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클래식 파가니니,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 - 바이올린 연주의 새로운 시대를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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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551회 작성일 16-02-06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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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가니니는 18세기 후반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바이올리니스트였다. 그는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초인적인 기교로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웬만한 사람은 흉내내기 힘든 고난도의 기법들을 능숙하게 해냈는데, 이런 파가니니를 사람들은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라고 불렀다.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 그 대가로 고난도의 연주기술을 얻게 되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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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리스트
No.아티스트 & 연주 
1파가니니 [카프리스] 제5번 / 루지에로 리치음악 재생
2파가니니 [바이올린 협주곡] 제2번 3악장 / 살바토레 아카르도,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샤를 뒤투아음악 재생
3파가니니 [Io ti penso amore] / 데이비드 가렛음악 재생

1분 미리듣기 / 음원제공: 유니버설 뮤직 / 앨범 정보 보러가기




버나드 로즈 감독은 바로 이 점에 착안해서 영화 [파가니니,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를 만들었다. 영화는 어린 파가니니가 아버지 앞에서 자신이 작곡한 [카프리스] 5번을 연주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화면은 곧바로 성인이 된 파가니니의 콘서트 무대로 연결되는데, 파가니니는 무대에서 신들린 듯 연주에 열중하지만 관중들은 그의 실력을 인정하지 않는다. “제법 잘 하는데...”하는 정도의 반응만 보일 뿐이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유일하게 그의 천재성을 알아본 사람이 있다. 바로 우르바니라는 수수께끼의 인물이다. 그는 파가니니에게 접근해서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좋아하는 연주를 미친 듯하시오. 이 순간부터 당신을 주인으로 모시고 당신의 수족이 되어 몸 바쳐 일하겠소.”

“거저 해 주지는 않을 거고 조건이나 말하시오”

“현생에서는 내가 당신을 섬기겠소. 하지만 내세에서는 당신이 나에게 똑같이 해주시오.”

“난 내세니 뭐니 하는 거 안 믿어. 그러니 이 제안, 받아들이지.”


이 대화는 괴테의 『파우스트』에 나오는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펠레스의 계약을 연상시킨다. 여기서 파우스트는 악마에게 영혼을 판 대가로 젊음을 얻었다. 우르바니는 메피스토펠리스와 같은 인물이었다. 그는 약속대로 파가니니를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로 만들었다. 우르바니의 도움으로 파가니니는 가는 곳마다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고, 덕분에 돈도 많이 벌었다. 유럽의 극장들이 모두 그를 초청하고자 혈안이 되어 있었다.

이런 파가니니의 명성은 유럽 대륙을 넘어 멀리 영국 런던에까지 전해진다. 일찍이 파가니니의 인기에 대해 잘 알고 있었던 지휘자 존 왓슨은 파가니니를 런던으로 초청한다. 코벤트 가든 오페라 하우스에서 콘서트를 기획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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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가니니 아들이 바이올린 연주하는 모습.



존 왓슨의 초청장을 받은 우르바니는 그의 초청에 응하겠다는 답장을 보낸다. 하지만 파가니니는 막무가내로 런던행을 거부한다. 이미 유명해질 대로 유명해진 파가니니는 사생활이 엉망이었다. 연주회에서 벌어들인 엄청난 돈을 술과 여자, 도박과 같은 방탕한 생활을 하는데 다 써버렸다. 매일 주색에 빠져 살다가 틈만 나면 도박장으로 달려가 가진 돈을 모두 날리곤 했다. 돈을 모두 잃자 자신의 보물인 바이올린까지 팔아 버렸다.

