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클래식 안나 카레니나 - 위험한 사랑을 암시하는 비극적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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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92회 작성일 16-02-06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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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는 그동안 여러 차례 영화로 만들어졌다. 주인공인 안나 카레니나 역으로는 1935년 그레타 가르보, 1948년 비비안 리, 1997년 소피 마르소, 2012년 키이라 나이틀 리가 각각 출연했다. 이제 소개하는 영화는 지난 1997년 버나드 로즈 감독이 만든 소피 마르소 주연의 [안나 카레니나]이다.

주인공 안나 카레니나는 카레린 백작의 부인으로 어린 나이에 나이 많은 백작과 결혼해 어린 아들까지 두고 있는 유부녀이다. 사랑 같은 것을 몰랐다. 그저 나이가 차서 정해진 수순에 따라 결혼했고, 당시 대부분의 귀족 여성들이 그런 것처럼 그것이 인생이려니 하고 살았다.

그러나 브론스키 백작을 만나면서 인생이 달라졌다. 모스크바 역에서 브론스키 백작을 우연히 만난 후 그녀는 사랑에 눈 뜨게 되었다. 이미 결혼을 해서 여덟 살짜리 아들이 있지만 그녀는 여전히 젊고 아름다웠다. 결혼이라는 인습에 갇혀 지내기에는 너무 젊었다. 날마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서서히 권태에 빠져 들어가던 안나 앞에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남자가 바로 브론스키 백작이었다. 그가 잠자고 있던 안나의 욕망에 불을 붙였다. 브론스키와의 만남은 어둠 같은 그녀의 인생에 한 줄기 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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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리스트
No.차이콥스키, [비창 교향곡] / 정명훈(지휘), 서울시립교향악단 
11악장 – Adagio – Allegro non troppo음악 재생
22악장 – Allegro con grazia음악 재생
33악장 – Allegro molto vivace음악 재생
44악장 - Finale: Adagio lamentoso음악 재생

1분 미리듣기 / 음원제공: 유니버설 뮤직 / 앨범 정보 보러가기




두 사람은 곧 격정적인 사랑을 시작했다. 안나는 처음에는 두 사람 사이의 관계를 남편에게 숨겼으나 남편이 눈치를 채자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하지만 안나의 남편은 자존심 때문에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안나는 브론스키의 아이를 갖지만 아이를 낳는 과정에서 유산을 하고 말았다. 그 후 브론스키는 안나를 카레린 백작의 집에서 데리고 나와 이탈리아로 갔다. 그러는 와중에 안나는 남편에게 이혼과 아들에 대한 양육권을 요구하지만 자존심이 상한 카레린 백작은 아내의 요구를 들어 주지 않았다.

브론스키와 부적절한 동거 생활을 하면서 안나는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이혼 문제가 좀처럼 해결이 나지 않는 가운데 아들에 대한 그리움은 날이 갈수록 사무쳐갔다. 주변 사람들의 입방아를 피해 하루 종일 집 안에 갇혀 지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 그녀에게 소외감을 안겨 주었다. 브론스키의 애정이 예전만 못하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그녀의 정서도 서서히 피폐해져갔다. 아이를 유산하고부터 시작한 아편이 이제는 없어서는 안 될 신경안정제가 되었다. 아편을 먹은 후 안나는 악몽과 환청에 시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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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와 브론스키



브론스키가 오페라를 보기 위해 혼자 외출한 날, 집안에 혼자 남아 있던 안나에게 또 환청이 들리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들리는 아기의 울음소리, 사람들이 그녀를 부정한 여자라고 조롱하는 소리, 다시는 아들을 볼 수 없을 것이라는 남편의 목소리. 이런 소리들이 집안 곳곳에서 들려왔다. 그녀는 머리를 감싸 쥐고 애써 그 소리들을 피하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안나는 사랑을 지키기 위해 발버둥쳤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그토록 굳건할 것 같던 두 사람의 사랑은 거대한 사회적 편견 앞에서 힘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마지막 희망인 브론스키마저 자기를 버렸다고 생각했을 때 안나는 더 이상 살아갈 힘을 잃었다. 브론스키와 한바탕 말다툼을 벌인 후 거리로 나온 안나는 마차를 타고 기차역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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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감싸안은 안나



기차역에 도착한 안나는 반쯤 정신이 나간 표정으로 의자에 앉아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의자에서 일어나 천천히 철로 쪽으로 걸아갔다. 기차가 다가오자 안나는 점점 더 철로 쪽으로 몸을 숙였다. 그러다가 기차가 바로 앞까지 왔을 때, 철로 위로 몸을 던졌다. 그녀의 몸이 슬로우 모션으로 천천히 밑으로 떨어졌다.

