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경험담 천사가된 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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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익명
댓글 0건 조회 5,238회 작성일 17-02-06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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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가된 걸래

제1화 - 마누라 보지에 대한 회상.

지금은 하늘나라로 가고 없지만 나의아내는 천사같은 여자였다. 마누라 자랑을 하는 놈은 팔불출이라고 하지만 나는 너무나 착하고 아름다웠던 아내를 자랑하지 않을 수 없다.

심성이 착하고 어질어 부드럽고 상냥하며 인정이 많아 다정다감하고 자상하였으며 전형적인 현모양처형으로 나무랄 때 없이 휼륭한 주부였다.

아들이 젓먹이시절 이웃에 무의탁노인이 노환으로 들어눕자 자진하여 간호를 맡아 제부모처럼 정성껏 병수발을 하였으며 새댁의몸으로 2년간 대,소변을 받아내고 영감님 목욕까지 시켜드렸던 착한여자였다.

선천적인 동안으로 얼굴이 깨끗하고 빼어나게 예뻤으며 몸매도 날씬하고 자태가 고와 누구나 호감을 가지는 상큼한 여자였다.

워낙 청순하고 화사해보여 죽을때까지 새댁 소리 한번 듣지 못하였으며 30대중반에도 머슴애들이 자기들 또래인줄 알고 데이트신청을 하였을 정도로 어리게 보였다.

그러나 겉보기와 딴판으로 몸은 불같이 뜨겁워 유난히 남자를 밝히는 음탕한 여자로 하루라도 씹을 하지않으면 씹구멍에 가시가 돋히는 타고난 색골이기도 했다.

좃만 보면 환장을 하여 때와 장소를 가리지않고 기회만 있으면 아무남자라도 닥치는대로 붙어먹는 걸래로 눈만 맞으면 누구에게나 가랭이를 벌이는 개보지였다.

걸래답게 씹에는 도통하여 씹질도 잘하고 보지맛도 기가막힐 뿐만아니라 남자를 녹이는 재주가 비상하여 한번이라도 마누라를 먹어본 녀석은 오랫동안 그맛을 잊지 못하였다.

흔히 긴자꾸보지를 최고의 명기로 꼽지만 나는 긴자꾸보다 마누라보지를 더좋아했다. 그녀는 씹맛을 제대로 알고 있어 좃빨이 무지하게 잘받았며 낙지처럼 착착감겨들고 자지르지는듯한 교태를 보여 남자를 살살 녹여버렸다.

특히 색쓰는 소리가 기가막혀 애무를 할때부터 간드러지는 신음소리를 내어 감칠맛이 나게하고 좃질에따라 하모니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리드미칼한 색소리가 끊임없이 흘러 나와 남자들을 미치게하였다.

아이를 낳았지만 처녀같이 구멍이 좁고 수축력이 좋으면서 씹물도 넘쳐 흘러 좃을 밀어넣기만해도 쪽쪽 빨려 들어갔다. 엉덩이가 통통하고 허리는 가늘어서 요분질을 아주 잘해 꼽고만 있어도 저절로 좃물을 싸게하였다.

씹질을 할 때는지칠줄 몰라 한꺼번에 여러놈이 달라 붙어도 남자들이 나가떨어질 때까지 끈질기게 색정에 몰입하고 여럿이서 번갈아 박아대도 밤세도록 끄떡없이 견뎌낸다.

어느날에는 여덟놈의 똘마니들에게 돌림빵을 당했는데 어떤놈은 두세탕씩 뛰어 보지가 허벌통이 되었건만 그러고도 모자라 새벽녘에 돌아와서 나에게 달려들어 마무리를 해달라고 보채기도 하였다.

어린 계집아이였을때 후장이 뚫혀 똥구멍으로도 좃을 잘 받아들였고 똥구멍과 보지에 동시에 좃이 꼽히는 센드위치씹을 몹시 좋아했다.

강간이나 윤간을 당할때도 씹물을 질질 싸며 헤롱대거리고 지저분한 변태를 만나도 상대방기분을 적당히 맞추어주면서 오히려 남자를 데리고 놀았다.

대부분의 여자들은 수동적이지만 마누라는 남자들의 취향에 맞추어 요구하는대로 부담없이 따라주고 자기가 애무해주는걸 좋아했기때문에 아무리 노련한 씹쟁이라도 아내에게 걸리면 한낱 장난감이 되고 말았다.

