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경험담 [여름 이벤트 응모]아직도 끝나지 않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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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익명
댓글 0건 조회 3,476회 작성일 17-02-08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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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본인의 주위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며 타인에게 언급조차 하기 두려운 마음이 앞서 수없이 망설이던 이야깁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며 정리를 하는 와중에도 눈시울을 붉히게 하는 일들이 너무도 많고 어둡고 슬픈 가족사이기에 오히려 숨기고 싶은 이야기 이기도 합니다.

첫 번째 이야기는 지금부터 약 12년전으로 거슬러올라갑니다. 제 나이가 20대 후반으로 접어들 때쯤에 이야깁니다.

갑자기 시골에서 할머님이 농약을 드셔서 위독하시다는 급한 전화를 받고 집안이 발칵 뒤집혀 병원으로 가게 됩니다. 박카스 병에 담긴 그로막손이라는 맹독성 제초제를 박카스로 잘못 아시고 드셨다는 것입니다. 할아버지께서는 박카스를 드시고 고통스러워하시는 할머님을 보시고 숟가락에 따라서 약간 맛을 보셨다고 했습니다.워낙 독성이 강한 농약이라 원액이 피부에 묻어도 폐가 섬유질로 변해 사망하게되는 일이 있다고 하더군요.

할머니는 그렇게 병원에 도착하신지 몇시간만에 집으로 돌아가서 임종을 맞으시라는 의사의 권유로 구급차로 시골로 내려가시고 그날 새벽에 작고하셨습니다. 할아버지는 약간 맛을 본 그 농약 때문에 중독현상이 일어나 병원에 입원하시게 되었습니다. 전 그때 할아버지의 병상을 지키느라 병원에 혼자 남아 있었습니다.

그때 시골에는 아버지의 10남매 일가친척이 전부 모여 계셨는데 할머니가 의식이 없는 상태로 이미 사망선고를 받은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에서 서울에서 전화가 한통 걸려왔다고 합니다.

할머니의 위독한 소식을 듣고 내려오신 큰고모님 댁에서 아직 미혼이던 막내누나와 막 결혼해서 아이 엄마가 된 셋째누나가 다른 누나들의 아이들과 함께 모여 집을 지키고 있는데 아이들에게 시달리던 막내누나가 더워서 샤워를 하러 욕실에 들어가서 샤워를 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욕실에 들어 왔다는 것입니다.

다홍치마 한복을 입은 생전 처음 보는 젊은 여자가 시골에서 사경을 헤메고 계실 할머니손목을 움켜 잡고 욕탕으로 끌고 들어왔다는 것입니다.목욕중인 누나 앞에 할머니를 앞 세워 들이닥친 다홍치마의 여자는 온갖 욕설을 하며 너희집안 놈들 다 죽여 버린다고 저주를 하며 너무도 놀란 누나가 거품을 물고 쓰러질 때까지 욕설과 저주를 해댔다는 것입니다.

비명소리에 놀란 셋째누나가 욕실에 가보니 아무도 없는데 막내누나 혼자 비명을 지르며 알몸으로 날뛰다가 의식을 잃었다고 합니다.. 어린 조카들까지 모여 있었으니 바로 공포의 도가니로 빠지고 말았겠지요.
할머니의 임종을 몇시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헤괴한 일이 벌어지니 모두들 침통하고 두려운 마음이 앞섰습니다.

병원에서 그런 이야기를 전해들은 저는 그때까지만 해도 의식이나 활동에 지장이 없으시던 할아버지께 그 이야기를 전해드렸습니다. 할아버지는 잠시 생각에 잠기시더니 한숨을 쉬시며 아주 오래된 옛날이야기를 해주시더군요.

할머니와 결혼하시기 이전의 이야기로 1920년대 말정도에 결혼을 한번 하셨었다고 했습니다. 몸이 약하시던 그분은 가난한 농부에게 시집와서 밥한끼 배불리 제대로 못드시고 1년동안 고생만하다가 돌아가시고 장례도 치뤄주지 못하고 할아버지 혼자 지게로 지고가서 이름 모를 야산에 묻어 드렸다는것입니다. 당시 수의도 장만하지 못해 시집올때 입고 왔던 다홍치마를 입혀서 가마니에 싸서 지게로 지고 갔다는 이야기를 하시며 눈시울을 붉히시더군요.

