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역사 프랑스 전역 5 (1940) - 가믈랭의 오판, 히틀러의 미스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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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540회 작성일 16-02-07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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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A집단군은 숲 속의 소로를 따라 종대로 전진하여 출구가 막히면 고립될 수도 있었다.







프랑스의 이기심



독일 A집단군은 사전에 공병대가 닦아 놓은 구릉지대의 소로를 따라 종대로 전진하고 있었는데, 워낙 많은 부대들이 집중하면서 병목현상까지 나타났다. 그런데 이를 역으로 생각하면 이때의 상황은 프랑스가 방어에 상당히 유리할 수 있었다는 의미였다. 우회로도 없는 산악지대의 한정된 통로를 따라 보병도 아닌 거대한 기갑부대가 움직이다 보니 출구만 틀어막으면 독일의 진공을 손쉽게 꺾어 버릴 수 있었다.

그런데 바로 이때 가믈랭은 어처구니없는 명령을 하달하였다. 귀중한 항공 전력을 보존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독일군 예상 집결지에 대한 폭격을 금지한 것이었다. 설령 아무리 비싸고 중요한 장비라 하더라도 필요하다면 과감히 소모시켜야 하는 것이 전쟁인데, 가믈랭은 독일 공군에게 격추될 것을 두려워하여 최대한 보존하려고만 들었다. 이런 상태에서 프랑스의 승리를 바라는 것이 애당초 무리였다.

반면 독일의 조공이자 연합군을 안으로 유인할 미끼로써의 막중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독일 B집단군의 활약은 대단하였다. 많은 예하부대를 A집단군으로 이전시켜 축소된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네덜란드와 벨기에의 전략 지점을 차례차례 선점하여 나가는 B집단군의 초기 진격 모습은 연합군 측에게 이들이 주공임을 의심치 않도록 만들어 버렸을 정도다. 덕분에 프랑스의 시선은 아르덴에서 더욱 멀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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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는 전선 중앙의 아르덴에서 벌어지고 있던 거대한 움직임을 알아차리지 못하였고 오로지 저지대 국가 지역에서 벌어지는 상황에만 매몰되어 있었다.



이처럼 예상을 뛰어 넘는 B집단군의 선전은 은밀히 돌파를 시도하고 있던 A집단군의 안전을 더욱 보장해주었다. B집단군의 속도에 놀란 프랑스군은 다일-브레다 계획대로 부대 배치가 제시간에 완료되지 않을까 오히려 조바심을 내고 있을 정도였다. 가믈랭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제1집단군의 이동을 재촉하는 것뿐이었다. 그것은 어쩌면 다시는 자국 영토에서 피를 흘리지 않고 벨기에에서만 전쟁을 치르겠다는 프랑스의 이기적인 의지이기도 했다.





숲 속을 빠져 나온 공룡



내 땅에서 전쟁은 안 된다는 프랑스의 편협한 사고방식은 결국 커다란 전략적 실수를 가져왔다. 주력부대가 벨기에의 예정 방어선까지 엄청난 거리를 이동하여야 했는데, 사실 영국군을 제외한다면 기동장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대부분의 프랑스군은 분산되어 집결지로 향하기 일쑤였고 많게는 100킬로미터 이상을 행군하여 전투 전에 이미 지칠 대로 지쳤고 목적지에 도착하자마자 독일군의 공격을 받아 싸워보지도 못하고 패하게 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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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공군의 Do-17 폭격기. 강력한 루프트바페는 프랑스군의 이동을 성공적으로 제한하였다. <출처: Bundesarchiv>



거기에다가 루프트바페(Luftwaffe 독일 공군)의 강력함은 독일의 의도대로 전쟁이 흘러가도록 만들었다. 만일 육군끼리만 충돌한다면 제1차 세계대전 당시처럼 전선이 고착화될 가능성도 있었겠지만 독일 공군은 하늘에서 프랑스군의 이동을 강력하게 제어하고 있었다. 이처럼 B집단군이 선전을 벌이며 프랑스 제1집단군을 완벽하게 잡아놓고 있는 사이에 주공인 A집단군은 예정대로 숲 속을 빠른 속도로 가로지르고 있었다.

5월 11일, 아르덴 정면을 담당하던 프랑스 제2군 사령관 욍치제르(Charles Huntziger)는 숲 속에서 독일군의 이동이 목격된다는 보고를 접했다. 하지만 그는 이를 통상적인 것으로 판단하고 좌측에 있던 제9군과의 연결에만 신경을 썼다. 기갑부대를 앞세운 대규모 부대가 그런 험한 산악지대를 통과하고 있다는 생각을 꿈에도 하지 못한 프랑스는 여전히 저지대 국가를 종횡무진 휘젓는 독일 B집단군에만 집착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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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전역 당시 제7기갑사단을 지휘하던 롬멜 <출처: 위키피디아>



그러는 사이 롬멜(Erwin Rommel)이 이끄는 독일 제7기갑사단이 최초로 아르덴 숲을 튀어나와 뫼즈(Meuse) 강을 향하여 돌격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가믈랭은 크게 놀랐으나 여전히 다일 강과 브레다 강에 구축하기로 예정한 방어선에만 매몰되었다. 그는 아직도 어디가 독일의 주공인지도 알아차리지 못하였다. 5월 13일이 되었을 때 대부분의 A집단군 예하 부대들이 아르덴을 빠져 나와 신속히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완성된 거대한 포위망



