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경험담 그 더럽고 질긴 인연의 끈이...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익명
댓글 0건 조회 3,055회 작성일 17-02-08 08:32

본문

며칠 전 그저 그럭저럭 친하던 의사질하는 대학 때 친구에게 전화를 받

았다.


H야 이 말을 너한테 어떻게 전해 줘야 할지 모르겠다.


뭔데?


나 오늘 걔 봤다?


누구?


걔말이야. 니 전에...


누군데...?


니 엑스와이프 말야.


... 그런데 왜...?


병원에서 봤어.


어디 아프다냐? 아니면 애라도 낳으러 왔냐?


그게...


뭔데? 뭐 죽을 병이라두 결렸냐?


...응...


...뭔데?


...ovarian cancer(난소암)인데...


그거 요즘엔 빨리 수술하면 나을 수도 있잖아?


그게... 말기야. 이쪽은 발견이 잘 안돼서...


...얼마나 더 살 것 같은데?


글쎄? 몇 달은 갈려나...? 그냥 넌 알고 있는 게 나을 것 같아서...


그래 알았다. 그때까지 뭐 했대?


근데 말이야. 걔가 좀 이상하더라.


뭐가?


외려 잘됐다는 표정이야. 더 살구 싶지가 않은가봐.


왜?


그건 나두 모르지. 일단 애는 없는 것 같구 남편도 같이 안 온 것 같구... 넌 뭐

아는 거 없냐?


...글세? 일단 알았다. 나중에 전화하자.


한참 일하던 중에 받은 전화는 이렇게 끝나고 H는 담배를 한 까치 깊게

물었다. 연기 속에 달포 전 그녀에게 받은 전화 내용을 다시 한번 찬찬

히 기억해 내면서...



... 자기야?


... (모르는 척) 누구세요?


나 S.


... 웬일이세요?


그냥... 잘 있나 해서.


뭐 별일 없습니다만...


그... 말 좀 옛날대로 하면 안돼? 너무 이상해.


제가 이젠 S씨하고 말 놓을 사이가 아닌 것 같습니다. 뭐 중요한 일이라도

있습니까? 그저 옛날 생각이 나시는 거면 전 생각하구 싶지 않으니까 끊으시

죠.


... 흑흑흑 자기야 미안해. 그땐 정말 미안했어. 나두 어쩔 수가 없었어...


S씨. 그만큼 내 인생을 뭉개구 못할 짓을 하고 갔을 때도 난 당신 잘 살기만

바란다고 말했었습니다. 단 한가지 다시는 당신을 만나지 않기만을 바란다고

했던 거 기억 안 나세요? 그런데 또 전화를 한 이유가 뭔가요? 무슨 문제가 생

겼나요? 문제가 있으면 댁의 남편하고 상의하세요. 전 이제 S씨와는 아무 상관

없는 사람이잖아요. 이만 끊겠습니다.


자기야... 끊지마요. 제발. 내가 잘못했어. 여보 미안해요.


...


그냥 자기 목소리 한번 듣고싶어서 전화해봤어요. 그냥...


그래? 별일 없으면 다행이야. 내가 지금은 많이 바쁘고 그것보다는 아직 니

목소리 들으면서 옛날 생각하고 싶지가 않거든. 그러니까 힘들어도 니가 알아

서 해결하도록 해. 넌 니남편도 있잖아.


...


이만 끊자.



그렇게 전화를 끊고 한참을 후들거리는 다리를 가눌 수가 없던 게 불과

한달 좀 넘었는데. 며칠전 친구에게 들은 얘기와 연결점을 찾는 순간 만감

이 교차한다는 게 이런 거구나 생각하면서 다시 담배를 물었다.


몇 년 전 H와 S는 잠깐의 결혼생활 끝에 처참하게 헤어졌다. 한때는 그

게 사랑이라고 착각하고, 결혼하면 지금 마음에 들지 않는 문제들도 모

두 가려질 거라고 애써 자위하면서. 하지만 그 몇 달간의 결혼은 너무나

도 큰 상처를 남기고 비참하게 끝을 맺고 말았다.


