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클래식 퐁네프의 연인들 - 격렬한 첼로 소리를 배경으로 한 퐁네프의 사랑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댓글 0건 조회 481회 작성일 16-02-06 17:17

본문















14547466517078.png


예술과 낭만의 도시 파리. 그곳에는 센 강이 있고, 그 강 위에는 다리가 있다. 센 강 위에 있는 여러 개의 다리 중에서 가장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다리는 역시 ‘퐁네프’이다.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의 무대가 되었던 곳이기 때문이다. 오래전 가족과 함께 파리를 여행했을 때, 나 역시 이 다리에서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며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난다.

내가 [퐁네프의 연인들]을 처음 본 것은 90년대 초였다. 그런데 그때 영화를 보면서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주인공들이 영화 속에 나오는 보통의 연인들과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다. 처음 [퐁네프의 연인들]이라는 제목을 들었을 때, 나는 파리의 센 강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로맨틱한 사랑 이야기를 상상했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연인인 알렉스와 미쉘은 내가 생각하는 낭만하고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었다. 일단 외모부터가 남달랐다. 누군가 이들을 세상에서 가장 ‘지저분한 커플’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는데, 정말 그랬다. 특히 알렉스 역으로 분한 드니 라방의 모습이 충격적이었다. 배우가 아니라 길거리에 떠돌아다니는 부랑자 중 한 명을 데려다 놓은 것 같이 완벽한 노숙자의 행색을 하고 있었다.






14547466522334






음악리스트
No.졸탄 코다이 [무반주 첼로 소나타] Op.8 / 앨리사 와이러스타인(첼로) 
11악장 - Allegro maestoso ma appassionato음악 재생
23악장 - Allegro molto vivace음악 재생

1분 미리듣기 / 음원제공: 유니버설 뮤직 / 앨범 정보 보러가기




영화는 격렬한 첼로 소리와 함께 시작한다. 저음역과 고음역을 흐드러지게 넘나드는 첼로 소리를 배경으로 카메라가 푸른빛 조명이 흐르는 지하차도를 빠져나와 불빛이 어른거리는 센 강과 어두운 파리의 밤거리를 훑는다.

주인공 알렉스는 거리에서 입으로 불을 품는 이른바 ‘불 쇼’를 하면서 살아가는 노숙자이다. 그는 보수공사로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된 다리 퐁네프에 살고 있다. 일이 끝나면 언제나 퐁네프로 돌아와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곤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일을 끝내고 퐁네프로 돌아온 알렉스는 자기 자리에서 어떤 여자가 잠을 자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녀의 이름은 미쉘. 그림을 그리는 화가지만 지금은 시력을 잃어가는 병에 걸려 자포자기 상태로 거리를 헤매고 있는 중이다. 이런 그녀에게 알렉스는 사랑을 느낀다. 하지만 미쉘은 첫사랑 줄리앙을 잊지 못하고 있다.

어느 날 미쉘은 지하철의 무빙워크를 걷다가 어디선가 들려오는 첼로 소리를 듣는다. 본능적으로 그가 첼리스트인 첫사랑 줄리앙이라고 생각한 미쉘은 알렉스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줄리앙이 탄 지하철에 함께 타는데 성공한다. 줄리앙의 아파트까지 뒤쫓아간 미쉘은 눈이 멀기 전에 마지막으로 줄리앙을 화폭에 옮기겠다고 간청하지만 줄리앙은 이를 단호하게 거절한다. 그러자 미쉘은 줄리앙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는 상상을 한다.





이미지 목록



1
14547466540504




2
14547466547789



노숙자로 살고 있는 알렉스와 삶을 포기하고 거리를 헤매던 미쉘은 퐁네프 다리에서 만난다.





화가인 미쉘은 시력을 잃어가는 병에 걸려 삶의 의욕을 잃고 자포자기 상태로 빠진다.




지하철에서 미쉘을 놓치고 나서 그녀를 잃었다고 자포자기하고 있는 알렉스 앞에 미쉘이 나타난다. 마침 파리에서는 프랑스 혁명 200주년을 기념하는 불꽃놀이가 화려하게 펼쳐지고 있었다. 알렉스와 미쉘은 불꽃이 화려하게 펼쳐지는 퐁네프 위에서 격정적으로 춤을 춘다. 다리 난간 위에서 비틀거리며 춤을 추던 미쉘이 난간에서 밑으로 내려오는 순간, 요한 슈트라우스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가 울리기 시작된다. 그때까지 따로 춤을 추던 두 사람이 이때부터 함께 춤을 춘다. 여기서 미쉘과 알렉스가 추는 춤은 무도회장의 신사 숙녀들이 추는 왈츠처럼 우아한 춤이 아니다. 아니. 춤이 아니라 격렬한 몸짓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절실하고 강렬한 몸짓. 그 격렬한 춤으로 인해 요한 슈트라우스의 왈츠가 찬란한 빛을 발한다. 춤 때문에 음악이 빛나는 것이다.