비극은 끝났다. 기차가 지나가고 난 후 피에 젖은 안나의 눈이 파르르 감긴다. 촛불이 꺼진 후 어둠 속에서 안나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신이여. 모든 것을 용서하소서.’

영화 [안니 카레니나]에서는 러시아를 대표하는 작곡가 차이콥스키의 [비창 교향곡]이 주제음악으로 쓰였다. [비창 교향곡]을 듣고 있으면 겨울의 나라 러시아가 느껴진다. 태양이 숨어버린 동토(凍土)의 춥고 어두운 겨울, 광대한 시베리아 벌판 위를 부는 바람 같은 거대하고 서늘한 슬픔이 생각난다. 태양빛을 받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 특유의 근원적인 우울, [비창 교향곡]은 바로 이런 우울을 담고 있는 곡이다.



‘지금 새로운 작품을 구상 중이야. 곡을 쓰면서 이것이 내 작품 중에서 최상의 것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드는구나. 여행 중에 곡을 쓰면서 몇 번이나 울었는지 몰라. 음악에 대한 열정이 얼마나 강렬했던지 1악장을 작곡하는데 겨우 나흘 밖에 걸리지 않았단다.’

차이콥스키가 동생에게 보낸 편지이다. 이것을 보아도 알 수 있는 것처럼 차이콥스키는 자기 작품 중에서 [비창 교향곡]을 최고의 것으로 여겼다. 작곡가 스스로도 이것이 불후의 명작이 될 것이라는 것을 이미 예감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곡은 차이콥스키가 작곡한 여섯 개의 교향곡 중 마지막 것이다. 그가 이 교향곡에 ‘비창’이라는 제목을 붙인 것은 동생의 제안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음악을 듣고 있으면 ‘비창’ 외에 여기에 어울리는 제목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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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역의 소피 마르소



영화 [안나 카레니나]에서 차이콥스키의 [비창 교향곡]은 영화가 정서적으로 일관된 톤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주는 음향적 배경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 일관된 이미지는 어둡고 비극적인 것이다. 나중에 안나와 브론스키가 이탈리아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장면에서 잠깐 2악장의 밝은 선율이 나오기는 하지만 이것을 제외하고 배경으로 나오는 [비창 교향곡]은 대체로 어둡고 비극적인 분위기로 일관하고 있다.

[비창 교향곡]은 영화의 첫 장면에서부터 보는 이의 마음에 어두운 음영을 드리운다. 영화는 브론스키의 친구 레빈의 독백으로 시작하는데, 이때 1악장 1주제가 무겁게 깔린다. [비창 교향곡]의 트레이드 마크인 1악장의 2주제는 안나가 기차역에서 브론스키와 다시 한 번 마주치는 장면에서 나온다. 오빠를 만나러 모스크바로 왔던 안나는 그 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기차를 탄다. 중간에 잠시 기차가 멈춘 사이 바람을 쐬러 밖으로 나온 안나는 뜻밖에 브론스키 백작을 발견하고는 놀란다. 황량한 겨울날,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러시아의 어느 기차역에서 위험한 사랑의 수렁에 빠져버린 두 남녀가 서로 마주 보고 서 있다. 휘날리는 눈보라를 맞으며 거부할 수 없는 운명적 사랑에 갈등하는 안나의 고혹적인 아름다움을 배경으로 그 유명한 [비창 교향곡] 1악장의 주제 선율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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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역에서 눈을 맞고 서있는 안나



이 영화의 주제곡이라 할 수 있는 1악장의 주제 선율은 그 후로도 몇 차례 더 나온다. 안나가 브론스키와 처음으로 육체적 접촉을 갖기 시작하는 장면과, 안나가 남편에게 브론스키와의 관계를 고백하는 장면, 그리고 아이를 유산하고 병석에 누운 안나를 브론스키가 데려가는 장면이 바로 그것이다. 영화 전반에 걸쳐 [비창 교향곡]이 많이 나오지만 극적인 측면에서 볼 때 특히 여기에 나오는 1악장의 주제 선율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할 수 있다.

