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클래식 가타카 - 운명을 이겨내고 꿈을 달성하는 한 인간의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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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519회 작성일 16-02-06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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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올더스 헉슬리가 『멋진 신세계』라는 소설을 발표했을 때, 사람들은 그를 무모한 공상가나 미치광이쯤으로 여겼다. 아무리 작품의 배경이 과학기술이 고도로 발달된 가상의 미래 세계라고 해도 그 내용이 당시 사람들의 상상력을 초월할 정도로 황당무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로부터 100년이 채 지나지 않은 지금, 헉슬리의 예언은 더 이상 무모한 공상이 아니게 되었다. 인류가 현재까지 이룩해놓은 놀라운 과학적 성과로 비추어볼 때,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는 어쩌면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가까운 미래에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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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리스트
No.아티스트 & 연주 
1슈베르트 [즉흥곡] Op.90 제3번 D.899 /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음악 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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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상의 미래 세계에서 인간은 모두 인공수정으로 태어난다. 정상적인 성관계를 통해 아이를 낳는 것을 이 세계에서는 아주 부도덕한 행위로 여긴다. 인간은 거대한 사회를 돌아가게 하는 하나의 부품으로 수정 단계에서부터 국가의 관리 감독을 받는다. 앞으로 해야 할 역할에 따라 알파, 베타, 감마, 델타, 엡실론의 다섯 계급으로 분류되는데, 알파는 사회 지도층에 속하는 엘리트, 베타는 행정 업무를 담당하는 중산층, 감마는 하류층 그리고 델타와 엡실론은 몇 가지 유전자 타입을 가지고 양산되는 단순노동 담당자들이다. 이렇게 수정 단계에서부터 계급이 정해진 인간은 태아 상태에서부터 자신의 계급에 맞는 생각과 능력을 갖도록 철저히 세뇌교육을 받는다.

1997년에 만들어진 앤드류 니콜 감독의 [가타카]는 여러 가지 면에서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연상시킨다. 유전자를 인간이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는 [가타카] 속 세상에서 인간은 두 개의 계급으로 분류된다. 인공적으로 출생한 인간과 자연적으로 출생한 인간. 전자는 ‘적격자’, 후자는 ‘부적격자’로 불린다. 선천적인 유전자로 한 인간의 운명이 결정되고, 유전자에 따라 적격자와 부적격자로 구분되는 세상. 이것이 [가타카] 속 미래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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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적 출생에 의해 태어난 ‘부적격자’인 빈센트



주인공 빈센트는 자연적으로 출생한 인간이다. 이 사회에서는 인간의 유전자를 분석해 그 사람의 예상 수명과 미래의 질병, 성격 등을 미리 알아내어 이에 맞는 사회적 지위를 부여하는 시스템이 발달되어 있다. 유전자 조작없이 부모의 자연임신으로 태어난 빈센트는 선천적으로 심장이 약하고, 근시가 될 확률과 정신질환을 앓을 확률이 높으며, 30살까지 밖에 살지 못한다는 판정을 받는다. 이런 이유로 그는 시스템 내에서 부적격자로 분류된다. 그 후 빈센트의 부모는 자연임신이 아닌 인공수정으로 열성인자를 제거하고 우성인자만을 가진 동생 안톤을 낳는다. 부적격자로 태어난 빈센트는 적격자로 태어난 동생 안톤보다 모든 면에서 뒤떨어진다. 빈센트는 동생에 대해 심한 열등감을 갖고 성장한다.

빈센트의 꿈은 우주비행사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부적격자로 판정 받은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우주항공 회사인 가타카에 청소부로 취직해 매일같이 우주를 향해 출발하는 우주선을 동경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것뿐이다.

그런데 그러던 그에게 어느 날 기회가 찾아왔다. 다른 사람의 신분으로 살 수 있도록 해 주는 브로커를 만난 것이다. 브로커는 그에게 가타카에 적격 판정을 받을 수 있는 유전적 조건을 가진 제롬 모로우를 소개해 준다. 제롬은 본래 수영선수로 활동했는데,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되는 장애를 얻어 지금은 휠체어가 아니면 움직일 수 없는 상태로 살고 있다. 이런 제롬의 도움을 받아 빈센트는 철저하게 제롬 모로우로 살아간다. 제롬에게서 그의 혈액, 지문, 머리카락, 소변 등을 정기적으로 제공받아 가타카의 신분확인 과정에 사용하고, 자신의 신체 조직은 소각시설에 넣어 태워버린다. 이렇게 철저하게 신분을 속이고 가타카의 일원이 된 그는 드디어 토성의 위성 타이탄으로 가기 위한 훈련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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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롬 모로우는 빈센트가 ‘제롬’으로 살 수 있도록 혈액, 소변 등을 정기적으로 제공한다.



