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역사 팔렘방전투 2 - 팔렘방 전투(2) 기습적인 공수부대 투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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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74회 작성일 16-02-07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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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송기 탑승 직전. 위생병으로 보이는 낙하산병





매연이 방해한 사전 탐지



일본의 공수 침투는 완전한 기습이었다. 태평양 전쟁 이래 수마트라 북부에 배치된 영국 공군과 미 해군의 PBY카타리나 비행정이 수마트라 근해에 집중적인 초계 비행을 했었고, 해안 요소요소에 대공 감시 초소와 요원들이 배치되었는데도, 대규모 편대에다가 속도가 느리고 저공비행을 하던 일본 수송기들을 발견하지 못했던 것은 연합국 측에 불행이었다.

이것은 북쪽 보르네오 지역과 셀레베스 지역의 각 유정 파괴를 목적으로 방화한 불길과 함락 직전의 싱가포르 유류 저장소의 화재에서 발생한 검은 연기들이 수마트라 일대의 넓은 지역을 담요처럼 덮어 버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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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당하고 있는 팔렘방 - 사방에 화재가 일고 있다



일본군 수송기 부대는 항로가 연기 때문에 비행 시계는 불량하였지만 예정대로 팔렘방 P1비행장 상공에 도착하여 병력을 강하시켰다.

시각은 11시 30분이었다. 일본 낙하산병이 최초 공수되고 2시간이 지나 2식 수송기들이 더 나타나 P1 비행장 서쪽 지역에 60명의 추가 낙하산병을 투하했다.

일본 낙하산병들이 이쪽 늪지대를 장악한 후 정진단장 구메(久米) 대좌가 탄 단장기가 강행 불시착하여 그와 작은 37mm 속사포 한 문을 내려놓았다.

낙하산 부대는 강하 직후 집결하는 부대 순으로 즉시 비행장을 강습하였다. 선두 낙하산 부대의 대다수 대원이 기상천외한 공격을 하였다.

비행 제98전대의 97식 중폭격기들이 별도로 투하한 무기와 탄약을 미처 회수하지 못하고 단지 휴대한 권총과 수류탄으로 전투를 벌였다.

불완전하지만 틈을 내주지 않는 기선 제압이 필요하다고 판단해서였다. 이들 낙하산병들은 모두 94식 권총과 99식 총을 반으로 접을 수 있는 2식 소총, 그리고 일부는 일본군이 말라야 작전에서 노획했던 600정의 미국제 톰슨 기관단총중 일부를 지급 받았다.

뜻밖의 일본 낙하산 부대 출현에 항공대 본부는 급히 비행장을 폐쇄하고 멀리 출격하였던 허리케인 전투기들을 P-1 비행장 근처로 긴급 이동하여 일본 수송기나 강하한 낙하산병들을 섬멸하도록 명령하였다(착륙한 허리케인들은 연료와 기총탄을 모두 소진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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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식 소총





연합군 항공대의 탈출



P-1 비행장에 방금 착륙한 항공기 승무원들은 일본 낙하산병들이 천천히 강하하는 것을 보고 경악을 했다. 그들은 항공기에 뛰어올라 즉각 이륙했다. 또한 지상 요원중에 희망자가 있으면 탑승시켜 주었다.

아직 귀환하지 못한 항공기에는 일본군이 공격하고 있지 않은 P2 비행장으로 가도록 긴급 지시를 했다.

명령을 받은 P1 비행장 상공으로 달려온 허리케인 한 기는 멀어지는 일본군 수송기 편대를 추격하여 한 기를 추격해서 격추시켰다.

P1 비행장으로 돌아 온 허리케인기들은 비행장 주변 지상에 강하한 일본군 낙하산병들을 기총소사 하였다.

한편 3기의 허리케인들이 무선 통신에 오류가 있어 폐쇄한 P1 비행장에 잘못 내렸다가 상황을 알아채고 급히 이륙하여 P2 비행장으로 이동하였다. 이들이 착륙했을 때는 연료 탱크가 거의 비어있는 상태였다.