이렇게 다리 위에서 신나게 춤을 춘 두 사람은 보트를 훔쳐서 수상스키를 즐긴다. 미쉘은 알렉스에게 그동안 지니고 다니던 권총을 주면서 물에 던져 버리라고 한다. 줄리앙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버린 것이다. 그러고 나서 미쉘이 잠드는데, 잠든 미쉘 옆에 알렉스는 다음과 같은 적힌 쪽지를 두고 간다.



“네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내일 아침 ‘하늘이 하얗다.’고 말해 줘. 그게 만일 나라면 나는 ‘구름이 검다.’라고 대답할 거야. 그러면 서로 사랑하는지 알 수 있는 거야.”





14547466561048





퐁네프 다리 위에서 화려한 불꽃 놀이를 바라보는 미쉘과 알렉스



편지를 읽은 미쉘이 “하늘이 하얗다.”고 말하고, 알렉스가 “구름은 검다.”라고 대답하면서 두 사람은 정식으로 연인 사이가 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알렉스에게 위기가 찾아온다. 지하철을 걷다가 미쉘의 가족이 그녀를 찾는 포스터를 붙인 것을 보게 된 것이다. 포스터에는 그녀의 눈을 고칠 수 있는 새로운 치료법이 개발되었으니 빨리 집으로 돌아오라는 내용이 적혀 있다. 이것을 보고 미쉘을 잃을 것을 염려한 알렉스는 미쉘이 보지 못하게 포스터에 불을 지른다. 포스터가 실려 있는 차를 폭파시키고, 이로 인해 포스터 붙이는 사람이 불에 타서 죽는 불상사가 발생한다.

이렇게 온갖 방법을 동원해 이 사실을 숨기려 하지만 미쉘이 라디오를 통해 자기를 찾는 방송을 듣는 바람에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고 만다. 알렉스가 잠든 사이 미쉘은 퐁네프의 벽에다 “알렉스. 널 진심으로 사랑한 적은 없어. 날 잊어줘.”이라는 글을 적어놓고 떠난다.

이후 방화범으로 체포된 알렉스는 3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한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어느 날, 시력을 회복한 미쉘이 알렉스를 찾아온다. 두 사람은 알렉스가 출감하는 크리스마스이브에 공사를 마친 퐁네프에서 만나기로 약속한다.

드디어 크리스마스이브. 눈 내리는 퐁네프에서 알렉스와 미쉘이 다시 만난다. 미쉘은 흰색 반코트를 입고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나타난다. 다리 위에서 알렉스를 모델로 그림을 그린 다음, 알렉스와 함께 축배를 든다. 알렉스는 집에 가려는 미쉘을 끌어안고 센 강으로 떨어지고, 두 사람은 아틀란티스로 가는 모래 운반선에 의해 구조된다. 배의 앞머리에 서로 몸을 기대고 선 미쉘과 알렉스. 두 사람은 배를 타고 미지의 세계로 함께 떠난다.





이미지 목록



1
14547466568597




2
14547466576280



지하철에서 미쉘을 찾는 포스터를 본 알렉스





미쉘을 잃어버릴 것 같은 불안함에 지하철에 붙은 포스터를 모두 불태운다.




[퐁네프의 연인들]은 강렬한 첼로 독주로 시작한다. 이때 나오는 음악은 코다이의 [무반주 첼로 소나타 작품 8]이다. ‘무반주’란 말 그대로 반주가 없는 곡이라는 뜻으로 그 유례는 멀리 바로크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바로크 시대에 기악 독주곡에는 반드시 통주저음 반주가 붙었다. 통주저음(바쏘 콘티누오)은 바로크 시대의 독특한 반주 양식인데, ‘숫자가 붙은 베이스’라고 부르기도 한다. 작곡가가 제일 아래 성부인 베이스만 적어 놓으면, 위 성부를 맡은 연주자들이 일정한 약속에 의해 베이스 밑에 쓰여진 숫자에 따라 즉흥적으로 화음을 붙여 반주 성부를 완성하는 주법을 말한다. 이때 위 성부는 대개 하프시코드나 오르간 같은 건반악기가 맡는다.

바로크 시대의 ‘무반주’는 바로 이런 통주저음 반주 없이 악기 혼자 연주하는 것을 의미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이 있는데, 이 곡의 정식 명칭은 [통주저음이 없는 첼로 독주를 위한 6개의 모음곡]이다. 바흐는 첼로뿐만 아니라 바이올린을 위해서도 무반주곡을 썼는데, [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와 파르티타]가 바로 그것이다.

바로크 시대를 지나 고전주의 시대가 되면서 예전에 통주저음이 하던 역할을 피아노가 하게 되었다. 고전주의, 낭만주의 시대의 기악독주곡에는 대부분 피아노 반주가 붙는다. 그리고 피아노 반주가 없는 작품에는 꼭 ‘무반주’라는 말을 붙인다. 대표적인 무반주 곡으로는 코다이의 [무반주 첼로 소나타], 벨라 바르톡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외젠 이자이, 벨라 바르톡, 파울 힌데미트의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가 있다.





