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파블로프 조건화 - 학습의 바탕, 연결짓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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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68회 작성일 16-02-06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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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삼국지에서 읽었던 조조 이야기가 어렴풋이 생각난다. 짧게 줄여보자. 조조가 군사를 데리고 적을 공격하러 갔는데, 적들이 성안에 꼼짝하지 않고 버티는 바람에 공격도 제대로 못한 상태에서 가져간 식량과 물이 바닥나게 되었다. 굶주리고 목이 탄 병사들이 급기야 반란을 도모하려 하자, 위험을 감지한 조조가 모든 병사들을 모아 놓고, 자신의 집 뒷마당에 있던 살구나무 열매 얘기를 실감나게 해주었다는 것이다. 이를 듣던 병사들의 입에 침이 흥건히 고여 갈증을 해소하게 되었고, 이때를 이용해 성을 공격하여 함락시켰다는 만화 같은 이야기이다. 독자들은, 이미 이 얘기가 고등학교 생물학 시간에 배웠으며, 러시아 생리학자인 파블로프가 체계적으로 연구한 개의 조건반사를 말한다는 것을 파악했을 것이다. 음식은 당연히 침을 분비하게 하고(반사), 음식물과 연관된 소리, 이야기 등도 역시 침을 분비하게 한다는 것이다. 조조도 이를 알고 있었으며,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신의 리더십에 이 원리를 활용까지 한 셈이니 조조도 아마 심리학개론을 수강한 모양이다.



조건반사와 학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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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블로프의 조건반사


우선 몇 가지 용어를 정리하자. 유기체가(인간이나 동물) 환경과 상호작용 할 때, 유기체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들을 모두 합쳐, 심리학자들은 자극(stimulus, 이 단어는 어원상으로 양치기가 양을 몰 때 쓰는 뾰족한 막대기를 의미했다고 한다)이라고 부르며, 이에 대한 유기체의 대응을 반응(response)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자극-반응 관계 중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것을 ‘무조건 자극-반응(반사)’이라고 부른다. ‘음식물-침 분비’가 반사의 예이다. 그리고 무조건 자극(음식물)이 새로운 자극(혹은 조건자극, 예, 소리)과 연결되며, 침을 분비하게 되는 과정을 조건화(형성)이라고 부른다. 이런 단순한 연결 짓기 과정 즉 조건형성 과정이, 우리 인간의 ‘경험을 통한 행동의 변화라는 의미의 학습(learning) 과정’의 기본적인 밑바탕 원리의 하나 일 수 있겠다는 깨달음 때문에 심리학자들은 이 조건형성 과정에 관심을 가져왔다. 독자들과 이를 공유하는 것이 본 글의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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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슨의 실험


파블로프의 조건반사를 인간행동에 적용한 선구자가 왓슨(Watson)이다. 그는 알버트라는 9개월 된 건강한 아이를 ‘흰 쥐에 대한 공포 환자’로 학습시켰다. 그 과정은 단순하다. 아이에게 실험용으로 사용하는 흰 쥐를 보여주고 아이가 관심을 보이고 만지려고 할 때마다 막대기로 큰소리를 들려준다. 몇 번을 반복하면, 결국 아이는흰 쥐만 봐도 울고, 피하려는 소위 공포 반응을 보이게 된다. 이 상황을 차근차근 분석해 보자. 큰소리는 깜짝 놀라는 반응을 일으키고(무조건 자극-반응), 호기심의 대상이던 흰 쥐(사실 귀엽기까지 한 새로운 자극)가 연결 되며 놀라는 공포반응이 학습된 것이다. 왓슨은 이를 통해 파블로프의 조건형성이 단순히 동물의 침 분비의 문제가 아니며, 인간의 특정 대상에 대한 불안, 공포 등과 같은 복잡한 정서 반응 획득의 기본 원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 것이다. “아니, 갓난쟁이를 환자로 만들다니”하면서 분노할 독자가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염려할 필요는 없다. 논리적으로 명쾌한 해결책이 있을 수 있다. 흰 쥐에 대한 공포 반응은 학습된 것이기에 새로운 학습 경험으로, 즉 동일한 조건형성의 원리를 사용하여 흰 쥐를 공포의 대상이 아니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러한 생각이, 학습 원리를 이용한 부적응 문제의 치료 방법인 행동수정 치료법의 기본이 된다. 본 글에서는 자세히 설명하지 않겠지만, 행동수정 기법의 하나인 체계적 둔감법, 즉 불안과 공포와 양립할 수 없는 반응을 점진적으로 강화하는 방법으로 공포 반응은 극복될 수 있다.



