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역사 미드웨이 해전 (1942) 3 - 전쟁의 향방을 바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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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509회 작성일 16-02-07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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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웨이 공략도 <출처 : wikipedia>





SBD 급강하 폭격대의 추격



미 항모 3척의 뇌격대들이 일본 함대를 한 발도 명중시키지 못하고 괴멸의 비극을 맛보고 난 뒤에 클로렌스 웨이드 맥클러스키 소령이 지휘하는 엔터프라이즈의 급강하 폭격대 32기가 해역 상공에 진입하였다.

일본 기동함대가 이동했었기에 그의 폭격대는 먼저 출격했던 뇌격대와 달리 나구모 기동부대를 쉽게 접촉할 수가 없었다.

맥클러스키 소령은 일본 기동부대가 북방으로 이동했으리라고 판단하고 변침과 수색을 되풀이하며 북동쪽 바다를 뒤졌다.

함재기의 발진과 회수에 바람 방향이 중요한데 이 해전의 무대에서 북쪽에서 바람이 불어왔기 때문에 항모들이 함재기 발진을 위해서 이쪽으로 향했을 것이라는 그의 예감 때문이었다.

이들 폭격대는 연료 부족에 시달리면서도 수색을 계속하였다. 맥클러스키 대는 수색 도중에 일본 구축함 아라시를 만났다.

구축함 아라시는 일 전함 기리시마를 뇌격했던 미군 잠수함 노티러스에게 폭뢰 공격을 가하고 성공하지 못하자 전속력으로 나구모 기동부대를 향하여 되돌아가고 있었다.

맥클러스키 폭격대는 아라시의 항진방향에서 나구모 기동 부대의 위치를 추측할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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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공로를 세운 클로렌스 웨이더 맥클러스키 소령 <출처 : wikipedia>



10:24 드디어 폭격대는 나구모 기동부대를 발견하였다. 그의 폭격대에서 한 기는 불시착을 했고 한 기는 행방불명이 되어 총 30기가 역사적인 급강하 폭격에 가담하였다.

그의 폭격대만 공격에 참여한 것이 아니었다. 요크타운의 폭격대가 엔터프라이즈의 폭격대를 후속해왔다.

나구모 부대는 최악의 순간에 더블 펀치를 맞게 되었다. 맥스웰 레슬리 소령이 지휘하는 요크타운의 폭격대가 맥클러스키 소령의 폭격대를 후속하다가 목표 상공 근처에 도달하자 두 폭격대는 각기 다른 공격 방향으로 갈라졌다.

멕클러스키 소령과 레스리 소령은 공군 사관학교 동기생으로서 은연중에 호흡이 맞아 이런 기막힌 협공의 결과가 나온 것이었다.

맥클러스키 소령의 엔터프라이즈 공격대는 남서쪽 상공에서 돌입했고 맥스웰 레슬리 소령의 요크타운대는 북서쪽 상공에서 일본 기동함대에 돌격했다.

이 상공의 초계 제로 전투기들은 모두 남동쪽 저공으로 몰려가 있거나 항모에 착함하여 보급을 받거나 급유 중이었다.

항모 비행갑판이나 아래 격납고 안에는 연료 공급을 위한 연료 호스가 어지럽게 깔려있거나 여기저기에 예비기들이 무장전환을 하면서 그냥 방치한 폭탄이나 어뢰들이 어지럽게 널려있었다.

갑판에는 미드웨이 2차 공격대가 대기중이었다. 일본 항모들의 이런 상황은 최악의 상황을 가져왔다.



6 분 사이 격침된 일 항모 3 척



10:22 엔터프라이즈의 폭격대는 둘로 갈라져 두 척의 일본 항모에 급강하했다. 그러나 실상은 통신 오류로 두 편대가 급강하 해간 목표는 일본 항모 카가였다.

급강하 중에 자신들의 실수를 깨달은 리차드 할제 베스트 대위와 그의 두 윙맨은 급강하를 풀고 북쪽으로 방향을 돌려 기동부대 기함 아카키로 향했다.

“적기! 급강하!” 카가의 견시가 뒤늦게 미군기를 발견하고 비명을 지르듯 경고했다.

그러나 때는 늦었다. 거의 두 편대로부터 동시에 급강하 공격을 받은 항모 카가는 네 발의 직격탄을 받았다. 카가에 통제할 수없는 대화재가 발생하였다.

