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클래식 그 남자는 거기 없었다 - 흑백 화면 위로 흐르는 베토벤 음악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댓글 0건 조회 450회 작성일 16-02-06 17:13

본문















14547464018649.png


캘리포니아의 한 한적한 마을에서 이발사로 일하고 있는 에드. 하지만 그는 한 번도 자신을 이발사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다만 이발소에 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이발소의 주인은 처남인 프랭크이다. 이탈리아 출신인 프랭크는 일을 하면서 끊임없이 말을 한다. 반면에 에드는 무서울 정도로 말수가 적다. 프랭크가 수다를 떠는 동안에도 무표정한 얼굴로 일만 한다.






14547464024387






음악리스트
No.아티스트 & 연주 
1베토벤, [비창 소나타] 2악장 / 윤디(Yundi)음악 재생
2베토벤, [열정 소나타] 2악장 / 윤디(Yundi)음악 재생
3베토벤, [월광 소나타] 1악장 / 다니엘 바렌보임음악 재생
4베토벤, [피아노 3중주 ‘대공] 3악장 / 양성원(첼로), 올리비에 샤를리에(바이올린), 엠마누엘 슈트로세(피아노)음악 재생

1분 미리듣기 / 음원제공: 유니버설 뮤직 / 앨범 정보 보러가기




에드의 아내 도리스는 백화점에서 경리일을 하고 있다. 그녀는 백화점 사장 빅 데이브와 불륜의 관계를 맺고 있다. 남편인 에드는 이 사실을 알고 있지만 짐짓 모르는 척한다. 인생에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고 살아가는 그에게는 아내의 불륜을 파헤쳐 그 죄를 응징하고자 하는 인간적인 에너지조차 남아 있지 않다. 그렇게 심신이 메마른 상태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에드는 무미건조한 삶에 한 줄기 빛을 비추어줄 놀라운 이야기를 듣는다. 이발소를 찾은 클라이튼 톨리버라는 손님으로부터 드라이 클리닝이라는 새로운 기계에 투자하면 떼돈을 벌 수 있다는 얘기를 들은 것이다. 톨리버는 에드에게 만 달러만 투자할 것을 권한다.

이 말에 귀가 솔깃해진 에드는 돈을 얻기 위해 아내의 정부 데이브에게 협박편지를 쓴다. 도리스와 불륜관계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만 달러만 내놓으면 사실을 눈감아주겠다는 편지이다. 편지를 받은 데이브는 불륜이 들통날까봐 전전긍긍한다. 명색이 백화점 사장이지만 사실 백화점의 진짜 물주는 그의 아내이다. 아내가 자신의 불륜 사실을 알게 되면 알몸으로 내쫓길 것을 두려워한 데이브는 편지를 보낸 사람이 에드라는 사실을 모르고 그에게 조언을 구한다. 이때 에드는 편지를 보낸 사람에게 돈을 주라고 충고한다. 데이브는 결국 에드에게 돈을 준다.





14547464041365





이발사 에드와 그의 아래 도리스



돈을 받은 에드는 톨리버에게 만 달러를 주고, 두 사람의 동업을 확인하는 서류를 작성한다. 그런데 이 무렵 톨리버도 빅 데이브에게 가서 만 달러를 꾸어달라고 한다. 그러자 데이브는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한다. 비슷한 시기에, 그것도 같은 만 달러를 두 사람으로부터 요구받은 것을 결코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이다. 데이브는 톨리버를 다그쳐 협박편지를 보낸 사람이 에드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분노와 배신감을 느낀 데이브는 에드를 불러 흥분한 끝에 그의 목을 조르는데, 이를 방어하다가 에드는 엉겁결에 데이브를 칼로 찔러 죽이고 만다.

데이브가 죽은 후, 도리스와 데이브의 불륜관계가 밝혀지면서 도리스가 범인으로 몰린다. 에드는 많은 수임료를 주고 새크라멘토에서 유능한 변호사를 데려와 재판에 임한다. 변호사는 사설탐정을 고용해 재판에서 이길 수 있는 중요한 정보를 얻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재판 첫날, 도리스가 돌연 감옥에서 자살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재판이 중단된다.





