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경험담 [성인물아님] 복권 매니아의 비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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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익명
댓글 0건 조회 3,292회 작성일 17-02-08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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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방송에 기고한 글입니다. 혹시 방송을 듣다 이글이 나오면
저놈 네이버3에서 쌔벼갔다 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마육봉이 저놈이구나
라고만 생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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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를 제대하고나서 부터 지금까지, 그러니까 거의 7년의 세월동안 저는 한주도 빼놓지 않고 복권을 사 왔습니다.

매주 5천원어치씩 꼬박꼬박 복권을 사고, 가끔 꿈자리가 좋을때에는 몇만원어치도 사곤 했습니다. 복권의 종류를 바꿔보기도 하고, 매주 추첨하는 복권이 아닌 분기별로 추첨하는 초대형 복권도 구매했었습니다. 지금은 자기 자신이 직접 숫자를 선택하는 형태의 복권도 나오고 있더군요. 역시 그 복권도 매주 구매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복권에 쏟아부은 돈은 아마 자동차 한대는 거뜬히 나오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하지만 만원짜리 당첨금 한번 타 보질 못했습니다. 그래도 후회나 좌절은 없었지요. 그저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고, 언젠가는 저에게도 대박의 그날이 오리라 생각하면서 복권을 샀습니다.

작년 이맘때쯤의 일입니다.

똥이 가득 쌓여있는 산을 오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저 위쪽에서 집채만한 돼지 한마리가 저에게 달려오는게 아니겠습니까. 무척이나 놀란 나머지 피하지도 못하고 그저 돌진해도는 돼지에게 저의 운명을 맡기게 되었습니다. 이젠 죽었구나 라는 생각만 들더군요.

그런데 갑자기 어디선가 나타난 호랑이 한마리가 그 돼지에게 덤벼들어 사투를 벌이고는 저를 구해주었습니다. 하지만 그 호랑이 역시 돼지와 사투를 벌이느라 큰 상처를 입었지요. 그 고마운 호랑이는 갑자기 저를 등에 태우고 어디론가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무지개색 안개가 자욱한 온천이었습니다. 그 호랑이는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온천으로 들어가 제게 살며시 미소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저는 눈을 번쩍 떴습니다. 이건 바로 대박의 징조다 하는 생각에 바로 만세삼창을 하고 회사에는 몸살이 나서 출근할 수 없다는 전화를 걸었지요. 그리고 바로 종로에 위치하고 있다는 복권 명당을 찾아갔습니다. 그날 그 판매소에서 제 한달 용돈을 모두 썼습니다.

하지만, 1등 당첨은 커녕, 500원 당첨도 하나 나오질 않았습니다.

그저 개꿈이려니 하고 넘기려 했지만 저를 향해 미소를 짓던 호랑이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몇일이 지나고, 제게 등기우편물이 하나 도착했습니다. 경품행사에 응모하고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사은품으로 문화상품권이 한장 왔더군요.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 하는 순간, 저는 자리에 쓰러지는 줄 알았습니다.

문화상품권 위쪽에 바로 민속화에 나오는 '호랑이' 그림이 있었고, 그 호랑이가 바로 제 꿈에 나온 호랑이 였던 것입니다.


문화상품권 당첨의 꿈이 너무 거창했던 나머지 저는 복권 당첨의 꿈으로 착각하고 한달치 용돈을 모두 쏟아부었던 것이지요.


그리고, 바로 몇일전 또 한번의 꿈을 꾸었습니다.

요새 사회적인 이슈가 되고 있는 '인생역전', 바로 자기 자신이 숫자를 고르는 방식의 복권에 대한 꿈이었습니다.

제가 어디에선가 1등 당첨 번호를 알아냈습니다. 그리고 그 숫자를 복권 구매 용지에 기입하려고 하는데, 기입할때마다 자꾸 틀리게 써지는 바람에 수십장의 구매용지를 찢어버리고... 결국 마감시간이 지나버려 1등 번호를 뻔히 알면서도 손이 말을 듣지 않아 복권을 사지 못했습니다.

아침에 벌떡 일어나 비몽사몽간이었지만, 등당첨의 그 번호를 잊어버리기 전에 적어놓아야 겠다는 일념으로 펜과 종이를 찾기 위해 방안을 뒤졌습니다. 마침 제가 자고 있던 방에 필기도구가 없어서 다른방으로 가는 와중에, 그 여섯자리의 숫자를 그만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날의 암담했던 기분은 아마 짐작하실 수 있겠지요.

지금 제 침실 머리 맡에는 필기도구와, 소형 녹음기가 놓여져 있습니다. 다시한번 그런 기회가 온다면 잊어버리지 않고 적어 놓기 위해서랍니다.


아마 저는 다음주에도 복권을 사고, 결국 대박의 꿈을 이루지 못하더라도 계속 복권을 사게 될 것 입니다. 언젠가 1등 당첨이 된다면 무척이나 기쁘겠지만, 그 이후에도 또 다시 복권을 사게 될 것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당첨이 아니라, 작은 돈으로 얻을 수 있는 한주의 행복과 기대감, 그리고 '희망'이라는 삶의 활력소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누구나 잡을 수 없는 꿈은 쉽게 포기하게 마련입니다. 복권 역시 잡을 수 없는 꿈에 가까운 반면에, 누구나 잡을 수 있는 확률이 있는 꿈입니다.

복권을 사면서 가지는 기대감과 당첨 발표날 아침의 설레임은,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열고 새벽 공기를 마실때 느낄 수 있는 하루 일과에 대한 작은 기대감과 닮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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