이런 줄도 모르고 런던의 존 왓슨은 파가니니가 오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선불조로 파가니니에게 이미 상당한 액수의 돈을 보낸 그는 만약 파가니니의 연주회가 무산되면 빚더미에 올라 않을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 있다. 하지만 기다리는 파가니니는 오지 않고, 대신 편지 한 통이 그에게 배달된다. 파가니니가 몸이 아파 런던에 올 수 없다는 편지이다.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자 존 왓슨은 깊은 절망에 빠진다. 파가니니를 데려오려고 이미 엄청난 돈을 빌린 그는 집안의 물건을 모두 압류당하는 어려움을 겪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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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린을 연주하는 파가니니



이렇게 노심초사하고 있던 어느 날, 드디어 파가니니가 런던에 도착한다. 우르바니가 몸이 아파 의식이 몽롱한 상태의 파가니니를 강제로 런던으로 데려온 것이다. 존 왓슨은 파가니니와 우르바니를 런던 시내의 한 호텔로 안내한다. 하지만 호텔 앞에 불청객들이 기다리고 있다. 파가니니의 방탕한 사생활을 문제 삼은 여성윤리연합이 그의 콘서트를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파가니니가 도착하자 여자들은 “악마는 물러가라. 간음한 자는 물러가라.”고 외친다.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챈 존 왓슨은 급히 파가니니와 우르바니를 자기 집으로 데려간다. 이미 파산해서 하인도 요리사도 모두 내보낸 상황이지만 존 왓슨은 이를 숨기기 위해 딸 샬롯을 하녀로, 동거녀인 엘리자베스를 아내로 소개한다. 샬롯을 소개받은 파가니니는 남다른 기품과 외모를 지닌 그녀에게 관심을 보인다. 그래서 은근히 추파를 던지지만 샬롯은 이를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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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가니니와 샬롯



연주회 날짜가 점점 다가오고 있다. 하지만 티켓 판매 실적이 저조하다. 신문 기자들은 티켓값이 터무니없이 비싸다는 기사를 써대고, 거리에서는 여성윤리연합의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파가니니가 악마와 계약을 맺은 존재이며, 젊은이들에게 악영향을 끼치는 존재라고 외쳐댄다. 존 왓슨은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는 것에 대해 노심초사한다. 그런데 그러던 중 반가운 소식이 전해진다. 왕으로부터 파가니니를 궁전으로 초대한다는 초대장을 받은 것이다. 궁전에서 연주했다는 소문이 퍼지면 흥행에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 존 왓슨은 우르바니에게 왕의 초대장을 보여주지만, 우르바니는 이를 거절한다. 아무리 왕이라도 티켓을 사고, 직접 극장에 와서 연주를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우르바니의 배짱에 존 왓슨은 혀를 내두른다.

런던에서도 파가니니는 예전의 방탕한 생활습관을 버리지 못한다. 연습을 하지 않고 여자를 유혹하거나 놀 궁리만 한다. 어느 날 밤, 유흥을 즐기기 위해 우르바니와 함께 술집을 찾은 파가니니는 바이올린 연주로 좌중을 압도한다. 그가 신기에 가까운 솜씨로 [베니스의 카니발]을 연주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경탄을 금치 못한다. 그런데 음악을 연주하는 도중 바이올린 줄이 모두 끊어지고 한 줄만 남는 불상사가 발생한다. 하지만 파가니니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한 줄만 가지고 연주를 무사히 마쳐 또다시 열광적인 박수갈채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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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린을 연주하는 파가니니



그러던 어느 날, 파가니니는 존 왓슨의 딸 샬롯이 슈베르트의 가곡 [물레질하는 그레트헨]을 부르는 소리를 듣는다. 그 소리를 듣고 마음이 동했는지 생전 연습이라고는 하지 않던 그가 바이올린을 잡고 [바이올린 협주곡 4번]의 2악장을 연주하기 시작한다. 그 로맨틱하고 아름다운 바이올린 소리가 샬롯의 마음을 움직인다. 파가니니의 연주에 감동을 받은 그녀는 그에게 그동안 무례하게 군 것을 사과한다.