폭탄 한 발은 함교 부근에 낙하하여 함의 지휘부 간부 대부분을 전사시켰다. 불과 수분 후, 방향을 전환한 베스트 대위와 그의 두 윙맨은 아카키를 향하여 맹렬한 스피드로 급강하 하였다.

기함 아카키에 돌격하였던 세 기가 투하한 폭탄들 중에 명중한 폭탄은 단 한발이었다. 그러나 그 한 발이 아카키에 치명타를 입혔다.

운명의 한 발은 비행갑판 중앙 엘리베이터를 관통하고 함의 엔진 터빈에 맞았다. 이 폭발로 유발된 화재는 격납고로 퍼졌다.

화재는 연료와 폭탄을 적재한 항공기들로 가득 찬 상부 격납고 전체로 확산시켰다. 다른 한 발은 함의 후미 바로 근처에서 폭발하여 비행갑판을 위로 휘게 만들고 키를 파괴하는 치명상을 입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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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동부대 기함 아카키 –단 한발의 폭탄에 격침되었다. <출처 : wikipedia>



이 대폭발에 계류하였던 몇몇 제로 전투기가 뒤집어지고 맹장염 수술 후 갑판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후치다 미쓰오 중좌도 폭발에 휩쓸려 두 발에 골절상을 입었다.

엔터프라이즈 폭격대가 두 척의 항모를 해치우는 동시에 맥스 레스리 소령이 지휘하는 요크타운의 폭격대는 소류를 공격하여 세 발의 폭탄을 명중시켰다.

소류는 피격 항모중에 최대의 피해를 입고 불과 20분만에 총원 퇴함 명령이 내려졌다.

미 공격대는 히류도 공격했으나 명중탄을 내지는 못했었다. 기습에 성공했지만 미군 폭격대도 피해가 제법 커서 30기중에 14기가 격추되었다.

단 6분 만에 일본 기동부대는 결딴나고 역사는 바뀌었다. 소류와 카가는 함의 끝에서 끝까지 큰 화재가 발생하여 함을 급격히 태우며 퍼져 들어갔다.

직격탄을 한 발만 맞은 아카키는 화재의 확산 속도가 비교적 느렸지만 결국은 전체로 화재가 전파되어 함을 포기하게 되었다.

제 1 기동함대 지휘부의 나구모사령관과 구사카참모장, 그리고 겐다항공참모등은 경순양함 나가라로 피신하고 이 함에 지휘기를 걸었다.

일본 항모 세 척은 모두 침몰의 운명을 맞게 되었다. 격침된 세 척과 함께 조종사들을 포함 수많은 일본 해군의 수많은 군인들이 바다 속으로 사라졌다.

11:20 항모 3척 격침에 망연자실한 야마모토 사령관은 긴급지시를 하였다. 먼저 미드웨이 상륙병력의 수송선단을 북서쪽으로 철수시키고 동시에 알류샨 공략부대에 속한 제 2 기동부대의 경항모 호쇼와 류조를 남하시켜 나구모의 제 1 기동부대에 합류하게 하였다.

그러나 거리가 멀어서 이들의 합류는 6월 9일에나 있을 예정이었다. 우카키 참모장을 비롯한 참모들은 두 척의 항모를 북쪽으로 분산시켰던 것을 뼈저리게 후회할 수 밖에 없었다.

이 무렵 나구모는 야전(夜戰)으로 미군 기동함대를 격멸하기로 하고 야전의 준비를 명령하였다.



마지막 항모 히류[飛龍]의 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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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모나카 조이치 대위 <출처 : wikipedia>



10:24 미드웨이 출동 항모 중에 단 한 척의 생존 항모인 히류는 즉시 공격대를 발진시켰다. 첫 공격대는 고바야시대위가 지휘하고 6기의 전투기가 호위하는 18기의 급강하 폭격대였다.

일부 공격기들은 미드웨이 2 차 공격 발진 대기 중에 급히 출격하느라 대함 공격의 대형 폭탄으로 무장 전환을 하지 못하고 육상 공격용의 작은 250kg 폭탄을 그대로 달고 있었다.

중순양함 치쿠마에서 발진했었던 수상 정찰기 치쿠마 5호기가 요크타운의 위치를 정확히 알고 이들 히류 공격대를 유도하였다.

