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경험담 인터넷 동영상으로 본 그녀와 직접 만난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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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익명
댓글 0건 조회 2,491회 작성일 17-02-08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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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 한국에 들어 가서 떡을 칠 때 마다 느끼는 것이 있다.
한국 여성들의 보지힘이 점차 강해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바야흐로 조선 보지 바람이 강하다보니 좆도 아닌 좃선의 좆들이
보지 바람에 이리 저리 정신없이 날리고 있는 것이다.
컴퓨터 자판 정도면 칠 줄 알면 잡아 먹을 수 있는 좆들이
수두룩하게 널려 있다보니 여성들의 간식욕은 날로 강해질 뿐만
아니라 맛있는 좆을 골라서 다양하게 맛 볼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참으로 좆 맛 나는 세상인 것이다.



요즘 젊은 늑대들은 나이를 불문하고 번섹무림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 같다. 나름대로의 기준에 따라서 만나는 떡녀를 선별해서
만나는 일부 미식가들도 있는 것 같지만 태반이 그냥 "주면
먹는다" "벌리면 박는다" "바로 안주면 바로 줄 여자 찾아간다" 라는
단순한 식욕으로 무장한 늑대들이 도처에 군웅할거 하다보니 바야흐로
좃선의 유부녀들은 이제 바람이 안들래야 안들 수가 없다.
바람이 바람이 아니고 정상적인 시대의 흐름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견이나 우나 죄다 바람 피우는데 나만 안피우면 이상한 년이 아니고
보지 상한년으로 왕따 당해서 자살하는 순박한 유부녀가 발생하는
황당한 사건이 발생할 날도 머지 않았다.
자살하면서 그녀가 "이년들아~~ 내 보지 쫀득하다" 라는 엽기적인
유언 같은 것을 남길 수도 있지 않을 까 하는 택도 아닌 상상을 해 본다.
바야흐로 유언의 다양화 시대에 우린 살고 있는 것이다.



옆집 영희 엄마 스캔들 핑계 댈 것도 없이 뼈와 살을 태울 것 같은
토요일밤의 열기도 아닌 보지안 열기를 참지 못하고 내가 하면
로맨스라는 단순논리에 입각한 적극파 아짐씨들이 심심치 않게 번섹
무림에 등장 하는 것을 보면 실로 시대의 변화를 절감하지 않을 수 없다.
한가정 한자녀 가지기 운동이 아니고 한유부녀 한간식좆 혹은
보지 꼴리는 대로 다 가지기등의 간식 좆 많이 가지기 운동이 좃선을
들불처럼 불 태우고 있는 것이다.
교조적인 유교가 겉으로 엄연히 살아 숨쉬고 있는 좃선에서 밑으로의
성의 혁명이 시작된 것이다. 이 성의 혁명은 여성 자신이 이끌고 있는게
분명하다.



오늘 주제와는 별로 상관없는 사설로 색남색녀들의 심신을 혼미하게
한 것 같아 마음이 편치않다....그럼 본론으로 들어가자.
해외출장이 잦은 직업을 가진 본인인지라 각국을 제법 쏘다닌다.
폼은 나는데 실속은 존나게 없어서 이짓거리 언제 때려치우나
고민만 하고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는 불쌍한 청춘이다.
국가명을 밣히지 못하겠다. 다만 한국에서 몆시간 거리에 위치한
향락의 도시다. 항상 신토불이만을 고집하는 본인이다 보니
약 일년반전 그때도 물어 물어서 한국 가라오케을 찾았다.



한국의 단란주점 비슷한 구조를 가졌지만 그곳에서 일하는 아가씨들은
한국에서 나가요 걸로 활동할려니 자존심 상하고 얼굴이 팔릴까
두려워서 한국보다 돈벌이는 약하지만 사생활 보장이 나름대로
이루어지는 해외이다 보니 대학 휴학생, 평범한 집의 과년한 처자,
친구따라 나가요걸로 데뷔한 얼띠기 같은 걸들이 10여명 포진하고
있는 겉으로는 평범하게 보이는 술 집이었다.



그당시 해외지사 설립이 본인에게 맡겨진 직무이다 보니 겸사 겸사
좃선에서 정상통관 절차 거치지 않고 야매로 수출된 조선보지의 품질도
체크하기 위한 애국심에서 한집만 골라서 자주 출입 하였다.
그때 자주 본인과 야부리를 까던 미스한 이라는 여성이 있었다.
정확한 나이까진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20대 초반 이었다.
차분하게 생겨 먹은 아가씨 였고 순진한 듯 하지만 속으로 엄청
밝히는 이중성이 돋보였다.



