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클래식 피아노 2 - 처절한 비가 속 안타까운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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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562회 작성일 16-02-06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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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본래 제목은 [The man who cried]이다.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울었던 남자’ 정도가 되겠는데, 이것이 어떤 이유에서 [피아노 2]라는 제목을 갖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외국영화가 한국에서 개봉될 때 종종 원제와 다른 제목을 붙이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비록 제목은 달라도 새로 붙인 제목이 어느 정도는 영화의 내용을 반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피아노 2]는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뜬금없는 제목 같다. 영화를 보면서 온갖 은유와 직유를 동원해도 전혀 ‘피아노’가 연상되지 않으니 말이다. 제인 캠피온 감독의 명작 [피아노]의 명성에 살짝 묻어가려는 얄팍한 계산이 깔려 있는 것이 아닌가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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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리스트
No.아티스트 & 연주 
1비제 [진주조개잡이] 중 [귀에 익은 그대 음성] / 장 푸르네(지휘), 콩세르 라무뢰 오케스트라(연주)음악 재생
2퍼셀 [디도와 아이네아스] 중 [비가: 내가 죽어 땅에 묻힐 때]음악 재생
3베르디 [일 트로바토레] 중 [저 타오르는 불꽃을 보라] / 파바로티(성악)음악 재생

1분 미리듣기 / 음원제공: 유니버설 뮤직




전운이 감돌던 1927년 러시아. 주인공 페길레의 아버지는 돈을 벌기 위해 어린 딸을 러시아에 남겨두고 미국으로 건너간다. 아버지가 떠난 후 러시아에 전쟁이 터지고, 졸지에 혼자가 된 페길레는 영국으로 보내져 한 가정에 입양된다. 이때부터 페길레는 수지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미국에 가서 반드시 아버지를 찾겠다는 일념으로 살아온 수지는 미국으로 가는 여비를 벌기 위해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쇼 단에 취직한다.

쇼단에서 수지는 로라라는 러시아 출신의 댄서를 만난다. 모스크바에서 파리로 온 로라는 수지가 러시아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수지에게 깊은 친근감을 느낀다. 로라는 빼어난 미모를 무기로 자신을 호강시켜 줄 돈 많은 남자를 찾고 있는데, 그러던 중 이탈리아 출신의 오페라 가수 단테를 만난다. 그 후 로라와 수지는 단테의 주선으로 오페라단에 들어가고, 여기서 수지는 백마와 함께 엑스트라로 출연한 집시 케사르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한편 로라는 단테를 유혹하는데 성공한다. 그녀는 호화스러운 단테의 저택으로 거처를 옮기고, 원하던 대로 화려한 옷과 보석에 둘러싸여 지낸다. 하지만 이렇게 원하는 것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 구석이 텅 빈 것 같은 허전함은 어쩔 수 없다. 파리에 독일군이 들어오고, 오페라 극장이 문을 닫게 되자 먹고살 길이 막막해진 단테는 독일군을 위한 파티에 참석해 노래를 부른다. 하지만 그런 단테를 바라보는 로라의 마음은 편치 않다. 그러던 어느 날 로라는 단테가 독일군에게 수지가 유태인이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그를 떠날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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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단에서 일하면서 서로 만난 수지와 케사르



파리에 독일군이 들어오면서 유태인인 수지의 안전도 위협을 받게 된다. 로라는 수지에게 미국행 배표를 주면서 함께 미국으로 건너갈 것을 제안한다. 케사르와 이별하는 것이 싫었지만 파리에 머무는 것이 위험하다고 생각한 수지는 결국 케사르와 이별하고,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미국행 배에 몸을 싣는다. 하지만 미국의 항구에 거의 다다랐을 때, 배가 폭격을 맞는다. 이로 인해 로라는 목숨을 잃고, 수지는 사력을 다해 헤엄을 치다 사람들에게 구조된다.

아버지의 낡은 사진을 들고 유태인촌을 찾은 수지는 놀랍게도 이곳에서 아버지의 소식을 듣게 된다. 수지의 아버지는 할리우드에서 영화산업에 종사해 크게 성공했으나 지금은 건강이 좋지 않아 병석에 누워있는 신세다.