혀놀림이 환상적으로 온몸을 구석구석 핧아주고 똥구멍까지 예사로 빨아주며 좃물도 잘받아 먹었다. 오랄 기술이 현란하여 20년이상 빨려온 나도 마누라가 빨아주면 매번 홍콩 갔다.

이렇듯 장황하게 아내 보지에 대한 자랑을 늘어 놓았지만 표현력이 부족해 아직 그녀의 진가는 절반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였다. 아무튼 아내는 섹스의화신으로 어떠남자라도 뽕가게 만드는 요물덩어리였다.

아내를 처음 만난 것은 그녀가 23살이었던 대학교3학년때였다. 그때 이미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좃이 들락거려 보지의 길이 매우 잘 들어져 있었다.

뿐만아니라 씹질도 대단히 잘해 나하고 속궁합이 너무 잘맞았으며 아내가 개보지란 사실이 마음에 들어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다른사람이 들으면 미쳤다고 하겠지만 중학교때부터 시작하여 수십명의 유부녀와 어울려 온갓 해괴망칙한 짓거리를 자행해 왔던 나역시 개잡놈으로 섹스를 예술의 경지나 스포츠의 일종으로 생각하고 있었으며 숙맥보다 씹맛을 잘아는 걸래같은 개보지를 더좋아했다.

그래서 처녀장가를 포기하고 나이에 상관없이 나와 함께 즐길 수 있는 화냥년을 찾아헤매던 중 미모가 뛰어난 천사표 걸래를 만났으니 호박이 넝쿨채 굴러들어온 셈이었다.

아내와 결혼하기전 나는 다른건 몰라도 씹하나만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행복하게 해줄것과 보지는 확실하게 개방해 주겠다고 약속하였다.

그러나 아내같은 걸래도 결혼을 하고나서는 화냥짓은커녕 내가 아무리 설득해도 다른남자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아 내속을 태웠다.

결혼후 아내의 보지를 개방하는데 4년이 넘게 걸렸다. 워낙 완강하게 거부하여 어느여름밤 소주를 몇잔먹인후 야한옷을 입혀 오늘도 하지못하면 집에 들어올 생각을 하지 말라면서 한밤중에 쫏아냈다.

두서너시간후 아내는 내가 지시한대로 보지에 좃물을 잔뜩 머금고 돌아와 내게 보지검사를 받았다.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번에 하겠지만 아내는 집을 나선후 불과 5분만에 휴가나온 군바리 두녀석을 만나 그길로 근처 공원으로 가서 둘다 따먹었다고 했다.

그날밤 우리는 한잠도 자지못하고 광란의밤을 보냈다. 오랜만에 다른좃맛을 본 아내는 신명나게 쫑알거리며 그과정을 상세히 설명해주었고 어느때보다 흥분하여 발정난 암고양이처럼 설치면서 나를 반쯤 죽게 만들었다.

"아내의 즐거움이 바로 나의 즐거움"이라는 나의 섹스철학이(알랑가?) 실현되는 날이었으며 맛있는 것은 여럿이 나누어먹어야 더욱 맛갈스러워 진다는 평범한 진리가 확인된 순간이었다.

그날이후 아내는 화냥기가 재발하여 내가 원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잘 따라주었고 아무리 어려운 숙제를( 특별한 상황을 설정하여 아내에게 그대로 실행시키는일) 주어도 여우같이 약삭바르게 해결하였으며 나와 함께 수시로 그룹섹스, 부부교환등 여러가지 성생활을 즐기게 되었다.

여자의 일생중 가장 황금기라는 30대후반의 나이에 급성신부전증이라는 못쓸병에 걸려 아내는 하늘나라로 갔버렸지만 나는 결코 슬퍼하거나 외로워하지 않는다.

씹을 너무 좋아하는 걸래라는게 흠이지만 평소에는 너무 착하게 살았고 자기 한몸을 바쳐(?) 수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였으므로 그녀는 하늘나라에 가서 틀림없이 천사가 되었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한순간의 감동이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는 소중한 추억을 남기듯 한번의 멋진섹스는 평생도록 잊혀지지 않는 은밀한 즐거움으로 간직된다. 아내와 함께 만들었던 멋진 추억이 너무 많아 아내는 언제나 내가슴 속에 살아 숨쉬고 있다.

40대중반의 나이로 이런글을 쓴다는 것이 조금은 어색하지만 아내에대한 그리움이 너무 사무쳐 이야기 속에서나마 아내를 다시 살려내고 아름다웠던 아내의 모습을 그리며 그녀에대한 그리움을 달래 보려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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