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클래식 굿바이 칠드런 - 어린아이 눈으로 본 2차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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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594회 작성일 16-02-06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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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4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나는 죽는 날까지 1944년 1월의 그 아침을 잊지 못할 것이다.”

루이 말 감독의 [굿바이 칠드런]은 감독 자신의 이런 독백으로 끝을 맺는다. 여기에서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굿바이 칠드런]은 루이 말 감독이 소년 시절에 직접 겪었던 일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이다.

영화의 배경은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 파리 근교의 한 가톨릭 기숙학교. 주인공 줄리앙은 아직은 엄마 품을 그리워하는 12살의 여린 소년이다. 영화는 개학을 맞은 줄리앙이 기차를 타기에 앞서 엄마와 작별을 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줄리앙은 엄마와 헤어지기 싫어 눈물을 흘리고, 엄마는 줄리앙을 달래며 아들의 이마에 입을 맞춘다. 줄리앙의 이마에 찍힌 엄마의 붉은 립스틱 자국이 화면을 가득 메운 무채색의 배경과 묘한 콘트라스트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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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리스트
No.아티스트 & 연주 
1슈베르트 [악흥의 순간] D.780 제2번 / 빌헬름 캠프음악 재생
2생상스 [서주와 론도 카프리치오소] / 정경화음악 재생

1분 미리듣기 / 음원제공: 유니버설 뮤직 / 앨범 정보 보러가기




그 후 영화는 줄리앙의 학교생활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새 학기가 시작되자 한 친구가 이 학교에 전학을 온다. 쟝 보네라는 이름의 친구인데, 줄리앙은 자신의 옆 침대에 배정을 받은 보네에게 특별한 관심을 갖는다. 보네는 매우 우수한 학생이다. 아버지가 회계사라는 그는 특히 수학에 탁월한 재능을 갖고 있다. 수학 시간에 좀처럼 풀기 힘든 증명 문제도 척척 풀어낸다.

하지만 그에게는 어딘가 그늘이 있다. 줄리앙은 보네에게 남들이 모르는 비밀이 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낀다. 어떤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그는 오랫동안 부모와 떨어져 살고 있는 듯했다. 학교가 학부모를 초청하는 날에도 보네의 부모님은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줄리앙은 보네의 엄마가 아주 가끔씩, 그것도 비밀스러운 경로를 통해 그에게 편지를 보내는 것을 알고 이를 의아하게 생각한다. 호기심이 발동한 줄리앙은 어느 날, 보네의 사물함을 몰래 뒤진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보네의 진짜 이름이 장 키플스타인이며, 유태인이라는 사실이다. 보네는 나치의 손길을 피해 자신의 진짜 이름을 숨기고, 이 학교에 몰래 숨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줄리앙은 유태인이라는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몰랐다. 다른 사람들과는 차별 대우를 받는다는 것, 독일군들이 특히 싫어하는 민족이라는 것 정도만 알뿐이다.

이들이 공부하고 생활하는 가톨릭 기숙학교의 분위기는 어둡고 딱딱하다. 모두들 제복을 입고, 성가를 부르며 발을 맞추어 행진하는 모습이 마치 군대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그 경직된 환경 속에서도 자기들만의 재미있는 추억을 만들어 간다. 줄리앙과 보네는 함께 피아노를 치거나 금지된 책을 몰래 읽으며 각별한 우정을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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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며 우정을 키우는 줄리앙(우측)과 보네(좌측)



줄리앙은 보네가 다방면에 소질이 있는 친구라는 것을 알게 된다. 피아노도 곧잘 친다. 사실 줄리앙도 피아노 레슨을 받고 있지만 엄마의 강요에 못 이겨 억지로 받는 것이다. 그러니 의욕이 생길 리 만무하다. 어느 날 줄리앙이 피아노 레슨을 받으며 슈베르트 곡을 더듬거리며 치고 있는데, 보네가 들어온다. 이어서 피아노 앞에 앉은 보네는 줄리앙이 쩔쩔매면서 치던 슈베르트의 곡을, 완벽하지는 않지만 꽤 들을만 하게 연주한다. 이런 보네의 모습을 보며 줄리앙은 약간의 질투를 느낀다. 하지만 두 사람이 완전히 친해진 후에는 둘이 몰래 음악실에 숨어들어 신나는 재즈를 연주하며 음악을 즐긴다. 줄리앙과 보네의 피아노 연주는 무채색의 분위기로 일관하는 영화에 오아시스와 같은 빛을 던진다.

