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클래식 바이올린 플레이어 - 거리악사를 고집하는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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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46회 작성일 16-02-06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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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몽은 진정한 음악을 추구하는 바이올리니스트이다. 음악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멋진 턱시도와 화려한 드레스를 차려 입고 연주회장에 들어서는 우매한 관객보다 자신의 음악을 진정으로 이해해주는 단 한명의 관객을 더 소중하게 생각한다. 그러기에 관객의 기호에 영합하는 것을 거부한다.

어느 날 자기와 동거 중인 아리안이 고급 레스토랑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본 아르몽은 바이올린을 맨 채로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간다. 아리안의 옆자리에 앉아 있던 남자가 그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무식해 보이는 입술을 들먹이며 지성인의 입맛에 맞는 음악을 연주해 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면서 그의 주머니에 지폐를 쑤셔 넣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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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리스트
No.아티스트 & 연주 
1바흐 [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파르티타] 제2번 중 [샤콘느] / 기돈 크레머음악 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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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몽은 음악으로 이들을 마음껏 비웃어주고 싶다. 그래서 바이올린을 꺼내들고 이자이의 [바이올린 소나타 작품 27]의 [제1악장]을 연주하기 시작한다. [집념(Obssesion)]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는 이 곡은 바흐가 작곡한 [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파르티타 제3번]의 제1곡인 [전주곡(Prelude)]의 첫 소절의 주제 선율을 환상적인 아르페지오로 펼쳐낸 곡이다.

이자이(Eugene Ysaye, 1858-1953)는 벨기에 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작곡가로 바이올린을 위한 곡을 많이 작곡했는데, 그중에서 바흐의 작품처럼 피아노 반주 없이 바이올린 혼자만 연주하는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가 널리 연주되고 있다.

처음에 그저 가벼운 마음으로 음악을 주문했던 사람들은 아르몽이 신기에 가까운 연주를 펼치자 짐짓 놀란 표정을 짓는다. 그들의 무교양적인 얼굴에 방어와 경외의 빛이 서린다. 그리고 모두들 조금 전과는 완전히 다른 얼굴이 되어 아르몽의 연주를 듣는다. 아르몽은 화려하기 그지없는 이자이의 선율로 레스토랑 안에 있는 사람들을 마음껏 조롱한다. 아르몽의 활 아래에서 이자이의 음들이 현란하게 춤을 춘다. 그러면서 이렇게 외친다. 너희들은 근본적으로 천박한 것들이야.

화려한 연주회장의 위선적인 관객에 지쳐있던 아르몽은 파리의 가장 어두운 곳, 하수구로 연결되는 지하통로에서 자신만의 무대를 찾는다. 사실 그의 지하세계로의 하강은 이전부터 예견되어 있었던 것이었다. 지상세계의 동거녀인 아리안이 보는 앞에서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제9번, ‘크로이처’]의 2악장을 연주할 때부터 그는 이 지하세계로의 하강을 꿈꾸고 있었다.

지하세계에는 푹신한 카펫이 깔린 연주회장의 청중들보다 몇 배나 더 그의 음악을 갈구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중에서 특히 지하철 매표원 리디아는 하루라도 그가 연주하는 바흐를 듣지 못하면 우울증에 빠질 정도로 열광적인 팬이다.

아르몽은 이곳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인종과 출신 배경 때문에 파리 사회의 주류에 속하지 못한 비주류 예술가들이 그들만의 독특한 음악을 가지고 서로 만난 것이다. 걸직한 목소리로 제 나라 민요를 부르는 집시 여인, 아코디언으로 고즈넉한 멜로디를 연주하고 있는 남자 악사. 이들이 연주하는 비주류 음악들이 지하도를 지나가는 주류들의 발길을 사로잡는다.

정전이 되어 지하도 안의 모든 물체가 암흑 속으로 사라져버린 어느 날, 아르몽이 어둠 속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기 시작한다. 처음에 낮고 어두운 빛깔로 느리게 시작된 단 하나의 소리가 서서히 또 다른 소리와 합쳐지면서 영감어린 영혼의 이중주로 변한다. 리디아는 어둠 속에서 서서히 아르몽에게 다가가 그의 품에 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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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세바스찬 바흐(1685-1750)



어느 날 아르몽은 첼로를 들고 지하 무대를 찾은 한 노악사와 함께 지하세계 사람들 모두가 동참하는 화려한 소리의 향연을 벌이게 된다. 이들이 연주한 곡은 바흐가 작곡한 [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파르티타 제2번]의 마지막 곡인 [샤콘느]이다. 본래 바이올린 혼자 연주하는 곡이지만 여기서는 먼저 첼로와 바이올린의 2중주로 시작을 해서 나중에 여러 종류의 악기가 합세하는 합주로 발전한다.

이렇게 거리의 악사로 변신해 자신만의 세계를 추구하던 아르몽에게 어느 날 불행이 닥친다. 거리의 불량배들이 그의 바이올린을 부수어 버린 것이다. 새 바이올린을 장만할 돈이 없었던 아르몽은 자신의 연주를 담은 테이프를 틀어 놓고 연주하는 흉내를 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이때 아르몽의 친구가 나타나 그에게 바이올린을 건네준다. 오래간만에 바이올린을 잡은 아르몽. 내친 김에 몇 소절 연주해 보지만 모든 것이 부질없다는 생각에 곧 연주를 멈춘다. 그런데 바로 그때 죽음을 눈앞에 둔 할아버지가 제발 음악을 들려달라고 애원한다. 영화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장면이다. 할아버지의 간청에 감동을 받은 아르몽은 드디어 바이올린을 들고 혼신의 힘을 기울여 영혼의 연주를 시작한다. 어두침침한 지하도에서 그가 연주한 곡은 바로 바흐의 [샤콘느].