이 멜로디의 아름다움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단순히 ‘아름답다’ 혹은 ‘슬프다’라는 느낌을 넘어선 그 무엇, 오직 우수와 비애를 아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비장하고도 처연한 아름다움이라고나 할까. 숙명적인 슬픔의 심연을 파고드는 1악장 주제 선율의 장대한 울림이 안나와 브론스키의 사랑에 깊은 음영을 드리운다.

안나와 브론스키가 이탈리아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는 [비창 교향곡]의 2악장이 나온다. 네 개의 악장 중에서 가장 밝고 편안한 느낌을 주는 악장이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안나 카레니나]는 어둡고 비장한 분위기로 일관하지만 두 사람이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이탈리아에서만큼은 잠시 분위기가 밝아진다. 음악은 이런 분위기의 변화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영화의 비극적인 피날레에는 4악장이 나온다. [비창 교향곡]의 네 악장 중에서 가장 유명한 악장은 물론 1악장이다. 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비창’이라는 제목에 더 어울리는 악장은 4악장이라고 생각한다. 1악장의 주제 선율도 좋지만 ‘처연한 슬픔’, ‘비극적 최후’라는 측면에서 보면 4악장이 훨씬 여기에 가깝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영화에서는 병석에 누운 안나를 본 후 집으로 돌아온 브론스키가 권총 자살을 시도하는 장면에서 바로 이 악장의 도입부가 나오는데, 여러 개의 현악기가 일제히 상승하면서 만들어내는 화음의 처연함이 일품이다. 안나가 대합실에 앉아 최후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는 동안 [비창 교향곡]의 4악장이 흐르기 시작한다. 기차가 흰 연기를 뿜으며 서서히 역으로 들어온다. 이에 맞추어 음악도 서서히 고조되기 시작한다. 그리다가 안나가 철로 위로 몸을 던질 때, 음악도 절정에 다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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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이 든 안나를 바로보는 브론스키



[비창 교향곡]을 작곡할 때, 차이콥스키는 자신의 운명을 예감하고 있었다. 동생에게 보낸 편지에 ‘이 최후의 교향곡이 마치 나 자신을 위한 진혼곡처럼 느껴진다’라고 쓴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여기서 ‘최후의 교향곡’이니 ‘진혼곡’이니 하는 단어를 사용한 것으로 미루어 그는 어느 정도 자신의 죽음을 예감했던 것 같다.

[비창 교향곡]의 초연이 있은 지 며칠이 지난 후, 차이콥스키는 한 레스토랑에서 친구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끓이지 않은 맹물을 그냥 마셨다. 그랬다가 그만 콜레라에 걸리고 말았다. 고열에 시달리던 그는 [비창 교향곡]이 초연된 지 엿새가 지난 1893년 11월 3일, 새벽 3시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말대로 [비창 교향곡]이 결국 그 자신의 진혼곡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며칠이 지난 후, [비창 교향곡]은 명지휘자 나프라브닉의 지휘로 다시 연주되었다. 그 때 많은 사람들이 차이콥스키의 죽음을 애도하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수많은 작품을 통해 러시아 특유의 우수와 비애를 노래했던 차이콥스키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장대한 스케일의 비가(悲歌)를 세상에 남기고 죽었다. 그런 의미에서 [비창 교향곡]은 그가 평생 동안 추구해 왔던 비장하고 처연한 아름다움의 결정체였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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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회숙 | 음악 칼럼니스트
이화여대 음대 및 서울대 음대 대학원 졸업
현재 서울시립교향악단 월간지 SPO 편집위원이며, 서울시향 ‘콘서트 미리 공부하기’를 비롯한 여러 클래식 강좌의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평화방송 FM 음악공감 ‘진회숙의 일요 스페셜’의 진행자이다. 저서로 <모나리자. 모차르트를 만나다> 외 여러 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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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영화





발행2015.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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