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역사 필리핀 해전 2 - 일본 신참 조종사들 속수무책으로 격추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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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82회 작성일 16-02-07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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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8일 오자와 함대 중 한 척의 함선이 무선 침묵을 깨고 괌 섬에 전문을 보낸 것이 미 해군 정보 부대에 탐지되었다. 일본 함대 위치를 계산해보니 58 기동 함대 355마일 서남방이었다.

미처 제독은 이에 대한 정보를 보고 받고 즉각 공격을 가하기로 결심하였다. 일본 함대가 다가오는 서쪽 방향으로 함대를 밤새 이동하여 새벽에 일본 기동 부대를 직격하기로 작전을 세우고 스프루언스 제독에게 승인을 요청했다. 그러나 사이판 상륙작전을 위해 함대의 보존을 우선시했던 스프루언스 중장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입수한 정보가 미 기동 함대를 사이판의 상륙 부대로부터 분리유인하기 위한 기만술일 수 있다고 본 것이다.

훗날 스프루언스 중장은 이 소극적인 대처로 크게 비판을 받았다. 당시의 양측 힘을 비교해 보면 미 함대가 계획대로 새벽 공격을 감행했다면 일본 오자와 부대는 전멸할 가능성도 있었다.

58 기동 부대는 새벽이 되어서야 정찰기를 내보내고 함대를 서쪽으로 이동시키며 일본 기동 부대의 출현에 대비했다. 양군의 해군이 결전의 순간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일본기의 끝없는 격추



6월 19일 새벽, 괌에서 초계 비행에 나섰던 제로기 한 대가 미군의 58 기동 부대를 발견했다. 제로기는 적의 출현을 보고한 뒤 용감하게도 외곽 초계선에서 항해하는 미 구축함을 단독 공격하다가 격추 당했다. 미 기동 함대의 출현에 놀란 일본 해군은 먼저 괌의 항공대부터 출격시켰다. 그러나 이들 선두 편대는 출격하자마자 미국 함대의 레이더에 탐지되었고 30기의 F6F 헬캣기들이 경항모 벨로 우드에서 출격하여 이들을 요격하였다. 헬캣기들은 신속하게 움직여서 일본 편대기들이 괌의 오로테 비행장을 이륙하고 있는 와중에 괌을 공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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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로우드의 모습. 11,000톤으로 경항모에 속한다.



이윽고 미 기동 부대의 레이더에 대규모의 다른 일본 편대기들이 감지되었다. 이는 괌 북부의 사이판이나 티니언섬에서 발진한 항공대들이었다. 얼마 지나지않아 대 공중전이 전개되었다. 훈련의 정도가 미숙한 일본기들은 미군 조종사들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미군기는 단 한 기만 격추된 상황에서 순식간에 35기의 일본기가 격추되었다. 이런 일방적인 항공 전투는 이 해전이 마감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이런 역량의 차이로 인해 필리핀 해전은 미국 역사에서는 ‘마리아나의 칠면조 쏘기’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항모 렉싱턴에서 출격하여 다수의 일본기를 격추하고 돌아온 조종사 중 한 명이 “이거 마치 옛날에 칠면조 사냥하던 거랑 같잖아!”라고 한 말에서 유래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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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해전 승리의 최고 수훈기 F6F 헬캣기



다시 미 함대로 접근하는 대편대가 레이더에 전탐(電探)되었다. 미처 함대 사령관은 참모장 버크 제독에게 명령했다. “괌 섬으로 출격한 전투기들을 긴급히 회항시켜야겠어!” 버크 제독은 전 편대에 긴급 통신을 보냈다. "헤이 루브(Hey Rube)!"라는 약정된 암호였다.

전기 귀환의 명령을 송신한 뒤 58 기동함대는 20여 분 간 기존 코스를 달리다가 일제히 동남서 방향에서 불어오는 바람 쪽으로 함수를 돌리고 전 함재기들을 출격시켰다. 함대를 공중 엄호하는 전투 초계기들은 고도를 달리하며 함대 상공을 층층이 감싸고 적기들의 내습에 대비하였다.

