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역사 오키나와 전투 2 (1945) - 미군의 오키나와 상륙과 점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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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96회 작성일 16-02-07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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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에 집중한 오키나와 방어 전략



오키나와 방어 일본군은 오키나와를 둘로 나누어서 전략적 요지가 많은 남쪽을 주요 방어 구역으로 설정하고 병력을 집중하였다. 진지 공사 중 주거 주민이 방해가 될 경우 가차 없이 오키나와 북부로 추방하였다.

오키나와 방어 사령관 우시지마 미스루 중장이 남쪽 부대를 직접 지휘했다. 반면 북쪽 지역은 우도 다케히도 대좌가 지휘하는 소수 부대가 배치되었다.




게라마 제도 상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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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파운드의 자살 폭탄을 장치한 쾌속 보트 신요(震洋). 오키나와에 다수 배치되었으나 항공 공격에 다 파괴되고 소수만 활동하여 미 상륙정 두 척을 격침시키고 구축함 한 척을 파괴하였다.





게이세 섬 인근의 가미야마 섬(神山島)에 방열을 끝낸 미 155mm 포




오키나와 군도에 첫 상륙 작전을 감행한 미군 부대는 미 육군 77 보병 사단이었다. 3월 26일, 이들이 최초로 상륙한 곳은 오키나와 15마일(24킬로미터)서쪽 섬인 게라마 제도(慶良間 諸島)였다. 게라마 열도는 닷새 만에 완전 점령되었는데 미군 전사자가 27명이었던 데 비해 일본군 전사자와 포로는 650명이 발생하였다.

이 섬의 점령으로 안전한 정박이 가능해지면서 후방 지원지대를 확보할 수 있었는데, 그 결과 섬에 있던 자살 특공 보트 부대인 해상 정진 제 29전대(海上挺進第29戦隊)의 특공 선박들을 섬멸하게 된다.

31일 해병은 본 섬 공략에 앞서 오키나와의 나하에서 서쪽으로 8마일 떨어진 게이세 섬(慶伊瀬 島)에 무혈 상륙하였다. 이어서 장거리 24문의 155mm 포들이 양륙되어 오키나와 본 섬을 포격하기 시작했다.




오키나와 본섬 상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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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를 노린 미군의 상륙



1945년 4월 1일 아침, 드디어 미 육군 29 군단의 7보병 96 보병사단과 해병 제3상륙군단의 1사단, 6사단은 오키나와 중서부 해변에 상륙 작전을 감행하였다. 저항이 미미해서 6만 명의 미군이 당일로 병력 상륙과 필요 물자의 양륙을 완료하였다.

4월 6일 제 2 해병 사단과 보병 7사단이 오키나와 동남쪽 해변에 상륙했다. 상륙 부대는 오키나와 남부 중앙으로비교적 쉽게 밀고 들어가서 당일로 가데나 비행장과 요미탄 비행장을 점령하고 일본 32군을 남북으로 양단해버렸다.




오키나와 북부 점령 작전



버크너 중장은 적의 저항이 예상보다 미약하자 바로 2단계 작전에 돌입했다. 2단계 작전은 오키나와 섬의 북부를 점령하는 것이었다. 북부에는 일본군 독립 혼성 제 44여단의 1개 대대가 배치되어 병력이 미약했다.

해병 제 6 사단이 이시카와 반도를 치고 올라가서 4월 7일에는 모토부 반도를 봉쇄하였다. 6일 후인 4월 13일 미 해병 22연대 2대대가 섬의 최북단 헤도 미사키를 점령하였다. 북부의 일본군은 모두 모토부 반도 안에 몰려 버렸다. 모토부 반도는 밀림이 우거진 산악 지대로, 주요 거점인 야에다케(八重岳)는 주로 덩굴로 뒤덮인 바위 협곡과 능선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 협곡 지대와 능선에서 해병들과 일본군 사이에 치열한 전투가 있었다.

그 사이 미 육군 77 보병 사단은 오키나와 섬의 서쪽 반도 끝에 있는 이에지마(伊江島)를 공격했다. 이들은 가미카제 특공기의 공격을 받기도 하고 죽창으로 무장한 여성 부대와 마주치기도 했지만 21일 이에지마를 평정한 후 비행장을 접수하였고, 섬의 고지에 일본 본토에서 날아오는 가미카제 특공기를 감시하는 레이더 기지를 설치했다.




오키나와 남부 전선



해병 6사단이 오키나와 북부를 평정하는 동안 미 육군 96 보병 사단과 7 보병 사단은 오키나와 중앙부에서 남쪽으로 공격해갔다. 이들은 서쪽 중부에서 지하에 구축한 진지에 틀어박힌 일본군의 치열한 저항에 직면하게 되는데 이 방어선은 나중에 캑터스 능선이라고 부른다.

