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역사 레이테 해전 3 (1944) - 일본의 산유지를 봉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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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43회 작성일 16-02-0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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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프 엥가노 해전 - 10월 25일



이 해전은 레이테 해전을 이루는 네 개의 해전 중 가장 북쪽에서 벌어진 해전이다. 오자와 제독의 북방부대 즉 기동부대는 네 척의 항모, 즈이카쿠와 경항모인 즈이호, 지토세, 그리고 지요다로 편성되어 있었다.

이들 항모 외에, 2개의 후부 포탑을 제거하고 격납고와 사출 장치를 설치해서 부분 항모로 개장한 전함 휴가(日向)와 이세(伊勢)가 보조 항모로 합세했고 3 척의 경순양함과 9척의 구축함이 호위 부대로 동행하고 있었다.

결국 정규 항모라고는 즈이카쿠 한 척뿐이었다. 즈이카쿠는 1941년 12월 8일 진주만을 기습했던 나구모 기동부대 항모 여섯 척 중의 한 척이었다. 다른 정규 항모들은 그 후 계속되는 태평양 전쟁에서 모두 격침되고, 이제 홀로 남은 즈이카쿠가 최후의 전장으로 출동하고 있었다.

몇 달 전 필리핀 해전의 패배로 전투력이 피폐해진 함대에는 겨우 106기의 항공기가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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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만 톤급 항모인 즈이가쿠



반면 이를 격멸하기 위해서 북상하고 있던 홀지 제독의 기동부대는 가공할 화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의 기동부대는 필리핀 해전 승리의 명지휘관 미처 제독이 지휘하는 38 기동부대(TF38)가 중추를 맡고 있었다. 38기동부대는 항모 5척, 경항모 5척, 전함 6척과 순양함 8척, 그리고 40척의 구축함을 보유하고 있었다. 보유 함재기들은 예비기까지 포함하면 거의 1,000기에 달했다.

10월 25일 새벽 3시 경, 홀지 제독은 윌리스 리 제독의 TF34를 주력 함대에서 분리하여 전방으로 전력 돌격하게 하였다. (사마르 근해에 일본 중앙부대가 나타나기 휠씬 전의 상황이다.) 윌리스 제독의 부대는 6척의 전함으로 편성되어 있었다.

홀지 제독은 여명이 밝아오면 전함 부대가 먼저 오자와 부대에게 함포 공격을 가하면 이어서 항모 부대가 후속 공격을 한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새벽이 되자 선수를 친 것은 오자와 기동부대였다. 오자와는 75기의 공격대를 출격시켜 홀지 제독의 기동부대를 공격했다. 이 미약한 공격대는 홀지 함대 전방에서 대기하고 있던 전투 초계기들에게 요격 당해 거의 격추되었고 함대 공격에 성공한 공격기는 한 기도 없었다. 단지 몇 기가 살아 남아 필리핀 루손섬으로 도주했다.

이미 새벽, 미 기동부대도 아직 정확한 오자와의 위치는 몰랐지만 탐색과 공격의 목표를 가진 첫 번째 공격파 180기를 출격시켰다. 오전 7시 경, 앞서 출격했던 정찰기가 오자와 함대의 정확한 위치를 탐색해냈다. 잠시 후 첫 공격파의 전투기들은 오자와 함대 상공에서 초계 비행 중이던 일본기 30기를 거의 격추시키고 초계망을 분쇄하였다. 그날 저녁까지 미 해군의 공격은 파상적으로 계속되었다. TF38 함재기들은 총 527회 출격하여 오자와의 기동부대를 타격했다.

즈이카쿠가 격침되고 경항모 지토세와 즈이호가 격침되고 구축함 아키스키가 전 승조원들과 함께 격침되었다. 이어서 경항모 지요다와 순양함 다마가 대파되었다. 오자와는 경순양함 오요다로 지휘기를 옮기고 전투를 계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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킨케이드 중장



한편 오자와 함대가 섬멸되는 10월 25일 오전 8시, 여전히 북상 중이던 홀지 제독의 3함대는 킨케이드 제독의 7함대로부터 호위 항모 부대가 갑자기 나타난 구리타 제독의 대 함대로부터 공격을 받고 있다는 소식과 함께 긴급 지원을 요청 받았다.

