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경험담 히어로즈 장원삼을 좋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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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익명
댓글 0건 조회 3,746회 작성일 17-02-08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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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한 이야기는 아니에요, 제가 야한 이야기를 해주리라 기대하지 마세요^^ 큰 경험이 없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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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에 내 동생 때문에 미팅 하는데, 3:3이거든, 너 올 수 있지?”

“어디랑”

“이대”

“과는?”

“국제학부, 내동생 선배들인데, 나 동생 오빠인거 말 안했어”

“여대랑은 처음인데”

“괜찮아, 그래도 너 미팅은 많이 나가봤잖아”

“뭐 하루 놀지 뭐”

 

군에서 제대하자마자 JH 는 미팅부터 잡고 있었다. 여유로왔다. MW 와 나 그리고 JH 셋이 영화를 보거나, 야구를 보거나, 한 적 은 꽤 있었으나 미팅은 처음이었다.

 

나온 여자들은 괜찮았다. 셋 다 외모를 그리 따지지 않으니 OK 였고, 소위 말하는 이대 보슬아치랑도 멀어 보였다.-다만 그쪽에서는 별로 내키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 그렇다면 우리도 내키지 않게 되지- 우리쪽 셋은 다니는 곳이 다 달라서 서로의 소개를 하고 관심사를 대충 털어 놓았다.

 

스노보드가 어쩌구 저쩌구, 아직은 탈만한 날씨 아닐까요. 근데 그거 위험하지 않아요? 죄송하지만 저 남자지만 술 잘 못하니까 우리 그냥 석류주 시키면 안돼요? 코리아해럴드에서 인턴합니다. 어 거기 홍정욱 의원이 사장하던데였나? 들어가기 어려운데 대단하네요. 외국에서 오래 살았어요 물론 얘만큼은 아니지만. 그쪽 두분도 외국? 아 저는 아니고 얘는 남미에서 12년 살았어요. 보통 남자들은 여자한테 술 많이 먹이려 하던데. 그것도 남자가 좀 잘해야 어떻게. 아 죄송합니다 제가 오늘 동국대랑 시합이 있어서 술 마시면 나가 떨어질거 같으니까 저도 석류주나 레몬 이런게 나을거 같아요.

 

“야구를 좋아하세요?”

귓전으로 많은 말을 흘리다 말고 야구라는 한 단어에 정신이 들었다.

“네, 태어나자마자 야구팬이었어요, 지금은 동아리에서 야구도 해요”

“누구 좋아하세요?”

“음... 지금은 은퇴했지만 김한수 선수... 킁킁이(박한이의 별칭) 아 심정수(두산 현대 삼성을 거친 슬러거), 이숭용(팀이 태평양 현대 히어로즈로 바뀌며 한번도 팀을 바꾸지 않은 프랜차이즈 스타, 잘생겨서 노장임에도 여성팬이 많다), 홍성흔(두산의 명포수, 2008년부터 지명타자로 바꾸며 양준혁 이후 최고의 지명타자라는 평을 듣고 있다,현재 롯데). 아 그리고 장원삼도 좋아해요”.

“숭캡이랑 원삼이? 저도 좋아해요”

“아 제작년 올림픽때랑, WBC 때 최고였죠, 작년엔 부진했지만 올해는 좀 나을거 같아요”

“아 그래야죠”

 

그 뒤로부터 미팅에서 어떤 얘기가 오갔는지 기억은 잘 안난다.

안주는 괜찮았고, 술은 떨어지지 않았으며, 술값을 반반 내야 한다고 그쪽에서 고집을 부렸지만 우리가 몰래 계산하자 그쪽에선 우겨서 자기들이 노래방 비용을 내야 한다며 선불로 결제후 노래방을 갔다. 장원삼과 이숭용을 좋아한다는 그녀는 내가 부르는 강산에의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힘찬 연어들처럼을 따라서 불렀고, 나는 그녀가 부르는 김현성의 FLY HIGH를 같이 불렀다. 그녀는 갑자기 예뻐 보였다

 

서로 번호를 교환한 뒤, 연락을 기대하지 않고 해어졌다.

 

며칠뒤 우연히 문자를 보내봤고, 그때 감사했다고 보냈다.

답이 왔다.

오늘 시간 있으면 동대문으로 나와주실레요?