지하통로를 타고 길게 울려 퍼지는 영혼의 바이올린 소리. 풍부한 잔향을 가진 [샤콘느] 소리는 때로는 격정적으로, 때로는 아련하게 지하세계 사람들의 영혼을 깨운다. 이때 화면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아르몽의 모습과, 그의 연주를 들으며 하나 둘씩 영혼의 잠을 깨는 사람들의 얼굴을 번갈아 비추어준다. 어떤 사람은 그의 연주에 맞추어 춤을 추고, 또 어떤 사람은 눈물을 흘린다. 음악을 들으며 이들 지하세계 사람들은 서로 손을 잡은 채 마지막 남은 빵을 건넨다. 소외된 사람들이 벌이는 최후의 만찬. 그리고 그 위를 흐르는 [샤콘느]의 영감어린 선율. 음악이 흐르는 동안 처음에 음악을 들려달라고 간청하던 그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남루한 옷자락을 잡은 채 서서히 숨을 거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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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몽의 바이올린 연주는 어두운 지하세계 사람들을 눈부신 지상세계로 안내하는 희망의 선율이었다.



[샤콘느]는 바흐가 작곡한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 제2번] 중에 나오는 곡이다. 바흐는 생전에 모두 여섯 편의 무반주 바이올린 곡을 작곡했다. 그중에 1, 3, 5번에는 소나타라는 이름이, 그리고 2, 4, 6번에는 파르티타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데, 하나의 번호에 대여섯 개의 곡을 모아 놓은 모음곡 형태로 되어 있다. 여기서 소개하는 [샤콘느]는 [파르티타 제2번]의 제5곡에 해당되는데,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곡 중에서 가장 유명해서 파르티타 2번을 얘기할 때 ‘[샤콘느]가 들어있는 바로 그 파르티타’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무반주곡이란 무엇인가? 말 그대로 반주가 없는 곡을 말한다. 여기서 반주란 피아노 반주를 말하는데, 클래식 음악에서는 피아노를 제외한 독주악기를 반주 없이 혼자 연주하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 이런 예외적인 상황 때문에 여기에 특별히 ‘무반주’라는 말이 따라붙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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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돈 크레머(Gidon Kremer). 1988년 사진



영화의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에서 실제 바이올린을 연주한 사람은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기돈 크레머이다. 음양(陰陽)이 절묘하게 교차하는 그의 탁월한 연주는 아름다운 영상과 더불어 이 장면에 예술적 깊이를 더해주는 아주 중요한 요소가 된다. 사실 바흐의 [샤콘느]는 아무나 연주할 수 있는 곡이 아니다. 적어도 기돈 크레머 정도의 기량과 연륜을 지닌 바이올리니스트가 아니면 이 곡이 지니고 있는 심오한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무반주 바이올린 독주곡의 꽃 [샤콘느]. 이것은 하나의 독백이다. 열정과 관조, 화려함과 단조로움, 음지와 양지, 지하와 지상…이 두 개의 상반된 세계가 절묘하게 결합되어 있는 그런 독백. 젊은 날의 열정을 상기시키듯 격정적으로 포효하다가 어느새 조용히 잦아들고, 투명하게 속삭이는 듯하다 다시 격렬하게 토로한다.

[바이올린 플레이어]는 마지막 장면 15분간을 모두 바흐의 [샤콘느]에 할애하고 있다. 음악이 연주되는 15분 동안 영화는 진지한 표정으로 음악을 경청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하나씩 영상으로 잡아내고 있다. 아르몽은 하수(下水) 위를 떠가는 작은 배위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한다. 하수로 천장을 어른어른 비추는 푸른빛과 그것을 배경으로 광명의 세계를 향해 서서히 나아가는 작은 배. 아르몽의 바이올린은 지하의 영혼을 구원하고, 자신을 버렸던 지상의 세계로 또다시 나아가기를 시도한다.

드디어 화면에 눈부신 지상의 세계가 펼쳐진다. 어두컴컴한 지하세계와는 대조를 이루는 찬란한 세계, 초록의 숲과 나무, 영롱하고 푸른 물빛. 이 영상을 배경으로 흐르는 [샤콘느] 소리와 함께 아르몽의 영혼도 승천한다.



나는 연주한다.

그러나 왜?

다른 무엇을 위해서도 존재하지 않는

나의 삶

나는 바이올린에 미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연주한다.

세속엔 가리고 싶은 추악한 단면이

너무나 많기에

그리고 나는 목소리가 아닌 음악으로 말하기에

나의 기억은 내게

속삭이듯 끊임없이 일깨우는

영감을 연주하라 한다.

어린 시절 들었던

뜨내기 바이올린 연주자가

버림받은 도회지의

지하철 통로에서 연주했던

그 멜로디를 연주하라 한다.

양지의 햇살 따스한

도시의 땅굴 밖 세계에선

모든 것이 현란하기만 하나

백열전구의 가녀린 눈꺼풀마저 내려앉는

이곳 지하 통로에선

누구나 가슴속에 촛불을 켠다.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부활을 꿈꾸며…

- 앙드레 오데의 소설 『무지칸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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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회숙 | 음악 칼럼니스트
이화여대 음대 및 서울대 음대 대학원 졸업
현재 서울시립교향악단 월간지 SPO 편집위원이며, 서울시향 ‘콘서트 미리 공부하기’를 비롯한 여러 클래식 강좌의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평화방송 FM 음악공감 ‘진회숙의 일요 스페셜’의 진행자이다. 저서로 <모나리자. 모차르트를 만나다> 외 여러 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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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버설 뮤직

http://www.universalmusi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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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Corbis, Wikipedia, 네이버 영화





발행2014.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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