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클래식 쉰들러 리스트 - 잔혹한 학살의 현장에서 무심히 흐르는 바흐의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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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367회 작성일 16-02-06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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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39년의 어느 날, 독일군 점령지인 폴란드의 크라코프에 독일인 사업가 오스카 쉰들러가 찾아온다. 폴란드계 유태인이 경영하는 그릇 공장을 인수하기 위해서다. 수용소에 들어온 유태인을 노동자로 쓰면 인건비 한 푼 안 들이고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약삭빠른 생각에 크라코프를 찾은 것이다. 쉰들러는 이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나치당에 가입하고, 여자, 술, 담배 등의 뇌물로 SS 요원들을 매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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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리스트
No.아티스트 & 연주 
1바흐 [영국 모음곡] 제3번 [Allemande] / 빌헬름 캠프(Wilhelm Kempff)음악 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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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들러는 유태인 회계사인 이작 슈텐의 도움을 받으며 일을 진행시킨다. 애초에 그가 이곳에 온 것은 돈을 벌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매일 같이 눈앞에서 벌어지는 유태인에 대한 독일군의 만행을 보면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 시작한다. 독일군 중에서 가장 악명 높은 사람은 아몬 괴트이다. 쉰들러는 필요에 의해서 아몬 괴트와 가까이 지내지만 그의 만행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하곤 한다.

아몬 괴트는 실존 인물로 1942년 6월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부근에 세워진 푸아쇼프 집단 수용소의 소장이었다. 신장 192cm, 체중 120kg의 거구였던 아몬 괴트는 수용소 소장으로 일하던 시절, 매일 아침 숙소의 발코니에서 밑에서 일하는 유태인을 총으로 쏘아 죽이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하곤 했다. 살인의 동기는 늘 단순한 것이었다.

식탁에 차려진 수프가 충분히 따뜻하지 않다는 이유로, 아니면 걸음을 늦게 걷거나 일하다가 잠시 동작을 멈추었다는 이유로 사람을 죽였다. 한 명이 탈출하면 같은 방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죽이거나 아니면 하나 걸러 하나씩, 혹은 다섯 명에 한 사람씩 죽이곤 했다. 이렇게 온갖 명분으로 직접 쏘아 죽인 유태인이 500명이 넘었는데, 죽인 다음 그 시체를 자신의 애완견 롤프와 랄프에게 먹도록 했다고 한다. 사람들은 이렇게 잔인한 그를 ‘크라코프의 살인자’라고 불렀다.

1943년 3월 13일, 아몬 괴트는 7백 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크라코프의 유태인 마을을 말끔히 청소해 버리는 거사를 감행했는데, 영화에는 독일군에 의해 게토가 쑥대밭이 되는 장면이 자세히 나온다. 학살은 아침부터 시작되었다. 유태인들은 독일군을 피해 온갖 기기묘묘한 장소에 몸을 숨기지만 독일군들은 이런 유태인들을 용케도 찾아내 무자비하게 죽인다. 사방에서 총소리가 들리고, 비명이 난무한다. 필사적으로 숨어있는 유태인들을 샅샅이 찾아내 하나씩 죽인다. 쉰들러는 말을 타고 언덕에 올라왔다가 이 야만적인 살육의 현장을 보고 경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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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인물인, 아몬 괴트(Amon Goeth)의 상반신 사진. 1945년 8월



결국 쉰들러는 유태인을 수용소로부터 구해내기로 결심한다. 그는 군수품 공장에서 일할 노동자가 필요하다는 명분으로 독일군 장교에게 뇌물을 주고, 독일 점령지인 크라코프에 있는 유태인들을 자신의 고향으로 빼돌린다. 이때 독일군에게 군수품 공장에 필요한 노동자들의 명단을 제시하는데, 이것이 바로 유명한 ‘쉰들러 리스트’이다.

쉰들러는 1,100명의 유태인을 죽음의 수용소에서 구해냈다. 그가 세운 군수품 공장은 7개월 동안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은 채 종전을 맞는다. 그 기간 동안 쉰들러는 독일군 장교를 매수하고, 유태인들을 먹여 살리느라 가진 재산을 모두 날린다.

