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클래식 박쥐 - 핏빛 향연 속 바흐의 성스러운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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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58회 작성일 16-02-06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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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의 [박쥐]는 뱀파이어가 된 신부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이다. 하지만 영화의 첫 장면은 앞으로 전개될 핏빛 드라마가 무색할 정도로 아름답다. 온통 흰색으로 칠해진 수도원의 병실 벽에 아름다운 나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마치 하얀 도화지에 그려진 한 폭의 그림과 같다. 그렇게 첫 장면은 매우 시적(詩的)이다. 하지만 주인공 상현이 환자의 상태를 살피기 위해 병실로 들어오는 순간 갑자기 장면이 엉뚱한 방향으로 전개된다. 침대에 누워있는 환자는 도저히 죽을 병에 걸린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뚱뚱하다. 그 비만 환자가 침대에 누운 채 자기가 카스테라를 가지고 했던 선행에 대해 수다를 떤다. 그 순간 이건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참으로 특이한 오프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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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리스트
No.아티스트 & 연주 
1요한 세바스찬 바흐 칸타타 BWV 82 [Ich habe genug] /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노래), 뮌헨 바흐 오케스트라, 칼 리히터(지휘)음악 재생

1분 미리듣기 / 음원제공: 유니버설 뮤직 / 앨범 정보 보러가기




주인공 상현은 가톨릭 신부로 병원에서 환자들을 돌보고 있다. 고아원에서 자란 그는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의사가 될 것인가 아니면 영혼을 구하는 신부가 될 것인가 고민하다가 신부의 길을 선택했다. 하지만 환자들이 속수무책으로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 무력감을 느끼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러던 차에 그는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해외에서 비밀리에 진행되는 백신 개발 실험에 참여하기로 한 것이다. 그는 실험 도중에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죽음을 맞지만 곧 정체불명의 피를 수혈 받아 기적적으로 소생한다. 그 피가 그를 뱀파이어로 만들어 버린다.

한국으로 돌아온 상현은 가톨릭 신자들 사이에 영웅이 된다. 죽음에서 기적적으로 소생한 그에게 병을 치유하는 능력이 있다고 믿는 신도들이 그에게 몰려든다. 하지만 상현은 정기적으로 피를 먹지 않으면 안 되는 뱀파이어. 어느 날 죽어가는 환자의 피를 처음으로 맛본 후, 그는 성스러운 신부와 피를 원하는 육체적 욕망의 화신인 뱀파이어의 두 얼굴을 가지고 살아가게 된다. 뱀파이어는 정기적으로 피를 먹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온몸에 발진이 돋는다. 그러나 상현은 살인만은 최대한 피하려고 한다. 그래서 의식불명의 환자에게 수혈되는 피를 훔쳐 마시거나 자의적으로 피를 제공하는 사람의 피만 마신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우연히 초등학교 동창인 강우와 그의 아내 태주를 만나게 된다. 강우의 어머니는 ‘행복 한복’이라는 한복집을 운영하고 있다. 한복집은 일본식 적산가옥의 1층에 있고, 강우와 그의 아내 태주 그리고 강우의 어머니는 그 집의 2층에 살고 있다. 강우의 어머니는 어린 시절 부모에게 버려진 태주를 데려와 키우다가 며느리로 삼았다. 그녀는 러시아 술인 보드카를 즐겨 마시고, 매주 수요일마다 지인들과 중국 오락인 마작을 즐긴다. 그 마작 모임을 오아시스라고 부르는데, 멤버는 강우와 그의 어머니, 태주, 강우의 직장 상사인 승대와 영두 그리고 필리핀 처녀 이블린이다. 여기에 상현이 합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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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주와 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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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작 모임 중 뒤돌아보는 강우의 어머니(태주의 시어머니)



마작을 하기 위해 강우의 집을 드나들면서 상현은 강우의 아내인 태주에게 흡혈 욕구와 성적 욕구를 동시에 느낀다. 태주 역시 상현에게서 병약한 남편에게서 느끼지 못한 성적 욕망을 강하게 느낀다. 이런 두 사람의 욕망이 합치되어 두 사람은 파멸의 위험을 안은 위험한 사랑을 시작한다.

