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역사 탄넨베르크 전투 2 (1914) - 러시아 장군들의 불화가 운명을 바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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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548회 작성일 16-02-07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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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장군의 결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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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제2군을 지휘하던 삼소노프. 그는 탄넨베르크 전투의 패전을 책임지고 자결하였다.



탄넨베르크 전투를 소개하기에 앞서 반드시 알고 넘어가야 할 일화가 있다. 러일전쟁에서 패한 러시아군 포로들이 본국으로 송환되기 전 만주의 펑텐(奉天)역에 집결해 있던 1905년의 일이다. 전쟁 당시 기병여단을 이끌었던 삼소노프(Alexander Samsonov)가 우연히 동료 지휘관인 레넨캄프(Paul von Rennenkampf)와 마주쳤다. 순간 삼소노프는 레넨캄프의 뺨을 후려쳤고 두 장군은 수많은 부하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진흙탕 속에서 격투를 벌였다.

이런 추태가 벌어진 이유는 러일전쟁의 격전 중 하나였던 1904년 라오양 전투(Battle of Liaoyang)의 패전 때문이었다. 당시 삼소노프의 부대는 탄광을 지키고 있었고 레넨캄프의 부대는 인근에 전개해 있었다. 문제는 삼소노프가 일본군에 포위당해 도움을 요청했을 때, 무슨 이유에서인지 레넨캄프는 지원을 하지 않았다. 결국 패하게 된 삼소노프는 분노가 극에 달한 상태에서 레넨캄프와 마주치자마자 주먹을 날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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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제1군을 지휘하던 레넨캄프. 그는 사적인 감정 때문에 몰락하는 제2군을 돕지 않았고 자신도 비참하게 패하여 군적을 박탈당하였다.



마침 이 장면을 참관무관(參觀武官) 자격으로 일본 제1군에 파견 나왔던 독일의 호프만(Max Hoffman) 대위가 우연히 보게 되었다. 당시에는 어느 누구도 두 장군이 역전에서 벌인 한심한 노상 결투의 의미를 알지 못했다. 하지만 부하들 앞에서 체면을 지키지 못할 정도였던 삼소노프와 레넨캄프의 회복하기 힘든 반목, 그리고 이를 가까이서 지켜보았던 독일의 젊은 장교 호프만의 존재는 이후 전쟁사의 커다란 전환점이 되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사학자 베니호프(Mike Bennighof)처럼 이러한 내용이 왜곡되었다는 주장을 펼치는 이도 있다. 레넨캄프도 당시 전투 중 부상을 당했기 때문에 삼소노프를 지원할 상황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두 장군이 직접 결투를 벌인 일도 없는데 호프만이 자서전에서 자신의 업적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그렇게 표현한 것으로, 호프만 자신이 직접 현장을 목격한 것이 아니라 소문을 들었을 뿐이라는 주장이다.




우연으로 시작된 필연적인 운명



내용의 진위가 어떻든 전투 중 부상을 당하여 레넨캄프의 상황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을지라도, 전황을 분석하면 삼소노프를 분노하게 만들었을 만큼 레넨캄프의 태도가 애매모호한 구석이 있었다. 군부 내에서 다른 파벌에 속하였기에 원래부터 미워하던 사이였다는 주장도 있지만 이 또한 근거가 불명확하다. 다만 확실한 것은 두 장군의 사이가 그리 좋지 않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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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일전쟁 당시 일본군에 파견된 각국의 참관무관단. 앞줄 가장 좌측이 호프만이다.



그들의 악연이 러일 전쟁에서 끝나면 좋았겠지만 독일과의 전쟁에서도 이어진다는 게 문제였다.
1914년 8월 17일, 독일을 공격한 러시아 북서전선군의 1군 사령관은 레넨캄프였고, 2군 지휘관은 공교롭게도 삼소노프였다. 이들은 동원령이 내려져 전선으로 차출되어 나갔을 때 북서전선군에서 함께 작전을 벌여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몹시 놀랐다. 한편 이들을 막아내야 할 독일 8군의 작전 참모는 어느덧 대령으로 진급한 호프만이었다.

STAVKA(러시아군 총사령부)가 레넨캄프와 삼소노프의 소문난 라이벌 의식을 일부러 이용하려 하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철저히 반목하고 있던 이들은 시기심에 사로잡혀 연락과 연결을 단절한 상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경쟁하듯 독일로 향하였다. 진격을 재촉하는 면에서는 긍정적이었을지 모르지만 이들의 불편한 관계를 뻔히 알면서 함께 선봉에 세운 것은, 이후 러시아가 맞게 된 비극의 단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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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린스키는 마수리안 호수의 남북으로 러시아 1, 2군을 진격시켜 독일 8군을 포위, 섬멸할 계획이었다. <출처: 미 육군 사관학교>



북서전선군 1, 2군을 이끌던 사령관 질린스키는 마수리안 호수 남북으로 동프로이센 초입을 신속히 돌파한 후 독일 8군을 포위망 안에 가두어 일거에 소탕할 계획이었다. 압도적으로 우세한 병력이었으므로 레넨캄프와 삼소노프가 협조만 하였다면 충분히 달성 가능한 전략이었다. 어디까지나 가정이지만, 만일 그랬다면 서부전선에서 격전을 벌이던 독일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어 1차대전은 1914년에 끝날 수도 있었다.




