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클래식 토탈 리콜 - 용서와 화해의 음악, 템페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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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528회 작성일 16-02-06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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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2048년, 생화학 무기를 과도하게 사용한 전쟁으로 지구의 대부분이 사람이 살 수 없는 불모지가 되었다. 이제 남은 곳은 단 두 곳뿐. 영국을 중심으로 하는 브리튼 연방과 오스트레일리아 근처의 식민지 콜로니이다. 브리튼 연방에는 지배계층이 살고 있고, 콜로니에는 피지배계층이 살고 있다. 이 두 대륙을 잇는 교통수단은 ‘폴’이라고 하는 고속 수직 열차로 지구의 핵을 통과해 반대편 대륙까지 도착하는 데 단 17분 밖에 걸리지 않는다. 콜로니의 노동자들은 매일 폴을 이용해 직장으로 출퇴근을 한다.

콜로니의 평범한 노동자 더글라스 퀘이드는 아내 로리와 함께 7년 동안 행복한 결혼생활을 해오고 있다. 하지만 이런 그에게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있다. 매일 밤 똑같은 악몽에 시달리는 것이다. 묘령의 여자와 경찰에 쫓기다가 여자는 탈출하고 자기는 경찰에 잡히는 그런 꿈인데, 그는 이 꿈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꿈속에 나타나는 묘령의 아가씨는 도대체 누구인지 몹시 혼란스러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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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리스트
No.아티스트 & 연주 
1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템페스트] 3악장 / 마우리치오 폴리니음악 재생

1분 미리듣기 / 음원제공: 유니버설 뮤직 / 앨범 정보 보러가기




그러던 중 그는 직장 동료의 권유로 원하는 기억을 심어준다는 리콜사를 찾아간다. 리콜사는 화학물질을 투여해서 고객이 원하는 것을 실제로 경험한 것처럼 만들어주는 회사이다. 리콜사의 맥클러인은 먼저 더글라스에게 어떤 판타지를 원하냐고 묻는다. 그 판타지를 꿈속에서 재현해 주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조건이 있다. 무슨 꿈이든지 가능하지만 단 그것이 현실과 같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현실과 꿈이 충돌을 일으켜 뇌가 망가지기 때문이다.

맥클러인은 몇 가지 달콤한 꿈을 제시한다. 하지만 더글라스는 이런 것에 흥미를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가 그가 ‘비밀요원이 되는 꿈’에 대해 얘기하자 귀가 솔깃해진다. 맥클러인은 더글라스의 뇌를 스캔하고, 그가 비밀요원이 되는 것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그리고는 그에게 비밀요원 프로파일과 약물을 주입하는데, 주사약이 들어가는 순간 갑자기 맥클러인이 당황하며 기억 심는 것을 중지하라고 소리친다. 더글라스가 원하는것이 비밀요원이었는데, 사실은 그가 실제로 비밀요원이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영화는 미궁으로 빠져든다. 그 이후에 펼쳐지는 이야기는 리콜 안의 꿈인지 아니면 더글라스가 실제로 경험하는 현실인지 모호해진다.

그때 갑자기 연방 정부 요원들이 들이닥쳐 더글라스를 잡으려고 한다. 하지만 더글라스는 자신도 알 수 없는 엄청난 전투력을 발휘해 위험에서 빠져나온다. 집으로 돌아와 아내 로리에게 죽을 뻔했다는 얘기를 하는데, 바로 그때 로리가 돌변해서 정말로 그를 죽이려 한다. 당황한 그는 로리의 공격을 이리저리 피하면서도 이것이 도대체 어떻게 된 상황인지 알아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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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콜사를 찾아가 기억을 심는 더글라스



사실 더글라스 퀘이드는 독재자로 악명 높은 코하겐 수상의 충실한 심복이었다. 코하겐 수상은 자신의 독재에 반대하는 저항군을 소탕할 목적으로 콜로니 사람들에게 엄청난 테러를 저지르고, 이것을 체제를 전복하려는 저항군의 소행으로 돌린다. 더글라스는 본래 하우저라는 사람으로 코하겐으로부터 저항군의 지도자 마티아스를 살해하라는 지령을 받고 저항군에 침투했다. 거기서 저항군 소속의 멜리나를 만났으며, 자기가 그동안 불의의 편에서 일해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코하겐에게 등을 돌리고 저항군의 편에 서게 되었다. 하지만 아까운 부하를 잃은 것을 아쉬워한 코하겐은 묘책을 세웠다. 하우저의 뇌에 퀘이드라는 인간의 기억을 이식시켜 다른 사람으로 살게 한 것이다. 그리고 부하들을 시켜 그를 감시하도록 했는데, 사실 아내 로리와 직장 동료 해리는 모두 코하겐의 부하였다.