14547464051153





데이브의 죽음으로 범인으로 몰린 도리스



도리스가 죽은 지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에드는 친구 월터의 집을 찾아간다. 도리스가 범인으로 몰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에드는 월터의 집을 자주 찾았었다. 그의 딸 버디가 치는 피아노 연주에서 위안을 얻었기 때문이다. 버디가 피아노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확신한 에드는 재판이 끝나면, 자기가 버디의 매니저가 되어 그녀로 하여금 자신의 재능을 펼칠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생각했다. 첫 재판이 열리기 직전까지 오로지 그 생각에만 매달렸다.

아내가 죽은 후, 에드는 버디에게서, 아니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녀의 피아노 연주에서 새로운 희망을 본다. 그래서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유명한 피아노 선생에게 버디를 데려간다. 하지만 버디의 연주를 들은 선생은 의외의 반응을 보인다. 에드의 생각과는 달리 버디는 피아노에 재능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모범생처럼 치기는 하는데, 가슴으로 느끼는 연주는 하지 못한다고, 테크닉을 가르칠 수는 있지만, 감정을 느끼는 것까지는 가르칠 수 없다며 퇴짜를 놓는다.





14547464061456





피아노를 연주하는 버디



이 말에 에드는 적잖이 실망한다. 음악 전문가가 아닌 그는 버디가 피아노에 놀라운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녀의 피아노 연주가 무미건조한 자신의 삶에 한 줄기 빛처럼 위안을 주지 않았던가. 그러나 전문가와의 만남으로 이런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삶의 유일한 희망이 사라진 것이다.

그 후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던 버디와 에드는 교통사고를 당한다. 병원 침대에 누워 의식을 회복한 에드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경찰의 모습. 경찰은 톨리버에 대한 살인 혐의로 에드를 체포한다. 그 후 재판이 진행되지만 무죄를 입증하기 위한 모든 노력이 실패로 돌아가고 에드에게는 사형이 선고된다. 사형을 기다리는 동안, 에드는 한 단어 당 5센트를 받기로 하고 잡지에 자신의 이야기를 쓴다. 영화에 나오는 에드의 독백이 바로 그것이다. 영화는 전기의자에서 하는 에드의 마지막 독백으로 끝을 맺는다.



“난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이 지구와 하늘 저편에서 무엇을 보게 될지 모른다. 그러나 그곳에 가는 것이 두렵지 않다. 내가 이해 못하는 것이 그곳에서는 보다 명확해질 지도 모른다. 안개가 바람에 걷히는 것처럼. 아마 도리스도 거기에 있겠지. 거기에선 그녀에게 말해줄 수 있을지 모른다. 여기에선 설명할 수 없는 모든 것들에 대해서...”





14547464074394





톨리버의 살인 혐의로 경찰에 붙잡히는 에드



흑백의 화면 처리로 더욱 깊은 음영을 드러내는 에드의 깊게 패인 주름과 무표정한 얼굴. 마치 남의 얘기하듯 담담한 어조로 털어놓는 살인의 고백, 벌어지는 사건은 드라마틱하지만 그것을 전달하는 방식은 무미건조하다. 만약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감정적인 요소를 찾는다면 그것은 아마 시시때때로 울려 퍼지는 베토벤의 음악일 것이다. 이 영화에서 베토벤의 음악은 에드의 또 다른 내면이다. 다른 사람의 일은 물론 심지어는 자기와 관련된 일에도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그가 버디가 연주하는 베토벤의 음악에 대해서 만큼은 열정을 보인다. 살인죄로 기소된 아내의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그는 버디를 무대에 세우고자 하는 또 다른 열망에 집착한다. 그 공허한 열망이 베토벤의 음악으로 현신해 잔혹한 살인의 추억을 덮는다.

도리스가 자살하는 장면을 비롯해 등장인물들이 비극을 맞는 장면에서 주로 나오는 곡은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 1악장이고, 버디가 에드 앞에서 그리고 학교 학예회에서 연주하는 곡은 [비창 소나타] 2악장, 에드가 의도하지 않은 살인을 저지른 후에 나오는 곡은 [열정 소나타] 2악장, 마지막으로 사형장으로 가는 동안에 나오는 곡은 피아노 3중주 [대공]의 3악장이다.