이러한 대 혼란 속에서 바타비아 기지에서 팔렘방 기지로 이동을 명령받은 488 영국 전투기 대대 소속 9기의 허리케인기들은 영문도 모르고 P1 기지에 도착했다.

이들 전투기들은 이동 목적이었기에 아무런 무장을 하지 않았다. 게다가 연료도 다 떨어진 상태였다. 가토 부대의 하야부사들이 이중 2기를 격추하였다.

4기는 P1 비행장에 강행 착륙을 하고 필사적인 속도로 재급유를 받은 뒤에 이륙하여 P2 비행장으로 도피했다. 두 기는 P2 비행장을 찾지 못해 정글에 불시착을 했다.



P1 비행장의 점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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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하중인 일본 낙하산병





일본 낙하산병의 낙하산과 장비 배낭




P1 비행장에서 영국, 네덜란드 연합군은 일본군의 공격을 격퇴하며 버텨냈다. 조종사들은 낮과 밤사이에 모두 피신하고 비행장은 단 60명 정도의 무장 병력이 방어하고 있었을 따름이다.

전투가 개시되자 팔렘방 시내에서 장갑차 부대의 엄호아래 500명의 증원부대가 P1 비행장으로 달려왔다.

전투는 치열하였다. 새로 증파된 뉴질랜드 공군 조종사들 중 일부는 육상전투 훈련도 받지 못했고 제대로 무장도 못했으나 육상 전투에 휘말려야 했다.

밤이 되자 연합군은 결단을 내렸다. 더 이상의 전투는 무리였다. 비행장을 포기하여야 했다.

비행 불능 상태의 전투기는 모두 파괴해버리고 비행장에 보유 중이던 44갤런 드럼의 항공유는 모두 모아 불을 지르고 후퇴를 하였다. 일본 낙하산 부대는 밤 21시경 P1비행장을 확보하였다.

다음날 15일 오후 2시경 P1 비행장 상공에서 허리케인 전투기 부대가 당했던 것보다 더 황당한 일이 팔렘방의 다른 비행장인 P2 비행장 부근 상공에서 발생하였다.

P2 기지로 귀환하던 영국 공군 211 비행대대의 브렌하임 폭격기들은 기지 인근 로얄 더치 쉘(Royal Dutch Shell)사의 정유 공장 상공에서 강하하는 일본군 낙하산병들 사이를 뚫고 비행하여야 했다.

이날 일본군 정진단의 추가 90명이 프라드조라는 지역에 자리 잡은 정유공장 서쪽에 공수되었던 것이다. 이곳은 팔렘방 시가지 남측이었으며 습지였다.

일본 낙하산병들은 프라더조 정유 공장을 가동 가능상태로 점령하려고 시도했다. 정유공장 점령 임무를 받은 일본 낙하산 병들은 일단 점령을 해서 임무는 달성했다.

그러나 소수인 낙하산병들은 점령한 정유공장들을 장시간 확보하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네덜란드 랜드스톰 부대와 P2 비행장의 대공포대 장병들로 급조한 부대가 반격하여 큰 피해를 무릅쓰고 정유공장을 되찾았다.

일본군은 정유공장 요소요소에 설치한 폭파장치는 모두 제거하였지만 네덜란드군의 반격에 밀림으로 철수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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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가 여러 곳으로 번지고 있는 팔렘방



연합군 측이 계획하였던 정유 시설 완전 파괴는 일본군의 발빠른 방해로 실패했다. 그러나 연합군 측은 유정에서 퍼내어 저장하고 있던 원유들의 소각작업을 성공하여 정유 공장 일대가 검은 연기로 뒤 덮여 버렸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일본군은 P2 비행장의 존재에 대해서 알고 있지 못했기 때문에 이 비행장은 공습이나 낙하산병들의 공격을 받지 않았다.