나중에 할머니와 결혼하시고 논밭도 장만하시고 형편이 풀리자 다시 그곳을 찾았는데 이미 지형이 변해 버려 찾을수가 없으셨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평생 이 이야기를 누구에게도 해 보신적이 없었다는것입니다.
그후로 할머님이 돌아가시자 할아버지도 상태가 악화되어 5일만에 세상을 뜨셨습니다.

그동안 서울의 막내누나는 날마다 방문하는 정체불명의 다홍치마의 여자귀신에게 시달림을 받아 밤에도 불을 켜고 잠들고 사람들 없는 곳은 다니지도 못했습니다. 할아버지가 임종하시기 전에는 너희 할아버지를 데려가야겠다고 했으며 할아버지 임종후에는 대낮에 할아버지를 끌고 집안으로 들어 왔다고 하더군요. 할아버지는 죄인처럼 끌려와 아무말도 못하시고 옆에 서계셨다고 합니다.

그렇게 조부모를 줄초상을 치르게된 집안에 한을 품고 죽은 귀신이 나타나니 모두들 두려움이 앞서 살풀이굿이라도 해야겠다고 유명한 무당을 초빙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온 무당은 박수무당이었는데 집안을 둘러 보더니 갑자기 안색이 변해서 도망가 버렸습니다. 살기가 강해서 자신의 힘으로 어찌해볼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있으면 자신이 화를 입는다고 그렇게 가 버리더군요.

두 번째로 온 무당은 처녀무당이었는데 서울에 있는 막내누나를 내려오게 했습니다. 아무래도 신을 받아야만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하더군요. 자신도 거부해봤지만 옆에 사람이 죽어가니 어쩔 수 없다고 하며 막내누나의 운명이 불쌍하지만 살기가 워낙 강한 귀신이 붙어서 내림을 하지 않으면 우리집안에 살아날 사람이 없다는것입니다.굿판을 벌이더니 칼을 여러자루 가지고와서 대문을 향해 던지더군요. 막내누나가 그걸보더니 다홍치마 입은 여자귀신이 대문에 들어서다 칼을 던지니 피하느라 못들어온다고 하더군요. 거기서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산사람의 입을 빌어 귀신의 이야기를 들은것인데 저의 어머님과 고모님이 각각 다홍치마의 여자귀신과 할머님의 목소리를 내시며 두분이 서로 욕하며 싸우시더군요.

할머니는 내자식들 살려달라는 것이고 귀신은 다 죽여야 직성이 풀린다고 하는데 어머니께서 다홍치마귀신이되어 다른목소리로 '내가 이년제사밥한번 받아먹어야겠다"라고 그러자 처녀무당이 우리집에서 제사를 지내라고 하더군요. 막내누나가 신내림을 받고 우리집에서 다홍치마할머니 제사를 지내면 조금 나아질 것 같다고 그래서 어느 정도 정리가 되는듯 했습니다.

할머니의 사고가 박카스병에 맹독성농약이 들어 있어서 모르고 음독하게된 사고라 경찰에서도 수사가 들어와 있는 상태였고 그 박카스병은 증거물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제가 찾지 못하도록 대나무밭에 던져 버렸습니다.

이제와 하는 말이지만 당시 제 마음속으로 지목하고 있던 범인이 있었기 때문이지요.당시 시골집에 옆동네서 농사를 지으시던 큰아버지께서 집과 땅을 모두 팔아서 사촌형님 사업밑천을 대다가 부도가나서 할아버지 소유로 되어 있던집에 옮겨와 있는 상황이라 박카스병의 농약사건은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병원에서 할아버지께서도 분명 박카스가 들어 있었기 때문에 맛을 보셨다고 하셨기 때문이지요.병원에 혼자 남아 있던 저만 알고 있던 사실이었습니다.할아버지도 그런일로 누군가가 다치는걸 원하지 않으셨는지 박카스병을 숨겨 버리라고 하시더군요.

