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클래식 비발디 - 비발디의 음악 [사계]와 그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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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530회 작성일 16-02-06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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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8년 9월 29일. 베네치아의 피에타 고아원에서는 덴마크의 프레데릭 4세를 위한 음악회가 열렸다. 이날 연주회에서는 안토니오 비발디(Antonio Vivaldi)가 고아원 소녀들로 구성된 악단들과 함께 바이올린을 연주했다. 당시 그는 피에타 고아원 소속 악단을 지도하고 있었다. 음악교사로 활동하고 있었지만 그의 본래 직업은 가톨릭 사제였다. 하지만 건강이 나빠 사제의 중요한 임무인 미사를 집전할 수 없었다. 태어날 때부터 앓아왔던 천식이 원인이었다. 그때부터 그는 ‘미사를 집전하지 않는 신부’라는 별명을 얻었다.

사제의 임무로부터 해방된 비발디는 1703년 피에타 고아원 부속 음악원의 바이올린 교사가 되었다. 피에타 음악원은 고아나 사생아 출신의 소녀들을 데려다가 국비로 음악을 가르치는 곳이었다. 당시 베네치아에는 이런 종류의 음악원이 네 군데 있었는데, 이곳에서 훈련받은 소녀들이 일요일이나 축제 때마다 교회에서 연주를 했다. 비발디는 매우 유능한 교사로 소녀들로 구성된 악단이 뛰어난 실력을 갖출 수 있도록 훈련했다. 소녀들은 매우 훌륭한 연주를 들려주었는데, 이들의 연주는 베네치아를 방문하는 외국인들에게 특히 인기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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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리스트
No.아티스트 & 연주 
1비발디 [사계] 중 [겨울] 2악장 / 캐서린 매킨토시, 나이젤 노스, 고대 음악원, 크리스토퍼 호그우드(지휘)음악 재생
2비발디 [유디트의 승리] RV. 644 중 [O quam vaga, venusta, o quam decora] / 엘리 아멜링, 베를린 챔버 오케스트라, 비토리오 네그리(지휘)음악 재생
3비발디의 [바이올린 협주곡] Op.3 No.6 제1악장 / 아비 아비탈음악 재생

1분 미리듣기 / 음원제공: 유니버설 뮤직 / 앨범 정보 보러가기




영화는 1708년 베네치아를 방문한 덴마크의 프레데릭 4세 앞에서 피에타 음악원 소녀와 비발디가 그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함께 연주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사제 서품을 받고 소녀들을 지도하기 시작한 지 3년이 흐른 후였다. 피에타 음악원의 바이올린 교사로 일하던 처음 10년 동안, 비발디는 베네치아를 중심으로 활동했다. 이 시기에 12개의 트리오 소나타와 최초의 협주곡집 [조화에의 영감]을 비롯한 여러 곡을 작곡했다. 이 작품들은 고향 베네치아는 물론 멀리 암스테르담에서도 출판되었는데, 이로 인해 그는 유럽 전역에 널리 이름이 알려진 유명 작곡가가 되었다.

1708년 베네치아를 방문한 프레데릭 4세 역시 이들의 연주를 듣고 큰 감동을 받았다. 그래서 연주회 후에 비발디를 자신이 주최하는 무도회에 초대했다. 비발디는 기꺼이 초대에 응하지만 그를 바라보는 다른 사제들은 눈이 곱지 않았다. 사제가 세속적인 모임에 참석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하지만 당시 비발디가 사제들의 눈 밖에 난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그가 오페라에 정신이 팔려 있었기 때문이다.

비발디가 베네치아에서 오페라를 무대에 올릴 예정이라는 소문을 듣고 주교는 그를 불렀다. 주교는 건강상의 이유로 미사 집전의 의무에서 해방된 그가 자기 신분을 망각하고 세속적인 장르인 오페라에 안달이 나있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비발디를 불러 오페라 공연 준비를 중단하고, 피에타 고아원 소녀들을 가르치는 일에만 집중할 것을 명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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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회에서 연주하는 비발디와 그의 악단들



하지만 비발디는 이런 주교의 말을 듣지 않았다. 1714년에서 1718년까지 무려 10편이 넘는 오페라를 베네치아에서 공연했는데, 당시 다른 사람들의 눈에 비발디는 성직자가 아니라 마치 오페라 흥행사 같았다고 한다. 이 일로 베네치아 주교를 비롯한 가톨릭 교단 사람들은 비발디를 더욱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페라를 향한 비발디의 열정은 식지 않았다. 비록 성직자의 신분이지만 창작에 대한 그의 열정은 교단의 압박 정도는 아무렇지 않게 여길 정도로 강렬했다.