일본의 공중 강습을 당해 위기에 몰린 네덜란드령 동인도(오늘의 인도네시아) 지역에 파견된 연합군의 항공 세력은 이제 좁은 P2 비행장에 모두 집결하였다.

35기의 브렌하임 폭격기, 29기의 허드슨 폭격기, 그리고 22기의 허리케인 전투기들이었다. 항공기들은 대부분 P1에서 P2로 기지 이동을 한 영국 공군 266전투 비행단 소속들이었다.



일본 낙하산 부대의 팔렘방 시 공격



일본 낙하산 부대의 1파와 2파는 공수 기습 목표인 P1 비행장과 정유 공장의 폭파 저지를 완료한 뒤에 합동으로 팔렘방 시가지를 공격하였다.

일본 낙하산병들은 P1 비행장과 팔렘방을 잇는 도로 중간에 도로 차단 시설을 설치하고 통제하였다. 이 차단물을 두고 영국군과 일본군 사이에 여러 번 전투가 있으면서 주인이 바뀌었다.

일본군이 행한 도로 차단에 최초로 당한 차량은 영국군의 유류 수송차량이었다. 이 차는 매복 공격을 받고 불이 붙어서 밤까지 타올랐다.

나중에 이 지역을 통과했었던 한 영국 공군 사병은 불타버린 유조차 주변에 영국군, 네덜란드 군, 그리고 일본군의 전사체가 흩어져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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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에게 포로가 된 네덜란드 군



항공기들은 대부분 P1에서 P2로 기지 이동을 한 영국 공군 266전투 비행단 소속들이었다. 영국 공군 253 비행단의 한 정찰기가 팔렘방에 날아가 정찰 비행을 하였다.

팔렘방에서는 형형색색의 수많은 차량들이 P2 비행장을 쪽을 향하여 탈출하고 있었다. 팔렘방은 기름 연기가 시 전체의 상공을 덮고 있었다. 그날 밤, 몇 기의 허드슨기가 자바로 이동하라는 명령을 받고 비행장을 떠났다.



일본군의 강상(江上) 작전



다음 날 새벽 일본군의 공수 기습에 이어 아주 기발한 상륙정들의 기습이 뒤따랐다. 이들의 기습은 시내 중심을 흐르는 무시강 하류 100km 지점에서 시작되었다.

팔렘방 해안까지 다가온 수송선에서 발진한 발동정에 승선한 일본군들이 일대의 강들인 무시 강, 사랑 강, 테랑강들을 거슬러서 공격해왔다.

팔렘방 시는 무시강 상류 100키로 지점에 있었다. 이강은 길이 750 km의 길이에 팔렘방의 석유를 수송하는 유조선이 왕래할 수 있도록 준설이 되어 있어 수심이 6.5m 정도가 되었다.

일본군은 이 지리 정보를 미리 알고 대담하게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기습작전을 시도한 것이었다. 세계 전사에서 드문 상륙정들의 강상(江上) 작전이었다. 이미 승패는 결론이 나는 것 같았지만 전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영국 공군기들이 강으로 거슬러 올라오는 발동정들과 해안에 접근한 모선(母船)들인 수송선들을 폭격했다.

영국 공군의 허리케인 전투기 한 기가 일본 수송선인 오타와마루(Ottawa丸)를 공격하여 격침했다.

허리케인 전투기들은 강을 따라 수색하다가 일본군 병사들로 만재한 발동정을 발견하고 기총소사를 했다.

적 상륙 부대 공격임무를 끝낸 허리케인들은 명령대로 모두 자바 섬으로 날아갔다. P2 비행장의 비행기들 중에 전투에 투입을 할 수는 없지만 비행은 가능한 몇 기도 자바로 날아갔다. 2월 15일 P2 비행장의 모든 가동 가능 전투기들은 기지를 떠나 자바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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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렘방 시를 가로 질러 흐르는 무시강





공수 기습으로 마비 된 연합군 지휘체계



일본군이 당시로서는 첨단 공격 전술인 공수 작전은 소수의 병력만 전개했던 터라 비행장 점령과 정유공장 폭파 저지 외에 팔렘방 지역 방어군에게 괴멸적인 타격을 주지는 못했다고 평가해야 하지만 예상하지 못했던 일본군의 낙하산 강습은 방어하던 연합군측에 경악과 충격을 주어 전투 지휘 체계가 흔들리게 만들었다.