전투기를 먼저 출격시킨 미처 사령관은 항모에 남아 있던 뇌격기와 폭격기들을 모두 이륙시켜 안전한 동쪽 해역 상공에서 선회하며 대기하라고 명령했다. 연료가 채워진 이들 공격기들이 항모 내 격납고에 있다가 일본기의 공격을 받는다면 함재기가 손실될 뿐 아니라 항모까지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었다.

서쪽에서 날아오는 일본군 항공대는 오자와의 일본 항모에서 출격한 68기의 1파 공격대였다. TF 58은 가용한 모든 전투기들을 이함시켰다. 항모의 모든 항공 편대가 출격 완료한 시점에 일본 공격기들은 70마일 떨어진 곳에서 접근하고 있었다. 바로 이곳에서 일본기들은 참 어이없는 실수를 하였다. 미국 기동부대로의 직행을 멈추고 그 자리에서 빙빙 돌면서 공격 대형으로 편대를 재편성하기 시작했다.

이 공격 대형 편성에 낭비한 시간은 약 10분이었는데 이 시간 낭비로 대규모 미군 F6F 헬캣 편대의 급습을 가능케 하였다. 불과 몇 분 만에 25기의 일본기가 격추당하고 말았다. 미군기는 단 1기만을 잃었을 따름이다. 급습에 살아남은 일본기들이 대피 비행을 하던 중에 미군의 대편대가 다시 기습해왔다. 남은 일본기 중의 16기가 더 격추당했다. 이제 일본항공대의 생존기들은 단 27기뿐이었다.

생존기들 중 일부 편대는 전방 초계 구축함 야날과 스톡함들을 공격했으나 아무 피해를 주지 못했다. 서너 기의 폭격기가 리 제독의 전함 부대 초계선을 돌파하여 전함 사우스 다코타의 주갑판에 폭탄 한 발을 투하했다. 사우스 다코타의 승조원 50여 명에서 사상자가 발생하였으나 기동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사우스 다코타는 이 공격에서 유일하게 피해를 입은 미 군함이었다.

오자와 제독의 항모 부대가 발진시킨 1 파 공격대는 진짜 목표인 미 항모에는 접근조차 해보지도 못하고 섬멸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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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 크루즈 해전에서 1식 육공기에게 공격 당하는 사우스 다코타. 운 없기로 소문난 전함이지만 필리핀해에서 당한 피해는 얼마 크지 않았다.



11:07, 미 함대의 레이더는 훨씬 더 큰 일본군 공격 항공대의 접근을 탐지했다. 일본군 2 파 공격대는 107기로 편성된 대군이었다. 레이더의 도움을 받은 미 요격기들의 대응은 신속한 것이었다. 일본 항공대가 미 함대에서 아직 60마일이나 먼 곳에서 접근 비행하던 중 미 헬캣기들이 벌떼 같이 덤벼들었다.

일본 항공대는 공격을 당하면서도 계속 접근 비행을 강행했지만 2 파 107기 중에 70기가 격추되었다. 6 기가 전투 초계망을 뚫고, 몽고메리 소장의 호위 항모 부대를 공격하여 근접탄으로 두 척의 항모에 약간의 손상을 주었다. 그러나 이중 4기가 격추 당했고 두 기만이 행운에 힘입어 도주에 성공하였다.

또 몇 기의 뇌격기가 미 항모 엔터프라이즈에게 뇌격을 가했으나 어뢰 한 발은 미군함이 전속 항해하면서 만든 큰 파도에 걸려 조기 폭발해버렸다.

다시 전투기 3기가 호위 항모 프린스턴을 공격하다가 모두 격추 당했다. 2파의 공격대 함재기는 107기였는데 그 중 97기가 격추되었다. 전멸이라는 표현이 정확히 어울리는 참담한 패배였다.