드디어 연주회가 열리는 날, 파가니니는 연주회 직전 돌연 자취를 감추어 존 왓슨과 샬롯의 마음을 태운다. 존 왓슨은 악장에게 만약 파가니니가 안 나타나면 대신 바이올린 독주를 하라고 부탁한 다음,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무대에 등장한다. 연주곡목은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 드디어 오케스트라 제시부가 끝나고 독주 바이올린이 등장할 차례가 되었다. 바로 그 순간 어딘가에서 바이올린 소리가 들려온다. 소리의 진원지는 무대가 아닌 객석. 파가니니는 객석에서 [카프리스 24번]을 연주하며 모습을 드러낸다. 관객들은 파가니니의 독특한 출현 방식에 신선한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그전까지 어느 바이올리니스트도 시도하지 않았던 화려하고 다양한 연주기법을 구사하는 그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이 연주회에서 파가니니는 앙코르곡으로 샬롯과 함께 [바이올린 협주곡 4번]의 2악장을 편곡한 [나 그대를 생각해요, 내 사랑]을 연주한다. 두 사람의 연주는 많은 박수갈채를 받지만 이것이 계기가 되어 파가니니와 샬롯은 스캔들에 휘말리게 된다. 파가니니는 순진한 처녀를 우롱한 파렴치범으로, 샬롯은 그의 손아귀에서 놀아난 정부로 이름을 날린다. 결국 파가니니는 성추행 혐의로 감옥에 갇혔다가 쫓기듯 런던을 떠난다. 하지만 그 후에도 샬롯을 잊지 못해 그녀에게 유럽 연주여행을 같이 하자는 편지를 보낸다. 하지만 샬롯은 미국 연주여행이 잡혀 있다는 이유로 이 청을 거절한다. 그 후 파가니니는 자신의 작품을 악보에 옮기며 쓸쓸히 말년을 보내다가 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조용히 숨을 거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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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가니니의 연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는 샬롯



바이올린 연주사에서 파가니니는 구시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시대를 연 음악가로 꼽힌다. 세계 역사가 예수 탄생을 기점으로 기원전, 기원후로 나뉘듯, 바이올린의 역사는 파가니니 이전과 파가니니 이후로 나뉜다. 그전에 바이올린 기교는 지금처럼 복잡하거나 화려하지 않았다. 그런데 파가니니가 이것을 극한의 경지까지 끌어올린 것이다. 파가니니는 어려서부터 바이올린에 범상치 않은 재능을 보였다. 브리지에 활을 써서 백파이프 소리를 내는 등 남들은 하지 않는 다양한 시도를 했다. 그러다가 15살 때부터는 하루 10시간 이상 바이올린을 연습하며 자기만의 독창적인 연주기법을 개발했다. G선 하나만 갖고 연주한다거나 높은 음역에서 더블 스토핑을 구사하고 이중 트릴을 연주하며, 왼손으로 줄을 튕기면서 오른손으로는 활을 켜는 등 보통 사람은 구사하기 힘든 초인적인 기법들을 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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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그르가 그린 파가니니. 1819년 <출처: Wikipedia>



그 기법을 총망라한 것이 바로 그가 작곡한 [24개의 카프리스]이다. 영화에서는 이 중 5번과 24번이 나온다. 카프리스란 형식에 제약받지 않고 독창적이고 발랄한 악상을 표현하는 지유 분방한 곡을 말한다. 이 작품은 피아노 반주 없이 바이올린 혼자만 연주하는데, 파가니니의 주법이 총망라되어 있는 바이올린의 경전으로 꼽히고 있다.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리스트가 파가니니가 연주하는 이 곡을 듣고 스스로 '피아노의 파가니니'가 되겠다고 결심했다는 일화가 유명하다. 1820년 로마에서 악보가 출판되었는데, 출판 즉시 연주 불가능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짧은 시간 동안 손가락 근육이 견뎌내지 못할 정도로 고난도 기교가 펼쳐진다. 24개의 곡이 진행되는 동안 연주자는 왼손으로 줄을 퉁기는 피치카토 주법을 비롯해 옥타브와 10도 중음 주법 등 각종 기교를 선보이며 주제 선율을 장식해간다.