연합군의 장병들은 상황이 어떻게 될지 크게 불안해했고 지휘관들은 다음에 무슨 일이 있을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상황적으로 더 방어 하기는 힘들다고 판단을 내린 영국, 네덜란드, 연합국측은 1941년 2월 16일 월요일 저녁부터 남 수마트라 지역에서 철수를 개시하였고 일본군은 전략적으로 중요한 팔렘방 유전지대를 손에 넣었다.

1942년 2월 18일 일본군 제 38사단 주력이 도착하여 팔렘방 시 주변을 수색하고 팔렘방을 확고히 점령하였다.

투하한 일본군 정진단 소속 낙하산병 329명중 전사 39명 중상자 37명 경상자 11명의 손해를 기록하였다.

일본 대본영은 2월 15일 낙하산 부대가 팔렘방을 점령했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당시로서는 상당히 파격적인 낙하산 부대의 강습은 대대적으로 선전되었고 낙하산 부대원들은 ‘하늘의 신병(空の 神兵)’으로서 영화와 군가등에서 영웅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태평양 전쟁 최초와 최후의 공수작전



여기에 숨겨진 사실이 있었다. 사실 일본의 대대적인 선전 내용과는 달리 태평양 전쟁 중에 최초로 공수 작전을 감행한 작전은 이미 한달 전에 실행되었었다. 세계적으로 희귀한 해군의 공수작전이었다.

앞에서 소개했지만 일본 해군에도 공정 부대가 있었다. 1942년 1월 12일 해군 공정부대인 요코스카 제 특별 육전대 소속 낙하산병 334명이 지휘관 호리우치 도요아키(堀内豊秋)중좌의 지휘로 세레베스 섬 메나도 시 근교 랑고앙 비행장에 낙하하여 점령했었던 작전이 있었다.

그러나 일본 해군은 육군의 간청으로 이를 발표하지 않았었다. 서로 사이가 나빴지만 협조관계가 필요했었던 육군의 체면을 살려주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팔렘방 작전 성공 뒤에 일본 낙하산 부대는 보병 대대 규모를 유지하며 이후 몇 개의 작전을 성공시켰다. 그러나 다른 일본군의 부대처럼 낙하산 부대는 파국의 종점을 맞아야 했다.

1945년 5월 24일 의열 공정단원이란 호칭을 붙인 일본 공수부대 120명이 12기의 97식 폭격기에 탑승하고 오키나와를 점령한 미군의 북 비행장을 공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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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비행장을 불시착 강습한 일본 낙하산병의 97식 폭격기



오직 한 기의 97식 폭격기만이 불시착에 성공했다. 북 비행장 기습은 밤 열시에 이루어졌다.

8명의 낙하산병들이 기체에서 뛰쳐나와 기관단총과 수류탄들로 미군 2명을 사살하고 비행장에 계류중인 각종 미군기 26기를 파괴하고 연료 저장고를 방화했지만 모두 사살되었다. 이로써 일본군의 공정부대는 세계의 전사 속에서 영원히 사라졌다.

 




김창원 | 전사연구가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시라큐스 경영대학원에서 MBA를 취득했다. 장교로 군 복무, 기갑부대 전차 소대장을 지냈다. ‘울프 독’이라는 필명으로 전사와 역사를 다룬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국방부 정책·정보 블로그(N.A.R.A.)에 기고하고 있으며, 저서로 [공격 마케팅]이 있다


제공

유용원의 군사세계
http://bemil.chosun.com/



발행2013.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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