14547464085839





베토벤 음악을 피아노 치는 버디와 이를 바라보는 에드



이렇게 곡은 다르지만 여기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모두 느리다는 것이다. [월광] 1악장은 아다지오 소스테누토, [열정]의 2악장은 안단테 콘 모토, [비창]의 2악장은 아다지오 칸타빌레, [대공]의 3악장은 안단테 칸타빌레이다. 모두 느리고 아름다운 노래로 시작한다.

이 중 [월광]의 1악장은 ‘환상곡풍의 소나타’라고 할 수 있다. 고전주의 소나타에서 1악장은 대개 소나타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템포가 빠른 것이 특징이다. 느리고 서정적인 멜로디는 2악장에 등장한다. 하지만 베토벤은 이 곡에서 느린 악장의 판타지를 1악장에 두었다. 흑백의 화면 위로 고요한 저음의 주제 선율과 셋잇단음표의 분산화음이 잔잔하게 펼쳐진다.

에드가 뜻하지 않은 살인을 저지르고 난 후에는 [열정]의 2악장이 나온다. 변주곡 풍으로 되어 있는 이 곡의 주제 선율은 어둡고 느린 노래 같다. 하지만 변주가 시작되면서 곡에 속도가 붙는다. 말 그대로 ‘안단테 콘 모토(속도를 가진 안단테)’이다. 언제 느리고 어둡게 시작했냐는 듯 빠르고 초조하게 움직인다. 그러다가 돌연 템포를 늦추고 처음의 어두운 멜로디로 돌아온다.





14547464093811





아내의 불륜 관계를 알고도 모른 척하는 남편 에드.



이 영화는 컬러 필름으로 촬영한 후 흑백으로 전환되어 우아한 흑백의 영상미를 보여준다.

[비창]의 2악장과 [대공]의 3악장에는 모두 ‘노래하듯이’라는 의미의 ‘칸타빌레’라는 말이 붙어 있다. 하지만 같은 노래라도 두 노래의 성격은 완전히 다르다. [비창] 2악장이 로맨틱한 사랑의 노래라면, [대공]의 3악장은 흐느끼는 탄식의 노래 같다. 피아노와 바이올린, 첼로 세 악기가 번갈아 가며 아름답게 흐느낀다.

피아노 3중주의 걸작으로 꼽히는 [대공]은 오스트리아의 루돌프 대공에게 헌정되어 [대공]이라는 제목이 붙었다고 한다. 피아노 3중주는 대개 3악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중 2악장이 느린 악장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베토벤은 [대공]을 4악장으로 작곡했으며, 2악장에 빠른 스케르초를 두고, 이어서 오는 3악장을 안단테 칸타빌레의 느린 악장으로 만들었다. 짙은 음영의 3악장 앞에 빠르고 가벼운 스케르초를 오도록 해 콘트라스트가 더 강렬하게 대비되도록 하는 효과를 노렸는지도 모른다.

이 악장은 주제와 변주로 이루어져 있는데, 에드가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장면에서는 어둡고 무거운 주제 부분만 나온다. 하지만 그의 마지막 독백은 앞으로 전개될 음악을 예고하고 있다. 이어지는 변주에서 피아노와 바이올린의 움직임이 지상을 떠나 천상의 세계로 올라가는 듯하다. 에드는 죽음이 두렵지 않다. 그곳은 모든 것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곳, 이승에서 이해되지 못 했던 것들이 찬란하게 빛을 발하는 곳, 하늘 저 편 먼 피안의 세계, 슬픔에 찬 음률마저 신비로운 아름다움으로 승화되는 곳. 에드는 곧 그곳으로 갈 것이다. 그 희열을 못 이겨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음악과 함께.











관련정보

통합검색 결과 보기







14547464100205

진회숙 | 음악 칼럼니스트
이화여대 음대 및 서울대 음대 대학원 졸업
현재 서울시립교향악단 월간지 SPO 편집위원이며, 서울시향 ‘콘서트 미리 공부하기’를 비롯한 여러 클래식 강좌의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평화방송 FM 음악공감 ‘진회숙의 일요 스페셜’의 진행자이다. 저서로 <모나리자. 모차르트를 만나다> 외 여러 권이 있다.

저자의 책 보러가기
|
인물정보 더보기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발행2014.10.2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