남들은 평생을 함께 하신 노부부가 5일간격을 같이 세상을 떠나니 호상이라며 금슬이 좋으셨던 분들이 함께 가신다고들 하셨습니다만 제 맘속은 항상 불안하기만 했습니다.

그후에도 막내누나는 결혼도 안한 몸으로 요즘 세상에 신내림이라는 말도 안되는 일을 거부하고 계속 귀신들의 방문을 받았습니다. 살아있을 때는 그렇게 좋기만하고 다정하던 분들이 막상 죽은후에 찾아온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지는 경험해보지 않으면 모른다고 하더군요.

정말 예쁘고 착하던 막내누나는 어릴적부터 저의 이상형같은 여자였습니다.저보다 1년 연상으로 함께 자라온 시간이 많아서 가장 가깝던 누나가 사람들과 만나지도 못하고 대낮에도 죽은자들이 보이는 시선을 가지게 되니 한편으론 불쌍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두려움마져 느껴지더군요. 그리고 막내누나는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견하기 시작했습니다.

할머니께서 큰아버지를 데려가시려 한다고 하더군요. 그후 1년후 조부모님 제사를 끝내고 며칠후에 큰아버님이 뺑소니차에 치어 비명에 가시는 사고가 생겼습니다. 일년만에 또다시 가족장을 치르게 되었습니다.지난 일년동안 술이 없이는 하루도 연명하시지 못하고 사시던 큰아버지였고 그사실을 누나로부터 들어 알고 있던 큰고모님과 어머님은 빨리 신내림을 해야한다고 성화셨으며 다른누나들과도 불화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셋째누나가 막내누나에게 너 때문에 사람들이 죽는거라고 신들린년 때문에 밖에 나다니기도 쪽팔리다는둥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말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순간 막내누나가 다른사람으로 돌변해서 "니서방이 죽으면 너도 눈에서 피눈물이 날꺼다"라고 저주를 퍼부었답니다.

그후 얼마후에 건설하청업을 하던 셋째누나 매형이 정말 원인도 이유도 모르는체 피를 현장에서 쓰러져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급살을 맞았다고 하더군요.

그후로 저희 큰형님은 지방에 있는 거래처에 다녀오시다 늦은 밤길에 안전벨트까지 하고 옆좌석에는 직원까지 동승한 상태에서 도로가 순간적으로 보이지 않아 논두렁으로 차가 구르게 되었느데 차도 별 이상이 없고 옆좌석에 직원은 타박상도 안입었는데 형님만 안전벨트가 목에 감겨 경추골절로 전신마비가 되는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현재도 1급장애인으로 너무도 힘든 하루하루를 형님 표현으로 숨만 쉬고 계십니다.

그 사고후 막내누나는 집안식구들과 왕래를 거의 끊고 있다가 오랜만에 나타나 안타까워하며 눈물을 보였습니다..다홍치마할머니가 오빠 목을 눌러 버린 모양이라고 하더군요. 그후 얼마안있어 셋째작은아버지께서 직장에서 뇌출혈로 쓰러지셔서 다시 가족 장을 치러야했고 그 얼마후에는 5척의 원근해 어선을 소유하고 계시던 막내고모부의 배가 동지나해에서 침몰하며 선원10여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발생하여 파산을 하시게 됩니다. 사소한일은 접어 두고 큰 사건만 나열한것입니다.

우연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순서대로 따지면 할머니 -> 할아버지->큰아버지 ->큰고모(막내누나의 신들림, 셋째매형의 의문사)->아버지(큰형님의 사고) ->작아버지 -> 막내고모부 소유의 배가 침몰하는 사고가 1년간격이나 같은 해에 연속적으로 일어난 일이라 저희 가족입장에서는 우연으로만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막내누나는 결국 신내림을 받았습니다. 지금은 서울 어느동네에서 처녀무당으로 유명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신내림 받기 위해 전국명산을 돌아 다니며 수업이라는것도 받더군요. 하지만 누나가 신을 받아도 자신의 뜻대로는 할 수 없다는것입니다.이미 인간으로서 자신의 의지를 포기한듯한 그런 말도 들었습니다. 자신은 결혼도 하지 못할 것이고 가족들과 함께 살거나 어울려도 안된다는것입니다.

