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클래식 무서운 아이들 - 음악으로 표현된 남매의 강박적인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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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553회 작성일 16-02-06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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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콕도. 1923년 <출처: Wikipedia>



프랑스 어 ‘앙팡 테라블(Les enfants terribles)’을 우리말로 번역하면 ‘무서운 아이들’이 된다. 어떤 특정한 분야에서 어른 뺨치는 놀라운 능력을 보이거나 기존의 도덕관이나 인습, 권위에 과감하게 도전하는 젊은이들을 가리키는 말인데, 여기서 ‘무서운’이라는 형용사에는 이들을 바라보는 기성세대의 당혹감과 두려움이 담겨 있다.

본래 ‘앙팡 테라블’이라는 말은 프랑스의 천재 시인 장 콕토(Jean Cocteau)의 소설 제목에서 비롯된 것이다. 장 콕토는 시뿐만 아니라 소설, 연극, 영화, 평론, 음악, 미술 등 다방면에 놀라운 재능을 지닌 만능 예술인이었다. 그는 시인 앙드레 브르통(Andre Breton)과 기욤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 화가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와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í), 발레 기획자 세르게이 디아길레프(Sergei Diaghilev), 영화감독 장 피에르 멜빌(Jean-Pierre Melville), 작곡가 에릭 사티(Erik Satie), 패션 디자이너 코코 샤넬(Coco Chanel) 등 파리 문화계의 내로라하는 인사들과 긴밀히 교류하며 활발한 창작활동을 펼쳤다.

1949년, 장 콕토는 장 피에르 멜빌 감독의 영화 [바다의 침묵]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다. 그래서 멜빌에게 1929년 작인 자신의 소설 『무서운 아이들』을 영화로 만들 것을 제안했다. 멜빌은 장 콕토 같은 유명인사로부터 러브 콜을 받은 것에 우쭐해하며 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 결과 만들어진 것이 문제의 영화 [무서운 아이들]이다. 이 영화에서 장 콕토는 내레이션을 맡았다.

남매 간의 강박적인 사랑을 그린 [무서운 아이들]은 개봉 당시 근친상간을 암시했다는 이유로 많은 비판을 받았다. 특히 가톨릭 계의 비판이 거셌다고 한다.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이 정도는 비판할 거리도 못 되지만, 영화가 나온 1950년에는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영화는 한 고등학교 교정에서 벌어지는 눈싸움 장면으로 시작한다. 친구들과 눈싸움을 벌이던 주인공 폴은 가슴에 눈 뭉치를 맞고 쓰러진다. 그에게 눈 뭉치를 던진 사람은 폴이 평소에 연정을 품고 있던 다르즐로. 다르즐로가 던진 눈 뭉치를 맞고 쓰러진 폴을 동급생인 제라르가 부축한다. 제라르는 역시 폴을 남몰래 흠모하고 있다. 제라르의 마음을 사로잡은 폴의 매력은 바로 그의 ‘연약함’이다. 그는 심성이 약한 폴이 불꽃같은 다르즐로에게 연정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알고, 그를 그 불꽃으로부터 지켜주고자 한다. 제라르는 교장에게 다르즐로가 던진 눈 덩이에 돌이 들어 있었다는 사실을 밝히고, 이 일로 다르즐로는 퇴학을 당한다.

폴은 제라르의 부축을 받아 집으로 돌아온다. 집에는 그보다 두 살 위의 누나 엘리자베스와 병든 어머니가 살고 있다. 가슴을 다친 폴은 누이 엘리자베스와 한 침실을 쓰며 그녀의 보살핌을 받는다. 그 과정에서 폴은 점점 무기력해져 간다. 병이 그다지 심하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전혀 침대에서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방 안에만 칩거하는 폴의 습관은 더욱 그를 소극적으로 만든다. 그는 속수무책으로 엘리자베스가 주도하는 ‘놀이’에 의존한다. 엘리자베스는 가끔 폴에게 심술을 부리고 툴툴대기도 하지만, 폴이 무기력해져서 자기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는 상황을 은근히 즐긴다. 남매는 서로를 향한 강박증적인 애정을 거친 몸싸움과 욕설, 조롱으로 위장한다. 그렇게 서로 사랑하면서도 겉으로는 미워하는 척한다.

여기서 두 사람이 함께 사용하는 침실은 외부 세계와의 소통이 단절된 공간이다. 이것을 장 콕토는 ‘그들이 한 몸을 가진 두 사람처럼 생활하고, 씻고, 옷을 입고 하는 거북이 등껍질 같은 곳’이라고 묘사했다. 그런데 이렇게 폐쇄된 이들만의 공간에 어느 날, 제라르가 들어온다. 폴을 흠모하는 제라르가 합류하면서 세 사람은 묘한 애정의 공동체를 이루게 된다. 제라르는 고아지만 그에게는 부유한 삼촌이 있다. 그 삼촌 덕분에 세 사람은 바닷가 휴양지로 여행을 가고, 그곳에서 남의 물건을 훔치거나 어린아이를 놀려주면서 강한 유대감을 형성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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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에서 생활하는 폴을 간호하는 엘리자베스




여행에서 돌아온 후, 엘리자베스는 생계를 꾸려나가기 위해 의상실의 모델로 취직한다. 그리고 여기서 함께 모델로 일하는 아가트와 친해진다. 그 후 엘리자베스는 아가트를 자기 집으로 불러들인다. 아가트가 처음 집에 온 날, 폴은 그녀가 자신의 첫사랑인 다르즐로와 꼭 닮았다는 사실을 알고 놀란다. 여하튼 이렇게 해서 폴, 엘리자베스, 제라르, 아가트 네 사람은 한 집에서 살게 된다.