오페라 공연에 성공하려면 좋은 가수를 만나야 한다. 이면에서 비발디는 운이 좋았다. 오디션을 통해 천상의 목소리를 가진 안나 지로라는 여성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안나 지로는 비발디 오페라의 전속 가수로 여러 무대에 서게 되는데, 이 때문에 두 사람을 둘러싼 추문이 널리 퍼졌다. 하지만 이런 추문에도 불구하고 비발디의 오페라 작품들은 유럽 전역에서 널리 인기를 끌었다. 그는 자신의 오페라를 공연하기 위해 유럽의 거의 모든 도시를 방문했다. 이 때문에 음악원을 비우는 일이 잦아졌다. 1713년 오페라 공연을 위해 피렌체를 방문했으며, 1720년부터 1723년까지 3년 동안은 만토바에 머물며 3편이 넘는 오페라를 공연했다.

하지만 오페라가 성공을 거둘수록 성직자의 신분을 망각한 비발디의 행동에 문제 제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안나 지로와의 추문도 그중 하나였다. 스승의 앞날을 걱정한 안나는 결국 비발디의 곁을 떠났다. 바로 이 무렵 비발디는 오페라 공연 때문에 음악원을 너무 자주 비운다는 이유로 피에타 음악원 합주장의 재임용에서 탈락되었다. 그런 와중에 비발디를 둘러싼 음모와 배신은 점점 더 그를 압박하고, 베네치아 청중들도 그에게 등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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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발디와 안나 지로



1740년, 비발디는 오스트리아의 그라츠에서 안나 지로를 다시 만났다. 헤어진 지 2년 만이었다. 오랜만에 재회의 기쁨을 나눈 두 사람은 빈으로 갔다. 비발디가 빈으로 간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예전에 샤를르 6세가 그에게 빈 오페라 극장을 맡기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청천벽력 같은 일이 벌어졌다. 철석 같이 믿고 있었던 샤를르 6세가 그만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안나는 오페라 극장 관계자들과 만나 비발디에 대한 얘기를 하려고 하지만 극장 관계자들은 그가 이탈리아 사람인데다 성직자라는 이유로 이를 거절했다. 이와 함께 빈에서 오페라로 성공해보려고 했던 비발디의 꿈도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빈에서 비발디는 비참하게 살았다. 그는 자신의 협주곡 20곡을 헐값에 내놓았다. 하지만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고, 빈민촌에서 하루하루를 연명했다. 그렇게 타향에서 고생하다가 1741년 7월 28일,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객사했다. 그리고 빈민들의 묘지인 빈의 슈페탈 묘지에 묻혔다.

그 후, 비발디는 사람들에게 잊혀졌다. 그러다가 그로부터 거의 200여 년이 흐른 1927년, 투린의 도서관에서 일하던 이탈리아의 음악학자들이 비발디의 악보집을 발견했다. 오랜 세월 묻혀 있던 그의 작품이 세상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이것을 계기로 작곡가 비발디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졌으며, 작곡가로서 비발디의 위대함을 알게 된 사람들이 앞다투어 그의 음악을 연주하고 녹음하기 시작했다. 첫 음반이 나온 때가 1950년이었으니 그의 재발견이 이루어진지 60여 년 밖에 되지 않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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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발디의 오페라를 구경 온 사람들



생전에 비발디는 음악교사로는 물론 작곡가로서도 널리 인정을 받았다. 비발디는 독주악기를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협주곡 양식을 정립해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는데, [사계]가 바로 이 형식의 대표작이다. 대표작이니 만큼 영화에도 [사계]의 여러 악장이 나온다. [사계]는 [화성과 창의에의 시도]라는 협주곡집에 들어 있는 것이다. 협주곡집에는 모두 12곡이 들어 있는데, 이 중 1번에서부터 4번까지가 그 유명한 [사계]이다.

여기서 비발디는 시대를 앞서 가는 새로운 시도를 했다. 바로 당시로서는 낯선 개념인 이른바 표제음악을 시도한 것이다. 각 계절의 모습과 풍광을 묘사한 소네트(정형 서정시)에다 곡을 붙여 ‘음(音)으로 그린 풍경화’를 만들었으니 그것이 바로 [사계]이다.

비발디의 [사계]는 각각의 곡이 모두 독창적이며 자유분방한 것이 특징이다. 각 계절의 풍광을 실감나게 묘사하기 위해 비발디는 조성을 선택하는 것에도 주의를 기울였다. [봄]은 초록의 봄을 연상시키는 E장조로, [여름]은 권태로운 느낌의 g단조로, [가을]은 수확의 기쁨을 노래하는 활기찬 F장조로, [겨울]은 차가운 겨울바람을 연상시키는 f 단조로 그려졌다. 이렇게 네 작품 모두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계]는 바로크 시대 협주곡 중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영화의 전반부에 [겨울] 중 2악장이 나온다. 여기에 딸린 소네트는 다음과 같다.



불 옆에서 조용히 평안한 시간을 보낸다.

그 사이, 집 밖에 내리는 비가 삼라만상을 적신다.