지금도 죽은자가 산자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터무니없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고 나름대로 종교적인 힘을 빌어볼까 해서 우연한기회에 인연을 맺은 시애틀선교원의 목사님과의 인연으로 한때는 기독교적인 구원을 갈망하기도 했었습니다. 10여년이 지나니 차분하게 정리를 할 여유가 생기는군요. 하지만 저로서는 다시는 떠올리기 싫은 순간들이 많았습니다.

이제 두 번째이야기로 처가에 일어난 사건을 정리를 해보려 합니다.

저는 아내와 결혼후에도 지나간 가족들의 과거사를 거의 이야기 하지 않았습니다. 들어봐야 즐거울 일이 없는 이야기이고 누워서 침뱉기라는 생각이 들어서 였습니다.

결혼후 처가쪽 식구들과 무척 가깝게 지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내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편이고 장모님이 큰딸이시고 아내 역시 큰딸이다 보니 막내 처외삼촌 막내 처이모가 저 보다 나이가 적습니다.

처가쪽은 장인어른이 독자시라 가족이 없으시고 외가쪽 가족구성이 장모님 밑으로 이모님들이 4분이 계시고 외삼촌이 3분이 계시니 3남5녀의 대가족으로 연배도 저랑 맞아서 조카사위라기 보다는 친구처럼 지내고 있습니다.

두 번째 이야기는 지금부터 약 5년전으로 거슬러올라갑니다.

처이모중 셋째이모님이 이모부와과 함께 저희집 근처에서 갈비집을 운영하셨습니다. 그때는 저도 술을 좋아해서 퇴근후에 들려 돼지갈비에 술한잔하는 것이 일과였습니다. 당시 저는 셋째이모부가 건강이 좋지 않으셔서 술을 드시지 않는 줄 알았습니다. 평소에 술드시는 모습을 보지 못했고 병원에 입원도 자주하시는걸로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셋째이모부는 알콜중독중증 환자였습니다.그것도 남들 보이지 않는곳에서 혼자서 폭음을 하는 스타일로 일주일씩 식음을 전폐하고 술만 마시다 입원하곤 했던것입니다.

그날도 퇴근길에 들려보니 장인어른을 비롯하여 처가 식구들이 많이 모여 계셨습니다. 서울에서 둘째 이모 내외분이 놀러 오셔서 모인 날이었습니다.그날은 셋째이모부가 평소에 먹지 않던 술을 많이 마시는 모습을 보고 놀랐는데 집사람이 그제서야 자초지정을 이야기 해주더군요. 시간이 늦어 먼저 일어나 집에 왔는데 바로 전화벨이 울리더군요.

셋째이모가 차에 치었는데 이모부가 차로 치었다는 황당한 말이었습니다.
술자리가 끝나고 처가 식구들이 모두 일어나는 분위기에서 술이 한잔 더하고 싶던 셋째이모부가 술에취한 상태로 식당에서 사용하는 봉고차를 끌고 나가려다 가로막는 셋째이모를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그대로 출발해서 20여미터를 끌고 갔다는 것입니다.

집근처라 바로 뛰어가보니 울부짖는 장모님과 처외삼촌들의 모습이 보이고 구급차도 도착하지 않은 상태에서 차밑에 끼어서 20여미터를 아스팔트 바닥에 씻기며 끌려온 셋째이모가 차범퍼 앞쪽으로 머리만 내놓으시고 아직도 의식이 남아있는 상태로 운명하시기 직전이었고 도로는 피바다를 이루고 있었습니다...지금도 눈감으면 생생하게 떠오르는 평생 잊을 수 없는 끔찍하고 처절한 광경이었습니다.

술에 취해서 차를 가지고 나가려는 것을 음주운전을 막으시려고 가로막았는데 술이 취한 이모부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지요.

당시 장인어른 장모님 서울에 계시던 둘째이모와 이모부 처외삼촌들 모두가 오랜만에 모여 함께 있던 자리라 눈앞에서 사랑하는 가족이 그 고통을 당하고 운명하는 그 끔찍한 장면을 목격하고 만것입니다. 유난히도 정이 많으시고 저희 부부와 어린딸아이를 챙겨주시던 분이라 이글을 쓰면서도 눈물이 나오려고 하는군요.

