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클래식 캐논 인버스 - 두 연인의 영혼을 나누는 이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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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576회 작성일 16-02-06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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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프라하의 어느 경매장. 사람 얼굴 모양이 장식되어 있는 300년 된 바이올린이 경매로 나왔다. 이 바이올린을 두고 한 노신사와 젊은 여자가 경합을 벌인다. 여자의 이름은 콘스탄차. 경매에 나온 바이올린은 사실 그녀의 것이다. 그녀는 그로부터 2년 전, 민주화 투쟁이 한창이던 소위 ‘프라하의 봄’의 현장에서 어떤 남자에게 이 바이올린을 받았다. 남자는 그녀에게 바이올린에 얽힌 사연을 들려준 후, 홀연히 사라졌다. 그 후 콘스탄차는 바이올린과 연관 있는 사람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래서 일부러 바이올린을 경매에 내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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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리스트
No.아티스트 & 연주 
1바흐, [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파르티타] 2번 중 [샤콘느] / 김수연(바이올린)음악 재생

1분 미리듣기 / 유니버설 뮤직




노신사와 경합을 벌이면서 콘스탄차는 그가 문제의 바이올린과 각별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직감한다. 그래서 그를 따라가 그에게 바이올린을 자기에게 주었던 남자로부터 들었던 얘기를 들려준다. 이와 더불어 영화의 시점은 자연스럽게 과거로 돌아간다.

때는 1938년, 한적한 한 시골 마을에 예노라는 젊은이가 어머니, 의붓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다. 그는 친아버지의 얼굴도 모른다. 그와 아버지를 연결해주는 유일한 끈은 아버지가 준 바이올린과 그가 작곡했다는 애절한 멜로디의 바이올린 곡뿐이다. 예노는 어려서부터 이 멜로디를 연주하며 위대한 바이올리니스트가 되는 꿈을 키웠다.

의붓아버지를 도와 돼지 농장일을 하는 예노는 고된 농장일이 끝나면 방으로 돌아와 바이올린을 연주하거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하루의 피로를 풀곤 한다. 그는 특히 피아니스트 소피 레비의 연주를 좋아한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소피의 피아노 연주에 맞추어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것이 그의 유일한 낙이다.

그러던 어느 날, 예노는 의붓아버지와 함께 시내에 갔다가 우연히 호텔 창문 너머로 그토록 흠모하던 소피가 피아노를 연주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소피의 연주에 완전히 마음을 빼앗긴 그는 그녀에게 강렬한 사랑을 느낀다. 하지만 소피는 이미 결혼해서 남편까지 있는 몸. 그러나 소피에 대한 예노의 사랑은 꺼지지 않는 불꽃처럼 타오른다. 비가 억수같이 붓는 어느 날, 예노는 소피의 집 앞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이에 감동한 소피 역시 그에게 사랑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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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와 예노



소피는 예노에게 음악학교에 들어갈 것을 권유하고, 이런 소피의 조언을 받아들여 예노는 음악학교에 들어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기와 비슷한 성향의 친구 데이비드를 만나 남다른 우정을 키워간다. 그러던 어느 날, 예노는 데이비드의 집에 초대를 받아 갔다가 데이비드의 아버지인 블라우 남작이 자기 친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 예노는 엄청난 혼란과 좌절을 겪는다. 동시에 데이비드와의 우정도 금이 간다.

그러는 와중에 예노가 꿈에도 그리던 소피와의 협연이 성사된다. 하지만 이것은 목숨의 건 모험과도 같은 것이다. 왜냐하면 소피가 유태인이기 때문이다. 나치가 유태인을 색출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때에 무대에 공개적으로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은 자살행위와 다름없는 일이다. 하지만 예노와 소피는 이에 굴하지 않는다.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 두 사람은 육체적으로 한 몸이 된 후 운명의 연주를 감행한다. 그리고는 수용소로 끌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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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소에 갇힌 예노



수용소에서 소피는 예노의 딸을 낳는다. 하지만 소피와 예노는 자신들의 분신을 세상에 남겨놓고 수용소에서 죽는다. 그 딸이 바로 콘스탄차이다. 2년 전, 그녀 앞에 나타난 남자는 바로 데이비드였다. 데이비드로부터 예노의 바이올린을 받은 콘스탄차는 예노의 아버지 즉, 자기 할아버지를 찾기 위해 경매에 바이올린을 내놓았고, 여기서 바이올린을 낙찰받은 사람이 바로 예노의 아버지 블라우 남작이었던 것이다.

이야기를 마친 콘스탄차와 블라우 남작은 예노가 다녔던 음악학교를 찾아간다. 지금은 폐허가 되어버린 그 건물에서 두 사람은 젊은 시절의 예노와 데이비드를 만난다.