14547466587356





미쉘은 자신이 떠날까봐 불안해 하는 알렉스를 안아서 위로해 준다.



무반주 첼로 작품의 최고봉은 역시 J.S.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이다. 그런데 영화에 나오는 코다이의 [무반주 첼로 소나타]는 바흐의 그것과는 완전히 성격이 다르다. 바흐의 [첼로 모음곡]이 엄격한 형식미와 균형미를 지향하고 있다면, 코다이의 [첼로 소나타]는 기존의 틀을 벗어난 자유분방함을 지향한다. 두 곡의 작곡 연대가 200년이나 차이가 나는데다가, 바흐의 곡이 탄생한 곳은 서양 음악의 종주국인 독일이었고, 코다이의 곡이 탄생한 곳은 이런 주류에서 벗어난 헝가리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두 곡의 성격이 왜 이렇게 다른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코다이(Zoltán Kodály)는 바르톡과 함께 20세기 초 헝가리 민속음악을 대표하는 작곡가였다. 그는 헝가리의 여러 지방에 흩어져 있는 민속음악을 수집하고, 이것을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작곡에 활용했는데, 이 영화에 나오는 [무반주 첼로 소나타]도 그런 곡 중 하나이다.

이 곡은 코다이가 1915년, 헝가리 트란실바니아 지방의 민요와 춤곡을 소재로 해서 작곡했다. 다섯 옥타브를 넘나들며 과감한 악상을 구사하는 이 곡의 연주에는 첼로의 모든 어려운 기법이 다 동원된다. 조성은 B단조인데, 코다이는 주요음인 B음을 개방현으로 쓰기 위해, 첼로의 G현과 C현을 반음씩 낮게 조율하도록 했다. 줄을 튕기는 피치카토 기법을 오른손은 물론 왼손에서도 사용하도록 했으며, 활로 줄을 두드려서 스타카토를 연주하는 아르코, 피치카토와 아르코의 교대, 과감한 더블 스토핑아르페지오, 오른손으로 활을 연주하는 동안 왼손으로 피치카토를 연주하게 하는 등 첼로에서 가능한 모든 기법을 다 구사해야 하기 때문에 연주하기 어려운 난곡 중의 난곡으로 꼽힌다.





14547466596983





사랑을 잃고 거리를 방황하는 미쉘 역의 줄리엣 비노쉬



이 음악은 영화의 도입부, 지하도에서 미쉘이 첼로 소리를 듣고 줄리앙의 행방을 찾는 장면, 알렉스와 미쉘이 훔친 보트를 타고 수상스키를 즐기는 장면에 나온다. 여기서 첼로 소리는 음역에 따라, 그리고 주법에 따라 다양한 효과를 낸다. 저음역을 더블 스토핑으로 연주하면 가슴을 박박 긁는 것 같은 격렬함이 느껴지고, 반면에 레가토로 연주하면 명상곡을 듣는 것 같이 편안해진다. 저음역에서 고음역으로 쏜살같이 올라가는 패시지에서는 가슴 벅찬 희열을, 날카로운 비명소리를 내는 불협화음에서는 섬뜩함을 느낀다. 낮은 음에서는 거칠게 작렬하고, 높은 음에서는 찬란하게 반짝인다.

하지만 이런 변화무쌍함 속에서도 곡을 관통하는 단 하나의 이상(理想)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자유’와 ‘열정’이다. 퐁네프의 노숙자 알렉스와 미쉘의 사랑이 바로 그런 것이었다. 남들 눈에는 한없이 초라해 보이는 두 사람의 행적도, 한없이 누추해 보이는 퐁네프의 거처도, 이들에게는 더없이 편안한 자유의 공간이 되었다. 두 사람은 술에 취한 채 다리 위에 벌렁 드러누워 고양이 같은 웃음소리를 내고, 불꽃놀이가 한창인 퐁네프 위에서 춤을 추고, 센 강에서 수상 스키를 즐기다가 마침내 모래운반선을 타고 멀리 떠나 버리고 말았다. 흐드러지는 첼로 소리와 함께.




관련정보

통합검색 결과 보기














14547466603814

진회숙 | 음악 칼럼니스트
이화여대 음대 및 서울대 음대 대학원 졸업
현재 서울시립교향악단 월간지 SPO 편집위원이며, 서울시향 ‘콘서트 미리 공부하기’를 비롯한 여러 클래식 강좌의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평화방송 FM 음악공감 ‘진회숙의 일요 스페셜’의 진행자이다. 저서로 <모나리자. 모차르트를 만나다> 외 여러 권이 있다.

저자의 책 보러가기
|
인물정보 더보기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발행2015.04.27.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