드디어 아버지의 병실을 찾은 수지. 아버지는 “페길레, 나의 작은 새”라며 딸을 껴안는다. 눈물을 흘리는 아버지에게 수지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자기에게 들려주었던 자장가를 들려주는 것으로 영화가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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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라와 단테



[피아노 2]라는 엉뚱한 제목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것이 있다면 이 영화에 음악이 많이 나온다는 점일 것이다. 영화의 주제곡은 비제의 오페라 [진주조개잡이] 중에 나오는 아리아 [귀에 익은 그대 음성]이다. 감미롭고 부드러운 멜로디로 듣는 사람을 단번에 무장해제시켜 버리는 마력을 가지고 있는 이 아리아는 영화의 시작과 끝뿐만 아니라 영화의 중간에도 수시로 등장해 보는 사람의 마음을 촉촉하게 적신다.

이 아리아가 나오는 비제의 오페라 [진주조개잡이]는 이국적인 실론 섬을 무대로 벌어지는 사랑의 삼각관계를 그린 작품이다. 어부들의 두목인 주르가와 진주조개잡이 나디르는 한때 미녀 레일라를 사이에 두고 라이벌 관계에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과거의 일을 잊고, 서로 우정을 다짐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런데 그때 베일을 쓴 레일라가 바다로 나가는 어부들의 수호자로 사람들 앞에 나타난다. 베일을 써서 얼굴은 안 보이지만 나디르는 목소리를 듣고 그녀가 레일라라는 것을 눈치챈다. 나디르는 주르가와의 약속을 어기고 레일라와 사랑에 빠진다. 그러다가 사람들에게 들켜 체포되고, 두 사람은 순결을 더럽혔다는 이유로 사형에 처해지게 된다. 하지만 주르가의 필사적인 노력으로 두 사람이 구출된다는 것이 오페라의 줄거리이다.

[귀에 익은 그대 음성]은 오페라의 1막에서 나디르가 레일라를 그리면서 부르는 아리아이다. 사실 [진주조개잡이]는 그다지 잘 만든 오페라는 아니다. 대본도 빈약하고 줄거리도 엉성하다. 그래서 [카르멘]에 비해 자주 공연되지 않는다. 하지만 미성의 테너가 부르는 [귀에 익은 그대 음성] 만큼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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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6년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 공연 일러스트 <출처: Wikipedia>





내가 다시 들은 것 같다. 야자수 아래 숨어서 그 목소리를.

부드럽고 낭랑한 산비둘기 노래 같은.

오, 매혹적인 밤이여! 숭고한 황홀경이여!

오 매혹적인 추억이여!

광적인 취기여! 달콤한 꿈이여!

투명한 별빛 아래 그녀를 다시 본 것 같구나.

그녀의 긴 베일을 살짝 여는 달콤한 저녁 바람.

오 황홀한 밤이여! 숭고한 황홀경이여!

오 매혹적인 추억이여! 광적인 취기여! 달콤한 꿈이여!

매혹적인 추억이여! 매혹적인 추억이여!


이런 가사를 가지고 있는데, 아마 테너 아리아 중에서 가장 달콤한 아리아가 아닌가 싶다. [피아노 2]에서는 이 노래가 주제곡 역할을 한다. 영화의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은 물론 영화 중간중간에도 수시로 등장한다. 오페라 가수인 단테가 파티에서 피아노 반주에 맞추어 이 아리아를 부르는 장면도 나온다.

수지는 케사르가 단테로부터 모욕당하는 것을 보고 가슴 아파한다. 수지는 유태인이고, 케사르는 집시이다. 유태인과 집시는 오랜 세월 동안 시련과 억압의 소외된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다. 이들은 한 사회의 주류에서 밀려나 늘 아웃사이더로 살아왔다. 이 영화에는 이런 소외계층의 그늘진 정서가 바탕에 깔려 있다. 로맨틱하면서도 웬지 모르게 슬픈 느낌을 주는 [귀에 익은 그대 음성] 노래가 수시로 등장해 영화 전체에 우울한 그림자를 드리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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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시인 케사르 역으로 나오는 조니 뎁



영화에서 수지가 부르는 [비가]도 [귀에 익은 그대 음성] 못지않게 분위기를 촉촉하게 적시는 역할을 한다. 이 노래는 바로크 시대의 영국 작곡가 헨리 퍼셀이 작곡한 오페라 [디도와 아에네아스] 중에 나오는 디도의 비가 [내가 죽어 땅에 묻힐 때]이다. [디도와 아에네아스]는 고대 북아프리카 카르타고의 여왕 디도와 트로이의 왕자 아이네아스의 비극적인 사랑을 그린 오페라이다. 디도는 아이네아스를 사랑하지만 디도를 미워한 마녀들이 아이네아스의 야망을 부채질해 결국 그녀를 떠나게 만든다. 그러자 버림받은 디도는 절망한 나머지 목숨을 끊는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림받고 스스로 목숨을 끊기 직전에 부르는 디도의 비가. 영화에서는 러시아를 떠나 영국의 한 가정에 입양된 어린 수지가 학생들 앞에서 이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나오는데, 노래를 부르는 동안 수지가 성숙한 처녀로 성장한 장면으로 바뀐다.



