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클래식 한니발 - 잔혹한 살인과 격조 높은 바흐의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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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39회 작성일 16-02-06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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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한니발]은 [양들의 침묵]의 속편이다. [양들의 침묵]에서 “오랜 친구를 먹으러 간다”라며 유유히 사라졌던 한니발 렉터. 그는 숨겨놓은 막대한 돈으로 신분증을 위조해 완전히 새사람이 되는데 성공한다. 그렇게 다른 사람으로 변신한 후 유서 깊은 예술의 도시 이탈리아 플로렌스로 가서 도서관 관장이 된다. 뛰어난 사학자이자 심리학자, 외과의사, 법의학자이기도 한 그는 예술에 대해서도 놀라운 지식과 안목을 갖고 있다. 이렇게 높은 식견을 바탕으로 대중을 대상으로 예술 강좌를 하는데, 특히 그가 하는 강좌는 수준이 높기로 정평이 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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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리스트
No.아티스트 & 연주 
1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 중 [아리아] [제25변주] / 안드라스 쉬프(Andras Schiff)음악 재생

1분 미리듣기 / 유니버설 뮤직 / 앨범 정보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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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렉터의 영원한 뮤즈인 FBI 요원 클라리스 스털링은 상사나 동료들과 사사건건 부딪치면서 어느새 조직에 부담을 주는 존재가 되어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약 소굴을 소탕하기 위한 작전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아기를 안고 있는 마약조직의 여두목을 총으로 쏘아 죽이는데, 이 일로 스털링은 언론의 집중포화를 받는다. 무분별한 작전을 펼쳤으며, 무기를 먼저 사용했다는 것이 문제가 되면서 결국 스털링은 강등을 당한다.

그 후 심한 좌절감을 겪고 있던 스털링에게 한 남자가 접근한다. 바로 메이슨 버거라는 사람이다. 렉터의 환자였던 그는 렉터의 네 번째 희생자이자 유일한 생존자이기도 하다. 렉터 때문에 식인 개에게 얼굴을 물어 뜯겼는데, 간신히 목숨은 건졌지만 그 이후 흉측한 얼굴을 한 채 휠체어 신세를 지며 살아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호시탐탐 렉터에게 복수할 날만 노리고 있다.

메이슨의 무기는 돈이다. 부자인 그는 렉터가 있는 곳을 제보하는 사람에게 엄청난 액수의 보상금을 약속한다. 마침 파치라는 이탈리아 경찰이 우연히 이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자기가 알고 있는 도서관 관장이 메이슨이 찾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그에게 정보를 넘기려 한다. 하지만 렉터가 이를 사전에 눈치채고 그를 잔혹하게 살해한다. 렉터의 광기가 다시 시작된 것이다.

한편 메이슨은 스털링과 렉터의 접점을 이용해 그를 끌어낼 계획을 세운다. 렉터가 남긴 자료와 그의 고상한 취미, 성격을 근거로 렉터의 행동을 추리해내고, 자신의 정보망과 스털링의 행동 등을 유심히 지켜보며 기회를 엿본다. 이후 메이슨의 계략으로 렉터는 붙잡힌다. 애초의 계획은 멧돼지를 풀어 그를 물어뜯게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스털링이 나타나 렉터를 구해주는 바람에 이 계획은 실패로 돌아가고, 오히려 메이슨과 그의 부하들이 모두 죽는다.

이 과정에서 스털링은 총상을 입고 기절한다. 그런 스털링을 렉터 박사가 데리고 간다. 정신이 든 스털링은 자기가 직접 렉터를 체포할 생각으로 그의 팔에 수갑을 채우지만 렉터는 손목을 잘라 수갑을 뺀 후 달아난다. 영화는 한쪽 팔에 붕대를 감은 렉터가 비행기를 타고 가는 장면으로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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렉터 박사와 기절한 스텔링



흔히 살인마 하면 험악한 범죄형 얼굴에 거칠고 무식한 행동과 폭력적인 말투를 구사하는 사람을 떠올린다. 하지만 모든 살인마가 다 그런 것은 아니다. 그중에는 매우 지적이며, 세련된 매너와 교양을 갖춘 사람도 있다. 렉터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그는 지적으로 매우 수준이 높고, 무엇보다 문화예술을 너무나 사랑한다.

