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비합리적인 판단 - 왜 하게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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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395회 작성일 16-02-06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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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캐스트의 이전 편 중 하나인 ‘창의적 아이디어의 생성과 사용’에서도 잠깐 언급되었던 내용이다. 오늘은 이를 좀 더 자세히 다뤄보고자 한다. 왜냐하면 왜 사람들이 합리적이지 못한 판단을 자주 내리는가라는 아주 큰 질문에 꽤 쓸모 있는 해답의 실마리를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물어본다. “어떤 친구를 사귀고 싶은가?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친구와 감성적인 친구 중에”라고 말이다. 그러면 감성적인 친구를 만나고 싶다는 사람들이 꽤 나온다. 그런데 사람들에게 또 다시 물어본다. “당신은 회사의 사장이다. 어떤 사람을 뽑겠는가?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사람? 감수성이 뛰어난 사람?” 이러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자가 자기 회사를 위한 사람으로 도 좋겠다고 대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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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의 사장으로서 직원을 뽑을 때 적용되는 기준과 개인적인 친구를 선택할 때 적용되는 기준이 다른 것은 두 상황에서 우리가 적절하다고 보는 측면이 다르기 때문이다.

<출처: gettyimages>


왜 두 경우에서 다른 대답이 나올까? 사람들은 별로 어렵지 않게 이 질문에도 대답을 할 수 있다. “상황과 목적이 다르잖습니까?” 상식적으로 이해가 갈 법도 하다. 그렇다면 이 대답의 속뜻은 무엇일까? 나와의 친분과 회사를 위한 사람이 다르다는 것은 그 두 상황에서 우리가 적절하다고 보는 측면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것 자체야 틀린 말이 당연히 아니다. 그렇지만 이를 조금만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렇게 풀이가 가능할 것이다. 능력은 회사에서 필요로 하는 것이고 나에게 소중한 친구에게서는 능력이라는 차원이 그렇게까지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의미일 것이다. 즉, 우리에게는 이성과 논리는 능력이고 감수성은 무언가 다른 측면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한 것 같다. 하지만 심리학자들은 이러한 관점에 단호하게 일침을 놓는다. 착각이라고 말이다. 왜냐하면 심리학자들이 지금까지 열심히 연구를 해 본 결과, 감수성, 즉 정서는 판단력에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미 몇 차례 언급한 바와 같이 생각의 과정에는 논리로 풀어나갈 수 있겠지만 결국 최종 결정단계에서 우리는 정서에 기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행동을 결정하는 정서의 힘



우리 실생활에서 논리와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아니 더 정확히는 설명할 필요가 없는 일들이 너무나도 많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우리 국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거리로 나와 우리의 국가대표 팀을 열광적으로 응원했다. 그리고 태극전사들로 불리는 우리 선수들의 플레이 하나하나에 엄청난 희노애락을 느꼈다. 지금도 역시 우리는 마찬가지의 격정적 감정들을 4년마다의 월드컵 때마다 느끼곤 한다. 꼭 축구라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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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스포츠팀을 열광적으로 응원하는 이유를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출처: Wikipedia>


당연히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프로야구 팀의 중요한 경기, 내가 다니는 혹은 몸담았던 모교의 체육경기나 다른 일들에 마찬가지의 감정들을 느끼곤 한다. 논리적으로 굳이 생각해야 하는 문제인가? 대한민국이 월드컵에서 4강에 가면 국가 위상이 올라가고 그 위상은 다시금 경제적인 이득으로 이어지며 그리고 그 이득으로 인해 나를 포함한 우리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국민소득도 상승하기 때문인가? 그래서 우리는 그렇게 열정적으로 응원을 했던 것일까? 아마도 독자들께서 웃으실 것이다. 뭐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느냐고 말이다. 우리는 말 그대로 가슴이 시키는 대로 열광했을 뿐인데 말이다. 그리고 그 가슴은 무언가 뜨겁게 달아오르는 듯함이라는 정서였다. 즉 우리로 하여금 무언가 결정하고 행동하게 만드는 힘은 정서에 있다는 것이다. 거기서 밥이나 돈과 같은 경제적 실물이 이득으로 나오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반작용으로서의 정서가 지니는 엄청난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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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합리적인 습관을 고칠 때는 그 비합리적인 측면에 대한 분노, 짜증, 혹은 불편함이라는 정서가 뒷받침돼 주어야 한다.

<출처: gettyimages>


이렇게 중요하고 강력한 정서가 우리로 하여금 때로는 부적응적인 측면으로 빠지게 할 수도 있다.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런데 평소에 좋아하는 게임의 신제품이 출시되었다는 것을 친구에게 들었고 결국 나는 그 게임을 구입하고야 말았으며 컴퓨터에 설치하고 곧 그 게임에 몰입되고 말았다. 합리적인 행동이라면 당연히 그 게임에서 곧 빠져 나와 공부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 사람들이 정서를 논리와 이성과 달리 우리로 하여금 자충수를 두게 만드는 주범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장면이 바로 여기서 관찰이 끝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좀 더 생각을 해보아야 한다. 그 게임을 그만두고 다시금 공부를 하게 만드는 힘이 합리적 사고의 힘인가? 많이들 경험을 해 보셔서 아시겠지만 아니다. 그 게임의 즐거움에서 빠져 나와 공부로 돌아가게 하는 힘은 그 게임이 주는 즐거움을 이겨내는 반작용으로서의 정서들이다. 즉, 불안함, 불편함, 혹은 긴장감 등이 느껴져야만 그 게임을 그만두고 공부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반대 정서의 힘이 없이 어떻게 그 게임의 즐거움이 지니는 강력한 힘을 이겨낼 수 있는 것인가? 실제로 게임이나 도박 중독으로 고통 받는 분들 중 상당수에게서 정서적 단편성과 관련된 성격장애가 자주 발견된다. 인과관계를 명확하게 설명하는 데에는 아직 한계가 있지만 관련이 있다는 이야기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을 정도로 빈번하게 관찰되는 현실이다.