영화 제목인 [캐논 인버스]는 음악 용어로 ‘역행 캐논’이라고 한다. 캐논은 여러 그룹의 연주자가 같은 멜로디를 시차를 달리해서 연주하는 일종의 돌림 형식의 작곡 기법을 말한다. 캐논을 시작하는 성부를 선행 성부, 모방하는 성부를 후행 성부라고 한다. 후행 성부는 선행 성부를 시간적 간격을 두고 뒤따르는데, 그때 일정한 시차와 음정 간격을 끝까지 유지한다. 얼핏 들으면 무척 복잡한 것 같지만 간단히 말해서 학창 시절, 음악 시간에 불렀던 돌림노래를 생각하면 훨씬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캐논은 연주에 참여하는 각각의 그룹이 같은 선율을 처음부터 연주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역행 캐논에서는 특이하게도 같은 선율의 악보를 두 연주자가 서로 반대 방향에서 연주한다. ‘게걸음 캐논’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데, 바로크 음악의 대가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음악의 헌정]에 나오는 역행 캐논이 유명하다. 역행 캐논에서는 한 연주자가 악보의 처음부터 연주해나가는 동안, 다른 연주자는 끝에서부터 연주해 올라온다. 그렇게 서로 출발점이 다르다. 하지만 음악적으로 따로 놀지는 않는다. 그 안에서 완벽한 화음의 조화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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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논 인버스]를 연주하는 예노와 데이비드



이런 역행 캐논의 원리를 예노와 데이비드의 삶에 비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영화에서 두 사람이 연주하는 것이 바로 역행 캐논이다. 서로 반대편에서 출발하는 두 개의 멜로디처럼 예노와 데이비드 두 사람의 삶의 출발은 양극단에 있었다. 예노는 돼지농장, 데이비드는 귀족의 대저택이다. 하지만 같은 점도 있다. 같은 아버지에게서 태어났으며, 무엇보다도 아버지가 작곡한 음악을 서로 공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공통분모가 바로 조화의 법칙이다. 역행 캐논을 작곡할 때에는 두 멜로디가 서로 거꾸로 흘러가더라도 반드시 서로 화음이 맞도록 작곡해야 한다. ‘완벽한 하모니’는 역행 캐논의 전제조건이다. 예노와 데이비드는 역행 캐논처럼 서로 다른 곳에서 출발했지만 완벽한 하모니라는 하나의 지향점을 공유하고 있다.

영화에 나오는 또 하나 인상적인 음악은 예노가 음악학교에서 처음 갔을 때 연주하는 [샤콘느]이다. [샤콘느]는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 제2번]의 마지막 곡이다. 바흐는 생전에 모두 여섯 편의 무반주 바이올린 곡을 작곡했다. 그중에 1, 3, 5번에는 소나타라는 이름이, 그리고 2, 4, 6번에는 파르티타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데, 하나의 번호에 대여섯 개의 곡을 모아 놓은 모음곡 형태로 되어 있다. [샤콘느]는 [파르티타 제2번]의 제5곡에 해당되는데,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곡 중에서 가장 유명해서 파르티타 2번을 얘기할 때 ‘[샤콘느]가 들어있는 바로 그 파르티타’라고 말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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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노의 거친 연주는 교수와 충돌을 일으키기도 한다.



음악학교에 처음 들어갔을 때, 예노의 [샤콘느] 연주는 정식으로 음악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 특유의 야인(野人) 기질을 어김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정제되지 않은 거친 음색, 자유분방하다 못해 무절제해 보이까지 하는 박자. 이런 예노의 연주를 들으며 교수는 당황한다. 그리고 그를 제지한다. 그렇게 멋대로 연주해서는 안 된다고.

무반주 바이올린 독주곡의 꽃 [샤콘느]. 이것은 하나의 독백이라고 할 수 있다. 열정과 관조, 화려함과 단조로움, 음지와 양지, 지하와 지상..... 이 두 개의 상반된 세계가 절묘하게 결합되어 있는 그런 독백. 젊은 날의 열정을 상기시키듯 격정적으로 포효하다가 어느새 조용히 잦아들고, 투명하게 속삭이는 듯하다 다시 격렬하게 토로하는 곡이 바로 [샤콘느]이다.

하지만 예노가 연주하는 [샤콘느]는 이와는 거리가 멀다. 시종일관 거칠고 무모하다. 조금도 정제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소리를 들려준다. 사실 [샤콘느]의 도입부가 본래 거칠기는 하다. 감정을 격렬하게 쏟아내기에 안성맞춤인데, 영화에서는 이것을 훨씬 극단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예노가 재능은 있으나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다이아몬드 원석이라는 사실을 이런 식으로 드러낸 것이다.

얼마 후, 예노의 야생성은 정제된 음악언어로 승화된다. 더 이상 독불장군임을 멈추고, 다른 사람과 하모니를 맞출 수 있는 조화로운 음악가로 성장한다. 그 결과 소피와 영혼을 나누는 이중주를 하게 된다. 그 이중주의 결실로 태어난 딸 콘스탄차. 그녀는 역행 캐논처럼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아버지의 흔적을 찾는다. 그리고는 그 역행의 끝 지점에서 아버지를 만난다. 바이올린에 대한 열정으로 온몸을 불태우던 젊은 시절의 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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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캐논 인버스(Canone Inverso: Making Love,2000)
    평점

    관람객

    0


    | 기자·평론가

    0


    | 네티즌

    8.94


    개요



    멜로/로맨스

    ,

    드라마

    |


    이탈리아

    |
    2001.03.31. 개봉
    | 107
    |


    청소년 관람불가

    감독



    릭키 토나찌

    출연



    한스 매디슨

    ,

    멜라니 티에리

    ,

    리 윌리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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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회숙 | 음악 칼럼니스트
이화여대 음대 및 서울대 음대 대학원 졸업
현재 서울시립교향악단 월간지 SPO 편집위원이며, 서울시향 ‘콘서트 미리 공부하기’를 비롯한 여러 클래식 강좌의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평화방송 FM 음악공감 ‘진회숙의 일요 스페셜’의 진행자이다. 저서로 <모나리자. 모차르트를 만나다> 외 여러 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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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발행2015.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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