보병 7사단도 이 전선에서 일본군의 격렬한 저항을 만났다. 그러나 미 보병들은 일본군의 저항을 모두 물리치고 4월 8일 이들 저항선을 분쇄하였다. 캑터스 능선 전투에서 미 해병에는 1,500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그러나 일본군의 손해는 훨씬 더 커서 4,500명이 전사하였다.




가카스 능선 전투



그러나 본 전투는 아직 시작 전이었다. 미 해병도 지금까지의 전투는 전주곡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오키나와 작전에서 섬멸해야할 적의 주력은 아직 슈리 주변의 능선에 버티고 있었다. 슈리는 오키나와가 류쿠[琉求]국이라는 독립국가였을 때 왕도였던 곳으로, 현재 오키나와 현청이 있는 나하시[那覇市]의 일부다.

미군의 공격 목표는 가카즈(嘉数) 능선이었다. 능선의 안쪽은 슈리를 지키는 외부 방어선의 일부이기도 했는데 일본군은 이 일대에 교통호와 지하 터널을 파서 요새화하고 그 안에 잠복하여 격렬하게 저항했다. 미군은 피해가 막심한 가운데 일본군 방어선을 하나씩 파괴해갔다.

터널 안에서 꼼짝 못하게 된 일본군은 동행한 오키나와 주민들에게 총을 들이대고 총탄이 빗발치는 굴 밖에서 부상병을 운반해오거나 물을 떠오게 하는 등의 역할을 강요했다. 민간인을 총알받이로 내세운 이 가혹한 행위로 인해 많은 주민들이 죽었다.




실패한 일본군의 1차 공세



가카즈 능선에서 미군들이 고전하자 오키나와 방어 사령관 우시지마는 조 참모장의 강력한 건의를 받아들여 총공세에 나서기로 하였다. 4월 12일 저녁 일본군 32군은 전 전선에서 공격을 개시했다. 잘 기획된 조직적인 공격이었지만 이미 일본군의 전술을 잘 알고 있던 미군은 무제한의 화력을 동원해서 이를 가로 막았다.

막강한 화력을 내세운 미군의 반격에 큰 피해를 입은 일본군은, 그렇게 퇴각했다가도 다음날 저녁 똑같은 공격을 되풀이했다. 이 과정에서, 미군이 야간 공격에 약하다는 사실을 알아냈지만 더불어 침투에 성공하더라도 공격을 위해 부대가 집결하는 순간 미군의 화력에 휩쓸려 위험에 빠지게 된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더 이상 피해를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한 일본군은 다시 방어적인 태도로 돌아섰다.




미군의 총공세



4월 9일 상륙한 미 27사단은 오키나와 서쪽 해안을 끼고 있는 우측 방어선에 배치되었다. 군단장 호지 중장은 이로써 휘하에 3 개 사단을 확보하게 되었다. 중앙에 96사단, 동쪽에 7사단, 막 상륙한 27 사단을 배치한 군단 각 사단의 전투 정면은 단지 2.4km로 조밀한 편이었다.

미군의 공격 차례. 호지는 324문의 각종 포를 동원하여 태평양 전쟁 최대의 공세를 폈다. 이 공격에 전함, 순양함, 구축함이 가세했고 하늘에서는 해군과 해병대의 항공대 650기가 네이팜 탄과 로켓탄을 퍼부었다.

일본군은 이런 직접 사격에서 비교적 안전한 반대 사면의 땅굴에 몸을 숨겨 일단 치열한 포화를 피하고, 기회가 있을 때 박격포 포격과 수류탄 투척을 감행했다.

1945년 5월 4일 미군 부대가 가카즈 능선을 우회하여 보병들과 연대하려 시도했으나 전차 22대를 잃고, 사상자 720명을 내고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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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의 포화에 격파된 미 M-4 셔먼 탱크



미군의 피해는 더 클 수도 있었지만 일본군의 투입 가능 예비 병력이 남쪽의 미나토가 해변에서 미 해병 2사단에게 덜미를 잡힌 연유로 심각한 타격은 받지 않을 수 있었다.

4월 말 미군은 마치나토 방어선을 돌파한 후 전투 피로가 쌓인 두 개 사단을 충분한 휴식을 가졌던 사단들로 교체하였다. 미 해병 1사단은 육군 27사단과 교대하였고 육군 77 사단은 7사단과 교대하였다. 해병 6사단이 증강 도착하여 우측 측면을 담당하고 미 10군은 전투를 다시 이어갔다.




김창원 | 전사연구가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시라큐스 경영대학원에서 MBA를 취득했다. 장교로 군 복무, 기갑부대 전차 소대장을 지냈다. ‘울프 독’이라는 필명으로 전사와 역사를 다룬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국방부 정책·정보 블로그(N.A.R.A.)에 기고하고 있으며, 저서로 [공격 마케팅]이 있다


발행2015.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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