또 하나 빛과 같은 장면이 있다. 학생들과 신부들이 함께 1917년에 제작된 채플린의 영화 [이민선]을 보는 장면이다. 아이들이 영화를 보며 박장대소를 한다. 줄리앙과 보네 역시 채플린의 우스꽝스러운 연기에 웃음을 터트린다. 이 장면은 루이 말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라고 한다. 가톨릭 학교에 다닐 때, 그는 실제로 채플린의 [이민선]을 보았다. 채플린은 유태인이다. 히틀러를 풍자한 [위대한 독재자]라는 영화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유럽에서는 채플린의 모든 작품이 상영 금지되어 있었다. 하지만 곳곳에서 비밀리에 채플린의 영화가 상영되고 있었으니 줄리앙과 보네가 다니던 학교도 그런 곳 중 하나였다.

그런데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스크린 옆에서 피아니스트와 바이올리니스트가 생상스의 [서주와 론도 카프리치오소]를 연주하는 것이 인상적이다. 지금은 영화에 당연히 배경음악이 들어가 있지만, 소리가 없던 무성영화 시절에는 악사가 스크린 옆에서 장면에 어울리는 음악을 생음악으로 연주했다. 소련의 유명한 작곡가 쇼스타코비치가 소년 시절에 아르바이트로 영화관에서 이 일을 했다는 일화가 유명한데, 루이 말 감독 역시 [이민선]을 볼 때 악사가 음악을 연주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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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 채플린 영화 [이민선]을 보는 학생들



우리나라에서도 무성영화 시절에 스크린 뮤직 플레이어를 고용해 영화에 음악을 입혔다. 청춘 남녀가 사랑을 속삭이는 장면에 어울리는 배경음악은 ‘로맨스’, 사랑하는 연인이 이별하는 슬픈 장면에 어울리는 음악은 ‘엘레지’, 폭풍우가 몰아치는 장면은 ‘스톰’, 긴박한 장면은 ‘서스펜스’, 음산한 장면은 ‘미스테리오소’. 이렇게 종류별로 나누어놓고 거기에 어울리는 음악을 뽑아다가 각각 넘버 1, 넘버 2 이런 식으로 번호를 매겼다. 그리고는 장면의 변화에 따라 이 장면에는 ‘엘레지 넘버 2’, 저 장면에는 ‘로맨스 넘버 3'을 연주하는 식이었다.

이 음악들은 서양의 유명곡을 축소해서 영화용 무드음악으로 편곡해 놓은 것이 대부분이었다. 주페(Franz von Suppé)의 [경기병 서곡]과 [시인과 농부 서곡], 오펜바흐(Jacques Offenbach)의 [천국과 지옥 서곡], 로시니(Gioacchino Rossini)의 [빌헬름 텔 서곡], 생상스(Charles Camille Saint-Saëns)의 [백조]가 주로 연주되는 인기곡이었다. 한편 바이올린 독주곡 중에서 영화 효과음악으로 가장 많이 쓰인 곡은 슈만(Robert Schumann)의 [트로이메라이]와 마스네의 [엘레지]였으며, 여기에 가끔 연주자의 취향에 따라 바흐(Johann Sebastian Bach)의 [G 선상의 아리아]와 마스네의 [타이스 명상곡]이 보태지기도 했다고 한다.

영화에서 [이민선]을 상영할 때 연주한 생상스의 [서주와 론도 카프리치오소]는 본래 독주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곡이다. 영화에서는 오케스트라 부분을 피아노가 담당했다. 이 곡은 생상스가 1863년 당대의 명 바이올리니스트 사라사테(Pablo de Sarasate)를 위해 작곡했으며, 사라사테에 의해 초연되었다. 곡은 서주와 론도 카프리치오소의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처음에 느리고 서정적인 서주가 나오고, 이어서 우아하고 경쾌한 카프리치오소가 나온다. 기교적으로 매우 어렵지만 우아하고 밝은 프랑스풍의 정취를 풍기는 매우 매력적인 곡이다.

생상스의 이 곡이 채플린의 무성영화 [이민선]에 가장 잘 어울리는 곡인지는 잘 모르겠다. 찾아보면 클래식 음악 중에 이보다 [이민선]에 더 잘 어울리는 음악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 아이들이 모처럼 만에 아무 근심 걱정 없이 밝고 환하게 웃는 모습은 이 곡의 분위기와 닮아 있다. 그렇게 생상스의 음악은 어두운 무채색의 일상에 한 줄기 빛과 같은 화사함을 아이들에게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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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앙(우측)과 보네(좌측)