이 곡은 [사계]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고 로맨틱한 악장으로 꼽힌다. 독주 바이올린이 제2 바이올린의 피치카토 반주에 맞추어 감미로운 선율을 연주한다. 여기서 피치카토는 빗방울이 떨어지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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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발디가 지도하는 피에타 음악원 소녀들의 공연 장면



한편 영화의 첫 장면, 비발디가 피에타 음악원의 소냐악단과 함께 덴마크의 프레데릭 4세 앞에서 연주하는 음악은 협주곡집 [조화에의 영감] 작품 3중 제6번의 1악장이다. [조회에의 영감]은 1711년에 출판된 비발디 최초의 협주곡집인데, [조화에의 영감]의 Estro는 ‘영감’을, Armonico는 ‘조화’를 뜻한다. 전통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창조력을 발산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협주곡집은 비발디가 피에타 음악원의 여학생들을 위해 작곡한 곡 중에서 특별히 엄선해서 뽑은 12곡을 모아놓은 것이다. 따라서 12곡의 악기 편성이 각기 다르다.

이중 제6번은 비발디의 바이올린 협주곡 중에서 가장 유명한 곡이다. 곡의 규모가 작고, 연주하기도 비교적 쉽기 때문에 바이올린 초보자들도 즐겨 연주한다. 전형적인 협주곡 형식인 3악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합주부의 음악적 소재가 독주부에서 활용되어 독주 악기와 합주 간의 연관성이 긴밀한 것이 특징이다.

이 중 영화에 나오는 1악장은 매우 경쾌하고 씩씩한 느낌을 주는 곡으로 우리나라에서는 한때 지하철 환승을 알리는 음악으로 쓰여진 것으로 유명하다. 먼저 합주부가 경쾌한 주제 선율을 연주하고 나면 독주 바이올린이 역시 같은 선율을 연주한다. 독주 바이올린이 연주하는 첫 부분의 선율은 합주부와 같지만 뒷 부분에서는 선율을 약간 바꾸어 변화를 시도한다. 중간에 같은 음형을 빠른 템포로 반복해서 연주하는 독주부가 나온 다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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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바조, [올로페르네의 목을 치는 유디트], 1598-1599년, 캔버스에 유채, 145x195 cm, 로마 국립 고전회화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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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발디가 베네치아 주교를 만나러 가는 장면에서 나오는 음악은 비발디의 오라토리오 [유디트의 승리]이다. 비발디가 피에타 음악원 소녀들을 위해 작곡한 것으로 고대 이스라엘의 여인 유디트(Judith)가 조국을 위해 적장 올로페르네를 유혹해 그의 목을 벤다는 줄거리를 가지고 있다. 이야기 자체는 남자들이 많이 등장하는 내용이지만 소녀들을 위해 작곡했기 때문에 배역은 모두 여성들이 맡도록 되어 있다. 유디트와 그녀의 하녀 아브라는 물론 앗시리아의 장수 올로페르네와 내시인 바고아까지 모두 여자들이 부른다. 합창단도 물론 여성으로만 구성되어 있다.

[유디트의 승리]는 앗시리아 군인들의 합창으로 시작한다. 내용상으로는 남자 군인들이 불러야 하지만 실제로는 여자들이 부른다. 여성이 남자 역할을 해야 하고, 그럼으로써 어쩔 수 없이 반감되는 리얼리티를 최대한 살리기 위해 비발디는 악기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첫 곡 앗시리아 군인들의 합창은 힘찬 팀파니 전주로 시작한다. 그런 다음 트럼펫이 시종일관 합창과 함께 화려한 악구를 연주하는데, 이것이 그저 아름답기만 한 소녀들의 목소리를 보완해주는 역할을 한다.

[유디트의 승리] 전곡을 들어보면, 여성의 목소리라는 한계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발현된 비발디의 놀라운 창조력에 경의를 표하게 된다. 눈매가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는 올로페르네를 소녀가 부르도록 한 것은 물론 난센스이지만 비발디의 음악이 너무나 훌륭해서 음악을 듣다 보면 어린 소녀들을 위해 작곡했다는 사실조차 잊을 정도다.

20세기 최고의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Igor Stravinsky)는 비발디를 ‘같은 곡을 1000개씩이나 써 갈긴 작곡가’라고 혹평했지만, 비발디의 대표작인 [사계], [조화에의 영감], [유디트의 승리]를 들어보면 그가 시대를 앞서 가는 작곡가였다는 것, 인간의 감성을 소중하게 생각한 휴머니스트였다는 것, 그리고 한계 속에서 오히려 엄청난 창조력을 발휘한 진정한 예술가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게 놀라운 음악의 힘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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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회숙 | 음악 칼럼니스트
이화여대 음대 및 서울대 음대 대학원 졸업
현재 서울시립교향악단 월간지 SPO 편집위원이며, 서울시향 ‘콘서트 미리 공부하기’를 비롯한 여러 클래식 강좌의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평화방송 FM 음악공감 ‘진회숙의 일요 스페셜’의 진행자이다. 저서로 <모나리자. 모차르트를 만나다> 외 여러 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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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네이버 지식백과





발행2015.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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