히류 공격대는 요크타운을 직격, 3발의 폭탄을 명중시켰고 폭격으로 요크타운은 비행갑판 중앙에 큰 구멍이 생기고 보일러실에도 피해를 안겼다. 몇 개의 대공 포대도 파괴되었다.

그러나 응급 팀이 한 시간 동안 필사적으로 노력하여 구멍을 메우고 보일러의 기능을 살려내 작전 가능 상태로 되돌려놓았다. 히류의 공격대가 치룬 대가도 컸다.

12기의 급강하 폭격기와 4기의 호위기가 이 공격에서 격추되었다. 한 시간 뒤에 히류의 2차 공격대가 다시 쇄도해왔다.

10기의 뇌격기와 6기의 전투기들이었다. 2 차 공격대 지휘관은 후치다 중좌대신 미드웨이 1 차 공격대를 지휘했던 도모나카대위였다.

그의 97식 함상공격기는 연료 탱크가 파손, 연료가 누출되어 귀환하지 못하는 편도 출격의 가능성이 확실했지만 폭탄대신 어뢰로 무장하고 출격하였다.

뇌격대는 양 쪽에서 어뢰 공격을 하였다. 대장 도모나카 대위는 대공 포화에 격추되어 전사했으나 2 차 공격대도 요크타운에 피해를 입혔다.

요크타운은 두 발의 어뢰를 맞고 엔진이 멎어버렸다. 함에 침수가 심해 요크타운 함은 26도 좌측으로 기울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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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뢰 공격에 당하는 요크타운 <출처 : wikipedia>



플렛처 제독은 중순양함 아스토리아 함으로 지휘부를 옮겨야 했다. 다행히 스플루언스 제독 휘하의 16 기동함대는 아무 피해도 입지 않았다.

2파 공격의 성공으로 침울했던 일본함대의 분위기가 일변하였다. 일 기동함대의 지휘부는 1파, 2파의 히류 공격대가 공격한 미 항모는 각각 다른 항모로 오판했다.

미 항모 두 척을 격침했으니 나머지 한 척만 찾아서 격침시키면 3척의 항모를 잃은 일본 기동부대의 복수를 할 수 있다고 믿었다.



히류의 격침



하지만 3파의 공격대를 발진시키기 전 미 기동함대의 공격대가 쇄도하였다. 그날 오후 요크타운의 정찰기는 히류를 발견하였다. 발견 보고에 미 기동부대의 엔터프라이즈가 즉각 폭격대를 발진시켰다.

요크타운 피격후 다른 항모로 피신하였던 요크타운의 급강하 폭격기 SBD기 10기가 이 폭격대에 합류하였다. 히류는 10기 이상의 제로 전투기의 공중 엄호를 받았지만 미 공격대는 초계망을 뚫고 히류에 급강하 공격을 가했다.

네 발의 폭탄이 히류를 강타하여 큰 화재가 나고 함의 기능이 정지되었다. 화재 진압에 실패한 히류는 승조원들을 다른 함으로 대피시켰다. 히류는 승조원들을 대피시키고 다음날까지 떠 있다가 침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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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격당한 히류 <출처 : wikipedia>



함대 사령관 야마쿠치 다몬 소장과 가쿠 도메오 함장은 함과 같이 운명을 같이 했다. 주력 항모 네 척을 잃고도 일본 함대는 수상함의 화력으로 적 함대를 격멸한다는 실현 난감한 목표를 가지고 북동쪽으로 항진을 계속하였다.



중순양함 미쿠마 격침



양 함대는 야전(夜戰)을 준비하였다. 한 쪽은 덤비고 한 쪽은 피하는 야전이었다.

요크타운의 피격후 중순양함 아스토리아로 지휘부를 이동했던 플렛처 제독은 그 곳에서 더 이상의 항공 작전 지휘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지휘권을 엔터프라이즈와 호넷을 지휘하는 기동함대 사령관 스플루언스 제독에게 넘겼다.

일본 함대가 아직도 미드웨이 공략의 욕심을 버리지 않고 야전을 시도하고 있다고 판단한 스플루언스는 일본 수상함들과의 야전(夜戰)을 회피하기 위해서 동쪽으로 후퇴를 했다.