참고로 그집은 2차라는 조선에서 비공식적으로 국가가 공인한
떡치는 절차가 없었다. 좃선의 술집에서 2차 뛰는게 싫어서 해외로 나온
소신파들이 많다보니 게중에 2차 뛰고 싶은 걸도 자존심의 문제로
2차를 기피하게 만드는 특이한 내부규약이 암암리에 존재하고 있었다.



미스한은 서울에 위치한 모대학 2학년 휴학중 이었다.
나가요 무림에 나온 애들 사연 듣다보면 3박 4일 연짱으로 들어도
시간이 모자르다. 하여튼 165 정도의 키에 하얀 피부, 약간의
콧소리, 조금 어눌한 말투, 상큼한(?) 외모......대단히 맛깔스럽게
보이진 않았지만 술한잔 걸친 눈으로 보면 조금 군침이 돌게
만드는 아가씨 였다.
폭탄도 자주보면 이쁜 구석이 보이기 마련이 듯이 역시 자주 만나다
보면 정이 들게 마련이다.



술집에 손님이 뜸한 일요일 오후 그녀를 픽업하게 위해 자동차를
렌트했다. 존나게 비싸더만.......그렇지만 차가 필요했다.
존나게 좁은 곳이라 나가요걸 데리고 도시를 쏘다니다보면
필히 구석 구석 사주경계중인 조선동포들의 레이다에 걸릴 수 밖에
없고 그후 그 바닥에서 존나게 노는 난봉꾼으로 낙인 찍힌다.
혼자몸인데 난봉꾼으로 찍히면 뭐 어떠냐는 의문을 가진 분들도
계시겠지만 좃선사회에서 찍힌다는 것은 여러가지 어려움을
주게 마련이다.



낮에 만난 그녀 밤무대 얼굴하고 전혀 딴판이다.
만지기만 해도 자지러 질거 같은 생기발랄한 대학생 그대로다.
오랜만에 젊은(?) 오빠를 만나서 데이트 한다면서 방방 뜨는 모습이
본인을 기쁘게 한다. 맛있는 아점 먹여주고 섬을 끼고 도는 드라이브
코스 거친 후 어렵게 찾은 호텔로 들어갔다. 그당시 이국멀리서
호텔을 찾으면서 느낀 점은 역시 대한민국이 떡을 치는 환경은
제일이었다. 대한민국은 어느 곳에 내가 있든 꼴리면 바로 들어 갈 수
있는 정육점이 지천에 널려있다. 떡치기가 거의 국민운동 순준으로
자리 잡다 보니 대한민국 방방곡곡에 떡전문 운동장이 산재해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 모두 합창해보자 "아~~~~ 대한민국.. 아~~ 떡친민국"



역시 어리다는 것은 좋은 것이었다. 탱탱한 피부가 장난이 아니다.
방실 방실한 젖가슴하며 잘록한 허리선이 입맛을 절로 돋군다.
첫경험을 대학교 일학년때 한 아그이다 보니 보지 안창살이 아직도
선홍빚이 감돈다. 처녀막의 흔적이 조금 남아 있는 것이 성욕을 자극하기도
하지만 아직은 순진한(?) 걸을 나 같은 씁쌔가 또 건드리는 것 같아
잠깐이나마 악어의 눈물같은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비록 해외에서 잠깐 나가요 걸로 데뷔한 그녀지만 남자 경험은 많지 않은
왕건 이었다. 말 그대로 도라지 따다가 "심봤다" 외친 격이다.



성경험이 많지 않다고 오르가즘 못 느끼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
잊지 못할 느낌을 주기 위해서 애무에만 노력봉사 한시간 넘게
했다. 그리고 삽입할 때 그 보지의 빡빡함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나이가 나이인지라 색성도 아직 제대로 내지 못하는 그녀였다.
삽입 당하면 겨우 내는 소리가 "헥~~ 헥~~~ " 이었다.
그렇게 첫인연을 맺었다.
인연이 인연인지라 자주 만날 수 밖에 없었다. 물론 낮거리로....
어떤날 출근하기 싫으면 그녀를 숙소로 불러서 주간경기를
치렀다. 역시 선수들에겐 구멍이 잘 보이지 않는 야간경기 보다는
번들 번들한 보지물이 보지와 항문을 흥근히 적시는 씬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주간경기가 타율이 좋게 마련이다.