한 번의 경험만으로도 혐오학습이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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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에 대한 혐오도 역시 생존에 필수적이기에 단 한 번의 체험만으로도 학습이 이루어지기에 충분하다. <출처 : NGD>


우리들에게는 토하기, 재채기, 근육의 움직임 등 수십여 가지의 무조건 반사가 있다. 흥미롭게도 유아들은 빨기, 움켜잡기 등 성인보다 더 많은 종류의 반사를 갖고 태어나며, 커가며 이것들이 없어진다고 한다. 아마도 반사의 기능이 유아의 생존에 필수적이기에, 적응의 기제로 선택된 것이라고 진화론을 빌려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를 잘 보여주는 예가 특정 음식을 싫어하거나 좋아하는 것이다. 특히 어떤 음식에 대한 혐오는 아주 흥미로운 탐구거리가 된다. 필자도 요사이는 극복했지만 감을 못 먹고 싫어했던 적이 있다. 가르시아(Garsia)라는 심리학자는 쥐들에게 보통 물과 단맛이 나는 물을 제공하여 골라 먹도록 하였다. 물론 쥐들도 단맛이 나는 물을 좋아하고 선택한다. 그 후 연구자는 쥐가 단맛이 나는 물을 마실 때마다 감마 방사선에 노출 시켰다. 방사선은 구역질을 일으키기 위한 것이었다. 어떻게 되었을까? 쥐들은 단맛을 회피하는 반응을 보였으며, 노출된 방사선 수준이 높을수록 단물에 대한 혐오 반응이 심했다. 이를 ‘조건 형성된 맛(미각) 혐오 반응’이라고 부른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단맛과 방사선의 연결이 한 번밖에 연결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즉 한 번의 경험만으로도 혐오학습이 이루어진 것이다. 앞서 얘기했던 것처럼, 우리의 생존에 반사가 필수적이라면, 이와 관련한 음식에 대한 혐오도 역시 생존에 필수적이기에 단 한 번의 체험만으로도 학습이 이루어지기에 충분한 것이다. ‘맛보고 배 아프고, 맛보고 배 아프고'를 반복해야만 학습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비효율적이겠는가? 아니 반복하기도 전에 음식에 포함된 독소로 죽었을지도 모른다.

삼국지의 조조처럼 이 맛 혐오 학습을 적용을 해볼 수는 없을까? 이러한 맛 혐오학습을 뒤집어 생각해보자. 요사이 농작물을 재배하는 사람들은 야생 동물의 피해 때문에 고민한다고 한다. 애써 키운 농작물을 고라니 같은 야생 동물들이 먹어치우고, 요즘 자주 출몰한다는 멧돼지는 아예 농작물 밭을 뒤집어 엉망으로 만들어 놓기 때문이다. 사냥을 허용하고 동물들을 죽이는 수밖에 없을까? 동물들에게 농작물에 대한 맛 혐오 학습을 시켜보면 어떨까? 물론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외국에는 여러 사례가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성공적으로 시도된 적이 있다. 관심 있는 독자는 KBS의 환경스페셜 100회 특집 ‘공존 실험: 까치(2001년 10월 3일)’를 찾아보기 바란다. 짧게 요약한다. 배 과수원에서 까치가 말썽을 일으킨다. 한두 개쯤 먹는 것을 주인도 뭐라고 하겠냐만, 문제는 배 여러 개를 조금씩 쪼아 먹어 상품성 자체를 없애는 것이다. 전문가의 조언을 받아 우선 까치에게 배 조각을 먹게 하고, 나중에 배 속에 약품을 넣어 구토를 일으키게 하고, 결국 배를 피하게 되는, 과수원 배나무에 달린 배에 가까이 가지도 않는 일련의 과정이 그려지고 있다. 맛 혐오 학습으로 과수원 주인과 까치가 함께 같은 자연 공간을 공유하며 평화롭게 공존하는 길을 찾은 것이다. 실험실이 아닌 자연 환경에서 이를 구현하는 작업이 쉬운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면역체계도 학습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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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역체계가 학습이 된다는 것은 중추신경계와 면역체계가 독립적이지 않으며 어떤 방식으로든 상호작용한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출처 : NGD>