하지만 우주비행을 일주일 앞둔 날, 문제가 생긴다. 사무실에서 감독관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터진 것이다. 곧 살인범을 찾는 수사가 시작되고, 가타카의 직원들은 모두 다시 신체검사를 받게 된다. 다행히 빈센트는 제롬에게 받은 혈액과 소변으로 무사히 검사를 통과한다. 하지만 수사과장이 복도에서 빈센트의 속눈썹을 발견하면서 빈센트는 신분이 노출될 위험에 처하게 된다. 속눈썹의 유전자를 분석한 수사관은 그 속눈썹의 주인이 빈센트라는 이름의 부적격자라는 사실을 알아낸다. 빈센트는 몇 년 전에 가타카의 청소부로 일하다가 퇴사한 인물이다. 모니터에 빈센트의 얼굴과 이름이 뜨는 순간 수사관은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수사관은 빈센트의 동생 안톤으로 그는 모니터 속의 인물이 자기 형이라는 사실을 곧바로 알아차린다. 하지만 그는 빈센트가 제롬 모로우라는 이름으로 가타카 직원으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지 못한다.

안톤은 범인이 빈센트일 것이라고 확신하고 수사망을 좁혀나간다. 빈센트는 출발 이틀 전에 가타카의 여직원 아이린과 파티에 갔다가 불심검문에 걸리게 되자 경찰을 때리고 도망을 친다. 그다음 날, 안톤은 제롬과 빈센트가 살고 있는 집을 찾아간다. 그런데 그때 살인범을 잡았다는 연락을 받는다. 이렇게 해서 빈센트는 살인범의 누명을 벗고, 안톤은 세월이 너무 흘러 자기를 알아보지 못하는 빈센트에게 자기가 그의 동생임을 밝힌다.

드디어 우주선이 출발하는 날, 빈센트는 가타카의 우주선 탑승구 앞에서 연구원으로부터 마지막 신체검사를 받는다. 빈센트는 이를 위해 제롬의 혈액을 준비해 간다. 그런데 갑자기 검사 방법이 혈액에서 소변으로 바뀌고, 제롬의 소변을 준비하지 못한 빈센트는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연구원에게 자신의 소변을 건넨다. 그의 소변을 판정기에 넣자 모니터에 ‘부적격자’라는 글자가 뜬다. 그 순간 빈센트는 모든 것을 내려놓는다. 그런데 바로 그때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검사를 맡은 연구원은 자기 아들이 빈센트의 팬이라면서 화면은 ‘제롬 모로우, 적격자’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이렇게 해서 빈센트는 평생의 소원이던 우주비행의 꿈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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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는 제롬의 도움으로 가타카에 입사하게 되고, 같이 근무하는 아이린과 사랑에 빠진다.



[가타카]에서는 멜로디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슈베르트의 [즉흥곡] 작품 90의 3번이 나온다. 빈센트가 직장 동료인 아이린과 함께 참석한 파티에서 피아니스트가 연주하는 곡이다. 흔히 즉흥곡이라고 하면 바로 그 자리에서 즉흥적으로 작곡한 곡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즉흥곡은 낭만주의 시대에 탄생한 장르로 소나타보다 형식적으로 자유로우며, 길이가 짧은 곡을 의미한다. 낭만주의 시대에 들어와 증폭된 표현의 독창성과 자유로운 상상력은 그전까지 내려오던 작곡의 규율과 법칙으로부터 작곡가들을 해방시켰다. 그 결과 짧은 곡을 여러 개 모아 놓은 모음곡이나 즉흥곡, 환상곡 같은 즉각적이고 단편적인 양식들이 등장했다. 여러 개의 악장으로 이루어진 소나타, 교향곡, 협주곡과 달리 이런 양식의 곡들은 연주시간이 짧고, 내용이 자유롭다. 이렇게 작곡가의 상상력이 자유롭게 발휘된 짧은 곡들은 듣는 사람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 슈베르트의 즉흥곡도 그런 곡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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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슈베르트 초상화.



슈베르트는 평생 600여 곡의 예술가곡을 작곡한 ‘가곡의 왕’이다. 물론 그가 가곡만 작곡한 것은 아니다. 교향곡, 실내악, 피아노 독주곡 등 악기를 위한 곡도 많이 작곡했다. 하지만 그의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이상(理想)은 ‘노래’이다. 슈베르트는 악기를 가지고도 노래를 한다. 세상의 모든 음악이 본질적으로 노래일진대 슈베르트는 그중에서도 가장 노래를 잘 부르는 작곡가라고 할 수 있다.