감옥에 있을 때, 그를 가장 괴롭힌 것은 열악한 환경이 아니었다. 예술을 마음껏 즐기지 못하는 것, 원하는 만큼 책을 읽지 못하는 것을 제일 못 견뎌했다. 그렇게 예술 향유와 독서가 제한된 생활을 그는 ‘억압받는 생활’이라고 여겼다.

그에게는 여러 가지 살인 동기가 있다. 그중에는 자신의 고상한 취미를 따라오지 못하는 사람, 형편없는 실력으로 예술을 모욕하는 사람도 포함되어 있다. 언젠가 그는 실력 없는 연주자가 오케스트라 전체의 연주를 망쳐버린 것을 본 적이 있다. 위대한 예술을 욕보인 그를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던 그는 그 연주자를 죽이고, 그 고기를 오케스트라 단원들에게 먹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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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예술을 향유하는 렉터의 방



렉터는 오페라도 좋아한다. 영화에는 야외극장에서 렉터가 오페라 공연을 보는 장면이 나온다. 오페라의 제목은 [신생(新生)]. 원래 있는 오페라가 아니라 이 영화를 위해서 새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 여기서 가수들이 부르는 노래는 단테의 시집 [신생]의 제3장에 나오는 소네트이다. [신생]은 단테가 평생 동안 사랑한 여인 베아트리체에 대한 사랑을 노래한 시집으로 [신곡]의 밑거름이 된 작품이다.

9년 만에 사랑하는 베아트리체를 다시 만나게 된 단테는 자신이 본 환상에 대해서 얘기하며 그에 대한 해석을 부탁한다. 그의 눈앞에 '사랑'이 나타난다. 그 '사랑'의 팔 안에 천에 둘러싸인 여인(베아트리체)이 잠을 자고 있다. '사랑'은 여인을 깨워 손에 들고 있던 단테의 심장을 먹인다. 그런 다음 갑자기 눈물을 흘리며 단테를 떠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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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 가브리엘 로세티, [축복받은 베아트리체], 1864-1870년, 660x864mm





(그녀를 생각함과 동시에

달콤한 잠이 나를 감싸 안았다)

나는 너의 주인이다

너의 심장을 보거라

나의 불타는 심장을…

너의 심장을…

(그녀는 몸을 파르르 떨며)

신의 손에서 심장을 받아

그것을 먹었다

그대는 눈물을 떨구며

그리고 사라지는 것이다

쓰라린 눈물방울 속에

굴절된 기쁨의 빛

이제는 안식 속에서

나의 심장을…

이제는 안식 속에서

나의 심장을 보아라.


렉터는 공연을 감명 깊게 보았다는 파치 부인 앞에서 단테의 시를 낭송한다.
아! 얼마나 교양 있고 고상한 신사인가.

