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전문가와 초보자 - 사려 깊은 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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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14회 작성일 16-02-06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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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 달인’이라는 프로그램을 보면, 야구 배트 만들기부터 명품 가방 구별해 내는 것까지 여러 직업의 세계에서 숙달의 최고 경지를 이룬 많은 사람들이 나온다. 그리고 그들이 보이는 행동에 감탄을 금할 수가 없다. 어떻게 저런 수준에 이를 수가 있었을까, 도대체 어떻게 뭘 했기에, 얼마나 많은 훈련과 연습을 했을까, 오랜 시간 동안 반복하다 보면 그렇게 될까, 등등 여러 의문이 생길 것이다. 그런가 하면, 어떤 분야에 소위 말하는 전문가라는 사람이 나와 강연을 하는 것을 듣다 보면, 관련 서적 몇 권 읽었는지 아니면 인터넷 검색으로 얻은 것인지, 내용도 없고 깊이도 없어 실망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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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그들은 어떤 특성을 가진 사람들일까? <출처: gettyimages>


어떤 사람이 전문가일까? 전문성의 기본적인 특성은 무엇일까? 이 번 글에서는 전문가와 초보자의 차이, 전문가의 특성에 관한 심리학 연구 결과를 정리 해보자. 전문성이라는 주제 자체는, 사고 과정과 문제해결 과정에 시사를 주기에 심리학자들이 관심을 갖기도 하지만, ‘가르치고 배우기’ 과정에도 커다란 시사를 준다. 심리학자 브랜스포드의 표현을 빌리자면, “성공적인 학습의 결과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전문성에 관한 연구 결과가 보여주기 때문이다. 심리학자들은 전문가의 특성을 다음처럼 정리한다.

1. 전문가는 어떤 한 영역에 관해 굉장히 많은 내용 지식을 습득해 갖고 있으며, 이 지식들이 체계적으로 잘 정리되어 있다. 그래서 그 주제를 깊게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2. 전문가는, 초보자와는 달리, 정보의 의미 있는 패턴이나 속성을 알아챌 수 있다.


3. 전문가의 지식은 단편적인 사실들의 집합이 아니며, 적용 가능한 맥락도 포함한다. 즉 상황에 맞춰져 있다.


4. 전문가는 자신이 처음 접하는 새로운 문제 해결 상황에서도, 자신의 제한을 깨닫고 극복하기 위한 융통성을 발휘한다.


잘 정리된 지식



이 네 가지 중 전문가의 첫 번째의 특성에 대해서는 독자들도 쉽게 수긍이 갈 것이다. 필자가 네이버캐스트에서 이미 설명했던 ‘지식효과’와 ‘체계적인 정리’가 바로 전문가가 갖고 있는 지식의 특성이 되는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당연하다. 잘 정리된 풍부한 지식을 갖지 않고 어떻게 전문가라고 하겠는가. 실제 물리학 전문가와 초보자(대학생)들에게 여러 물리학 문제들을 어떻게 접근하는지 보고하게 하면, 전문가들은 문제 해결에 적용되는 원리나 법칙을 언급하고, 왜 그 원리나 법칙들이 적용되어야 하는지를 설명한다고 한다. 말하자면 전문가들의 지식은 물리학에서 가장 주된 생각이나 개념(예, 뉴턴의 제2법칙)을 중심으로 체계적인 정리가 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의미 있는 패턴을 읽어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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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와 초보자는 같은 체스판을 보고 있어도 전혀 다른 것을 읽고 있는 셈이다.