일본 기동부대 사령관 나구모 중장은 주간의 참패를 야전으로 만회하고자 계속 동쪽으로 항진하면서 미 기동함대를 찾았다. 연합함대 야마모토 사령관은 중순양함 부대가 미드웨이섬을 포격하도록 따로 파견하였다.

그러나 스플루언스의 회피 기동으로 야전의 성공 가능성이 낮아지자 그는 전체 작전을 중지하고 함대를 서쪽 즉 일본 쪽으로 철수하였다. 야심차게 시작했던 그의 미드웨이 점령과 적 기동부대 격멸의 꿈은 물거품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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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미쿠마 <출처 : wikipedia>



해전 다음 날인 6월 5일 하루 동안 스플루언스의 기동부대는 야마모토의 함대와 접촉을 할 수가 없었다. 그는 밤이 올 때까지 계속 정찰기를 출격시키며 야마모토의 본대와 낙오된 일본 함을 수색했으나 별 성과를 보지 못했었다.

다음 날인 6월 6일 미드웨이섬 서쪽 90해리 해역에 잠복해있던 존 머피 소령의 잠수함 탐버는 여러 척의 함대를 발견하였다. 정체 미상이라 공격하지 않고 이를 보고했고 정보는 스플루언스에게 전달되었다.

스플루언스는 이 함들이 미드웨이 공략부대의 일부 함대라고 보고 공격가능 해역으로 이동하였다.

탐버가 발견한 정체미상의 함들은 전날 밤 야마모토로부터 미드웨이 포격을 명령을 받고 미드웨이로 달려가다가 작전 중지의 명령에 본대와 귀환하고 있는 곤도 보부다케 중장의 제 7 전대 소속 4척의 순양함들과 두 척의 구축함들이었다.

미드웨이로 달려가던 이들은 02:55에 야마모토로부터 작전포기와 항로 변경을 명령받았다. 그들은 항로 변경을 하는 중에 잠수함 탐버에게 발견되었다.

일본 함대는 미국 잠수함을 발견하자 급속히 대잠 회피 기동에 들어갔다. 급격한 대잠 회피 기동중에 중순양함 모가미와 미쿠마가 충돌하였다.

이 충돌로 모가미의 우현이 크게 파괴되었다. 미쿠마의 손상 정도는 적지만 속도를 12노트로 낮추어야 했다.

이 충돌은 이번 작전을 위해 미드웨이에 전개했었던 미 해군 잠수함 18척이 거둔 실적중 최고의 것이었다.

날이 밝아지면서 탐버는 잠항하여 어뢰를 발사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함장 머피는 사령부에 서진하고 있는 모가미급 중순양함의 정보를 타전했다.

이날부터 다음날까지 두 척의 순양함들은 미드웨이에서 출격한 폭격대와 스플루언스 함대의 공격을 받았다.

미쿠마는 끝내 스플루언스의 SBD급강하 폭격기들에게 격침되었으나 모가미는 침몰하지는 않아 겨우 일본으로 귀환할 수가 있었다.



요크타운의 침몰



한편 일본 함대 히류의 공격으로 대파된 요크타운은 회생이 희망적으로 보였다. 극심한 피해에도 불구하고 요크타운은 침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크타운은 해군함 USS 비레오에 의해서 견인되어 하와이로 향했다. 6월 6일 늦은 오후 일본 잠수함 I-168이 추적해서 어뢰를 발사했고 두 발이 요크타운에 명중하였다.

요크타운은 이미 모든 승조원들이 대피해서 인명 피해는 불과 몇 명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한 발이 요크타운을 밀고 있던 구축함 함만에게 명중하여 적재한 폭뢰가 터졌다 함만은 함체가 두 쪽으로 갈라져서 침몰했다. 이로 인해 80여명의 승조원이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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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몰 직전의 요크타운 <출처 : wikipedia>



어뢰에 피격된 요크타운은 더 이상 예인이 불가능해보였다. 구조팀은 언제 침몰할지 모르는 요크타운을 포기했다.

그러나 요크타운은 불사신같은 투지를 보이며 다음날 6월 7일 오후 다섯 시까지 해면에 떠 있다가 바닷 속으로 사라졌다.

스플루언스의 기동부대는 일본 함대를 웨이크 섬까지 추격하다가 다시 함수를 동쪽으로 돌려 철수하였다.