그 후 엘리자베스는 부유한 미국인 사업가와 결혼한다. 하지만 그녀의 결혼 생활은 하루 만에 끝나고 만다. 남편이 결혼식 직후 교통사고를 당해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남편을 사랑하지 않았던 엘리자베스는 이에 별다른 충격을 받지 않는다. 남편의 죽음으로 그녀는 대저택의 주인이 되고, 이 대저택에서 네 사람의 위험한 동거는 계속된다. 그들은 재산에는 별로 관심도 없다. 예전처럼 방 안을 제멋대로 어질러 놓는가 하면, 많은 방을 놓아두고 한 방에 모여서 생활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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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방에 모여 생활하는 네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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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로부터 엘리자베스, 아가트, 제라르, 폴



폴은 첫사랑 다르즐로를 닮은 아가트를 은근히 사모하지만 겉으로 티를 내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녀를 약간 신경질적으로 대하는데, 이 때문에 아가트는 그가 자기를 싫어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던 어느 날, 폴은 아가트 문제로 엘리자베스와 가벼운 말다툼을 벌인다. 화가 난 그는 자기 침대 시트를 들고 방을 나온다. 그리고 저택을 이리저리 둘러본다. 그러다가 기묘한 분위기의 회랑을 발견한다. 그는 그곳에 칸막이를 한 후, 방을 꾸민다. 엘리자베스는 폴이 새로 꾸민 방을 보고 그 비현실적인 분위기에 매료된다.

그 방에서 폴은 첫사랑 다르즐로를 닮은 아가트에 대한 사랑의 열병을 앓는다. 영화에서 다르즐로 역과 아가트 역을 같은 배우가 맡는데, 이는 폴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사랑의 원천이 동일한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아가트에 대한 사랑을 더 이상 감출 수 없다고 생각한 폴은 그녀에게 편지를 쓴다. 그런데 실수로 수신인 이름을 아가트가 아닌 폴이라고 적는 바람에 편지가 아가트에게 바로 전달되지 않는다.

폴이 아가트에게 편지를 보낸 바로 그 시간, 엘리자베스는 아가트로부터 놀라운 말을 듣는다. 폴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다. 엘리자베스는 폴에게 달려가 그의 마음을 떠보는데, 폴 역시 아가트를 사랑하고 있으며,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편지를 보냈다는 사실을 알고 엄청난 충격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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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과 아가트



엘리자베스는 아가트에게 보내는 폴의 편지를 가로챈다. 그리고는 폴에게 가서 아가트가 제라르를 사랑하고 있다고 거짓말을 한다. 그리고 제라르와 아가트를 서둘러 결혼시킨다. 이에 충격을 받은 폴은 아가트에게 독약을 먹고 자살할 것이라는 편지를 보낸다. 그 독약은 다르즐로가 보낸 것으로 그가 학창 시절 폴을 향해 던졌던 눈덩이보다 훨씬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었다.

폴이 독약을 먹고 죽어가고 있을 때 아가트가 달려온다. 이 자리에서 폴은 자기가 독약을 먹은 이유를 말한다. 서로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두 사람은 엘리자베스가 자신들을 속였음을 알게 된다. 폴은 죽어가면서 엘리자베스에게 악마라며 저주를 퍼붓는다. 그 모습을 참담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엘리자베스는 그를 놓치기 싫었다고 고백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폴은 숨을 거두고, 그의 죽음으로 더 이상 살아갈 의미를 잃은 엘리자베스 역시 권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이 메마른 섬, 금단의 도시에서 넌 분명 행복을 느낄 거야.”

폴이 대저택의 회랑에 자기만의 방을 만들었을 때, 엘리자베스는 이렇게 말한다. ‘메마른 섬’, ‘금단의 도시’ 같은 장 콕토의 시적 환상이 멜빌의 치밀한 영상과 만나 신비롭고, 기괴하고, 비밀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멜빌은 미국의 스릴러 영화를 보면서 영화감독의 꿈을 키웠다고 하는데, 이 작품에도 그런 성향이 드러난다. 그는 세상과의 소통이 차단된 남매의 공간을 파멸을 예고하는 몽환의 장, 공범자의 비밀스런 합숙소, 밀교 의식의 제단 같은 곳으로 만들었다. 장 콕토의 시적 몽환을 비현실적인 영상으로 치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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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로부터 아가트, 엘리자베스, 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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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과 엘리자베스