프랑스는 경악하였으나 홀연히 등 뒤에 등장한 엄청난 독일군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프랑스 제1집단군이 벨기에로 이동하면서 생긴 텅 빈 후방에 예비군으로 구성된 2선급 부대들이 배치되었는데, 이들은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독일 기갑부대에 놀라 이미 전의를 상실한 상태였다. 독일군 전차들이 차례대로 강을 건너오자 방어를 포기하고 뒤로 돌아 후퇴에 나섰다. 프랑스군은 사실 후퇴하는 것이 아니라 붕괴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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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덴 숲 속을 통과하여 돌격하는 독일군 기갑부대. 이들의 등장은 프랑스를 경악시켰다. <출처: Bundesarchiv>



프랑스는 그들이 뭔가 크게 잘못 판단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하였으나 주력은 너무 앞에 나가있었다. 천신만고 끝에 다일-브레다 방어선에 겨우 도착한 제1집단군은 독일 B집단군과 전면적인 교전을 벌이고 있어서 뒤로 방향을 돌려 빠져 나오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한마디로 자신들이 생각하지 못한 엄청난 규모의 독일군이 뒤에 갑자기 나타났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즉각 대처할 방법이 없는 암울한 상황이었다.

5월 15일, 스당을 돌파한 독일 A집단군이 놀랄 만한 속도로 영불해협을 향하여 달려가자 지금까지 앞만 보고 저지대 국가를 향하여 몰려가 있던 프랑스 제1집단군은 순식간에 배후가 차단되면서 오도 가도 못한 채 갇혀 버렸다. 5월 20일이 되었을 때 상황은 극명해졌다. 독일 A집단군 선도 부대가 영불해협에 다다랐고 동시에 독일 B집단군도 전면을 압박하여 들어오면서 연합군 주력은 완전히 포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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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군 주력인 프랑스 제1집단군은 순식간에 독일 A집단군에게 배후가 절단되면서 완전히 포위되었다. 독일 자신도 경이로워했던 전격전의 정수였다.



일부에서 단말마적 저항이 있었으나 제1차 세계대전 당시에 기적을 만든 마른 전투 같은 극적인 반격을 재현하지는 못했다. 아니 그보다 더한 것은 전의를 상실한 프랑스군의 행태였다. 아무리 회피하였어도 전쟁이 발발하였다면 최선을 다해야 하는데, 프랑스군은 싸우려 들지 않았다. 프랑스군은 1차대전 당시의 아버지 세대처럼 목숨을 걸고 싸울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고 독일군이 눈앞에 보이면 모든 것을 포기했다.





됭케르크의 미스터리



프랑스군은 무기를 버리고 피난민보다 더 빨리 도망가거나 아니면 전의를 상실한 채 독일군이 나타나면 항복하기 바빴다. 심지어 진격을 계속하던 선두의 독일군이 바쁘다는 이유로 항복을 받아주지 않자 그 자리에서 우두커니 기다리고 있다가 독일군 후속부대에게 항복을 애걸하는 굴욕적인 모습까지 연출되었다. 무려 150만의 프랑스 제1집단군 대부분이 불과 열흘 만에 완벽하게 쪼개져 무너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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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로가 된 프랑스군. 전의를 상실한 프랑스군이 항복을 애걸하는 경우까지 비일비재하였다. <출처: Bundesarchiv>



이처럼 전세가 바뀔 희망이 보이지 않자 영국 원정군 사령관 고트는 영국으로 철수하기로 결심하였다. 지난 5월 9일, 전시 내각을 이끌며 영국 수상의 자리에 오른 처칠(Winston Churchill)도 이미 프랑스의 수상 레노(Paul Reynaud)로부터 “우리는 패했다”는 넋두리를 들은 상태였기 때문에 귀중한 원정군을 남겨놓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철수에 동의했다. 그러면서 아직까지 살아남은 40여 만의 연합군 잔존 병력이 됭케르크(Dunkerque)의 해변으로 밀려나갔다.

연합군은 칼자루를 쥔 독일군에 의해 해변에서 몰살당할 위기에 처해 있었는데, 지금까지도 미스터리로 남아있는 히틀러의 놀라운 명령이 5월 24일 독일군에게 하달되었다. “진격을 중지하라! 이제부터 루프트바페가 연합군을 처단한다.” 최후의 일격을 가할 준비를 하던 일선의 장군들은 경악하였지만, 히틀러의 명령은 확고부동하였다. 히틀러가 이러한 명령을 내린 정확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아 아직까지도 미스터리로 불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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됭케르크에서 필사의 탈출을 감행하는 영국군. 이 당시에 내려진 히틀러의 공격 중지 명령은 이후 많은 논란을 불러온 미스터리가 되었다. <출처: 위키피디아>



3일 후 명령은 철회되고 독일군 전차들이 다시 시동을 걸었지만 일초의 시간도 아까웠던 연합군에게 그것은 천금 같은 시간이었다. 희생을 마다하지 않은 영국 해군과 불리한 가운데서도 해협을 건너와 최선을 다한 영국 공군의 놀라운 투혼이 뒷받침되어, 비록 대부분의 중장비는 버리고 올 수밖에 없었지만 무려 34만의 대 병력이 바다를 건너 영국으로 탈출하는 데 성공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성공은 홀로 남겨진 프랑스의 희망을 완전히 꺾어버리는 기폭제가 되었다.




남도현 | 군사 저술가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


발행2015.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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