그런데도 그 게임에서 벗어나 공부를 다시금 하는 그 결과가 어떻게 가능했는가를 우리는 흔히 무심결에 합리적 사고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결과와 원인이 혼동되고 있는 순간이며 심리학에서 종종 강조되는 말이다. 즉, 결과가 합리적이니까 과정도 당연히 논리와 이성에 전적으로 의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추정을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 과정에서는 정서의 역할이 더 결정적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비합리적인 것을 고칠 때도 마찬가지이다. 비합리적이기 때문에 고쳐야 한다는 논리적 생각 중간에는 그 비합리적인 측면에 대한 분노, 짜증, 혹은 불편함이라는 정서가 뒷받침돼 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무언가 변화를 만들어내고자 하는 생각과 의지가 발현될 여지가 생길 리 없다. 따라서 못지않게 중요한 또 다른 점은 정서와 합리성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따로 떨어져 있는 독립적인 것이 아니다.


행복을 위해 축적되는 경험적 데이터로서의 정서



사람들에게 물어본다. “당신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 혹은 목표는 무엇입니까?”라고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주 쉽고 빠르게 이렇게 대답한다. ‘행복’이라고. 당연히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면 당신에게 행복이란 무엇입니까?”라고 다시 질문을 던지면 이제 사람들은 대답을 어려워한다. 즉, 결과는 막연하게 추정하지만 그 방법에 이르는 것은 여전히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긍정심리학자들은 이 이유를 사람들이 행복에 대해 이성과 논리로 최종 결과에 해당하는 것들을 머리로만 생각해왔기 때문이며 따라서 삶의 과정에서 어떤 경우에 어떤 만큼의 무엇을 가지거나 경험해야 나를 진정으로 기쁘고 행복하게 만드는지에 대해서는 아주 취약하기 때문이라고 말해준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는 상당부분 다양한 종류의 정서를 경험하는 것에 기꺼운 마음으로 내가 지금 가진 것(그것이 시간이든, 재물이든, 아니면 노력이든)을 투자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수많은 심리학자들이 기억력, 계산 능력과 같은 단편적인 사고 능력을 보여주는 지능지수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능력이 감정과 정서를 아우르는 감성지수라고 말하는 이유도 결국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 인생의 궁극적 목적인 행복이 삼단논법의 결과에 해당하는 것처럼 분명하고 뚜렷하게 그리고 단번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르게 태어난 사람마다 각기 다른 판단의 잣대로 행복이라는 보편적인 목표를 바라보면서 각기 다른 길에서 무언가를 느껴가면서 만들어가는 축적과 변화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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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생의 궁극적 목적인 행복은 삼단논법의 결과에 해당하는 것처럼 분명하고 뚜렷하게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른 판단의 잣대로 행복이라는 보편적인 목표를 바라보면서 각기 다른 길로 만들어가는 축적과 변화의 과정이다.

<출처: gettyimages>


본 캐스트의 필자가 담당하고 있는 부분 직전까지는 주로 창의성과 관련된 측면들을 알아보았다. 이제부터는 인간의 판단과 의사결정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본 캐스트의 목적이 시중에 흔한 자기 개발서적과는 분명 다르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좋은 판단과 의사결정에 이르냐는 것을 추상적인 말투로 나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판단과 의사결정이라는 주제를 통해 인간의 본질적 측면에 한발이라도 더 다가가보면서 우리 자신을 좀 더 잘 이해해보는 기회로 삼아볼 것이다.

다음 편에서는 그 첫걸음으로 인간이 무엇인가를 판단하고 결정할 때 어떤 측면들을 근거로 하는가를 살펴볼 것이다. 미리 살짝 그 내용을 귀띔해 드린다면 다음과 같다. 그 근거들은 우리가 지금까지 생각해 왔던 것과는 사뭇 다른 양상들을 보인다는 것이 심리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어떤 경우에는 만족과 기쁨 지향적이며 또 다른 어떤 상황에서는 불안 회피적 경향을 강하게 보인다. 합리적 판단 자체는 그다지 중요한 목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잘 알아보기 위해 오류와 편향이라는 인간의 판단과 의사결정에 고집스럽게 개입하는 측면들을 동시에 살펴보면서 내용을 진행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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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일 |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고려대학교에서 심리학 석사를 받았으며 미국 University of Texas - Austin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국제학술논문지에 Preference and the specificity of goals (2007), Self-construal and the processing of covariation information in causalreasoning(2007) 등을 발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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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2012.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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