리콜사에서 연방군의 습격을 받은 후, 더그는 쫓기는 신세가 된다. 그렇게 쫓겨 다니다가 어느 날 꿈속에 나왔던 여자를 만난다. 그녀가 바로 멜리나다. 더그는 멜리나와 힘을 합쳐 연방군과 싸움을 벌인다. 그런데 영화의 중반에 더글라스의 동료이자 친구였던 해리가 갑자기 나타난다. 해리는 더글라스에게 그가 지금 리콜사 안에서 의자에 묶인 채 갇혀있는 상태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말하자면 지금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빠져나갈 수 있는 길은 멜리나를 총으로 쏘는 것이라는 말을 들은 더글라스는 혼란에 빠진다. 꿈속의 여인 멜리나를 쏘고, 해리와 함께 아내에게 가야 할 것인가 아니면 친구 해리를 쏘고, 멜리나와 함께 이 모험을 계속할 것인가 망설인다. 그러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해리를 총으로 쏴 죽인다. 이렇게 더글라스는 현실을 버리고 꿈속의 판타지를 선택한다. 하지만 정작 그 자신은 현실 대신 꿈을 선택했다는 사실을 모른다.

꿈속에서 더글라스는 멜리나와 합세해 코하겐의 무장 요원들과 맞서 싸운다. 이 싸움에서 그는 놀라운 전투력을 발휘한다. 아무리 위험한 상황에 처해도 절대로 죽지 않고, 미래형 갑옷으로 무장한 요원들을 한순간에 몰살시킨다. 그 과정에서 코하겐도 죽고, 로리도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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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하겐의 무장 요원들과 싸우는 멜리나와 더글라스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더글라스는 이 모든 것이 꿈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전까지는 이것이 현실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 꿈이라는 것을 알고 난 이후에는 자기 의지로 ‘나쁜’ 현실이 아닌 ‘선한’ 꿈을 선택한 것이다.

코하겐은 기억을 지우기 전의 모습으로 더글라스를 되돌려 놓으려고 노력했다. 기억을 되찾으면, 다시 UFB에 충성하는 잔인무도한 모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기억을 되찾기 직전, 더글라스는 그곳에서 벗어난다. 그리고 일부러 기억을 되찾지 않는다.

마지막에 코하겐과 싸울 때 더글라스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내가 누구였는지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현재 내가 누구인지는 안다.”

그는 잔인한 첩자였다. 그러한 과거의 자신을 거부하고, 현재의 자신을 선택했다. 불의를 위해 일하는 현실보다는 정의를 위해 일하는 꿈을 선택한 것이다.

리콜사의 도움으로 매일 밤 꿈속에 나타났던 멜리나를 다시 만나게 된 더글라스는 그녀와 함께 예전에 살던 집을 찾아간다. 집에는 피아노가 있었다. 기억을 더듬으며 피아노 앞에 앉은 더글라스는 조금스럽게 건반을 두드린다. 이때 그가 연주하는 곡은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17번 [템페스트]의 3악장 도입부이다. 베토벤이 이 곡을 쓸 당시 그는 귓병의 악화로 빈 근교의 하일리겐슈타트에서 요양을 하고 있었다. 남들이 알지 못하는 고통에 남몰래 몸부림치며 스스로 세상을 떠날 결심까지 했던 베토벤. 이 곡의 제목은 템페스트이다. 그렇다면 폭풍은 그의 마음에 몰아친 광풍이었을까. 제자가 이 곡에 대해 물어보았을 때, 베토벤은 셰익스피어의 희곡 [템페스트]를 읽어보라는 얘기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템페스트]라는 제목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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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7번 [템페스트]를 연주하는 더글라스