상현과 태주는 점점 대담하게 애정행각을 벌인다. 그러다가 상현이 뱀파이어라는 사실을 태주가 알게 된다. 태주는 처음에는 이런 상현을 무서워했으나 두려움은 곧 사라진다. 그녀는 뱀파이어인 상현의 힘을 빌려 남편 강우와 그의 어머니를 죽이기로 한다. 하지만 강우를 죽이는 데는 성공하지만 그의 어머니를 죽이는 데에는 실패한다. 이 일로 강우 어머니는 전신마비가 되어 눈을 깜빡거리는 것 이외에는 할 수 없는 신세가 된다. 그녀는 눈을 이용해 오아시스 멤버들에게 강우를 죽인 사람이 태주와 상현이라는 사실을 알린다. 하지만 그로 인해 오아시스 멤버들은 상현과 태주에게 죽임을 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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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주의 남편 강우를 죽이려는 상현과 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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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신마비가 일어나 눈만 깜빡거릴 수 있는 강우의 어머니



상현은 태주를 죽이지만 자기 피를 수혈함으로써 그녀를 다시 살려낸다. 그리하여 태주도 뱀파이어가 된다. 그러나 상현은 점점 피에 굶주린 욕망의 화신이 되어가는 태주를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그래서 결국 그녀와 최후를 맞이하기로 결심한다. 상현은 태주를 차에 싣고 바닷가로 향한다. 하늘에는 태양이 찬란하게 빛나고 있다. 뱀파이어는 햇빛을 받으면 재로 변하게 되어 있다. 태주는 햇빛을 피해 차 트렁크나 차 밑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상현이 기어이 그녀를 끄집어낸다. 죽음을 거부하던 태주도 결국 이를 받아들이기로 한다. 두 사람은 바닷가 절벽 위에 차를 세우고 그 위에 걸터앉아 지는 해를 바라보며 최후를 맞는다. 마지막에 태주가 상현에게 말한다.



“그동안 즐거웠어요.”

[박쥐]는 추한 것과 아름다운 것, 진지함과 경박함, 눈물과 웃음, 성(聖)과 속(俗), 현실과 환상, 희생과 욕망, 일상의 비루함과 신비 등 온갖 이질적인 요소들이 공존하는 영화다. 영화에 사용된 음악도 그렇다. 이 영화에는 바흐의 칸타타 82번 [나는 만족하나이다]와 1930년대와 40년대에 유행했던 남인수, 이난영의 [고향], [고향의 그림자], [선창에 울러 왔다]가 나온다. 여기서 18세기 독일 종교음악과 20세기 한국 대중가요 사이에 놓여 있는 시간적, 공간적 간극을 성(聖)과 속(俗)의 대비로 이해하는 것은 어쩌면 이 영화의 난해함(?)에 대한 모독인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손쉬운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나에게는 영화의 전반부와 마지막 장면에 울려 퍼지는 바흐의 음악이 일종의 제의적인 의미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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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실에서 기도하는 상현



영화의 전반부에서 자기 몸을 기꺼이 희생의 도구로 삼으려는 상현은 다음과 같은 기도를 올린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저에게 다음과 같은 것을 허락하소서. 살이 썩어가는 나환자처럼 모두가 저를 피하게 하시고, 사지가 절단된 환자와 같이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게 하시고, 두 뺨을 떼어내어 그 위로 눈물이 흐를 수 없도록 하시고, 입술과 혀를 짓찧으시어 그것으로 죄를 짓지 못하게 하시며, 손톱과 발톱을 뽑아내어 아주 작은 것도 움켜쥘 수 없고, 어깨와 등뼈가 굽어져 어떤 짐도 질 수 없게 하소서. 머리에 종양이 든 환자처럼 올바른 지력을 갖지 못하게 하시고, 영원히 순결에 바쳐진 부분을 능욕하여 어떤 자부심도 갖지 못하게 하시며, 저를 치욕 속에 있게 하소서. 아무도 저를 위해 기도하지 못하게 하시고, 다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자비만이 저를 불쌍히 여기도록 하소서.”