렉터의 드높은 예술적 소양은 그가 좋아하는 음악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그가 좋아하는 음악은 바흐의 음악이다. 바흐의 음악 중에서도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좋아한다. [양들의 침묵]과 [한니발] 모두에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나온다. [양들의 침묵]에서는 철창 안에 갇혀 있던 렉터가 경찰을 죽이는 장면에서 이 음악이 쓰였다. 그는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들으며 은밀하게 살인을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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렉터와 스텔링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바로크 시대의 대표적인 건반악기인 하프시코드를 위해 작곡한 것이다. 하나의 주제와 30개의 변주곡으로 이루어진 대작인데, 하나의 주제를 서른 가지 방식으로 발전시킨 바흐의 놀라운 상상력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바흐는 이 곡을 드레스덴 주재 러시아 대사였던 카이제를링크 백작을 위해서 썼다. 백작에게는 일종의 지병이 있었다. 잠을 자지 못하는 병이었다. 밤마다 불면증에 시달리던 백작은 골드베르크라는 하프시코드 주자를 고용해 잠이 잘 오도록 옆방에서 하프시코드를 치도록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면증은 좀처럼 고쳐지지 않았다. 결국 백작은 바흐에게 자신의 병을 치료해줄 수 있는 음악을 써줄 것을 부탁했다. 그 부탁을 받고 바흐가 작곡한 것이 바로 [골드베르크 변주곡]이다. 백작은 이 곡을 매우 좋아했다고 한다. 밤마다 골드베르크에게 “나의 변주곡을 연주해 주게”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바흐가 살던 바로크 시대에는 아직 피아노라는 악기가 없었다. 당시의 건반 음악은 모두 하프시코드를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하프시코드는 피아노보다는 다이내믹한 표현력이 떨어지는 악기이다. 그 악기로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연주했으면 불면증이 오히려 더 악화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아니, 어쩌면 지루해서 오히려 잠이 더 잘 왔을지도 모른다.

요즘은 주로 피아노로 이 곡을 친다. 하프시코드로 치는 것과 피아노로 치는 것은 그 느낌이 완전히 다르다. 하프시코드에 비해 놀랄 만큼 표현력이 업그레이드된 피아노는 특유의 탱글거리는 음색과 명징한 울림, 다양한 셈-여림의 다이내믹, 부드러운 레가토와 톡톡 튀는 스타카토를 통해 담백한 바흐의 원곡에 발랄한 생명력을 불어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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렉터 역의 안소니 홉킨스



[양들의 침묵]과 [한니발]에서는 무미건조한 하프시코드 원곡이 아니라 아름다운 울림을 가진 피아노 버전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나온다. [양들의 침묵]에서 렉터는 지극히 아름다운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들으며 잔혹하게 사람을 죽인다. 어떻게 보면 렉터에게는 살인이 자신의 창조력을 발휘하는 하나의 예술행위인 지도 모른다. 그는 바흐의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며 섬세하게 손끝의 감각을 확인한다. 그리고는 아주 신속하고 잔인하게 두 사람을 해치운다. 이렇게 거사를 치른 후,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 다시 바흐의 음악에 심취한다. 피 묻은 손으로 가볍게 지휘까지 하면서 음악을 즐긴다. 살인이라는 퍼포먼스를 예술적으로 훌륭하게 마무리한 것을 축하하면서.

[한니발]에서는 첫 장면부터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나온다. 중간에도 같은 음악이 나오는데, [양들의 침묵]에서는 렉터가 이 곡을 감상하며 살인을 준비했지만, [한니발]에서는 렉터가 직접 피아노로 이 곡을 연주한다. 유서 깊은 문화예술의 도시 플로렌스에 있는 그의 저택은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예술작품이다. 집 안 곳곳이 격조 높은 예술품으로 장식되어 있다. 그곳에 놓여 있는 그랜드 피아노. 그 앞에 앉아서 렉터가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친다. 잔혹한 살인과 격조 높은 바흐의 음악. 그 극명한 콘트라스트가 묘하게 소름 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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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회숙 | 음악 칼럼니스트
이화여대 음대 및 서울대 음대 대학원 졸업
현재 서울시립교향악단 월간지 SPO 편집위원이며, 서울시향 ‘콘서트 미리 공부하기’를 비롯한 여러 클래식 강좌의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평화방송 FM 음악공감 ‘진회숙의 일요 스페셜’의 진행자이다. 저서로 <모나리자. 모차르트를 만나다> 외 여러 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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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원제공

유니버설 뮤직

http://www.universalmusi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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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Wikipedia





발행2014.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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