악기의 특성에 따라 노래가 잘 되는 악기가 있고, 그렇지 못한 악기가 있다. 인간의 목소리는 호흡이 허락하는 한 얼마든지 레가토(부드럽게 이어서 연주하는 것)가 가능한 악기이다. 이 점은 관악기도 마찬가지이다. 한편 바이올린과 같은 현악기는 호흡의 제약도 받지 않는 완전히 자유로운 레가토 악기이다. 현악기로는 얼마든지 길게 레가토를 할 수 있다.

하지만 피아노는 그렇지 못하다. 피아노는 해머로 줄을 때려서 소리를 내는 일종의 타악기이다. 레가토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악기라는 말이다. 이런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소리를 지속시켜주는 페달이 발명되었지만, 그 지속력이 인간의 목소리나 관악기, 현악기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원천적으로 레가토가 불가능한 악기 피아노. 그런데 슈베르트는 피아노 속에서 최대한도로 레가토를 끌어낸다. 멜로디 라인을 유연하게, 프레이즈의 마지막 음까지 음과 음 사이를 부드럽게 이어가며 노래 부르도록 한다. 영화에 나오는 슈베르트의 즉흥곡 3번도 그런 곡 중 하나이다. 슈베르트는 작품 90번에 모두 네 개의 즉흥곡을 작곡했는데, 그중에서도 3번이 가장 노래에 가깝다. 처음부터 셋잇단음표로 쏜살같이 내달리는 2번이나, 하강하는 16분 음표가 불꽃처럼 펼쳐지는 4번과 달리 3번은 처음부터 끝까지 낮은 목소리로 부드럽게 노래한다. 비록 피아노로 연주하지만 멜로디를 인간의 목소리로 불러도 전혀 손색이 없다. 오른손은 멜로디를, 왼손은 반주를 연주하는데, 그 아름답고 명상적인 멜로디를 듣고 있으면 마음 속 상처가 치유되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런데 영화 속에 나오는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자세히 들어보면 음악이 평소에 익히 듣던 슈베르트의 즉흥곡 3번과 조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끔씩 오른손과 왼손에 원곡에는 없는 음들이 들어가는 것이 들린다. 왜 그럴까. 영화에서 이 곡을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는 정상적인 손가락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그의 손가락은 한쪽에 여섯 개씩 모두 열두 개. 연주가 끝난 후, 그는 환호하는 객석을 향해 자신의 장갑을 던진다. 장갑을 받은 아이린이 이것을 자기 손에 끼어 본다. 손가락 하나가 남는다. 슈베르트가 열 개의 손가락을 가진 사람을 염두에 두고 작곡한 곡을 열두 손가락의 피아니스트가 연주한다. 두 개의 남은 손가락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 이를 위해 영화음악을 담당한 마이클 니만은 슈베르트의 원곡에 새로운 음들을 추가했다. 오른손으로 연주하는 멜로디의 높은 음역에, 그리고 왼손 반주부에 가끔씩 새로운 장식음들이 들어가도록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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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는 정해진 운명을 이겨내고 결국 평생의 소원이던 우주비행의 꿈을 이룬다.



그런데 음악적으로 이것이 원곡보다 좋다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슈베르트가 창조해 놓은 세계는 더 이상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완벽한 세계이다. 그런데 여기에 불필요한 음을 첨가함으로써 오히려 원곡이 갖고 있는 명상적인 분위기가 퇴색된 느낌이다.

슈베르트의 곡을 연주하기에 열두 손가락의 피아니스트는 ‘부적격자’이다. 피아니스트가 아니더라도 그는 그 사회에서 ‘부적격자’로 분류되는 사람일 것이다. 영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빈센트처럼 자연임신으로 세상에 태어난 사람이 분명하다. 만약 인공수정으로 태어났다면 이런 장애 유발 유전자는 일찌감치 제거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그가 인공수정으로 태어난 사람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피아니스트로서의 삶을 예정하고, 다른 사람보다 유리한 조건을 갖기 위해 일부러 열두 손가락을 가진 사람으로 만들어졌는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계획적으로 주어진 여벌의 손가락. 피아니스트로서 이것은 축복일까 아니면 사족일까. 마이클 니먼이 편곡한 슈베르트의 즉흥곡은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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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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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타카(Gattaca, 1997)
    감독

    앤드류 니콜
    출연

    에단 호크(빈센트 프리맨), 우마 서먼(아이린 카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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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회숙 | 음악 칼럼니스트
이화여대 음대 및 서울대 음대 대학원 졸업
현재 서울시립교향악단 월간지 SPO 편집위원이며, 서울시향 ‘콘서트 미리 공부하기’를 비롯한 여러 클래식 강좌의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평화방송 FM 음악공감 ‘진회숙의 일요 스페셜’의 진행자이다. 저서로 <모나리자. 모차르트를 만나다> 외 여러 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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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Corbis





발행2013.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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