<출처: gettyimages>


서양장기의 대가, A급 선수, 초보자를 비교한 연구가 두 번째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 이들 세 집단의 사람들에게 실제 체스가 진행 중인 체스 판을 5초 동안 보도록 한 후, 판을 가리고 다른 판에 체스말의 배열을 기억해 내라고(즉 복기하라고) 한다. 그리고 이 시행을 반복하면서 정확하게 기억해낸 말들의 수를 그래프로 나타낸 결과가 다음 그림에 제시되어 있다. 역시 장기 대가는 16개로, 8개인 A급 선수나 4개 기억해낸 초보자보다 월등하다. 그리고 대가는 거의 네 번째 만에 25개 전부를 기억해 낸다. 왜 대가라는 사람이 잘 기억해 낼 수 있었을까? 다음 실험이 힌트를 준다. 이번에는 실제 장기가 진행 중인 판이 아닌 무선적으로 말들을 배열한 장기판에 대해 같은 방식으로 실험을 했다.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독자들도 예상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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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르게 기억해낸 말의 수, 시행, 대가, A급 선수, 초보자


모르겠다. 이번에는 대가, A급 선수, 초보자 모두 서너 개 정도의 말들만을 기억해 냈다. 왜 이런 차이가 나왔을까? 장기의 대가들은 실제 진행 중인 게임 판에서는 현재 어떻게 공격이 진행되는지, 어떤 전략이 사용되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대응이 일어나는지와 같은 ‘의미 있는 패턴’을 읽어낸 것이고, 이를 말들의 배열에 대한 기억에 사용한 것이다. 물론 무선적인 게임 판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과정이기에, 전문가도 초보자와 같이 단기기억의 용량 한계에 떨어지고 만다. 전자 회로판, 방사선 사진, 컴퓨터 프로그램 등을 가지고 한 실험에서도 유사한 결과가 나온다고 한다. 말하자면, 전문가와 초보자는 같은 그림(정보)을 보고 있지만 사실은 전혀 다른 것을 읽고 있는 셈이다.


상황에 맞는 지식



전문가의 세 번째 특징은 단순히 지식이 많다는 것뿐만 아니라, 특정한 맥락 혹은 과제에 적절한 지식을 인출하는데, 즉 끄집어내는 것에 능통하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지식이 조건에 맞추어져 있는 즉 유용한 맥락이 규정되어 있는 지식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서양장기 대가들이 말을 움직이는 과정을 보면, 초보자와 같이 주어진 상황에서 옮길 수 있는 모든 경우들을 고려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단지 가장 최선의 선택이라고 할 수 있는 즉 주어진 상황에 최적의 이동을 선택한다고 한다.

이렇게 유용한 맥락이나 과제에 맞추어지지 않은 초보자의 지식은 말하자면 터지지 않는 불발탄 지식 즉 비활성화 지식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학생들이 여러 물리학 공식들을 암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각각이 적용되는 조건을 몰라 문제를 풀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 하다. 필자는 강의 중에 여러 이론이나 연구 결과를 설명하며, 이것들이 어떤 상황이나 문제에 적용될 수 있는지를 거의 강박적으로 여러 예들을 들며 설명하려고 노력한다. 불발탄으로 떨어져 버릴 지식을 만들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적응적인 전문성



전문가는 단순히 판에 박힌 기계적인 기술을 넘어서는, 보다 적응적인 즉 외적인 요구에 적응할 수 있는 융통성 있는 기술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TV 프로그램에서도, 달인에게 전혀 다른 상황에서 자신의 전문성을 보일 수 있는 도전 과제를 주고 이에 대한 성공 여부로 진정한 달인으로 인정하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즉 현재 통달한 과제를 넘어서는, 그러면서도 공통적인 속성이 있는 과제 수행을 통해 진정한 전문성을 평가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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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통적인 속성이 있는 과제 수행을 통해 진정한 전문성을 평가할 수 있다. <출처: gettyimages>


“링컨에 관한 그리고 그의 노예 제도에 관한 문헌”을 읽고 이를 해석하는 작업을, 링컨 연구 전문가와, 전공이 다른 역사학자(예를 들어 중국사 전공)와, 고등학교 역사교사가 될 사람들에게 시키고 비교한 연구가 있다. 물론 링컨 전공자가 링컨에 관한 풍부하고 자세한 지식으로 쉽게 해석하는 작업을 했다. 관심은 전공이 다른 역사학자로, 이들은 처음에는 초보 교사와 마찬가지로 상충되는 세부적인 내용에 혼란스러워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은 처음 내린 해석의 문제점을 다시 검토하고, 상충되는 것들을 해소하기 위한 자료 검토와 검색을 시도했다고 한다. 그리고 마침내 링컨 전공자와 같은 해석의 틀을 만들어 냈다고 한다. 반면 초보 교사들은 처음 해석의 수준을 넘어 이 수준에까지 도달하지 못했다고 한다.