신혼 초부터 어떻게 저런 고학력자에게서 저렇게 상식 밖의 말과 행동

이 나올 수 있을까 하면서 몸서리쳤던 S의 도벽과 거짓말. 그걸 물려준

처갓집식구들의 똑같은 짓거리들. 걸핏하면 욕지거리와 흉기가 난무하

던 다툼들. 싸움 끝에 몰려와서는 그나마 남은 물건들을 깨부수면서 칼

을 들이대던 그녀의 형제들. 그 식구들이 모이면 벌어지던 술판, 칼부림

판의 연장.


같은 학교를 나온 친척에게서 나중에야 알았지만 퇴직한 유명회사 임직

원이라고 감쪽같이 폼을 잡던 S의 아버지는 학교 동기들에게 '술도 쳐먹

는 개'소리를 들으면서 평생 처가집을 등쳐먹던 사기꾼. 사위가 너무 자

랑스럽고 사랑스러워서 간이라도 빼주겠다던 어머니는 그 고상해 보이

던 입에 '개'자로 시작돼는 모든 욕지거리를 매달고 다니던 여자.


오늘은 집에 가면 또 뭐가 없어졌을까, 또 어떤 새로운 욕지거리가 그 입

에서 나올까를 고민하면서 H의 길지 않은 결혼생활은 그렇게 끝을 맺었

다.

그 꼴을 옆에서 본 친구들은 H에게 그렇게 말했다. 사람 정말 살아보지

않고는 모를 일이라고. 그렇게 요조숙녀로 보이던 그녀와 그 가족들이

그럴 수 있다는 걸 어떻게 알겠냐고.


그렇게 끝난지 얼마 안되어 S의 상사에게 들은 몇 가지 얘기는 H의 가슴

을 쓸어내리게 했다. 그녀에게 H는 세 번째 상대였으며 앞의 두 남자와

는 우여곡절 끝에 파혼했다는. 그래서 그녀는 더 필사적으로 H에게 매달

렸고. 세 번째 남자 H와 그렇게 끝난 후 얼마지 않아 그녀는 감쪽같이 처

녀로 돌아가서 다시 다른 남자와 열애중이고 곧 결혼 할 거라는.



1년쯤 전 H는 S의 친구임을 사칭하는 여자의 전화를 받았다. 그녀가 잘

지내고 있으며 개인적으로 왜 그렇게 헤어졌는지 무척 궁금하다는 질문

을 받는 순간 전화를 한 그 여자가 그녀와 틀림없이 안 좋은 관계에 있

던 사람일거라는 생각에 왜 그런 질문을 하냐며 화를 내고 끊어버렸고

또 한번의 통화로 그녀의 새로운 시누이였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

이를 악물고 한숨 크게 한번 쉬고 H는 S를 두둔했다. 다정하게 대해주

고 감싸주면 잘 할거라고. 절대 나쁜 여자가 아니며 자신과는 정말 인연

이 아니라서 헤어졌고 좋은 사람 만나서 행복해지기를 바랄 뿐이라고. S

와 새로 결혼한 자신의 오빠가 일년 전과 똑같은 일을 당하고있다며 법

정에서 H의 증언이 필요하다고 통곡하던 새 시누이의 요청을 H는 그렇

게 거부하고 다시 한번 가슴을 쓸어 내렸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다시는 보고싶지 않았고 세상 어디에서도 다시 소식 듣

기를 원하지 않았던 그녀는 그렇게 H앞에 다시 나타났다. 모진 인연의

끈으로. 제발 그녀가 잘 살아야 다시는 옛날 생각하지 않을 거라고. 그렇

게 되기만을 빌었던 H에게 그녀는 또 한번 나타난 것이다. 어쩌면 이번

이 마지막일지도 모를 모습으로.


며칠 전 H는 그 동안 몇 번이나 바뀐 S의 전화번호를 우여곡절 끝에 찾

아냈다. 그리고 며칠을 갈등하고 있다.

어차피 이번이 마지막이 될텐데 그녀의 얼굴을 한번 봐? 보고 그 일그러

진 신세를 마음껏 조롱이라도 해줘? 아니면 마지막 가는 길 위로라도 해

주고 용서해 줘? 그 모든 게 지금 와서 무슨 소용일까? 아니야. 가는 길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주는 게 정신건강을 위해서는 좋을 거야?


이런 생각들이 끝없는 담배연기와 함께 며칠째 H의 머리를 짓누르고 있

다.



그 답을 네이버3 친구들에게 구해본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