애더(Ader)라는 심리학자가 비슷한 실험을 하다 발견한 우연한 결과로 넘어가기로 하자. 애더도 쥐에게 소량의 사카린 단물을 준 후, 구토제인 시클로포스파미드(cyclophosphamide)를 주사하였다. 그리고 기대한 대로 주사를 한번만 주었는데도 사카린물이 구토반응과 연합되어 쥐들이 단물을 피하게 만들었다. 그 후 구토제 주사 없이 사카린 물을 먹게 했는데, 건강했던 쥐들이 시름시름 앓으면서 죽어나가는 것이었다.이 이유를 조사하다 애더는 구토 유발 약물이 쥐의 면역체계도 억제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며, 약물이 바이러스나 균과 싸우는 면역세포인 T-세포의 수를 낮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약물(무조건 자극)은 한번만 준 것이고, 단지 사카린 물을 마시게 한 것 밖에 없기에, 애더는 사카린 맛(새로운 자극)과 약물이 연결되어 사카린 맛만으로 T-세포를 억제하게 만드는 파블로프 조건형성 즉 학습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이 생각은 면역학자들과의 공동 연구를 통해 다시 확인되었고, 면역체계도 학습이 된다는 것을 보여준 최초의 연구가 된다. 이 연구 결과는 몇 가지 점에서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심리적 경험은 중추 신경계를 통해 학습이 이루어진다. 앞에서 언급했던 알버트 공포 반응도 뇌의 편도체의 중심핵에서 이루어진다고 한다. 그런데 면역체계가 학습이 된다는 것은 중추신경계와 면역체계가 독립적이지 않으며 어떤 방식으로든 상호작용한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러기에 이런 발견으로, 마음의 작용(psycho), 신경내분비계(neuro), 면역학(immunology)을 하나로 묶는 연구 분야 (psychoneuroimmunology)가 탄생하게 된다. 우리 마음의 작용이나 정서 상태가 중추신경계의 뇌세포에서 어떤 신경전달물질이나 호르몬을 분비하게 하고, 이들이 우리의 신체적 건강에 어떻게 영향을 끼치게 되는지를 탐구하는 길을 열어 놓게 된 것이다. 물론 이 연결 고리가 모두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마음과 몸의 관련성을 이해하는 시발점이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독자 여러분들은 이제, 단순히 두 자극을 연결시키는 단순한 기제가, 우리 인간의 경험에 의한 여러 다양한 행동 변화 즉 학습 과정을 설명해줄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물론 우리 인간의 다양하고 복잡한 배움 즉 학습 과정은 반사에 기초하는 수동적인 파블로프 조건형성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능동적인 환경 조작과 강화, 내적인 인지 구조의 변화 등 학습의 다른 측면도 살펴보아야 하며 이는 나중에 얘기할 주제가 된다.




김영진 |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심리학 석사학위를 받고 미국 켄트주립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로 있으며 [인지공학심리학:인간-시스템 상호작용의 이해], [언어심리학], [인지심리학], [현대심리학개론] 등의 저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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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2011.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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