현재 지식이 부족한 링컨에 관한 문제에서는, 자신의 역사 전문성이 적용되지 않았지만, 자신의 현 수준의 이해 정도를 점검하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적응적인 전문성이 이 중국사 전공자에게서 나타난 것이다. 이러한 특성은 자신의 이해와 인지 과정을 점검하고, 이에 대한 적응적인 제어를 시도하는 우리의 ‘메타인지’ 기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네이버캐스트를 통해, ‘또 다른 지적 능력: 메타인지’를 읽은 독자들이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다음 기회로 미룬다.


사려 깊은 훈련



그러면 어떻게 위에서 얘기한 것과 같은 수준의 전문성에 도달할 것인가를 생각해보자. 우리는 보통 한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적어도 10여 년의 경험이 필요하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정말 세월이 전문가를 만들어 주는 것일까? 골프 시작한지 10년 넘은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닐 텐데, 이들을 모두 전문가라고 할 수 있을까? 전문성을 30여년 넘게 연구해온 ‘전문성에 관한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에릭슨교수는 전문성을 발달시키기 위해서는(특히 세계적인 수준의) 사려 깊은 훈련(deliberate practice)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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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연구들은 최고 수준의 수행을 보이는 음악가나 예술가들이 바로 사려 깊은 훈련의 결과라는 것을 보여준다.

<출처: gettyimages>


사려 깊은 훈련이란 자신이 잘하지 못하는 것 혹은 전혀 하지 못하는 것을 하기 위한 상당한, 그리고 구체적이며 지속적인 노력을 포함하는 훈련이다. 골프장에서 연습하는 사람은 두 종류라는 농담이 있다. 대부분은 헬스 하러 온 사람이고, 진짜 골프 연습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땀을 뻘뻘 흘리며 주어진 시간 동안 아무 생각 없이 열심히 헬스는 했지만 실제 골프 연습은 하나도 하지 않은 것이다.

필자가 ‘사려 깊은’이란 용어로 번역한 이유도 사실 훈련과 연습이 사려 깊게 생각하며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일련의 과정을 기대했는데, 무엇이 잘못되었으며, 이 실수를 피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평가하는 작업이 동반되어야 한다. 그러기에 최고의 주의 집중이 동반되는 서너 시간의 사려 깊은 훈련이 필요하게 된다.

실제 연구들은 최고 수준의 수행을 보이는 음악가나 예술가들이 바로 이런 훈련의 결과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건설적이며, 때로는 신랄한 피드백을 주는 교사, 코치나 멘토의 지도가 있다는 것도 보여준다. 자발적으로 사려 깊은 훈련을 기획하고 연습한다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스스로 하는 훈련이 불가능한 것은 아닐 것이다. 훌륭한 코치들은 어느 단계에서는 더 자신의 피드백이 필요 없도록 학생을 가르친다고 한다. 즉 학생 자신 스스로가 자신의 코치가 되도록 한다.

가르치고 배우기에 주는 시사는 단순하다. 한 번에 서너 시간 동안 최고의 집중으로 이루어지는 십여 년에 걸친 사려 깊은 훈련이 우리를 전문가로 만드는 것이다.


참고문헌


  • Bransford, J. D., Brown, A. l., Cocking, R. R. (2000). How people learn. National Academic Press.
  • Ericsson, K. A., Prietula, M. J., & Cokely, E. (2007). The making of an expert. Harvard Business Review, July-August. 115-121.




김영진 |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심리학 석사학위를 받고 미국 켄트주립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로 있으며 [인지공학심리학:인간-시스템 상호작용의 이해], [언어심리학], [인지심리학], [현대심리학개론] 등의 저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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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2012.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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