1945년 전쟁이 끝나고, 유태인들은 자유의 몸이 된다. 반면에 나치당원이었던 쉰들러는 이제 연합군에게 체포당할지 모르는 위험에 처하게 된다. 유태인들과 이별하기 전, 그는 더 많은 유태인을 살려내지 못한 것에 대해 후회한다. 그러자 이작 슈텐은 “한 사람을 구하는 것이 곧 세계를 구하는 것이다”라는 탈무드의 격언으로 그를 위로한다. 영화는 지금은 백발의 노인이 된 쉰들러 리스트의 실제 인물들이 쉰들러의 무덤에 차례로 참배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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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들러 리스트를 작성하는 쉰들러(리암 니슨)와 이작 슈텐(벤 킹슬리)



[쉰들러 리스트]에서 가장 잔인한 장면은 독일군들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유태인들을 학살하는 장면이다. 빠르게 편집한 이 대목에서 음악이 나온다. 밖에서는 잔인한 살육이 벌어지고 있지만, 안에서는 한 독일군 장교가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다. 피아노 연주를 듣고 있는 독일군들이 서로 묻는다.

“무슨 음악인가? 바흐?”

“아냐. 모차르트야.”

여기서 서늘하고 무표정한 얼굴로 독일군 장교가 연주하는 곡은 바흐의 [영국 모음곡] 제2번의 [전주곡]이다. 바로크 시대의 모음곡은 여러 개의 춤곡을 모아놓은 형태를 띠고 있다. 바흐는 여러 개의 모음곡을 작곡했는데, 유명한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비롯해 [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파르티타] 건반악기를 위한 [영국 모음곡]과 [프랑스 모음곡]이 이에 속한다. 이들 모음곡은 독일, 프랑스, 스페인 등지에서 유래한 [알르망르], [쿠랑트], [사라방드], [지그]를 중심으로 구성된다. [알르망드]는 독일 춤곡, [쿠랑트]는 프랑스 춤곡, [사라방드]는 스페인 춤곡이다. 각각의 곡이 발생한 지역은 다르지만, 바흐 시대에는 이미 본래 가지고 있던 춤곡의 성격을 잃고, 독립된 기악곡 양식으로 발전해 있었다. 오늘날 이룩한 유럽연합의 꿈을 모음곡이라는 형식으로 일찌감치 이룬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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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 화면 속에 빨간 코드를 입은 소녀. 삶과 죽음의 현장 속에서 위태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영국 모음곡]에 왜 ‘영국’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애초의 필사본에 ‘영국인을 위해 작곡했다’라는 말이 쓰여 있었다는 설도 있고, ‘어느 고귀한 영국인을 위해 작곡했다’고 단정하는 사람도 있지만 모두 확인되지 않은 설에 불과할 뿐이다. [영국 모음곡]은 다른 곡과 구별되는 두 개의 중요한 특징을 갖고 있는데, 그중 하나는 6곡에 모두 [전주곡]이 있다는 것이다. [영국 모음곡]의 [전주곡]은 단순한 전주라고 할 수 없을 만큼 스케일이 크다. 너무 커서 나머지 곡들의 비중을 축소시키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또 한 가지 특징은 6곡 모두 [전주곡], [알르망드], [쿠랑트], [지그]를 기본으로 해서 [쿠랑트]와 [지그] 사이에 [부레]나 [가보트], [미뉴에트]가 들어가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건반악기를 위한 모음곡의 쌍벽을 이루는 [프랑스 모음곡]에는 [전주곡]이 없다. 각각 영국, 프랑스라는 이름이 붙어 있지만 이것이 국가적인 특성을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 굳이 차이점을 얘기하자면 [프랑스 모음곡]이 규모가 작고, 악상이 우아하고 섬세한 반면, [영국 모음곡]은 규모가 크고 악상이 힘 있고 당당하다는 것 정도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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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몬 괴트(랄프 파인즈, 좌측)와 쉰들러(리암 니슨, 우측)



영화에서 [영국 모음곡] 2번의 [전주곡]을 연주하는 독일군 장교의 얼굴에는 아무런 감정이 없다. 밖에서 벌어지는 광란의 살육 파티와 자기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듯 건조한 얼굴로 피아노를 친다. 이 음악에 맞추어 유태인들이 하나 둘씩 죽어나간다. 이들이 지르는 단말마의 비명은 처절하지만, 바흐의 음악은 무심하고 냉정하기만 하다. 서늘한 표정으로 피아노를 치고 있는 독일군이 마치 저승사자처럼 보인다. 세상에 사람의 마음을 이토록 황폐하게 만드는 장면이 또 있을까.