이렇게 완전한 자기희생을 갈구하는 상현의 기도는 그가 리코더로 부는 바흐의 [나는 만족하나이다]를 통해 더욱 명확한 제의적 의미를 갖게 된다.

[나는 만족하나이다]를 작곡한 J. S. 바흐는 서양음악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작곡가로 꼽힌다. 바흐 가문은 16세기 중반부터 19세기 중반까지 뛰어난 음악가를 수없이 배출한 이름난 음악 가문인데, 바흐는 그중 최정점을 차지하는 인물이다.

바흐는 오페라를 제외하고 당시 유행하던 거의 모든 장르와 형식, 양식에 작품을 남긴 작곡가다. 당장의 연주를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곡을 작곡해야 하는 위치에 있었던 그는 광범위하고 다양한 장르의 음악과 기법을 모두 포용했으며, 그 안에서 음악적으로 펼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탐구했다. 바흐는 독일의 전통적인 대위법과, 이탈리아의 화성적, 선율적 요소를 자신의 음악 속에 이상적으로 결합시켰다. 이런 개방적인 태도는 바흐가 그 시대에 유행하던 거의 모든 장르에서 뛰어난 작품을 쓸 수 있는 배경이 되었다.

응집력 있는 독특한 주제, 풍부한 음악적 상상력, 화성과 대위법 사이의 균형, 강력한 리듬, 형식의 명료함, 웅장하면서도 균형 잡힌 구조, 상징적인 음형의 사용, 표현의 강렬함, 세세한 부분까지 주의 깊게 처리하는 태도는 그의 음악을 매우 심오하고 지속적인 호소력을 지닌 것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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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구하고자 신부가 된 상현



바흐는 위대한 작곡가인 동시에 독실한 크리스찬이었다. 이런 그의 신앙심은 그가 작곡한 수많은 종교음악 속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영화에 나오는 [나는 만족하나이다] 역시 바흐 자신의 절절한 신앙고백이라고 할 수 있다.



저는 만족하나이다.

믿는 자의 희망되시는 구세주를

저의 두 팔 안에 받아들였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저는 그를 보았습니다.

저는 믿음으로

예수님을 품 안에 껴안았습니다.



그리고 오늘,

저는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이 세상을 떠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구원으로 이제 죽음마저도 영원한 안식으로 여기겠다는 내용의 독창곡인데, 여기에는 오보에가 연주하는 오블리가토(멜로디를 강조하기 위하여 그것에 얽히도록 연주되는 또 하나의 멜로디 라인)가 나온다. 영화에서 상현이 리코더로 부는 것이 바로 이 오보에 부분이다. 비록 짧지만 죽음을 각오한 상현의 숭고한 마음과 결연한 의지가 돋보이는 인상적인 장면이다.

바흐의 [나는 만족하나이다]는 영화의 마지막에 다시 나온다. 감독의 얘기를 들으니 마지막에 이난영의 노래를 넣으려고 하다가 스태프들의 반대로 바흐의 곡을 넣었다고 한다. 이른바 이난영과 바흐의 전쟁에서 바흐가 승리를 거둔 것이다.

물론 이난영의 노래를 선택했다면 바흐의 음악을 선택했을 때와는 다른, 아주 특색 있는 라스트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섹스, 흡혈, 살인, 공포 등으로 핏빛 낭자한 밀교 의식을 치른 관객에게는 조금은 평온하고 클래식한 결말이 필요했다. 나는 황혼을 바라보며 재로 변해가는 두 사람의 최후가 조금은 의미심장하게 그려지기를 바랐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마지막에 바흐를 선택해 준 감독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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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회숙 | 음악 칼럼니스트
이화여대 음대 및 서울대 음대 대학원 졸업
현재 서울시립교향악단 월간지 SPO 편집위원이며, 서울시향 ‘콘서트 미리 공부하기’를 비롯한 여러 클래식 강좌의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평화방송 FM 음악공감 ‘진회숙의 일요 스페셜’의 진행자이다. 저서로 <모나리자. 모차르트를 만나다> 외 여러 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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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영화





발행2015.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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