비현실성의 구현을 위해 멜빌은 음악의 선택에도 신중을 기했다. 이 영화에는 바흐의 [네 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이 마치 주제곡처럼 이 장면 저 장면에 수시로 나온다. 애초에 장 콕토는 재즈를 넣고 싶어 했다고 한다. 하지만 멜빌은 단호하게 이를 거절했다. 영화의 분위기를 살리는 데에는 재즈보다 바흐나 비발디 같은 바로크 음악이 훨씬 어울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 영화를 보면 멜빌의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영화에 나오는 바흐의 [네 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은 본래 피아노가 아닌 하프시코드를 위해 작곡한 것이다. 바흐 시대의 대표적인 건반악기는 피아노가 아닌 하프시코드였다. 하지만 바로크 시대를 끝으로 하프시코드는 피아노에게 건반악기의 왕좌를 물려주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따라서 요즘은 바흐의 건반악기를 위한 곡을 대부분 피아노로 연주한다. 영화에 나오는 음악도 피아노 버전이다.

그런데 본래 이 곡은 바흐가 작곡한 것이 아니다. 1730년, 비발디가 작곡한 [네 대의 바이올린과 한 대의 첼로, 통주저음을 위한 협주곡]을 바흐가 네 대의 하프시코드와 현악 합주가 함께 하는 협주곡으로 편곡한 것이다. 영화에는 바흐가 편곡한 피아노 버전과 함께 비발디의 원곡도 나온다. 말하자면 같은 곡의 원곡과 편곡이 모두 나오는 셈이다. 물론 영화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바흐의 곡이 훨씬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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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프시코드 <출처: Wikipedia>



고전주의 이후의 협주곡은 한 대의 독주악기와 오케스트라가 함께 연주하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바로크 시대의 협주곡은 이와 달랐다. 바로크 시대에는 독주 악기보다 서너 개의 악기로 이루어진 독주 악기 군과 이보다 편성이 큰 합주가 함께 연주하는 콘체르토 그로소가 협주곡의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바흐의 [네 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도 그런 것 중 하나이다. 여기서 네 대의 피아노는 독주악기 군으로 한 그룹을 형성하고, 현악기들은 이에 대응되는 합주 파트로 한 그룹을 형성하는데, 두 그룹은 음량과 음색에 있어서 서로 대비를 이룬다. 피아노의 낭낭한 소리와 현악기들의 풍성한 울림의 대비, 그리고 독주 악기 수의 가감에 따른 음량의 변화가 다채롭다. 네 대의 피아노는 때로 같이 연주하기도 하고, 때로는 따로 연주하기도 한다. 피아노의 수에 따라 음량이 달라진다. 그렇게 해서 전체적으로 변화무쌍한 강약의 대비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바흐의 [네 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은 모두 3악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1악장은 빠름, 2악장은 느림, 빠름, 느림. 3악장은 빠름의 템포이다. 시작부터 피아노 네 대가 정신없이 서로 주거나 받거니 하는 활기차고 재미있는 곡이다. 반면 느린 부점음표로 시작하는 2악장은 보다 극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몽유병에 걸린 폴이 집안을 배회하는 장면에서 2악장이 나온다. 먼저 현악기들이 느리지만 격렬하게 부점 음표의 음형을 연주하고 나면, 피아노가 그 뒤를 잇는다. 드라마틱한 현악기들의 합주와 이와는 대조적인 독주 피아노 파트가 극명한 극적 대비를 이루고 있다.

바로크 시대의 음악들은 동일한 패턴의 리듬이 음역이나 성부를 달리하며 반복적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다. 템포는 악장이 끝날 때까지 일정하다. 동일한 템포로 연주하는 동일한 패턴의 리듬. 이런 형식의 음악은 호환성이 매우 좋다. 어떤 경우에는 한없이 경쾌하고, 어떤 경우에는 한없이 음산하다. [무서운 아이들]에서도 그렇다. 학생들이 눈싸움을 하는 장면에서는 이미지를 생기 있게 해주는 역할을 하지만, 남매의 기이한 행동을 보여주는 장면에서는 마치 최면에 걸린 것처럼 기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럴 때 나오는 음악은 다소 느린 템포로 연주한다. 같은 음악을 템포만 약간 느리게 했을 뿐인데, 느낌이 전혀 다르다. 음악에서 스릴과 서스펜스가 느껴진다. 일정한 음형의 무한 반복은 엘리자베스의 강박증이 점차 극한으로 치닫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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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회숙 | 음악 칼럼니스트
이화여대 음대 및 서울대 음대 대학원 졸업
현재 서울시립교향악단 월간지 SPO 편집위원이며, 서울시향 ‘콘서트 미리 공부하기’를 비롯한 여러 클래식 강좌의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평화방송 FM 음악공감 ‘진회숙의 일요 스페셜’의 진행자이다. 저서로 <모나리자. 모차르트를 만나다> 외 여러 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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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Wikipedia





발행2015.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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