사람은 남들과 다른 경험을 공유하게 되면 더욱 친해지는 법이다. 줄리앙과 보네에게도 그런 경험이 있었다. 보이스카우트 게임으로 숲 속에서 보물 찾기를 하던 날, 줄리앙과 보네는 일행과 떨어진 후 숲 속에서 길을 잃고 만다. 숲을 헤매던 두 사람은 멧돼지를 만나는 등 위기를 겪지만 나중에 독일군에게 발견되어 학교까지 무사히 돌아오게 된다. 줄리앙은 친구들에게 숲에서 있었던 일과 독일군을 만났던 일을 약간의 과장을 섞어 얘기하고, 친구들은 이런 두 사람의 무용담에 감탄의 눈길을 보낸다. 이 일로 줄리앙과 보네의 우정은 더욱 견고해진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 게슈타포가 들이닥친다. 교장인 장 신부가 유태인 학생을 몰래 숨겨주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한 것이다. 밀고를 한 사람은 학교에서 허드렛일을 하고 있던 조셉. 그는 학교 물건을 빼돌렸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쫓겨났는데, 이에 앙심을 품고 게슈타포에 밀고를 한 것이다.

1944년 1월 어느 아침, 유태인 학생 보네, 네구스, 듀프레와 이들을 숨겨준 장 신부가 게슈타포에 끌려간다. 다른 아이들과 함께 마당에 서 있는 줄리앙은 끌려가는 보네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보네가 고개를 돌려 줄리앙을 바라보고, 줄리앙은 보네를 향해 살짝 손을 흔든다. 그다음 루이 말 감독의 목소리가 나온다.



“보네, 네구스, 듀프레는 아우슈비츠에서 죽었다. 그리고 장 신부님은 마우트하우젠 수용소에서 돌아가셨다. 학교는 1944년 10월에 다시 문을 열었다. 그로부터 4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나는 죽는 날까지 1944년 1월의 그 아침을 잊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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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슈타포에게 잡혀가는 장 신부와 보네 그리고 학생들



줄리앙이 눈물이 글썽해서 보네가 사라진 쪽을 바라보고 있는 동안, 음악이 흐른다. 바로 보네가 쳤던 슈베르트의 [악흥의 순간] 2번이다. 슈베르트는 [즉흥곡]이나 [악흥의 순간] 같은 피아노 소품을 많이 작곡했다. [악흥의 순간]은 작곡가의 자유로운 상상력을 피아노 소품의 형태로 펼쳐놓은 것인데, [악흥의 순간]이라는 명칭은 슈베르트가 처음 사용했다고 한다.

[악흥의 순간]은 모두 여섯 곡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대체로 분위기가 밝은 편이다. 하지만 영화에 나온 2번은 분위기가 아주 어둡다. 처음부터 오른손, 왼손이 같이 움직이는 부점음표의 화음으로 무겁게 시작한다. 곡은 모두 5개의 부분으로 나뉘는데, 처음에 나온 무거운 화음의 A부분과, 서정적인 멜로디로 이루어진 B부분이 형태를 달리해서 번갈아 나타난다. 영화에서 보네가 친 부분은 아르페지오 반주에 느리고 서정적인 멜로디가 나오는 B부분이다. 슈베르트 특유의 노래하는 듯한 서정성이 살아있는 대목인데, 줄리앙은 이 대목을 치는 보네의 모습을 유리창을 통해 바라보며 묘한 질투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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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슈타포에게 끌려가는 보네에게 손 흔드는 줄리앙



그런데 이 서정적인 멜로디는 또다시 반복될 때 갑자기 격정적인 절규로 바뀐다. 하지만 곧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처음의 평온을 되찾는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음악의 첫 대목과 B부분이 폭발하듯 반복되는 대목이 나온다. 보네가 끌려가는 순간, 줄리앙의 마음속에 일어났던 동요를 의미하는 것이었을까. 하지만 음악은 곧바로 예의 그 아름다운 서정으로 돌아온다. 그렇게 음악은 평온을 되찾았지만 루이 말은 그날 아침, 게슈타포에 끌려가며 자기를 바라보았던 친구의 얼굴을 잊지 못한다. 그 박제된 시간은, 평온하게 흘러가다 갑자기 폭발하는 슈베르트의 선율처럼 그렇게 강렬하고 날카로운 기억으로 그에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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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회숙 | 음악 칼럼니스트
이화여대 음대 및 서울대 음대 대학원 졸업
현재 서울시립교향악단 월간지 SPO 편집위원이며, 서울시향 ‘콘서트 미리 공부하기’를 비롯한 여러 클래식 강좌의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평화방송 FM 음악공감 ‘진회숙의 일요 스페셜’의 진행자이다. 저서로 <모나리자. 모차르트를 만나다> 외 여러 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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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발행2015.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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