요크타운의 침몰은 두리틀 폭격대의 일본 폭격으로 유발되었던 미드웨이 전투가 그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일본은 대패하였고 미국은 대승한 전투였다.



일본측의 인원피해



미 기동부대는 하와이로 철수했다. 만신창이가 된 일본 함대는 서쪽으로 항해를 하여 6월15일 일본 히로시마로 돌아왔다.

해군의 최고위층과 일왕 히로히토에게는 미드웨이 해전의 패배에 대한 사실을 알렸을 뿐 재앙에 가까운 패배에 대해서는 철저히 숨겼다. 심지어 육군의 최고위층에게도 숨겼다.

미드웨이 해전에서 부상을 입은 장병들은 격리 입원 되었고 침몰함에서 살아남은 장병들은 가족과의 면회마저 금지당하고 남태평양에서 활동중인 각 부대에 분산 배치되었다.

그럼에도 이 대패의 책임자중 문책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최대의 책임을 질 나구모는 다시 편성한 기동부대의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미드웨이 해전의 패인



미드웨이 해전에서 일본이 대패한 기본적인 원인을 분석해보면 첫째, 태평양 전쟁 내내 일본에게 치명타를 안긴 정보전에서 틈을 내보였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야마모토가 최악의 경우를 설정하지 못하고 너무도 자신만만하게 안이한 작전을 실행했었기 때문이다. 적 기동함대의 조기 출현에 대비한 정찰 활동도 부족했었고 조기 출현시에 대비한 긴급 행동에 대해서도 별다를 준비가 없었다.

세 번째는 집중의 원칙을 외면하고 미드웨이 점령과 적 함대 격멸의 두 마리 토끼를 쫓았다는 점을 들 수가 있다.

두 마리 토끼를 쫓았던 결과는 미 함재기들의 공격에 노출할 수많은 허점을 제공하였다. 네 번째는 정찰기를 동원한 색적, 즉 해상 수색 활동이 너무 빈약했었다.

다수의 함재기들이 더 적극적으로 출격했더라면 미 기동함대를 더 빨리 발견하고 이의 격파에 일찍부터 집중했었을지도 몰랐다.

다섯 번째는 승운(勝運)이 일본 함대를 외면했기 때문이었다. 미드웨이 해전에서 대승한 미국 해군의 한 간부가 이 해전에서 승리한 것은 “행운의 혜택이었다.“라고 말했었다. 이것을 일본측에서 말하자면 “악운이 대패를 안겨주었다.”라고 말할 수가 있다.

미군 항공공격을 여러 차례 막아내던 일 항모 부대가 엔터프라이즈에서 발진한 급강하 폭격대가 가한 단 한차례의 기습에 세 척의 항모를 잃고 개전 단 6개월 만에 일 해군의 괴멸이 시작되는 비극을 맛본 것이다.

최악의 상황에서 맞은 이 불운은 근본 원인이 미드웨이 점령과 미 주력함대 격멸의 두 마리 토끼를 쫓은 결과가 빚었다고 볼 수가 있다.



주도권을 빼앗긴 일본 해군력



미드웨이 해전은 국력의 차이를 도외시 하고 거대국 미국에 도전한 일본이 완전히 무릎을 꿇은 최초의 전투였다.

몇 번의 항모 기동전에서 승리를 거두고 “나구모 부대의 긴 칼의 맛을 보여줄 다음 적은 어디에 있느냐?”라고 큰소리 치던 기동부대 간부들은 이제 내심 국가 멸망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미드웨이 해전 뒤에 실상을 알게 된 어느 해군 간부는 "이제 일본 해군은 사라진 것이나 마찬가지다.“라고 말했는데 일본 해군에 결정적인 강타를 먹인 미군은 3개월 뒤에 과달카날에서부터 반격을 가해 3년 뒤에 일본을 항복시켰다.




김창원 | 전사연구가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시라큐스 경영대학원에서 MBA를 취득했다. 장교로 군 복무, 기갑부대 전차 소대장을 지냈다. ‘울프 독’이라는 필명으로 전사와 역사를 다룬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국방부 정책·정보 블로그(N.A.R.A.)에 기고하고 있으며, 저서로 [공격 마케팅]이 있다


제공

유용원의 군사세계
http://bemil.chosun.com/



발행2014.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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