삽입할 때 마다 홈런이었다. 덩달아 여자로써 성에 드디어 눈을 뜬
미스 한 이었다. 첨엔 용돈삼아 돈을 주기도 했지만 나중엔 받지
않을려고 해서 선물로 때웠다. 왠지 어렵사리 데뷔한 나가요 걸을 사취하는
기분이 약간 들기도 했지만 나름대로는 진심으로 대했다.
그렇게 인연을 맺고 떡을 약 3달 정도 만들었다. 그녀의 비자가
만료되는 날 그녀는 홀연히 그 도시를 떠낫다.
물론 마지막으로 떡을 칠 때 잠깐 스쳐가는 말로 어디 몆일
다녀오겠다고 했지만 그것이 그녀와의 직접적인 인연의 끝이었다.
그렇게 그녀와의 만남은 끝났고 내 기억속에서 그녀의 흔적은
조용히 사라졌다. 해외지사 설립임무 끝내고 후임자에게
업무 인수 인계하고 그 도시를 떠났고 가끔씩 출장으로 갈 때
마다 그녀가 일했던 술집에 들러써 마마상이랑 그애의 흔적을
더듬어 보기도 했지만 알 수는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네이버3에서 우연히 알게된 주소에서 실시간으로 시청한
동영상이 있었다. 내용은 아주 단순하게 젊은 처자 훌떡 벗겨 놓고
카메라 든 양아치랑 인터뷰 하는 것이었는데.......
오마이 갓 !!!!!!!! 바로 그 도시에서 3달동안 짧은 인연을 가진
미스 한 그녀 였다. 만감이 교차했다. 카메라가 그녀의 가슴이며
다리, 보지 언저리를 집중적으로 클로저업 했다. 물론 보지 안창살까지는
보여 주지 않았지만 내가 자주 이쁘해 준 가슴이며, 쓰다듬어준 보지털이
적나라게 화면을 가득 매운다. 그녀가 말하는 대사는 귀에 별로 들리지
않았다. 나와 나눈 진실과는 거리가 먼 대사였기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



다만 내가 가지는 의문은 도대체 저 애가 왜 얼굴을 저렇게 팔면서
까지 세상을 살아야 하는 궁금증 밖에 없었다.
미국에 늘쌍 간다고 말 하더니 혹시 미국에서 무슨 일이 생겼나 ?
아니면 가족중에 누가 미친듯이 돈을 달라고 하나 ?
아니면 마음을 줄 수 있는 놈을 만났는데 실연을 당했나 ?
이도저도 아니면 마늘까는데 강제로 끌려 갔다가 얼굴하고 보지까면
마늘 안까도 된다고 회유를 당했나 ?
비록 사랑하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한때는 인연을 맺은 그녀였기에
안타까움이 절로 들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한동안 네이버3에서 혹시 야동 주소가 올라오면 정신없이
그녀의 흔적을 찾아 다녔지만 그 인터뷰 비슷한 것 빼고는 찾을 수가
없었다. 화면빨이 그다지 받는 그녀가 아니었기에 아마도 잠깐
인터넷쟈키로 활동한 것 같기도 하다.
요즘에도 성인방송을 볼 때면 그녀 생각이 난다. 얼마전에 네이버3의 고수
한분이 주신 패스로 어떤 성방을 구경한 적이 있다. 갓 데뷔한 듯한
순진하게 보이는 좃선의 포르노 쟈키가 보짓물도 나오지 않은 마른 보지에
딜도를 쑤쎠 박는 어정쩡한 자위행위를 하고 있는 것을 보니
참 세상 요지경이다 라는 생각이 든다.



한때는 기억에서 잊혀진 그녀 미스 한 이었지만 성인방송을 볼 때마다
그녀와 함께 한 3개월이 새록 새록 그리워 진다.
그당시 그녀를 만날 때 그녀가 말한 것 중 제일 잊혀지지 않는 말이
있다. 자기는 자기 아빠 같은 사람은 절대로 만나지 않을 거라고....
무능하고 폭력적이고 야만적인 아빠였다고. 자기 아빠를 생각하면
한국남자랑 결혼하고 싶지 않다고 그래서 외국어 전공을 택했고
미국에서 꼭 살고 싶다는 아주 단순한 바램을 그 어린 나이에 가지고
있었다. 자식 낳아 놓면 저절로 성장하는 것 아니다.
한때의 욕정으로 비록 낳았겠지만 제대로 책임 지고 키워야 하지
않겠는가 ?
제대로 키울 자신이 없으면 낳지 않는게 최선이다.
낳았다고 해서 다 부모가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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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그녀의 행복을 진심으로 빌어 본다.
그리고 젊어서 고생하고 있는 그녀이기에 분명히
그녀의 중년과 말년은 행복할 것이다. 그래야 세상이
공평한 것 아니겠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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