베토벤이 읽어보라고 했던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는 ‘용서와 이해의 드라마’이다. 밀라노 대공 프로스페로는 동생 안토니오와 나폴리 왕 알론조의 음모로, 왕에서 쫓겨나 세 살배기 딸 미란다와 함께 외딴 섬으로 피신한다. 이곳에서 그는 마술을 연마하며 원수를 갚을 기회를 노린다. 그러던 어느 날, 나폴리 왕과 동생 일당이 탄 배가 섬 근처를 지나간다는 것을 알고 배를 유인한다. 그래서 이제는 원수를 갚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나폴리 왕의 아들 퍼디난드와 그의 딸 미란다가 사랑에 빠지는 바람에 난관에 봉착한다. 결국 프로스페로는 모두를 용서하기로 한다. “용서해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베토벤의 [템페스트]를 구체적으로 셰익스피어의 희곡에 빗대어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말하자면 소나타의 어떤 대목이 소설의 어느 부분이며, 소설의 어떤 인물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전혀 연관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구체적인 것보다는 전체적인 틀에서 두 작품의 연관성을 찾아야 할 것 같다.

[템페스트]는 모두 3악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중 1악장은 그야말로 폭풍이 몰아치는 악장이다. 곡의 전개가 매우 변화무쌍하다. 처음에 느린 라르고(아주 느리게)의 아르페지오 화음(동시에 연주하지 않고 차례로 연주하는 주법)이 조용히 나타난다. 그러다가 갑자기 알레그로(빠르게)로 빠르게 몰아친다. 그 모습이 마치 말을 하는 듯하다. 오페라로 치면 레치타티보(대사를 말하듯이 노래하는 형식)와 같다. 하지만 이런 움직임도 잠시, 다시 라르고의 아르페지오가 위치를 바꾸어 나타난다. 그런 다음에는 본격적인 알레그로가 시작된다. 음들이 폭풍처럼 아래 위로 종횡무진 움직인다. 왼손의 저음부에서 폭풍이 밀려온다. 그 소리가 점점 고조되며 높은 음으로 이어진다. 이제 오른손이 그 빠른 움직임을 이어받는다. 그렇게 한참 빠르고 격렬하게 음악이 진행되다가 라르고로 돌아오고, 이어 숨 가쁘게 알레그로의 레치타티보가 나온 다음 다시 조용해진다. 그런 다음 화음이 네 번 격렬하게 폭발하면서 폭풍우 같은 음악이 전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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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워터하우스의 그림. 프로스페로의 딸 미란다가 폭풍우 속에서 연인 퍼디난드를 기다리는 모습.



2악장은 1악장과 3악장의 폭풍 사이에 끼어 있는 쉬어가는 악장이다. 대단히 명상적으로 아름다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묵직한 무엇인가가 있다. 왼손의 저음부에 팀파니의 울림처럼 옥타브로 빠르게 연주하는 셋잇단음표가 있다. 오른손이 명상적인 멜로디를 연주하고 있을 때에도 지속적으로 나타나는데, 마치 앞으로 몰아닥칠 폭풍을 예고하는 듯하다.

그런 다음 3악장이 나온다. 영화에서 더글라스가 잠시 연주했던 바로 그 음악이다. 3악장은 아주 우아하게 시작한다. 첫 부분만 들으면 ‘폭풍’이라기보다는 ‘상쾌한 바람’ 같다. 하지만 뒤로 가면서 음악이 격렬해진다. 그러나 여기서 부는 바람은 1악장의 변화무쌍하고 변덕스러운 폭풍과는 다르다. 격렬하지만 위협적이지는 않다. 8분의 3박자의 흐름에 맞추어 우아하게 흘러간다.

더글라스는 영화에서 이 곡을 베토벤이 설정한 템포보다 느리게 연주한다. 템포가 달라지니 곡의 느낌도 다르다. 훨씬 우아하고 편안한 느낌이다. 그렇게 피아노를 치다가 더글라스는 건반에서 ‘열쇠’를 찾아낸다. [템페스트] 3악장과 열쇠. 참으로 절묘한 조합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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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회숙 | 음악 칼럼니스트
이화여대 음대 및 서울대 음대 대학원 졸업
현재 서울시립교향악단 월간지 SPO 편집위원이며, 서울시향 ‘콘서트 미리 공부하기’를 비롯한 여러 클래식 강좌의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평화방송 FM 음악공감 ‘진회숙의 일요 스페셜’의 진행자이다. 저서로 <모나리자. 모차르트를 만나다> 외 여러 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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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발행2015.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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