서전을 장식한 러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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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8군 사령관인 프리트비츠. 그의 무능으로 인하여 독일군은 후퇴만 거듭했고 이 때문에 독일군 총참모본부는 전쟁 전략 전체를 흔드는 대책을 내놓게 된다.



8월 17일, 러시아 1군이 국경 인근의 요충지인 굼비넨(Gumbinnen) 점령을 목표로 공격을 개시하면서 마침내 러시아와 독일 간의 전쟁이 개시되었다. 하지만 러시아군은 스탈루포넨(Stalluponen) 근처에서 프랑코(Hermann von Francois)가 지휘하는 독일 제1군단에게 격퇴 당하고 일단 진격을 멈추었다. 독일군에게 나름 중요했던 이 순간, 독일 8군 사령관인 프리트비츠(Maximilian von Prittwitz)는 러시아군의 반격으로 1군단이 전멸할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철수를 지시하였다.

실전 경험이 한 번도 없던 프리트비츠는 처음부터 겁을 먹고 오로지 후퇴만 생각한 소심한 인물이었다. 그는 참모총장 몰트케(Helmuth von Moltke)에게 증원군을 보내달라고 떼쓰는 것밖에 할 줄 아는 것이 없었다. 독일의 전쟁 전략 전체를 충분히 이해했다면 현 상태에서 어떻게든 최선을 다해야 했으나 그는 그럴 만한 재목이 되지 못했다. 이처럼 초전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약점이 잡히자 곧바로 위기가 닥쳐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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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넨베르크 직후 포츠난에서 촬영된 힌덴부르크와 참모들. 앞줄 왼쪽부터 루덴도르프 8군 참모장, 힌덴부르크, 호프만 작전 참모



3일 후 독일군이 주춤하는 틈을 타 굼비넨 앞까지 진격한 러시아 1군은 독일 8군의 측방을 공격할 수 있는 위치를 선점했다. 결국 굼비넨에서도 도망친 프리트비츠는 몰트케에게 동프로이센을 포기한 후 비스툴라(Vistula) 강 서쪽으로 부대를 철수시켜 그곳에서 러시아군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설령 그곳으로 철수하더라도 러시아군을 막을 수 없을 것이라고 비관적으로 보고하였다.

독일 총참모본부는 예상을 벗어난 러시아군의 조기 등판과 독일 8군의 고전에 크게 당황했다. 몰트케는 프리트비츠의 능력으로는 현지 사수가 불가능하다고 보고 은퇴한 힌덴부르크(Paul von Hindenburg)에게 신임 8군 사령관이 되어 줄 것을 부탁하는 한편, 그를 돕기 위해 서부전선에서 지휘력을 인정 받은 루덴도르프(Erich Ludendorff)를 8군 참모장으로 임명했다. 이 둘은 보직을 받자마자 현지로 급거 이동했다.




긴박한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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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트케는 고심 끝에 서부전선에서 2개 군단을 빼내 동부로 보냈다. 하지만 이 결정은 아무런 이점이 없었고 서부전선의 전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만 초래했다. <출처: Collier's, New Photographic History of the World's War>



지휘관 교체와 더불어 몰트케는 서부전선에서 병력을 빼내 동부전선으로 보내는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했다. 원래는 영토의 일부를 내주는 전략적 후퇴도 고려했지만 문제는 동프로이센이 통일을 주도하며 독일제국을 창건한 유력자들의 본거지라는 점이었다. 그들은 군부에게 서부전선의 병력을 이동시켜서라도 반드시 동프로이센을 사수하도록 압력을 가하였고 이것은 결국 전체 전쟁전략의 차질을 불러와 1차대전에서 패하는 빌미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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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프만은 레넨캄프와 삼소노프가 절대로 협조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 이 둘을 분리하여 각개 격파하는 작전안을 이미 작성해 놓았다.



한편 1군과 달리 준비 부족으로 8월 20일이 되어서야 국경을 넘은 러시아 2군의 진격은 상당히 더뎠다. 양군 간의 간격이 벌어지지 않도록 협조를 하여야 했지만 이 둘은 서로의 상황을 애써 외면했다. 물론 물어보면 답변은 했겠지만 레넨캄프나 삼소노프 모두 상대의 전과에 애써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상급자인 북서전선군 사령관 질리스킨도 이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오로지 공격만 주문했다.

그동안 후퇴하기에만 급급했던 프리트비츠를 대신하여 신임 사령관 힌덴부르크와 참모장 루덴도르프가 부임하였지만 현황을 파악하기에 당장 1분 1초도 부족한 지경이었다. 바로 그때 8군 참모장 대리로 있던 호프만이 현재의 전력만으로 공세를 가하여 러시아 1군과 2군 즉, 러시아 북서전선군 전체를 섬멸할 작전을 제시하였다. 서부전선에서 2개 군단 규모의 증원군이 도착하기로 예정되어 있던 시점에 참으로 야심만만한 계획이었다.

러시아 북서전선군이 대군이지만, 1군과 2군을 각각 떼어놓고 본다면 전투력이 월등한 독일 8군이 싸워서 이길 수 있다, 때문에 하나씩 차례로 각개격파하면 된다는 것이 호프만의 생각이었다. 문제는 이 작전이 성공하려면 1군과 2군이 협조하지 않아야 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했다. 호프만은 레넨캄프와 삼소노프가 어떤 일이 있어도 돕지 않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고, 그 결과 이처럼 담대한 계획을 제시하게 된다.




남도현 | 군사 저술가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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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용원의 군사세계
http://bemil.chosun.com/



발행2014.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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