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경험담 사랑의 의사가 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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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익명
댓글 0건 조회 2,255회 작성일 17-02-08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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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 지금이나 의사가 되기까지는 참 어렵고 힘든가 보니다.
1970년대 돌아가신 둘째삼촌댁 큰 자제분께서 의과대학에 들어갔습니다.
아버지없이 공부하다보니 숙모님은 가진 전재산을 팔아야햇고....
둘째동생은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형님의 학비를 대겠다고 리비아 건설현장
으로 떠났습니다.

그후 4촌형님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의사가 되었지요...

그리고 사촌형님이 서울의 종합병원에서 외과의사로 근무하는 어느날
형님의 학비를 대겟다고 리비아 건설현장으로 갔던 동생이 급히
본국으로 후송 되었습니다.

피부암이었습니다...

형님의 학비를 대겟다고 열사의 땅 리비아에서 페인트공으로 일하던
둘째 동생은 피부가 썩어들어가 쓰러지는 그날까지...
하나뿐인 형제인 형님이 의사가 되기를 기원하며...
병마에 시달리며 돈을 벌었답니다.

이미 치료시기를 놓쳐 가망이 없어.... 동료의사들은 이미 희망이 없으니
포기하라고 권햇고...동료의사들이 집도를 거부했답니다...
괜히 가망이 없는걸 손댓다가 원망을 듣기 싫었던거지요.

그래서 사촌형님은 직접 메스를 들고 동생의 수술에 들어갔고...
동생분은 형님이 보는 앞에서 수술중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사촌형님은 동생이 숨을 거두는 순간 들고 있던 메스로
자신의 동맥을 짤랐고.......... 주위에 지켜보던 동료의원들이
덥쳐 전신마취시켜 동맥을 꿰메고 정신병동에 묶어놓았습니다.

이소식을 들은 숙모님은 깜짝놀라 올라 오셔서
"자식이라곤 아들둘 뿐인데 너마져 죽으면 우리집 대는 누가 잇느냐...
죽을려면 애미랑 같이 죽자....."
울고 불고 난리가 났었지요.....

그리고 한달후 사촌형님은 숙모님께 편지 한통을 써두고 기어이
집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어머니! 제가 이런상태에서 메스를 들고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할수 잇다는
자신이 없습니다"
"어머니 꼭 돌아 올테니 걱정하시지 마시고 기다려 주세요.."

그리고 5년후.........
1987년의 여름 KBS 아침방송.....
전라도 섬마을에 진료가방을 들고 무의탁 노인과 수용시설..
그리고 병원이 없는 섬마을을 돌아 다니며 봉사하는 의사가 있어
화제가 되었는데.....

동네 잔칫날... 하얀가운을 입고 시골집 마당에서 동네 사람들과
막걸리를 먹고잇는 사람에게 리포터가 다가가 물었답니다.

"정말 의사선생님 맞으세요?"

바로 우리 사촌형님 이셨습니다.

"여기까지 오신김에 막걸리나 한잔하고 가시지요?"

"지독한 자기자신의 아픔을 겪어본 자만이
다른 사람의 아픔도 돌아보게 되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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