내가 죽어 땅에 묻혀도

내 잘못이 당신에게

더 이상 해가 되지 않기를.

나를 기억해 주세요.

나를 기억해 주세요.

하지만, 아!

나의 이 운명만은 잊어주세요.


영화 속의 수지는 매우 평이한 음조로 이 노래를 부르지만 사실 이 노래는 아주 처연한 비가이다. 처연하면서도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비가이다. 이 노래에서 격렬한 슬픔은 절제의 여과기를 거쳐 격조 높은 파토스로 승화된다. 그래서 마치 그리스 비극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다. 노래의 클라이맥스는 “나를 기억해 주세요. 나를 기억해 주세요. 하지만, 아! 나의 이 운명만은 잊어 주세요.”이다. 이 부분은 두 번 반복되는데, 특히 뒷부분의 처연한 절규가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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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단에서 쇼걸로 일하는 수지 역의 크리스티나 리치



수지는 집시 남자 케사르와 함께 집시들의 모임에 참석해서도 이 노래를 부른다. 바로크 오페라 아리아와 집시. 서로 전혀 안 어울릴 것 같은 두 개의 노래가 이 장면에서 서로 만난다. 처음에는 수지 혼자 노래를 부르다가 후반부에 집시악사들의 반주가 끼어드는데, 이때부터 바로크의 격조 높은 비가는 집시의 애환을 담은 애절한 비가가 된다.

이런 집시의 애환은 수지가 출연한 오페라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영화에 나오는 오페라는 베르디의 [일 트로바토레]이다. 이 오페라는 귀족에 의해 억울하게 어머니를 잃은 집시여인 아주체나의 복수극을 그린 것이다. 아주체나의 아들로 키워진 만리코는 자기 어머니가 처형 당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녀를 구하러 가겠다고 다짐하며 [저 타오르는 불꽃을 보라]를 부른다. 이어서 그를 따르는 병사들의 합창이 힘차게 울려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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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많은 남자를 만나 신분상승을 원하던 로라 역의 케이트 블란쳇



[저 타오르는 불꽃을 보라]는 [귀에 익은 그대 음성]이나 [디도의 비가]와는 분위기가 완전히 다른 노래이다. 노래 전체에 강력한 에너지가 흘러넘친다. 촉촉하게 눈가를 적셔주는 영화의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다. [일 트로바토레]의 주인공은 집시들이다. 그들은 귀족들에 의해 억울하게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살아갈 터전을 잃은 한 많은 사람들이다. 영화 속의 수지나 케사르는 운명에 순응하며 살지만 오페라 속의 집시들은 다르다. 그들은 강력한 의지로 자신의 운명을 바꾸고, 적과 대항해 싸우고, 마침내 승리한다. 합창이 나오는 이 짧은 장면은 그렇게 폭발적인 분노와 복수의 에너지가 응축되어 있다.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수지는 꿈에도 그리던 아버지와 만나게 된다. 아버지와 만났으니 해피엔딩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영화가 끝났을 때, 해피엔딩의 개운함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오히려 가슴이 저려왔다. 영화를 보는 내내 귓가를 맴돌던 [귀에 익은 그대 음성], 그리고 [디도의 비가], [별은 빛나건만], [글루미 선데이]의 음울한 멜로디가 가슴 깊은 곳에 그늘을 드리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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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맨 후 크라이드(2000)
    평점

    관람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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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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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티즌

    7.95


    개요



    드라마

    |


    영국

    ,

    프랑스


    | 97
    |


    15세 관람가

    감독



    샐리 포터

    출연



    크리스티나 리치

    ,

    케이트 블란쳇

    ,

    존 터투로

    ,

    조니 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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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회숙 | 음악 칼럼니스트
이화여대 음대 및 서울대 음대 대학원 졸업
현재 서울시립교향악단 월간지 SPO 편집위원이며, 서울시향 ‘콘서트 미리 공부하기’를 비롯한 여러 클래식 강좌의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평화방송 FM 음악공감 ‘진회숙의 일요 스페셜’의 진행자이다. 저서로 <모나리자. 모차르트를 만나다> 외 여러 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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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Wikipedia





발행2015.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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