여러 혼선으로 홀지는 다급한 7함대의 비상 전문에 답신을 하지 못했다. 그때 하와이에서 교신을 감청하고 있던 태평양 함대 사령관 니미츠 제독이 유명한 전문을 보낸다. “전 세계가 TF34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싶어 한다.” 니미츠 제독은 홀지 제독이 일본 중앙부대를 고려하여 TF34를 편성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홀지 제독이 정확한 판단을 했다면 TF34는 이미 현장에 있었어야 할 상황이었다. 이에 대해 니미츠 제독은 “현재 위치를 보고하라”라는 통상적인 전문을 보내지 않고, 보다 다급한 상황을 전 세계가 궁금해한다는 말로 위트 있게 표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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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지 제독



비상 전문이 홀지 제독에게 날아간 지 세 시간 만인 11시 경, 홀지 제독은 상황을 파악하고 윌리스 리 제독의 TF34에게 방향을 돌려 남하하라고 명령하였다. 그러나 이미 시간이 지난 후라, 윌리스 제독의 TF34부대는 일본 중앙부대를 맞아 위기에 빠졌었던 태피 3 호위 항모 부대를 지원하는 역할을 하지 못한 채 해상에서 표류하는 생존자들을 구출하는 작업에 그치고 말았다.

만약에 홀지 제독이 더 빨리 행동을 했다면 그의 부대는 구리타 함대가 샌 버너디노 해협을 빠져 나가기 전에 포착해서 격멸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대파되어 낙오된 일본 구축함 노와키를 겨우 격침했을 뿐이다. 홀지 제독의 작전상 판단 오류는 후세의 사가들로부터 크게 비난 받았다.

TF34가 남으로 함수를 돌렸을 때 홀지 제독은 윌리스의 함대에서 네 척의 순양함과 아홉 척의 구축함을 떼어내 이를 드보스 소장에게 맡긴 후 오자와 기동부대를 상대하고 있던 TF38에 배속시켰다.

미처 사령관은 이들에게 오자와 기동부대를 추적하여 낙오함들을 격파하라고 명령했다. 드보스 소장은 항공 공격으로 붕괴되고 있던 오자와 부대에게 접근하여 함포 사격을 가했다. 하여 오후 5시부터 네 시간 동안 일본 경항모 지요다를 격침시킨 후 구축함 하쓰스키를 격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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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기 모함을 경항모로 개조한 지요다



오자와는 자기의 함대를 공격하고 있는 수상 함대가 별로 강력한 함대는 아니라고 보고 항공 전함 휴가에게 남쪽으로 방향을 바꿔 이들 함대를 격침하라고 명한다.

휴가는 함재기 탑재를 위해 후부 포탑들은 제거된 상태였지만 전부(前部) 포탑들은 아직 보존되어 있었다. 그러나 휴가는 드보스의 함대를 찾아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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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체 후부를 항공 갑판으로 개조한 구식함 휴가



밤 11시가 되면서, 미 잠수함이 오자와 기동부대의 경순양함 다마를 격침하였다. 다음날인 10월 26일 도주하는 일 함대들을 추격하는 미 항공대의 공격이 이어졌지만 대규모로 전개되었던 레이테 해전은 케이프 엥가노 해전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이틀 간 벌어진 레이테 해전에서 미국은 호위 항모 프린스턴과 갬비어 베이, 세인트 로 등 세 척을 포함한 7 척의 손실을 입었으나 일본은 항모 즈이카쿠와 경항모 즈이호, 지요다, 지토세, 전함 무사시, 전함 야마시로와 6척의 중순양함을 포함하여 무려 26척의 전투함을 잃었다.

레이테만에서 일본 해군을 제거하는 데 성공한 미군은 그 해 12월에 저항하던 일본 육군을 섬멸하고 레이테섬을 완전 확보하였다.

미군은 레이테의 점령에 힘입어 필리핀을 점령해 나갔다. 일본은 필리핀의 상실로 산유지 인도네시아와 고무 산지인 말라야와의 연결 고리를 잃어 막심한 피해를 입었다.

미군은 필리핀의 점령을 기반으로 1945년 오키나와 상륙 작전에 돌입한다. 극심한 유류 부족을 겪고 있던 일본 해군은 레이테 해전 후 항구에 정박하고 외해(外海)활동은 거의 중단하였다.

이후 자살 특공대인 가미카제로 미 함대를 공격하던 일본 해군 연합 함대는 1945년 4월 야마토함을 자살 특공에 내보내 실패한 후 그대로 내습하는 미군기들에게 시달리다가 최후를 맞았다.




김창원 | 전사연구가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시라큐스 경영대학원에서 MBA를 취득했다. 장교로 군 복무, 기갑부대 전차 소대장을 지냈다. ‘울프 독’이라는 필명으로 전사와 역사를 다룬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국방부 정책·정보 블로그(N.A.R.A.)에 기고하고 있으며, 저서로 [공격 마케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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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용원의 군사세계
http://bemil.chosun.com/



발행2014.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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