 ‘훌륭한 앙상블’이라는 공동의 목표에 가려 드러나지 않았던 단원들 간의 갈등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 갈등은 인간적인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다. 제2 바이올린 주자인 로버트는 이제는 더 이상 제2 바이올린만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제1 바이올린 주자인 다니엘과 갈등을 빚는다. 이 일로 두 사람 사이에 말다툼이 벌어지는데, 그 과정에서 그동안 제2 바이올린 주자로서 겪었던 로버트의 열등의식이 드러난다. 로버트의 아내 줄리엣은 본래 다니엘의 애인이었는데, 이 또한 로버트가 다니엘에 대해 지닌 열등의식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로버트는 다니엘에게 제1 바이올린 자리를 요구한다. 이때 줄리엣이 다니엘을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해서 그의 심기를 더욱 불편하게 한다. 실망한 로버트는 홧김에 매일 아침 조깅을 같이 하던 여자와 하룻밤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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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는 줄리엣에 대한 반감으로 조깅 파트너인 필라를 만난다.


한편 줄리엣과 로버트 부부의 딸에게 바이올린을 가르치고 있는 다니엘은 친구의 딸인 어린 제자와 사랑에 빠진다. 어느 날 딸의 집에 갔다가 다니엘이 딸과 동침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줄리엣은 딸을 질책하지만 딸은 그녀가 제대로 엄마 역할을 하지 않았다고 비난한다.

자신의 비난하는 딸의 말에 줄리엣은 큰 상처를 받는다. 피터가 파킨슨병에 걸리기 전까지 줄리엣은 비교적 행복한 삶을 살았다. 옛 애인이자 동료인 다니엘, 자기를 헌신적으로 사랑하는 남편 로버트, 아버지처럼 든든한 스승 피터와 함께 예술적으로 완벽한 앙상블을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녀는 믿었던 다니엘이 자기 딸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남편 로버트가 세속적인 욕망을 드러내고, 아버지 같은 피터가 육체적 정신적으로 퇴락하는 것을 보고 고통스러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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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철한 완벽주의자였던 다니엘은 로버트의 딸 알렉스에게 열정을 느끼게 된다.


한편 마흔 살이 넘어서 어린 제자와 사랑에 빠진 다니엘은 로버트에게 얻어 맞고, 피터에게 “부끄러운 줄 알아라”라는 말을 듣는다. 하지만 이런 비난에도 불구하고 그는 속수무책으로 열정적으로 사랑에 빠져든다. 그 전까지 그는 감정이 무딘 사람이었다. 제자에게는 베토벤의 음악을 이해하려면 그의 삶을 알아야 한다며 베토벤의 전기를 읽으라고 권하지만, 정작 자신은 작곡가의 인간적인 면보다는 악보에만 집착하는 원칙주의자였다. 그런데 제자로부터 버림받은 후 다른 사람이 되었다. 그동안 오로지 악보에 적힌 대로만 연주하던 그가 ‘인간적인 감정’에 눈을 뜨게 된 것이다. 이제 그는 베토벤이 생의 마지막에 속삭였던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게 되었다.

영화는 네 사람이 이런 모든 갈등을 극복하고 창단 25주년 기념 공연에서 베토벤의 [현악4중주 14번]을 연주하는 것으로 끝난다. 앞에서 멤버들 사이에 일어났던 모든 갈등은 변화무쌍한 베토벤의 [현악 4중주 14번]을 연주하기 위한 ‘인생 렛슨’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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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킨슨병을 앓게 된 피터를 포함한 4중주단은 마지막 공연으로 베토벤의 작품을 연주한다.


영화 속 현악 4중주단의 이름이 ‘푸가’라는 것이 의미심장하다. 푸가는 대위법을 바탕으로 만든 다성음악의 일종인데, 여기서 대위법이란 ‘서로 독립적인 두 개 이상의 선율’을 동시에 결합시키는 작곡 기법을 말한다. 바로크 시대까지 음악을 만드는 기본 법칙이 되었다가 고전시대로 들어와 다성음악이 사라지면서 대위법 역시 과거의 기법이 되고 말았다. 물론 고전시대 이후의 작곡가들도 대위법을 사용해 곡을 쓰기는 했다. 하지만 이것이 옛 양식으로의 회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현대식 밥상에 옛날식 메뉴를 살짝 가미해 색다른 맛을 내는 정도라고나 할까.