잔인한 학살의 배경음악으로 바흐의 음악만큼 적합한 것도 없다. 원한다면 얼마든지 객관성을 유지하며 무미건조하게 연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흐가 활동했던 바로크 시대는 객관의 시대였다. 낭만주의 시대처럼 자기감정에 깊이 빠져 흐느끼는 법이 없었다. 아무리 슬픈 음악이라도 그 슬픔에서부터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한 발짝 물러서서 바라보는 태도를 취했다.

하지만 감정 과잉의 낭만주의를 거치면서 인간들은 바로크 음악의 객관성에 답답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 음악에 깃들어 있는 위대한 예술성에 경의를 표하면서도 여기에 보다 ‘진한’ 색을 입히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람마다 입히고 싶은 색깔과 방식의 차이가 있었기 때문에 바로크 음악은 다양한 버전으로 재탄생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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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가 나오기 전인 16~18세기에 많이 사용된 건반악기, 하프시코드(harpsichord)



후대 음악가들이 새로운 창조의 원천으로 삼은 바로크 음악 중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음악은 역시 J. S. 바흐의 음악이었다. 바흐의 음악은 견고한 구성과 형식미를 자랑하는 장엄한 건축물과 같다. 마치 수학문제를 풀듯 치밀한 계산에 의해 음들을 구축해 나간다. 그의 음악은 그 자체의 객관적 성격으로 인해 무수한 주관이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두었다. 바흐는 자기 악보에 아무것도 지시하지 않았다. 그래서 후대 음악인들로 하여금 자유롭게 자기 작품을 해석하고 재창조할 수 있도록 했다. 바흐의 음악은 같은 곡이라도 연주자의 해석에 따라 따뜻한 느낌을 줄 수도 있고, 차가운 느낌을 줄 수도 있다.

[쉰들러 리스트]에 울려 퍼진 바흐 음악은 바로크 시대 본연의 차가운 객관성을 보여준다. 요즘은 바흐의 건반 음악을 피아노로 연주하지만 사실 본래 이 곡은 하프시코드를 위해 작곡한 것인데, 바로 이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프시코드는 피아노에 비해 표현의 다이내믹이 떨어지는 악기이다. 그래서 피아노 소리에 길들여진 우리 귀에 무미건조하게 들릴 수도 있다. 참으로 이 악기는 인간의 감정이 개입될 여지를 주지 않는다. 부드럽게 이어서 연주할 수도 없고, 피아노처럼 풍부한 잔향도 없다. 셈, 여림을 표현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 바로크 시대의 대표적인 건반악기로 한 시대를 풍미하던 하프시코드가 피아노에게 그 영광된 자리를 내줄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았을까.

영화에서 독일군 장교가 연주하는 [영국 모음곡] 2번의 [전주곡]은 하프시코드 특유의 객관적 성격을 보여준다. 일정한 음형의 연속과 반복으로 이루어진 음악. 바로 옆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잔인하게 학살을 당하는데, 바흐의 음악은 애절한 멜로디 하나 없이 형식과 구성의 논리로만 전개된다. 그 무심함이 처절한 비명보다 더 끔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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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회숙 | 음악 칼럼니스트
이화여대 음대 및 서울대 음대 대학원 졸업
현재 서울시립교향악단 월간지 SPO 편집위원이며, 서울시향 ‘콘서트 미리 공부하기’를 비롯한 여러 클래식 강좌의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평화방송 FM 음악공감 ‘진회숙의 일요 스페셜’의 진행자이다. 저서로 <모나리자. 모차르트를 만나다> 외 여러 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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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영화, Wikipedia





발행2014.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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