근처 소방서에서 구급차가 도착할 때까지 빼낼 수도 없어서서 속수무책인 상태에서 아이들 이름만 부르시다가 그렇게 가셨습니다....

초등학교 다니는 딸만 두명을 두고 계셨는데 그 어린자식들을 두고 어찌 눈이 감겼을까.. 이런일을 현실로 받아 들여야만 하는지 정신적 공황에 빠져 버리더군요. 사고라지만 남편이 아내를 죽게 만든다는 것이 신문기사에서나 나옴직한 이야기였기 때문입니다.

어떻게보면 친누나 친동생을 눈앞에서 죽인 원수라할 수 있는데 아이들을 고아로 만들 수는 없다고 변호사비용까지 들여 가며 이모부의 형량을 감면 해 주었습니다. 아이들을 위해서 새 출발을 바라는 마음에서 였는데 그 인간이 아직도 정신을 못차린 듯 술을 입에 댄다 하니 알콜중독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병인지 실감이 나더군요.....

그후 교회장로였던 큰처외삼촌은 신앙생활에 몰두하여 밤낮없이 기도생활을 했습니다. 날마다 꿈속에서 핏물을 쓰고 나오는 이모의 모습에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평소 심약해서 헛것을 잘보신다는 둘째이모부께서 처가에 제사를 지내러 오시던중 무서운 경험을 하게됩니다.

서울에 사시던 둘째 이모 내외와 넷째 이모 내외가 한 대의 차로 함께 오게 되었는데 갑자기 둘째 이모부가 식은 땀을 뻘뻘 흘리며 차를 갑자기 빨리 몰기 시작하더랍니다.
왜그러냐고 물어도 대답도 안하고 시선은 앞만 보고 휴게소까지 무서운속도로 밟아 대기만 하더라는겁니다.
휴게소에 도착해서 왜그러냐고 물으니 방금까지 처제가 운전석 문고리를 잡고 계속 따라와서 그랬다는것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휴게소 의자에 앉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 말이라도 해보지 그냥 왔냐고 하니까 따라 오며 계속 이야기를 하는데 무서워서 그냥 듣고만 왔다는겁니다.
둘째이모가 커피를 한잔뽑아서 셋째이모가 앉아 있다는 벤치에 놔주며 마시라고하니 둘째 이모부 눈에는 마시는 모습도 보인다는것입니다.
다시 출발하니 역시 문고리를 잡고 함께 가자고 해서 이모부가 사정을 했답니다.
처제 이제까지 함께 와줘서 고마운데 그만 우리끼리 가게 해달라고 사정을 해도 운전석 문고리를 잡고 말없이 두시간을 함께 타고 와서 처갓집 골목어귀에 도착하니 안보였다는 것입니다.

처가에서 제사에 참석하기위해 들렸다가 그말을 듣고 당시 국도로 장거리 운행을 자주 하던 저에게는 고문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한적한 국도를 달리다 밤이 되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그 생각에 등골이 서늘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제사를 지내는 중에도 둘째 이모부의 눈에는 집안으로 걸어 들어오는 셋째이모의 모습이 보여서 처가식구들이 옷은 뭐 입었냐? 얼굴은 좋아보이냐 ? 이런 이야기가 오고 가며 한 사람이 더 있는것처럼 제사를 지낸 기억이납니다.

저는 그동안 사촌누나를 통해 경험한 바도 있고 해서 이모부의 눈에 보인 실체를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어린 자식들을 두고 차마 떠날 수 없는 마음이 아직까지 남아 지켜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오랜시간동안 가슴에 뭍어둔 이야기를 끄집어 내려니 두서도 없도 글주변도 없어 제대로 전달이나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쉽게 경험해보지 못할 이야기들이고 아직도 끝나지 않은 이야기인지도 모릅니다만 정말 망설이고 고민하다 글을 작성했습니다.

네이버3회원님들 가정에 사랑과 행복이 충만하시기를 기원하며
가족의 소중함을 돌아보는 시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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