음악사를 살펴보면 대위법이 풍미하던 바로크 시대만큼 민주적인 발상으로 음악을 만들어낸 시대가 없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대위법에서는 모든 성부에 동등한 자격과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아마 이 시대의 연주자들은 요즘 연주자들보다 훨씬 음악을 연주하는 즐거움이 컸을 것이다. 요즘 음악에서는 주선율은 주로 소프라노나 제1 바이올린이 담당하고 나머지 파트들은 주선율을 받쳐주는 역할만 한다. 하지만 바로크 시대의 음악가들은 그렇지 않았다. 모든 파트의 음악가들이 동등한 자격으로 음악에 동참했으며, 그래서 음악을 하나의 온전한 음악으로 즐길 수 있었다. 악기들 사이에 계층적 차별,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이 없이 모든 요소들이 서로 대등하고 독립적인 가치를 갖고 움직였다.

현악 4중주단 ‘푸가’의 멤버들은 피터가 파킨슨병에 걸린 후, 오랫동안 참아왔던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제1 바이올린의 주제 선율을 받쳐주는 들러리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서로의 관계에 대위법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이 연주하는 [베토벤의 현악4중주 14번]의 1악장과 2악장이 대위법으로 작곡되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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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간 유지되던 서로의 관계는 피터의 병과 더불어 그동안 억눌러 있던 갈등이 드러나게 된다.


베토벤의 말년인 1826년에 쓰여진 이 곡은 현악 4중주로서는 특이하게 7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 악장을 쉬지 않고 연주하는데, 전곡의 연주 시간은 약 40분이다. 1악장은 느리고 자유로운 푸가, 2악장은 대위법적으로 쓰여진 론도이다. 베토벤의 푸가는 균형 잡힌 건축물 같은 바흐의 푸가와 다르다. 각 성부가 독립된 소리를 내지만 느낌은 훨씬 자유롭다. 대위법의 엄격한 규율에 갇힌 바흐의 푸가와 달리 느슨하고 자유분방하다. 마치 네 사람의 주자가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는 듯하다. 3악장은 길이가 11마디 밖에 안 되는 짧은 악장으로 4악장의 서주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4악장은 주제와 6개의 변주곡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주제와 변주 모두 부드럽고 화사한 느낌을 준다. 이렇게 전반부의 분위기는 대체로 심오하고, 경쾌하고, 온화하다.

하지만 5악장에 이르러 분위기가 변한다. 5악장은 매우 빠르게 연주하는 스케르초인데, 각 성부들이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를 나누다가 갑자기 서로 다투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다음 간주곡과 같은 역할을 하는 6악장을 거쳐 마지막 악장인 7악장으로 넘어가는데, 베토벤은 7악장 중에서 유일하게 마지막 악장만 소나타 형식으로 작곡했다. 소나타 형식에서는 모든 요소들이 하나의 주제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 악장에 이르면 전반부의 느슨한 평화가 깨진다. 중간 중간 네 악기가 한목소리를 내는 유니슨이 나오지만, 곧 언제 그랬냐는 듯 투쟁 모드로 들어가곤 한다. 같은 음을 내는 유니슨조차 어찌나 전투적인지 격렬한 불협화음의 전초전 같은 느낌마저 든다.

이렇게 베토벤의 [현악 4중주 14번]은 심오한 성찰에서 느슨한 평화를 거쳐 격렬한 투쟁으로 끝난다. 대위법이라는 민주주의로 시작해 다양성이 공존하는 변주곡을 거쳐 소나타 형식이라는 계급사회로 넘어간 것이다. 소나타 형식에서 음악의 각 요소들은 끊임없이 서로를 받쳐주고, 또 끊임없이 서로를 견제한다. 그 속에는 조화와 공존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갈등과 반목도 있다.

푸가 4중주단이 다시 뭉쳐 음악을 연주한다고 해서 이들 사이의 갈등이 완전히 해소되었다고 할 수 없다. 인간사가 다 그런 것이다. 세상에 완벽한 평등, 완벽한 화합은 없다. 불협화음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찾고,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할 뿐이다. 아마 베토벤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시종일관 변화무쌍하게 전개되는 [현악 4중주 14번]의 마지막 악장에서 그 뼈아픈 깨달음의 궤적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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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회숙 | 음악 칼럼니스트
이화여대 음대 및 서울대 음대 대학원 졸업
현재 서울시립교향악단 월간지 SPO 편집위원이며, 서울시향 ‘콘서트 미리 공부하기’를 비롯한 여러 클래식 강좌의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평화방송 FM 음악공감 ‘진회숙의 일요 스페셜’의 진행자이다. 저서로 <모나리자. 모차르트를 만나다> 외 여러 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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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영화





발행2013.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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