 

다행히도 옷을 사느라 시간을 보내진 않았다. 철거되어가는 야구장에 분노하고. 쫓겨난 단골 노점상에 분노했다.

 

어느 빙수집에 들어가 빙수에 숟가락 두 개를 꽃았다.

 

“야구 자주 보러 가요?”

“가끔요, 공부하니까”

“그럼 같이 보러가요”

“네”

“그럼 태평양때부터 팬?”

“네?”

 

빙수집에서 나오던 음악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현대때부터?”

“아 저기 저는... 삼성라이온즈 팬인데요”

 

그녀가 숟가락을 떨궜다

 

“이숭용이랑 장원삼을 좋아한뎄잖아요”

“그거야 선수로서... 팀은 삼대째 삼성을 응원해요”

 

이빨로 입술을 깨무는 그녀의 모습은 벰파이어 같았다. 그녀의 안경에 짜증과 습기가 섞여있었다.

 

“삼성 나쁜 구단인데... 엘쥐도... 다들 나쁜놈들인데, 장원삼도 뺏어가고, 이택근도... 이제 강정호랑 황재균만 남았구만... 그것마져 못 뺏어가서, 히어로즈 팬은 만나기 어려워서 반가웠는데... 당신도 똑같아, 장원삼을 좋아한게 아니라 삼성의 장원삼을 좋아한거겠지. 히어로즈 장원삼을 좋아할리 없잖아. 심정수도 그래서 좋았겠지. 이숭용은 장원삼도 박진만도 심정수도 뺏어갔으니까 미안해서 동정하는거고”.

 

 

목이 탔다. 남자 앞이었다면 빙수를 들고 훌훌 들이마셨을거 같다. 못생긴 새끼 꺼져라 라는 말보다 더 슬펐다.

 

돌아 나오는 동대문은 어두웠다. 시위의 열기와 불빛은 느껴지지 않았다. 서로 꾸벅 인사를 하고 나는 동대입구로, 그녀는 동대문운동장 역으로 발길을 돌렸다. 운동장 철거에 반대하는 상인들과 아마추어 선수들이 울고 있었다. 나도 울었다

 

그녀의 번호를 지웠다.

 

 

 

며칠 뒤. 나는 같은 수업을 듣던 동갑, 하지만 자기가 8개월 빠르니 누나라 주장하는 동기와 과제를 하고 있었다.

 

“며칠전에 미팅했다메”

“어 어떻게 알았어?”

“니가 자랑하고 갔잖아, 어떻게 됐어”

“삼성팬이라 싫다나 크크... 젠장, 오늘부터 히어로즈 안티해야지”

 

“두산이랑 삼성은 감독끼리도 친하고, 트래이드도 많이 하고, 서로 싫어하는 사이도 아니지?”

“응, 진갑용도 두산에서 왔고, 채상병도... 조계현도 삼성에서 두산으로 갔지, 너 두산팬이었지 맞다”

 

 

책에 고체 형광펜으로 박박 밑줄을 긋던 내 손 위에 그녀가 손을 올려놓고 손가락으로 손등을 슬슬 쓸었다

“두산팬은 어떻게 생각해?”

“응?”

“난 삼성팬 괜찮아”

 

서로가 응원하는 팀이 다르면 어때. 잠실에서 나는 삼성을, 너는 두산을 응원하면 되는걸. 둘중 한 팀이 포스트시즌에 올라가면 두산 이겨라, 삼성 이겨라 이러면서 서로의 팀을 응원해주면 되는걸. 두산이 좋은게 아니라 니가 두산팬이니 두산이 좋아 보이는거고. 삼성이 좋은게 아니라 내가 삼성팬이니 삼성에 니가 관심이 생기는거겠지. 뭐 삼성이랑 두산이랑 붙으면, 개삼성과 씹돡이라 서로 부르면 되지. 그렇다고 서로 미워지는건 아니니까. 그래 그러면 되잖아. 꼭 사랑한다고 무릎 꿇고 고백하지 않아도 되잖아. 꽃이 피고 바람이 날리는 곳이 아니라 잠실의 응원석이라도 괜찮잖아.

 

“존댓말 써줘, 연하가 좋은거 같아, 내 앞에서도 남자답게 굴어야돼”

“네”
 
누나같은 너, 내 옆에 있는 걸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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