파가니니는 다섯 개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작곡했다. 그의 협주곡은 멜로디가 아름답고 기교가 화려하지만 음악적인 내용은 그다지 없는 편이다. 음악적 깊이보다는 바이올리니스트의 화려한 기교를 과시하기 위해 작곡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영화에서는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의 1악장과 2번의 3악장 그리고 4번의 2악장이 나온다. 이 중 런던 연주회에서 파가니니가 앙코르곡으로 연주하는 2번의 3악장에는 [라 캄파넬라]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라 캄파넬라’는 ‘종’을 의미하는데, 주제 선율이 마치 댕댕거리는 종소리를 닮았다고 해서 이런 제목이 붙었다. 나중에 리스트가 이것을 주제로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연습곡]을 작곡하기도 했다.

한편 런던 연주회의 본곡으로 연주되었던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은 1811년 그의 나이 29살 때 완성한 것이다. 본래는 E플랫 장조로 되어 있었지만 독주 바이올린의 연주기법이 어려워 반음 내린 D장조로 연주하고 있다. 주요 멜로디는 모두 이탈리아풍으로 작곡되었으며, 전 악장에 걸쳐 독창적이고 어려운 기교를 종횡무진으로 구사하고 있다.

파가니니는 작곡가라기보다는 바이올리니스트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작품은 모두 바이올린 곡에 편중되어 있다. 영화의 주제곡처럼 나오는 노래 [나 그대를 생각하네. 내 사랑] 역시 바이올린 협주곡의 2악장을 편곡한 것이다. 방탕한 사생활과는 달리 파가니니의 느린 곡들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아름다운 서정을 담고 있다. 빠른 곡에서는 거침없이 악마적인 기교를 쏟아내는 파가니니도 느린 곡에서만큼은 인간 본연의 순수한 감성으로 돌아간다. 샬롯이 그의 바이올린 연주에 맞추어 부른 [나 그대를 생각하네. 내 사랑]도 그런 곡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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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가니니 연주 연주에 심취한 사람들





나 그대를 생각하네. 내 사랑.

넘실대는 바닷물에 태양빛이 눈부실 때

나 그대를 생각하네. 내 사랑

고요한 호숫가에 달빛이 은은할 때

길에 먼지만 일어도 그대 모습 아른거려

길 가는 저 나그네 혹시 그대 아닐까

깊은 어둠이 깔리고

적막한 밤이 되어도

나 그대를 느끼네. 내 사랑

어둠을 뚫고 오는 그대의 강렬한 느낌

무거운 침묵 속에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

고요한 숲 속으로 발길을 옮겨보네

손도 닿을 수 없는 이토록 먼 곳이지만

내 곁에 들리는 건 그대의 숨소리뿐

그 사랑은 여기에


영화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이 노래를 들으며 문득 악마는 어디에 숨어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악마를 자처한 우르바니는 파가니니를 파멸로 몰고 가려 하지만 결국 그에게 퇴출되고 만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영화일 뿐이다. 실제로 파가니니의 삶은 악마와 계약을 맺었다는 말이 사실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무절제했다.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이 뜬금없는 서정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삶을 아름다움으로 윤색하고 싶었던 감독의 희망사항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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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회숙 | 음악 칼럼니스트
이화여대 음대 및 서울대 음대 대학원 졸업
현재 서울시립교향악단 월간지 SPO 편집위원이며, 서울시향 ‘콘서트 미리 공부하기’를 비롯한 여러 클래식 강좌의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평화방송 FM 음악공감 ‘진회숙의 일요 스페셜’의 진행자이다. 저서로 <모나리자. 모차르트를 만나다> 외 여러 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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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Wikipedia





발행2015.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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