한 시간 남짓 후 47기의 제 3파가 공격해왔다. 역시 원거리에서 미군 레이더에 탐지 당하여 미 해군 헬캣기들이 3 파 공격대에 돌격해갔다. 3 파의 일본 공격기 중 7기가 격추되었다. 몇 기가 미군 요격기들을 피해서 엔터프라이즈 항모 부대를 공격했지만 아무 성과도 거두지 못했다.

3파가 그래도 2 파처럼 전멸의 비극을 모면했던 것은 대다수가 미군의 요격이 극심해지자 공격 강행을 일찌감치 포기하고 도주했기 때문이다. 40기가 생존해서 출격했던 항모로 되돌아갔다.

일본 오자와 함대는 정오가 되기 전 제 4파를 발진시켰지만 이 공격대는 미군 함대의 위치에 대해서 부정확한 정보를 받고 엉뚱한 곳을 헤맸다. 일본 공격대는 미군 함대의 그림자도 못 보고 연료가 소진되자 두 그룹으로 분산되어 각각 괌과 로타 섬으로 향하였다. 로타 섬으로 날아가던 공격대 그룹은 몽고메리의 항모 부대와 조우했다. 일본기들은 물론 레이더에 탐지되었고 곧 출격한 미 항모부대의 헬캣기들과 엮여 치열한 공중전을 벌였다.

결과는 일본군의 예외 없는 참패여서 18기 중의 절반인 9기가 격추 당했다. 이 그룹 중의 급강하 폭격대 9기는 요행히도 헬캣기들의 요격망을 뚫고 와스프 함과 벙커 힐을 공격했으나 투하한 폭탄은 모두 빗나갔다. 행운은 여기까지여서 폭격 후 곧바로 9기중 8기가 격추되었다. 용감했지만 성과는 못 얻고 전멸의 길을 간 미숙한 공격대였다.

괌으로 향하던 공격에게도 행운이 있었는지 용케 미군 전투기들을 만나지 않고 괌 섬에 무사히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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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 당하고 있는 괌 섬의 오로테 비행장



그러나 괌 섬의 오로테 비행장 상공에는 저승사자 같은 27기의 헬캣기들이 잠복하고 있었다. 일본기들이 착륙을 위한 준비에 들어갔을 때 이 헬캣기들이 검은 소나기처럼 덮쳐서 49기의 일본기중 30기를 격추했다. 나머지는 허겁지겁 불시착했는데 모두 수리가 불가할 정도로 대파되고 말았다.

괌 섬의 일본기 섬멸을 포함해서 이 첫 날의 전투에서 미군이 거둔 전과는 일본기 350기의 격추였다. 반면 미 해군이 입은 피해는 단지 30여 기에 지나지 않았다. 유일하게 일본 폭격기가 투하한 폭탄에 피해를 입은 전함 사우스 다코타 역시 피해가 경미하여 수리 회항을 하지 않고 작전을 계속하였다.

일본 해군 항공대 대참사의 날로 기록된 이 날에 미군기의 ‘칠면조’가 되지 않고 적절히 도주하거나 또는 적극적으로 도전하여 미군기를 격추한 소수의 일본기들이 있었다. 이들은 일본 해군이 진주만 기습 이래 황금기를 누리던 시기의 작전과 미드웨이, 그리고 과달카날의 치열한 소모전에서 살아남은 노련한 고참 조종사들이었다. 이들의 생존은 신참 일본 조종사들의 함량 미달이 얼마나 치명적인 요소였는지를 말해 준다.

세계 일류 수준이었던 일본 조종사들의 대다수가 전사한 후 비효율적인 훈련 방식으로 급조한 조종사들이 미 해군기에게 속수무책으로 격추되었던 것이다.




김창원 | 전사연구가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시라큐스 경영대학원에서 MBA를 취득했다. 장교로 군 복무, 기갑부대 전차 소대장을 지냈다. ‘울프 독’이라는 필명으로 전사와 역사를 다룬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국방부 정책·정보 블로그(N.A.R.A.)에 기고하고 있으며, 저서로 [공격 마케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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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용원의 군사세계
http://bemil.chosun.com/



발행2014.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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